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66)
외전: 마지막 이야기 – 2
‘잘 될까?’
백유진은 초조해하고 있었다.
거실에서는 하하호호하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고 들려왔지만, 2층 계단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백유진은 그렇지 못했다. 심호흡을 몇 번이나 하고, 마음을 몇 번이나 다잡았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발걸음을 떼기가 망설여졌다. 아침에 여길 방문한 새언니를 본 순간부터 다짐했었는데, 저녁 식사가 끝나고 술자리가 벌어진 지금까지도 그랬다.
점심과 저녁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먹어치웠고, 그 사이에는 방에 틀어박혔다. 그렇게 만든 시간을 모두 ‘할 수 있다’라고 자기최면을 거는 일에 사용했건만.
“그런데 유진이 얘는 뭐한대니?”
약간 알딸딸해진 강소영 여사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움찔, 몸이 가볍게 떨렸다. 백유진이 지금 뭐하고 있는가? 당연히 가져야 할 의문일 수밖에 없었다.
오빠가 여자친구를 데려왔는데 인사도 하는둥마는둥, 점심은 아무 말 없이 퍽퍽 퍼먹고 끝, 그 사이에는 방에 틀어박혀서 안 나와, 저녁도 퍽퍽 퍼먹고 끝.
그걸로도 모자라 아직까지 방에 틀어박혀 있으니, 대체 뭐 하고 있나 싶을 것이다.
“저야 모르죠.”
“혹시 싸운 건 아니지?”
“연락도 안 하는데 싸우긴 뭘 싸워요. 그런 적 없어요.”
“그래, 다행이구나. 혹시 싸웠다고 했으면 유진이 불러서 오빠한테 잘못한 거 사과하라고 해주려고 했는데.”
“저희가 싸웠으면 무조건 걔 잘못이긴 하죠.”
“…….”
그걸 듣고있자니 새삼 억울함이 느껴졌다.
‘무조건 내 잘못이라고?’
기껏해야 볼 때마다 툭툭 시비 걸고, 오빠한테 반말 찍찍 뱉고, 욕하고 뭐 그런것밖에 더 있나? 게다가 지금은 그러지도 않는데 말이다.
백유진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것을 저기 백주원이 쥐고 있으니까.
‘……나중에 하자. 나중에. 엄마가 들으면 분명 놀릴 거야.’
계단에서 한참을 망설이던 백유진은 결국 속으로 그런 자기합리화를 하며 방에 도로 들어가버렸다. 지금은 도저히 저 자리에 끼어들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방과 계단을 몇 번이나 들락날락한 끝에 더 이상 부모님의 웃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을 때쯤, 백유진은 살금살금 계단을 내려와 1층에 도착했다. 고개만 빼꼼 내밀어 거실을 살폈다.
‘새언니랑 백주원은 소파에 앉아있고…… 엄마랑 아빠는 자러 들어갔나?’
엄마랑 아빠는 자러 들어갔는지 거실에 안 보였고, 소파에 앉아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두 사람의 뒷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새언니는 백주원의 옆에 아주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좋아.’
부모님이 없는 것을 확인한 백유진이 살금살금 거실로 걸어갔다. 딱히 죄를 지은 건 아니니 대놓고 가도 되겠지만, 왠지 이래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살금살금 뭐하냐?”
“으, 응?”
그리고 얼마 가지도 못하고 화들짝 놀랐다.
분명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는데, 발소리 나지 말라고 일부러 수면양말까지 두 겹이나 겹쳐 신었는데, 방금 전까지 새언니랑 대화하고 있던 백주원이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콕 집어 언급한 것이다.
비록 주어는 없었지만 저 말이 누굴 가리키는지야 뻔했다. 여기서 백주원이 저런 말투로 대할 사람은 한 명뿐이었으므로.
“……어떻게 알았어?”
“글쎄. 어떻게일까. 알려줄 이유 없으니까 용건이나 말해. 우리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아주 대놓고 피하더니 갑자기 왜 왔냐?”
“하, 하하하하…….”
백유진은 속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도 겉으로는 웃었다. 참자, 참아야 한다. 백유진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것이 저놈의 손에 달려 있다.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참아야 한다.
소파 옆으로 다가간 백유진은 조심스레 둘의 맞은편에 앉으려다 그대로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미쳤나봐 진짜…….’
