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64)
외전: 신성한 합일 – 6
“……하.”
나는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익숙한 천장에 속으로 헛웃음을 터뜨리며 몸을 일으켰다. 이클립스와 내가 마지막으로 몸을 섞었던 방이었다.
바로 옆에는 이클립스가 잠들어 있었다. 아니, 자는 척을 하고 있었다. 그야 당연히 여신이니까 수면도 필요 없는 것이다.
몸을 섞은 뒤에는 이렇게 같이 누워서 잠들었다가 아침 햇빛을 받으며 깨야 한다는 이유로 저러고 있을 뿐.
‘미친 여신 같으니.’
진지하게, 신체 능력이 각성한 이후 처음으로 탈력감을 느꼈다. 12명을 한꺼번에 끌어들여서 일주일 내내 몸을 섞어도 멀쩡했던 이 몸으로 말이다.
중간부터는 플로레타와 루나는 물론 미네르바까지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그만해달라며 애원했던, 마나와 신성력을 이용해 쾌감을 증폭시키는 방법까지 사용했는데도 그랬다.
혀 꼬인 소리를 내고, 울면서 그만해달라고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저러다 탈수가 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절정해댔건만, 이클립스는 절대 꺾이지도 쓰러지지도 않았다.
심지어 몸을 섞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차 성장하기까지 했다.
처음엔 무작정 자기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낮추고 음란한 말을 섞어가며 유혹하던 이클립스는, 시간이 지나자 무언가를 깨닫기라도 한 건지 방법을 바꿨다.
별것 아니었다며 깔보고, 생각보다 버틸만했다면서 기어오르고, 허접이라는 말로 도발하고, 그러다가 정확히 선을 넘기 직전에 멈춘 다음 다시 자기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낮춰 복종하는 것이다.
여신이라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가히 천재적인 재능이었다. 분명 머리로는 일부러 그런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데도 몇 번이나 그 몸을 깔아뭉갰을 만큼.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밖에서야 시간이 의미 없어졌다지만 안에서는 다르다. 내가 얼마나 오래 몸을 섞었는지 정도는 알고 싶었다. 그래야 탈력감이 찾아오는 횟수를 대략적으로라도 짐작할 수 있으니까.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기도 힘들었다. 며칠 언저리라면 또 몰라, 이렇게 많이 지나버리면 낮과 밤이 항상 고정되어 있는 이클립스 차원의 특성상 체감이 거의 불가능해져버리기에.
일단 심상치 않은 양의 시간이 지난 것만은 확실했다. 아무리 최소치로 잡아도 열흘 이상에, 최대한 정답에 가깝게 유추해보면 2주는 될 듯했다.
ㅡ짜아악!
“햐응?!”
옆에서 열심히 자는 척하고 있는 여신을 보고 있자니 괜히 열이 뻗쳐서 엉덩이를 후려갈겼다. 나는 머리가 복잡해 죽겠는데 태평하게 저러고 있다니.
짜아악!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이클립스가 달콤한 교성을 흘렸다. 족히 천번 단위로 얻어맞았지만 여전히 탱글탱글한 탄력과 연한 복숭아빛의 색깔을 유지하고 있는 엉덩이가 푸딩처럼 출렁였다.
“으우웅…….”
엉덩이를 얻어맞은 이클립스는 잠에 취해 몸을 뒤척이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자세를 바꿨다. 보고 있자니 헛웃음밖엔 안 나오는 모양새였다.
‘대체 누가 자면서 고양이 자세를 하는데?’
어째 교황들이랑 하는 짓이 똑같았다. 플로레타랑 루나도 자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혹은 아주 그냥 대놓고 날 유혹하려들기 일쑤였으니까.
물론 이클립스처럼 노골적으로 저러지는 않았다. 괜히 열이 더 뻗쳐서 한대를 더 후려갈겼다. 엉덩이에 새빨간 손자국이 남았다. 이클립스가 치켜올린 엉덩이를 파르르 떨었다.
침대를 빠져나왔다. 나 스스로도 지금 유혹에 넘어가면 한두 번으로 절대 못 끝낸단 사실을 알고 있다. 괜히 붙잡혔다가 정기를 빨아먹히는 건 사절이었다.
내가 더 할 마음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유혹하듯 살랑이던 엉덩이가 곧장 원래대로 돌아왔다. 몸이 나를 바라보며 옆으로 눕고, 눈꺼풀이 살며시 들어올려졌다.
