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67)
외전: 마지막 이야기 – 3
“여신님이랑요?”
“네. 혹시 안 되나요, 당신?”
“안 되는 건 아닌데…….”
이클립스가 아무리 브닼 4의 개발자라지만 직접 하는 것과 만드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브닼 4를 만들었다고 해서 브닼 4를 잘하리라는 법은 없었다.
나는 패드를 집어들고 양쪽 엄지로 스틱을 움직이는 이클립스의 모습을 흘끗 관찰했다. 첫 동작에서는 어색함이 뚝뚝 묻어났지만, 고작 몇 초 만에 적응을 끝냈는지 무척 자연스러워졌다.
‘뭐,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이기려고 덤비는 게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나랑 게임을 즐기고 싶어서 해보겠다고 한 것일 수도 있다. 확실한 이유가 밝혀지기 전까지 쓸데없는 추측은 지양해야 한다.
그리고,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긴 해도 이클립스는 엄연히 여신이다. 하고자 마음먹는다면 무엇이든 가능한 존재였다. 브닼 4를 잘하게 되는 것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맨입으로는 안 받아주신다는 뜻이신가요? 이해했어요.”
잠시 생각이 많아지느라 대답이 늦어진 거였는데, 저쪽은 약간 다르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럼 내기라도 하실래요, 당신?”
“어떤 내기 말씀이십니까?”
“이긴 쪽이 진 쪽에게 뭐든 명령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거예요. 정말로 뭐든지요.”
뭐든 명령할 수 있는 권리, 라는 말을 듣자마자 수상하다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따로 속셈이 있는 듯한 느낌. 게다가 ‘정말로 뭐든지’라며 그걸 한층 강조하기까지 했으니 더더욱 그랬다.
적어도 내가 아는 이클립스는 저런 말을 순수하게 내뱉을 만한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당연히 야한 명령도 가능해요! 이를테면 하루 동안 옷을 벗고 알몸으로 생활해라, 같은…….”
얼굴을 살짝 붉힌 이클립스가 부끄럽다는 듯 몸을 베베 꼬면서 가슴께의 천을 슬쩍 들췄다. 황금색 가리개가 아슬아슬한 위치까지 들어올려졌다.
다른 한 손은 음부 가리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옆으로 제껴질 듯, 손가락 두 마디 너비밖에 안 되는 천쪼가리가 아슬아슬 움직였다.
‘저럴 줄 알았지.’
야한 명령도 된다고 콕 집어 언급하는 걸 보면 나한테 일부러 질 생각이 만반인 듯했다.
만약 내가 역으로 져준다면? 옳다구나 하고 참았던 욕망을 마음껏 터뜨릴 것이다. 본인이 이기든 지든 절대 손해가 될 수 없는 내기였다.
“알겠습니다. 하죠, 내기.”
“헤헷, 네.”
이클립스가 싱글싱글 웃으며 소파에 기댔다.
나는 PVP용 촉매를 사용해 바닥에 흰 소환 사인을 그었다. 옆 TV에 떠 있는 이클립스의 게임 화면에서 정확히 내가 촉매를 사용한 자리에 똑같은 모양과 색의 소환 사인이 나타났다.
이클립스의 캐릭터가 그 위로 다가가 상호작용 키를 누르자 내 캐릭터가 흰색으로 물들더니 저쪽 세계에서 나타났다. 이클립스를 꼭 닮은 캐릭터가 ‘뛰어오르며 환희’ 제스처를 사용했다.
물리법칙에 따라 머리와도 맞먹을 크기의 가슴이 힘차게 출렁거렸다. 흉측하기 짝이 없는 외형의 내 캐릭터와는 한참 대비되는 외모였다.
‘캐릭터는 또 언제 바꿨대?’
저거 분명 아우로라 계정일 텐데.
나도 ‘정중한 인사’ 제스처를 사용하며 손에 들고 있던 망가진 직검을 정상적인 무기로 교체했고, 이클립스를 닮은 캐릭터 역시 풍만한 몸매를 과시하며 날개 잃은 악몽과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이제 시작해도 될까요?”
“네. 얼마든지 덤비시죠, 여신님.”
“자, 갈게요!”
다음 순간, 이클립스의 캐릭터가 손에 든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지팡이에서 터져나온 푸른 빛이 몸 주변에 12개의 구체를 띄웠다. 마력 유도 결정체 마법이다.
하나하나의 대미지는 약할지 몰라도, 일단 맞기 시작하면 소경직이 걸려서 최소 네다섯 개는 연속으로 맞게 된다. 그걸 피하려고 구른다? 타이밍이 뻔해서 구르기 캐치를 당하기 십상이었다.
아우로라랑 카이킬리아가 머리를 맞대고 날 이길 방법을 연구한 끝에 탄생시킨 조합인데, 해결책을 생각하기 전까지 꽤 골머리를 앓았었다.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했다.
“어, 어어? 뭐예요, 당신?!”
안 구르고 걸어서 피하면 된다.
나는 유도 결정체를 모조리 걸어서 피한 다음 바로 앞까지 접근했다. 내가 못 덤벼들 줄 알고 마법을 준비하려던 이클립스의 캐릭터가 허둥지둥 공격을 해왔지만, 패턴이 너무 뻔했다.
평타질을 모조리 튕겨내고 역으로 검을 찔러넣었다. 대검 강공격에 얻어맞은 이클립스의 캐릭터는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가 철퍼덕 엎어졌다.
“아까 아우로라랑 카이킬리아가 당하는 거 못 봤습니까?”
한 명이 공격하는 와중에 그 너머에서 날아오는 결정체도 다 피했는데, 저렇게 멀리서 날아오는 것쯤은 눈 감고도 피할 수 있다.