새언니의 외모가 출중하단 사실은 익히 봐서 알고 있었다. 부모님도 예쁘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거듭하셨고, 백유진 역시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외모도, 몸매도, 목소리도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는데, 심지어 저게 화장조차 안 한 맨얼굴이라고 한다. 항상 귀찮을 정도로 피부를 관리하는 백유진 입장에선 억울해 죽을 일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있지?’
하지만, 오늘의 새언니는 전혀 달랐다. 단순히 예쁘다는 말로 넘어갈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보자마자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입이랑 혀는 굳어버리고, 다리는 후들후들 떨렸다. 심지어 오늘 몇 번이나 봤는데도 이랬다.
허리까지 내려온 머리카락도, 금색과 은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도, 오프숄더 스웨터 탓에 살짝 드러난 쇄골과 어깨의 라인도, 스웨터 안에 자리잡은 풍만한 가슴도. 마지막으로 탄력적인 골반과 늘씬한 허벅지까지.
도저히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몸에 힘이 풀려 소파를 목전에 두고 풀썩 주저앉았다. 갑자기 숨이 가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괜찮아요, 아가씨? 일으켜드릴까요?”
새언니가 싱긋 웃으며 손을 내민 순간, 백유진은 머릿속에 벼락이 내달린 듯한 충격을 받았다.
자신은 여자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음에도, 만약 새언니가 사귀자고 한다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냥 혼자 일어나게 냅둬. 쟤가 다리가 없어, 팔이 없어? 가슴도 없어서 몸도 가벼울 텐데 혼자 일어날 수 있어야지.”
“그래도 당신 동생이잖아요.”
“저게?”
눈앞에서 백주원이 숨쉬듯 자신을 욕했지만, 그런 것쯤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백유진의 멍한 자세는 그 모습을 보다못한 새언니가 몸을 일으켜줄 때까지 이어졌다.
“야, 그래서 왜 왔냐? 내 여친 얼굴 구경하러 왔어?”
“아잉, 부끄러워요, 당신.”
부끄럼은 또 얼마나 많은지 여친이라는 말에 뺨을 잡고 앙탈을 부리는 새언니를 홀린 듯 쳐다보던 백유진은, 백주원의 얼굴이 살짝 험악해지고 나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부탁이 있어서…… 요.”
“가슴 키워달라는 부탁이면 안 들어준다.”
머리의 족히 두 배에 달했던 가슴 크기도 시간이 지나며 꽤나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여전히 머리만큼 크긴 하지만, 더 이상 벌이랑은 거리가 먼 수준이었다. 오히려 포상에 가까웠지.
물론 백유진에게는 머리의 두 배 크기였을 때도 포상이었다. 다다익선이라고, 완벽한 빨래판보다야 머리 두 배 크기라서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든 쪽이 더 낫지 않겠는가.
“아니아니아니! 그런 건 절대 아니고!”
“그러면?”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가슴을 마음대로 커졌다 작아지게 하는 사람이 백주원이었으므로, 무조건 저 말을 잘 들어야 했다.
백유진은 심호흡을 몇 번 하고, 가슴을 콩콩 두드리고, 테이블 위에 남아있던 술을 안주도 없이 한껏 들이킨 다음에야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 혹시 나도 새언니처럼 예뻐질 수 있을까…… 하고. 진짜 새언니만큼 예뻐지게 해달란 의미는 아니고! 진짜 한…… 어…… 백분의 일? 그 정도만…….”
정작 그 말을 하는 백유진도 어디 가서 절대 떨어지진 않는 외모였다.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미인 축에 속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길거리 캐스팅도 몇 번 당해본 적이 있었다.
유일하게 콤플렉스였던 게 가슴이었는데 이젠 그것조차 해결됐다.
백주원 역시, 백유진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친구들이 오빠 너무 잘생겼는데 소개해주면 안 되냐는 말을 질리게 들었고.
이런 상황이었으니 백유진은 항상 자기가 미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었다. 백유진 자신도, 이해가 안 가긴 하지만 오빠도 칭찬만을 듣는 삶이었으니까.
하지만, 저 ‘진짜 미인’을 본 뒤로 생각이 바뀌었다. 절대 따라갈 수도 없고, 따라갈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냥 저 외모를 인지한 순간 경쟁 자체를 포기해버렸다.