“으으음…… 당신?”
방금 잠에서 깬 척 비몽사몽한 목소리를 낸 이클립스가 하품을 하고 눈을 부비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연기력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뻔뻔하다고 해야 할지.
내가 저 모습을 처음 봤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면 신도 잠을 자냐며 신기해했을 것이다. 이클립스의 ‘방금 일어난 척’ 연기는 그 정도로 완벽했다.
“네, 여신님.”
“좋은 아침이에요.”
“좋은 아침입니다. 몇 번째로 맞는 아침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반말은 더 안 써주시는 건가요?”
누운 채 내 손목을 붙잡은 이클립스가 배시시 웃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지만, 쇄골 근처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절묘하게 가슴 첨단의 핑크색을 가려주고 있었다.
“밤은 끝나지 않았습니까.”
“앞으로 당신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찾아올 밤이잖아요. 계속 하대해주셔도 되는데.”
“제가 여신님한테 반말 쓰려면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데, 이름이 불려도 절정 안 하고 버틸 자신 있으시면 그래드리겠습니다.”
“앗, 들켰나요?”
이클립스가 혀를 빼꼼 내밀고 귀엽게 웃었다. 하여튼 방심할 수 없는 여신이다.
“이제 일어나시는 건가요?”
“그래야죠. 밖에 너무 오래 방치해둔 사람들도 있고요.”
아무리 시간을 멈추고 꽃으로 침대를 만들어줬다지만 사실상 밖에 방치된 것과 다름없는 상태다. 너무 오래 내버려두게 된 것 같아서 조금 미안했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네?”
이클립스는 말없이 따스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문을 가리켰다. 그 앞으로 걸어가 밖을 내려다보았다.
밖에는 꽃과 풀로 이루어진 거대한 신전이 자라나 있었다. 그것도 태양의 대성당과 달의 대성당을 꼭 닮은.
건물을 이루는 재료가 황금과 은, 보석과 대리석 대신 꽃과 풀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기억 속의 대성당과 대부분 일치했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첨탑까지도 그랬다.
“다들 저 안에서 편안하게 자고 있을 테니까요. 아, 바깥의 시간으로는 아직 10초도 지나지 않았을 테니 자고 있다는 말은 조금 괴리감이 있으려나요?”
“…….”
분명 내가 집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저런 건 없었는데. 대체 언제 준비했는지 모르겠다. 설마 바닥에 침대를 만들었던 건 나를 조금이라도 빨리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였나.
상반신을 일으킨 이클립스가 흘러내린 이불로 조심스레 하반신을 가렸다. 하지만 도저히 부끄러워서 그러는 모습으론 보이지 않았다. 팔을 모아 가슴을 강조하려는 모습으로 보였지.
“혹시 아침 드시고 싶으면 말씀하세요, 당신. 시간도 많겠다, 제가 직접 만들어드릴게요.”
“괜찮습니다. 딱히 배는 안 고파서요.”
“후훗, 그러신가요? 그럼 저희도 일어나죠. 나갈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그렇죠, 당신?”
같은 시간에 같은 침대에서 일어나고, 직접 아침을 만들어준다 하고, 여기에 당신이라는 호칭까지 겹치니까 기분이 조금 묘했다. 나는 이것까지 노린 건가 싶어 이클립스를 쳐다보았다.
이클립스는 으그긋, 하고 쭈욱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그렇게 기지개를 켜는가 싶더니, 쇄골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목 뒤로 넘겨 정리하는 척하며 겨드랑이와 가슴을 한껏 드러냈다.
요염한 눈웃음은 덤이었다.
“소용없습니다. 안 해줄 거예요.”
“히잉.”
이클립스가 울상을 지었다.
어떻게 저런 것까지 교황들이랑 판박이일까. 플로레타랑 루나가 그렇게 된 원인이 누구 때문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태양께서 만드신 세계에 왔는데 잠을 자버리다니…….”
“혹여라도 저희가 달께 무례를 끼친 것이 아닐지…….”
동결됐던 시간은 우리가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풀렸다. 첨탑 모양으로 솟아올랐던 꽃과 풀이 평범하게 되돌아갔고, 잠에 빠져있던 사람들 역시 멀쩡히 깨어났다.
