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6)
‘황제가 날 감시하라고 명령했다니. 상황 이해를 못하겠네.’
제일 처음으로 든 생각은 이거였고.
‘일단 저놈은 병신이 확실한데.’
그 다음으로 든 생각은 이거였다.
황제가 내게 뭘 원하는지, 그리고 저놈한테 뭘 명령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렇게 대놓고 날 감시하라는 의미가 아닐거였단 사실만은 어렵지 않게 확신할 수 있었다.
대체 누가 나 지금부터 너 지켜볼거다, 라며 말을 하고 감시하는가. 그런 말로 대상의 행동을 위축시키려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서야 말이다.
그런데 이 녀석이 말하는 걸 듣자하니, 저런 말을 꺼내서 내 행동을 위축시키려는 목적도 아닌 듯 했다. 즉, 이놈은 정말로 진지하게 날 감시하겠다고 선언한거였다.
‘게임이랑 달라진 게 하나도 없네.’
금빛 황혼 기사단의 기사단장은 게임에서도 자뻑과 올려치기가 일상이었던, 이른바 개그 캐릭터에 가까운 NPC였다. 게다가 성격도 개차반이었고.
물론 똑같이 성격이 개차반이라 타인에게 민폐를 잔뜩 끼쳐대던 이 도시의 영주와는 달리, 어디까지나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놈이라서 경우가 약간은 달랐지만.
창작물에서 으레 두 개의 라이벌 집단이 있으면 하나는 청렴결백하거나 선한 놈들이라 주인공의 조력자가 되고, 다른 하나는 부패하거나 상대적으로 나쁜 놈들이라 주인공을 사사건건 방해하듯이, 황궁의 두 기사단도 똑같았다.
은빛 여명 기사단은 스토리 진행과 루트 선택에 따라 완전한 아군이 되어 동료로 합류하기도 한다. 반면에 금빛 황혼 기사단은 그런 것도 없었다.
‘그리고 실력도 더 떨어지지.’
은빛 여명 기사단은 기사단장 전원이 보스전의 OST까지 제공되는 네임드 보스였던데다, 금빛 황혼 기사단에 흡수된 일반 기사단원들도 ‘정예’라는 특별한 호칭이 붙은 잡몹이었다.
반대로, 금빛 황혼 기사단의 기사단원들은 그냥 ‘황궁의 기사’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게다가 그 유일한 기사단장인 눈앞의 NPC조차도 보스가 아니라 중간 보스 취급이었다.
제작자가 뭘 말하고 싶었을지는 뻔했다.
“지금, 누굴 감시한다고?”
“야,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빨리 설명이나 하지? 나 이제 슬슬 진짜로 열 뻗치려 하거든? 우리 신입한테 뭘 해?”
날 감시할거라는 소리를 들은 리제의 눈빛이 싸늘하게 바뀌고, 어느새 뒤로 다가온 클라우디아가 그 어깨를 꽈악 움켜쥐었다. 클라우디아의 눈빛도 리제에게 지지 않을만큼 살벌했다.
황금빛 기사도 주춤하는 기색은 전혀 없이 짜증스레 되받았다.
“아까부터 말했을텐데. 황제 폐하의 명이라고. 오늘부터 2주간, 너희 은빛 여명 기사단에 들어온 신입 기사를 감시하라는 명을 받았다.”
“신입, 너 그때 뭐 잘못하기라도 했어?”
“딱히 생각나는 건 없는데요?”
“그런데 황제 폐하가 왜……?”
“나도 모르지. 그래서 지금 이러고 있잖아.”
우리 셋은 서로를 마주보며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한 마디씩을 주고받았다.
진짜다.
나는 게임에서 하던대로 여기 도착한 황제를 맞이했고, 황제가 질문하는데 대답을 안 할수도 없으니 대답했고, 중간에 들어온 공격은 안 막았으면 내가 죽었을거라 막았을 뿐이다.
그 뒤로도 딱히 이렇다 할 것은 없었다. 애초에 황제의 곁에 붙어다니는 건 아우로라가 다 했지, 나는 그냥 뒤에서 입 다물고 따라갔던 게 전부였다.
황제가 얌전히 뒤따르는 나한테 굳이 말을 걸지도 않았었고.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이런 상황은 난생 처음이었기에, 황당함이 가시자 고민이 조금씩 머리를 치켜들었다. 분명 큰 줄기는 게임의 메인스토리를 그대로 따라갔다고 생각했다.
중간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은빛 여명 기사단에 들어왔고, 결과적으로 목 없는 철갑 기병을 토벌했고, 결과적으로 악마를 이용해 영주를 처리했고, 결과적으로 황제와의 만남도 무사히 넘겼다.
세부사항들이야 게임이랑은 조금 많이 달랐다만, 그건 모드 탓에 외형이 바뀌면서 성격까지 같이 바뀌었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였고.
