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55)
외전: 성역 탐방 – 1
“이렇듯 모시게 되어 크나큰 영광입니다, 성자시여.”
내게 제일 가까이 붙은 마르가리타를 필두로 그 뒤에 이단심판관과 이단심문관이, 그 둘보다 더 뒤에는 성기사들과 전투 수녀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전투 수녀 몇 명은 혼돈 던전을 지키느라 그곳에 눌러앉아 있을 테지만, 고작 4명에 불과하니 여기 모인 수백 명에 비하면 티도 안 나는 숫자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나는 마르가리타가 입고 있는 갑옷을, 아니, 갑옷이라 부른다는 행위에 심각한 의문이 느껴지는 무언가를 쳐다보았다.
“내가 예전에 분명 그런 종류의 갑옷은 착용 금지라고 말해뒀던 것 같은데.”
“예. 보석과 금은으로 이루어진 갑옷에 착용 금지령을 내리셨지 않습니까. 저희 모두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 입고 있는 건 대체 뭔데? 내가 잠이 부족해서 잘못 보고 있는 건가?”
마르가리타는 손가락부터 팔꿈치까지, 그리고 발가락부터 무릎까지가 새하얀 갑옷으로 덮여 있는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부분의 살을 모두 드러내고 있었다.
차라리 여기서 끝냈더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겼을 것이다. 당장 비키니 수준의 노출은 노출 축에도 못 끼는 것이 지금의 라파엘라 성국이니까.
“이것 말입니까? 저희 성기사단의 새로운 갑옷입니다.”
마르가리타가 가슴 첨단에 위치한 다이아몬드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그래, 저게 문제였다.
방금 ‘갑옷’이라 불린 것의 정체가 겨우 보석 3개 뿐이라는 게.
“그 다이아몬드가?”
마르가리타의 은밀한 부위는 모두 투명한 다이아몬드로 가려져 있었다.
특유의 투명함 탓에 그 뒤가 고스란히 비쳐보이는지라 강한 분홍색을 띠고 있는 상태였고, 크기는 또 얼마나 작은지 그 옆으로 퍼져나간 유륜을 가리지도 못했다.
아랫도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가슴 첨단에 달린 다이아몬드보다는 조금 컸지만, 이미 가린 면적을 논의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남자 갑옷은 잘 만들어놓고 왜……?’
이런 터무니 없는 복장을 입은 것은 여자뿐이었다. 남자 성기사가 착용한 갑옷은 금과 은, 백금으로 아주 멋들어지게 장식됐고, 저게 인간인지 로봇인지조차 구분이 안 갈만큼 전신을 꽁꽁 싸맸다.
갑옷이라기보다는 SF 느낌을 물씬 풍기는 슈트에 가까웠기에, 차라리 여자 성기사한테도 저 갑옷을 입히는 편이 낫지 않나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저 다이아몬드 3개로 이루어진 ‘갑옷’은 꼴림이나 흥분의 영역이 아니라 대체 저 광기가 어디까지 치닫게 될지를 두려워해야 할 영역에 들어섰으니까.
“성자님께서 논의되던 갑옷의 파기를 명하신 후, 저희의 신성력이 부족하다는 판단 하에 노출을 더욱 줄였습니다. 전체적인 만듦새 또한 새롭게 바꾸었으니 분명 성자께서도 만족하실 것입니다.”
‘뭘 했다고?’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마르가리타를 위아래로 훑었다. 설마 보석 비키니 하나만 입으려다가 팔이랑 다리에 갑옷 좀 착용했다고 노출을 줄였다는 말을 한 건가.
만듦새를 바꿨다는데 갑옷 빼면 뭐가 달라진 건지 감이 전혀 안 왔다. 내가 예전에 기각시켰던 보석 비키니나 저거나 다를 게 전혀 없지 않나.
“예전이랑 뭐가 달라졌다는…….”
멈칫, 하려던 말을 멈췄다. 뭔가 이상야릇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나는 마르가리타가 입은 갑옷을, 그러니까 가슴 끝의 첨단을 조심스레 살폈다. 시선을 느꼈는지 마르가리타가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관찰하려는 건 맞는데 가슴을 관찰하려는 게 아니고 얘들이 갑옷이라 주장하는 보석을 관찰하려는 거니까 어쩔 수 없이 가슴을……
“…….”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포기하고 방금 느껴졌던 위화감의 원인을 찾는 일에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원인을 알아낼 수 있었다.
다이아몬드를 고정하고 있어야 할 끈이 보이지 않았다.
저번 갑옷은 그나마 끈이 몸을 두르고 있기라도 했었다. 일단 비키니라는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이라도 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저건 아니었다. 몸을 가리는 물체라곤 뒷면이 비쳐서 분홍색을 띠는 다이아몬드 뿐, 그걸 고정해줘야 할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아니겠지.’
보석이 달려 있는데 정작 그걸 받치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뿐이었다. 거기까지 떠올리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이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마르가리타가 뿌듯함마저 섞여 있는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다.
“이 갑옷은 보석의 속을 각자의 체형에 맞게 파내고 끼우는 방식으로 착용합니다. 그러니, 예전보다 한층 더 발전된 방식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
음.
그래, 뭐. 대충 저러리라 짐작했다. 성국은 예전부터 저랬으니까.
스텔라를 처음 만나서 ‘이단 심문’을 당했을 때도 놀랐고, 플로레타랑 루나를 처음 만났을 때도 놀랐고, 신성력이 높을수록 더 헐벗어야 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도 놀랐고, 교황들한테 역으로 덮쳐졌을 때도 놀랐고, 아무튼 그랬었다.