내가 집 안에 들어온 순간부터 멈췄다고 했으니 잠이라고 해봐야 10초도 채 지나지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조심조심 걸어나오는 플로레타와 루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시선을 느낀 교황들이 내 앞으로 도도도 다가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시는지요, 델타 님?”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고개를 저었다. 너희가 맨날 날 유혹하고 그랬던 행동이 누굴 닮았는지 알 것 같다고 직설적으로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교황들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냥 넘어가주었다.
플로레타와 루나가 떨어지자마자 미네르바가 그 빈자리를 차지했다. 눈꼬리가 장난기를 가득 담은 모양으로 휘어져 있었다.
“여신과의 ‘대화’는 즐거웠을까, 아이야?”
“뭐…… 즐거웠다면 즐거웠죠.”
일부러 ‘대화’라는 단어에 힘을 줘서 말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미네르바가 말하고 있는 건 일반적인 의미의 대화가 아니었다. 그랬다면 저렇게 수상한 표정으로 웃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안에서 얼마나 오래 있었니? 여기서는…… 1분이나 2분? 음, 어쩌면 그보다 더 짧을 수도 있겠구나. 시간이 거의 지나지 않은 모양이니.”
역시 미네르바는 미네르바였다. 몸의 감각에 괴리감을 느꼈든 어쨌든 내부의 시간과 외부의 시간 사이에 괴리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저도 잘 모릅니다. 여긴 낮과 밤이 바뀌지도 않고, 안에 시계나 달력이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아이가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오래 지속됐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단다.”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저 말이 사실이었으니까. 내가 대답을 회피하는 모습을 본 미네르바의 눈꼬리가 더욱 크게 휘어졌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중에 꼭 들려주렴?”
미네르바는 방긋방긋 웃으며 떠나갔다. 왠지 여신과 있었던 일을 들려주게 될 사람이 한 명이 아닐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잠에서 깨어난 여자들을 한데 불러모았다.
“이제 어떡할래?”
“뭘 어떡해?”
“여기 더 머물지, 아니면 지상으로 내려갈지 결정하라는 이야기야. 여기 얼마나 오래 머무르든 여신님이 보살펴주기로 약속하셨으니까 걱정은 안 해도 돼.”
내 말에 여자들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다가 모두 돌아가겠다는 쪽을 택했다. 나는 상관 없으니 다수결을 따르겠다고 말해두긴 했는데, 남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건 조금 의외였다.
이유를 들어보니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플로레타와 루나, 스텔라와 셀레네는 여신에게 폐를 끼치기 싫다는 이유였고, 기사단장들과 닉스, 아우로라는 여신의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카이킬리아와 미네르바는 조금 달랐다.
“여기가 아름다운 장소인 것은 맞다. 그 사실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노라.”
“그런데, 아름답기만 하고 볼 것은 별로 없잖니? 멍하니 풍경만 바라보고 있는 건 내 취향이 아니란다.”
나로서도 반박할 수 없는 이유였다. 언제나 하늘을 반씩 양분하고 있는 낮과 밤, 꽃밭과 풀밭이 처음 볼땐 멋있기는 해도 결국 그게 끝이다. 익숙해진다면 단순한 자연경관쯤에 불과했다.
이클립스에게 부탁하면 내 자취방을 통째로 구현하는 것도 가능할 테지만, 당장 여신이 지닌 신성력에 압도당해 벌벌 떨고 있던 것이 몇 분 전이었다. 부탁을 하기에는 많이 껄끄럽겠지.
게다가 내 자취방을 통째로 구현해 거기서 머무른다 한들, 그럴 바엔 차라리 진짜 내 방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제 차원에 볼 게 없긴 해요.”
정작 이클립스도 미네르바와 카이킬리아의 의견에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여기 있어봤자 할 거라곤 산책이나 물고기 구경밖에 없다면서.
내 옆에 붙어 있는 이클립스를 보고 다들 바짝 긴장한 눈치였지만, 저번처럼 본능적으로 무릎을 꿇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땐 일부러 신성을 발휘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서 저도 같이 델타 님의 자취방에 머무르게 됐으니, 앞으로 잘부탁드릴게요.”
이클립스가 한쪽 눈을 찡긋이며 웃었다.
12쌍의 시선들이 일제히 날 향했다. 이클립스가 같이 살게 됐다는 것만은 미네르바에게도 상당히 의외였는지, 백은색의 눈동자마저 동그랗게 떠져 있었다.
“델타 님……?”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