그런데 그 결과로 내가 본 적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황제가 금빛 황혼 기사단의 기사단장을 시켜 플레이어를 감시하라고 내려보낸다니,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였다. 하다못해 다른 사람이 이랬다는 이야기도 못 들어봤었다.
혹시 게임의 숨겨진 히든 이벤트였나? 라고도 잠시 생각해봤지만 곧 스스로 부정했다.
브닼 4는 이미 유저들에 의해 데이터 마이닝까지 끝난 게임이었는데, 그런 히든 루트가 있었으면 진작에 낱낱이 파헤쳐져선 커뮤니티에 공략법까지 고스란히 올라왔을거다.
‘잠깐. 성격까지 바뀌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왠지 지금 이 상황의 원인을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NPC들의 성별과 외형이 바뀌고, 그러면서 당연히 성격도 같이 바뀌었다. 바뀐 캐릭터보다 바뀌지 않은 캐릭터를 세는 편이 더 빠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러니, 플레이어의 행동에 대한 반응도 같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쓰읍.’
이 간단한 사실을 지금껏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입 안에 쓴맛이 감도는 기분이었다.
다른 캐릭터들이 변한 것처럼, 황제의 성격도 변했다면? 단순히 플레이어가 자신의 공격을 방어해낸 걸 칭찬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게 흥미를 가지는 상황이 됐다면?
‘고민을 좀 해봐야겠어.’
아무래도, 나는 지금껏 생각 자체를 잘못 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이건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을 듯 했다.
“…….”
필요는 있는데, 시간이 없었다.
‘아, 더럽게 거슬리네, 진짜.’
나는 지금도 몇 미터쯤 거리를 둔 채 졸졸 따라다니는 중인 황금빛 기사의 발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치를 떨었다.
마물 토벌에 따라와서 나를 지켜보던 리제는 양반이었다. 아니, 그 정도 시선이라면 오히려 즐겁게 받아넘길 수도 있었다. 엄연히 거유 미인이 흐뭇한 눈을 하고 바라보는 거니까.
그런데 저놈은 달랐다. 대놓고 날 감시하겠다고 선언한 이후로, 정말로 한시도 빼놓지 않고 날 지켜봤다.
내가 성 내부를 돌아다닐 때는 물론이고,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나 레벨링을 위해 마물을 토벌하러 갔을 때도 항상 시야 한 구석에 황금빛 갑옷이 보였다.
덕분에 마물들을 때려잡고 와서 아직 능력치도 제대로 못 올렸다. 저놈이 지켜보는 와중에 스탯을 찍을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한층 더 골때리는 사실은, 이제 겨우 감시 이틀째라는 사실이다. 이틀만으로도 신경이 거슬려 죽을 지경인데 이 짓을 2주나 당해야된다니,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며칠 전에 도시 순찰을 끝내고 돌아온 아이리스와 에리카도 우리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 둘도 딱히 저걸 떼어낼 뾰족한 수는 없는 듯 했다.
비록 뺀질거리는데다 콧대가 하늘을 찌르고 자존심만 더럽게 센 인간이긴 해도, 엄연히 황궁에서 황제 폐하를 모시는 기사단장이다.
거짓으로 황제를 들먹일 인간은 절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 황제가 날 감시하라는 명을 내렸다는데, 우리가 대체 무슨 수로 그걸 막겠는가.
하지만 이렇다 할 방법만 없을 뿐, 저놈이 거슬리는 것은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기사단장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야, 신입. 쟤는 대체 왜 저러는거야?”
“나도 모르지. 원래 똑똑한 놈 마음을 짐작하는 건 가능해도, 바보 마음은 따라가지도 못하고 짐작하지도 못하니까.”
“그건 그렇네. 확실히 저놈 지능이 좀 낮아보이긴 해.”
“방금 말은 들렸을거 같은데?”
“들리라고 하는거야. 나도 지금 불편해 죽을 지경이거든?”
리제와 내가 목검을 마주하다 말고 서로 속닥였다. 저 황금빛 기사놈은 그것마저도 수첩에 꼼꼼히 받아적고 있었다. 그걸 본 리제는 으, 하며 넌더리를 쳤다.
대체 뭘 적고 있는건가 싶어 잠깐 확인해봤는데, 내 행적을 기록하는 수첩이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이런걸 대체 왜 적는거냐고 물어보니까, 내가 이런걸 왜 적는거냐고 물어봤다는 사실마저 적었다. 무슨 조선시대 사관도 아니고 그런걸 대체 왜 적는데.
‘신경이 쓰여서 뭔 생각을 할 수가 없네.’
당장 고민할 게 산더미이건만, 저놈이 신경을 모조리 뺏어가대서 도통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나와 리제는 어휴, 하고 한숨을 쉬면서도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래서, 당분간은 계속 이런 상황인거지?”
“아마 그럴 것 같아. 일이 예고를 하고 찾아오는 건 아니니까 살짝 애매하긴 한데, 일단 우리가 짠 스케줄은 없어. 뭐 다른곳에서 사건이 터지는 게 아닌 이상은 계속 할 일 없을걸?”