내가 ‘옷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의 천쪼가리’라는 생각을 떠올린다면 대부분은 성국과 연관된 상황이기도 했고, 당장 이클립스부터가 표면상으로는 성국이랑 연관되어 있는 존재니 저런 갑옷이 존재할 수도 있ㅡ
‘……기는 개뿔이.’
아니,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좀 아니지 않나.
보석 안을 유두에 딱 맞게 파내서 그걸 끼우는 방식으로 착용한다고? 저걸 갑옷이라 불러줘야 하나? 애초에 보석 비키니라고 부르기도 힘들 것 같은 무언가를?
아찔해지려는 정신을 필사적으로 부여잡은 나는, 문득 떠올라버린 소름끼치는 생각에 마르가리타의 아랫배에서 밑으로 조금 내려간 자리를 쳐다보았다.
‘…….’
그리고 생각을 포기한 채 고개를 들었다.
아래쪽에 보석을 ‘어떻게’ 고정시켰는지에 대해서는, 딱히 알고 싶지도 않고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보석 비키니 입으라고 할 걸 그랬나.’
설마 그것보다 더 심한 게 튀어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마르가리타.”
“예, 성자시여. 말씀해주십시오.”
“내가 미안해.”
“……예?”
“내가 미안하다고. 너희한테.”
괜히 성국에서 연설 한 번 했다가 여자들 복장이 저런 꼴로 변해버렸는데 당연히 미안해해야지.
“성자님께서 왜 저희들 따위에게 사과를 하신단 말입니까! 부디 말씀을 거두어주십시오!”
내 뜬금없는 사과에 마르가리타는 물론이고 이단심판관과 이단심문관, 전투 수녀와 성기사까지 단체로 허둥대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중간중간 노출이 너무 적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들렸다. 잘못 들은 게 아니다. 노출이 너무 많은 게 아니라 적은 게 아니냐고 지적한 거다.
웃긴 건, 그 말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꽤 많았다는 사실이다. 저기서 노출을 더 줄이려면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갑옷까지 벗어던져야 하나.
“됐어. 잠깐 농담 한번 해본 거야. 별일 아니니까 신경 안 써도 돼.”
빠르게 상황을 수습했다. 잠시 머리가 아찔하긴 했지만 완전히 무너뜨리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마르가리타는 이제 성역으로 안내해드리겠다며 쭈뼛쭈뼛 몸을 돌렸다.
몸 뒤쪽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이 성자님께서 거주하시게 될 저택입니다.”
마르가리타는 저택이라 부르기엔 조금 많이 커다란 건물 앞에서 멈춰섰다. 옆으로 뻗은 길이가 끝이 안 보였다. 체감상 황궁이나 대성당보다도 거대한 것 같았다.
심판관과 심문관이 다가와 지도를 펼쳤다. 눈앞의 저택은 ㄷ자 모양으로 지어졌고, ㄷ모양의 오목하게 파인 부분에 또 다른 건물이 있는 구조였다.
‘얼마나 크게 지은 거야?’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벽과 지도를 번갈아 쳐다보던 나는 지도의 축적을 바탕으로 실제 크기를 가늠해보았다. 그 결과, ㄷ모양 한쪽의 길이가 족히 4km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
이래저래 겪었던 게 많아서 이제 어지간한 일로는 절대 안 놀라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성국에 올 때마다 자꾸 그 생각이 부정당하고 있었다.
내가 어이없어하는 사이, 마르가리타가 지도를 가리키며 열심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현재 완공된 부분은 성자님께서 보고 계시는 저택과 중심의 주거공간입니다. 아직 그러지 못한 곳들은 차차 완성시켜 나가겠습니다.”
“완성 못 한 곳?”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넓다. 저택 한쪽 벽의 길이만 4km인데다, 주변에 펼쳐진 숲과 호수를 포함하면 길을 잃지나 않을까 먼저 걱정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도 아직 완성되지 못한 곳이 있다니, 여기서 뭘 더 추가하려는 건가 싶었다.
“산과 강입니다.”
“…….”
나는 마르가리타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뒤 자취방에 있던 여자들을 모두 데려왔다. 내가 떠난 직후에 플로레타와 루나가 넌지시 언질을 줬던지라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숙취와 흑역사로 끙끙 앓아누웠던 클라우디아도 은근슬쩍 대열에 합류했다. 이젠 오빠라고 안 불러주는 거냐며 놀려볼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나중에 해야지.
“어떠하신지요, 델타 님? 마음에 드시는지요?”
“아직 다 완성되지 않아 미숙한 부분이 많으나, 차차 더 나아질 것입니다.”
다들 양 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저택에 놀라거나 뭔가를 고민하고 있는 사이 플로레타와 루나가 내게 다가왔다. 처음 만났을 때 봤던 교황들의 성복을 입고 있었다.
가려야 할 곳은 전부 다 가린, 무척 건전한 복장. 그 모습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둘을 끌어안았다.
“다, 다들 보고 있지 않습니까.”
플로레타와 루나는 입으로는 놀라는 척 하면서도 슬금슬금 등에 팔을 감아왔다. 훤히 드러난 가슴골의 감촉이 느껴졌다.
“내가 방금 하나 깨달은 게 있어.”
“무엇인지요?”
“너희들 정도면 성국에서는 엄청 건전한 축에 속했다는 거.”
진심으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