그러니, 혹시라도 물어보고 싶었다. 저 완벽한 외모를, 1/100 정도나마 따라가게 해줄 수 있겠느냐고.
“…….”
할 말을 끝낸 백유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자 흘끔 눈꺼풀을 들어올려 백주원의 눈치를 살폈다.
백주원은 웃고 있었다.
웃는 채로, 딱 한 마디만을 꺼낼 뿐이었다.
“양심 없냐?”
“그렇게 대놓고 공격하니까 다 튕기는 거야. 좀 다양하게 공격해봐.”
“구르기를 그렇게 뻔하게 써? 구르기 캐치해서 죽여달라는 뜻 맞지?”
“어, 이거 어떻게 파훼하는지 몰라? 진짜 몰라? 그럼 죽어야겠네. 별수 있나.”
“자, 뉴비님. 지금부터는 망가진 직검으로 잡아볼게요. 짜잔, 어때요. 참 쉽죠?”
“…….”
“…….”
자신의 캐릭터가 망가진 직검에 처치당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카이킬리아와 아우로라는 잠시 말이 없었다가, 비명을 지르며 패드를 집어던졌다.
“아아악! 이게 뭐야!”
“이게 뭐란 말이냐!”
집어던져진 패드는 미네르바가 마법으로 가볍게 받았다.
TV에 틀어진 게임 화면에서는 보라색 피부에 팬티만 입은 캐릭터가 망가진 직검을 든 채 ‘환희’ 제스처를 연속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당연히 내 캐릭터다.
나는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뭘 그렇게 화내? 그것도 많이 봐준 건데.”
아우로라와 카이킬리아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봐줬으니까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분명 제대로 상대해달라고 하지 않았느냐!”
“이렇게 봐줘도 이기는데 제대로 할 이유가 있나?”
“……!!!!!!”
결국 분노가 폭발해버렸는지, 카이킬리아가 나를 향해 훌쩍 달려들었다.
멱살을 잡는다거나 한 대 치려는 건 아닌 듯한데, 분노를 못 이겨서 일단 몸이 먼저 튀어나간 모양이었다. 나는 카이킬리아의 팔을 붙잡아 그대로 끌어당겼다.
카이킬리아가 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끝자락이 명치까지밖에 오지 않는 검은색 민소매 크롭티와 엉덩이 밑부분의 살이 대부분 보일 정도로 짧은 돌핀팬츠를 입은 몸뚱아리가 내 품에 쏘옥 안겼다.
“카이킬리아.”
“하, 하지 말거라! 하지 말라고 하였다!”
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에 이름을 속삭이자, 카이킬리아는 뭘 하려는지 알아차린 듯발버둥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힘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계속해서 그 귀에 대고 이름을 속삭여주었다.
“하, 하지 마하아아앙…….”
반항의 목소리가 잔뜩 흐물흐물해졌을 때쯤, 등을 어루만지며 엉덩이를 콱 쥐었다.
“흐으으으으읍?!”
카이킬리아의 발가락이 쫙 펴졌다. 몸 전체에 힘이 들어갔다가 얼마 못가 축 늘어졌다. 황금색 돌핀팬츠의 가랑이가 축축하게 젖어들어가고, 진득한 복숭아 향이 풍겨왔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카이킬리아를 소파에 눕혀주었다.
“그래서, 계속 해볼래, 아우로라? 대신 2대1이 아니라 1대1로 해야 하겠지만.”
“아니. 어차피 또 실컷 처맞을 텐데 뭐하러?”
아우로라는 곧바로 도리질을 쳤다. 그럴 만도 했다. 이클립스가 브닼 4를 PvP가 되도록 개조해줬다길래 신이 나서 덤벼들었는데, 한 대도 못 때리고 일방적으로 처맞기만 했으니까 말이다.
그것도 몇 시간 내내.
‘나 이기려면 한참 멀었지.’
게임이 PvE에서 PvP로 바뀌었다고 해봤자 결국 내가 쓰던 무기고, 내가 쓰던 마법이고, 내가 쓰던 신성 주문이다. 사용 방법을 알면 피하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
“뭐,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ㅡ”
“제가 해봐도 되나요, 당신?”
문득, 이클립스가 카이킬리아의 패드를 넘겨받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