우리는 목검을 휘두르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나무끼리 부딪히는 딱, 딱 소리가 규칙적으로 연무장에 울려퍼졌다.
결국 스토리 자체는 내가 20레벨을 찍고 룬을 개방해야 진행될 예정인 듯 했다. 이제는 확신할 수 있는건 아니지만.
리제의 3연타를 모조리 튕겨내자 그걸 기점으로 몸이 급격히 무거워졌다. 다리를 뒤로 물리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전투 피로가 서서히 내려가며 감각이 되돌아왔다.
‘디버프 없애려면 레벨링도 빨리 해야되는데.’
20레벨을 대체 언제 찍을지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점이 문제였다.
한 지역의 잡몹을 모조리 때려잡아도 거점에서 휴식 한 번 하고 찾아가면 멀쩡히 리스폰되던 게임이랑은 달리, 지금은 무조건 일정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근처를 돌며 주변 마물들을 싹 정리해서 한 번 레벨을 올리고 나면, 리스폰을 기다리기까지 일정이 붕 떠버리는 것이다.
조금씩, 내가 있는 곳이 게임 속 세계이긴 하지만 정말로 게임은 아니라는 사실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형편없네.”
‘……응?’
대충 한두번 정도만 더 돌면 20렙 찍고 룬을 개방할 수 있겠다며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으려니, 어딘가에서 우리를 비웃는듯한 소리가 들렸다.
출처는 물론 나를 감시하던 황금빛 기사였다.
“야, 방금 뭐라고 했냐?”
리제가 득달같이 반응해 으르렁거렸다. 황금색 기사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다시 말했다.
“형편 없다고 했는데. 척 보기에도 수준을 알만한 대련이야.”
“신입 감시하러 왔으면 입 다물고 일이나 해. 지금 너 같은 놈이 여기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경 거슬려 죽겠는데, 왜 시비질이야? 한판 붙자고?”
“한판 붙으면 이길수나 있고?”
“너 이ㅡ 읍읍!”
나는 분위기가 더 험악해지기 전에 리제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리제는 대체 왜 그러냐며 눈으로 항변했지만, 나는 손에 더 힘을 준 다음 최대한 인상 좋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리제 기사단장님이 제 수준에 맞춰주셔야 하니 어쩔 수 없는거죠. 당장 제가 대련을 할 상대라고는 기사단장님들 뿐이니까요. 서로 힘을 적당히 빼고 했으니 그런 생각이 드셨을 수 밖에요.”
“아무리 실력을 맞춰줘야 한다고 해도 그렇지, 너무 하찮은데. 그래서야 마물과 싸워서 살아남을 수는 있겠나?”
이미 그 마물들 모가지 수십 개씩 따고왔는데. 앞으로도 수천 마리는 더 딸 예정이고. 얘가 대체 자기 주제도 모르고 뭘 지껄이나 싶었지만, 속내를 숨기고 미소를 유지했다.
“그건 기사단장님이 하실 얘기도 아닌 것 같은데요?”
“뭐라고?”
내 가벼운 도발에 황금빛 기사가 발끈해서는 되물었다. 발화점이 더럽게 낮은 놈이었다.
별 것도 없는 주제에 자존심만 지독히도 강하니, 기사단에 갓 들어온 신입이 자기한테 저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참을 수 없는 모욕이겠지.
리제는 내 미소를 보고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짐작한 듯, 몸부림이 잠잠해졌다.
“그렇잖아요? 입으로 훈수를 두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죠. 직접 나서지도 않으시면서 아무 말이나 떠드시는 걸 보니, 실력에는 자신이 없으셔서 그런 것 아닌가요? 정말로 실력이 있는 분이셨다면 단순히 말로만 그러는 게 아니라 직접 보여주셨을텐데.”
그게 결정타였다. 황금빛 기사는 “감히 내게 그런 말을 하다니!” 라는 진부한 대사를 내뱉고선 씩씩대며 목검을 찾으러 연무장 저편으로 걸어갔다.
나는 입을 막은 손을 놓아주었다. 리제는 잠시 손과 맞닿았던 입술을 매만지더니, 너무 많이는 두들겨패지 말고 적당히 하라며 찡긋 윙크를 했다.
나에 대한 신뢰가 듬뿍 묻어나는 눈웃음이었다.
플레이어가 여기서 저놈이랑 한 판 붙는 건 처음 겪는 이벤트였지만, 어차피 저게 은빛 여명 기사단을 찾아온 것 부터가 게임에서는 없었던 상황이다.
그러니 내가 적당히 두들겨준다 해도 마찬가지로 상관 없을 것이다.
‘먼저 시비 걸어온 건 저쪽이니까.’
마침 게임에서도 신경을 박박 긁어대던 놈이었는데, 겸사겸사 그 복수까지 한다고 생각해둘까.
그런 연무장의 모습을, 어느 한 쌍의 눈동자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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