삐죽 입술을 내민 이클립스가 다음 마법을 시전했다. 지팡이를 반원형으로 돌림과 동시에 캐릭터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몸을 투명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인데, 발소리까지 완전히 없어진 걸 보면 단순 투명화 마법인 ‘보이지 않는 몸’의 상위 호환인 ‘완전한 은밀’인 듯했다.
‘……몸 드러나는 게 몬스터 한정이었나?’
설명만 들어보면 필수 주문처럼 느껴지지만, 의외로 사용처는 그렇게까지 많지 않았다. 몬스터에게 일정 거리 이상 다가가면 완전한 은밀이 걸려있든 말든 플레이어를 알아차리니까.
게다가 발각 범위마저 제법 넓었다. 특대검 중 하나인 그레이트 소드의 평타가 닿을 거리다.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완전한 은밀의 지속 시간은 따로 룬을 착용하지 않았을 경우 고작 45초밖에 되지 않는다. 적당히 거리만 벌리면ㅡ
ㅡ퍼억!
내 캐릭터가 어디선가 날아온 공격에 얻어맞고 벌러덩 엎어졌다. 캐릭터가 엎어진 반대 방향, 즉 공격이 날아온 방향으로 화면을 돌렸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헤헹! 어때요?”
이클립스가 날 기세등등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왠지 열이 뻗치는 표정이었다.
전혀 에상치 못한 일격이었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위치를 파악하기도 전에 또다시 다음 공격을 허용했다. 대담하게도, 이번에는 정면에서 들어온 공격이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공격의 흔적을 유추할 수 있지도, 이동의 흔적을 유추할 수 있지도 않다. 투명화 마법이 원래 이런 느낌이었던가.
이클립스가 나를 일방적으로 두 대나 때리는데 성공하자, 아우로라가 무척 진지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도 완전한 은밀을 사용해보려는 모양이었다.
“이제 두 대 남았어요, 당신. 앞으로 두 대면 저보다 게임 못하는 허접 당신이 되는 거 맞죠? 그렇죠?”
“……하.”
어이가 없었다. 이 여신이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한 거지. 갑자기 히죽히죽 웃는 이클립스의 머리에 꿀밤 한 대를 먹이고 싶어졌으나 꾹 참았다.
여기서 게임 외적으로 보복을 해봤자 공격의 빌미만 줄 뿐이니, 일단 게임부터 이기고 생각해야 한다. 저 건방진 표정을, 기세등등한 말투를, 거만한 몸짓을, 정면에서 때려부숴야 한다.
혼돈 던전 때 그랬듯이 말이다.
“이제 한 대 남았네요? 우리 허접 당신? 이제 어떤 명령을 내려드릴지 생각해둘까요? 그럴까요?”
내 캐릭터가 아슬아슬하게 세 대째를 버텨내자, 이클립스가 히죽히죽 웃으며 내 뺨을 콕콕 찔렀다. 스르륵, 얼마 못 가서 완전한 은밀이 풀리고 이클립스의 캐릭터가 드러났다.
‘12시 방향.’
이클립스는 몸이 드러나자마자 곧바로 완전한 은밀을 다시 사용했다. 잠시나마 드러났던 몸이 다시 자취를 감췄다.
‘그렇다면…….’
완전한 은밀로 몸이 감춰지자마자 움직였을 테니 슬슬 무기가 닿을 거리까지 도착했을 것이다. 지금부터는 단순한 심리 싸움에 불과했다.
방금 전까지 날 신나게 놀려댄 이클립스가 공격해올 방향을 찾는 것. 그 하나면 충분하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대뜸 검을 휘둘렀다.
ㅡ퍼어억!
“어, 어라?”
이클립스의 어리둥절한 소리와 함께, 패드에 강렬한 진동이 전해져왔다. 대검에 얻어맞은 캐릭터가 경직에 걸려 비틀거리고 있었다.
처음 때렸을 때는 뭘 하나 보려고 일부러 후속타를 넣지 않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나는 곧바로 다음 공격을 이어갔다. 이클립스의 캐릭터는 정확히 세 대째에 죽어버렸다.
“…….”
다 끝난 줄 알았던 게임이 뒤집혀버리자, 이클립스의 손에서 패드가 툭 떨어졌다. 동공이 파르르 떨리고, 벌어진 입이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다음부터는 PvP랑 PvE랑 효과가 다른 경우를 생각해야 되겠어.’
그동안 해왔던 게 PvE 뿐이었던지라 완전한 은밀이 저런 식으로 작동할 경우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아우로라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고.
“이번에는 조금 힘들었습니다. 머리 좀 쓰셨네요, 여신님.”
“어떻…… 어떻, 게……?”
“단순히 어느 방향에서 들어올지를 고르는 심리 싸움이었죠. 성공했네요.”
나도 패드를 내려놓으며 속으로 살짝 안도했다. 마지막에 방향이 잘 들어맞았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이클립스한테 허접 소리를 듣는 치욕을 당할 뻔했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충격이 꽤 컸는지 이클립스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기려는 마음은 진심이었던 듯했다. 대놓고 야한 일도 가능하다길래 또 자기 욕망을 채우려는 건가 싶었는데, 내가 잘못 생각했ㅡ
“일부러 마법 효과도 바꿨ㅡ 헙.”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는 말을 듣고 되물었다. 정말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는지 이클립스가 헙, 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뭘 바꿨다고요?”
“……딸꾹.”
“어라, 여신님은 왜 저러고 계셔?”
“나한테 사기 치셨거든.”
“……대체 무슨 사기를 치셨길래 볼개그까지 채워서 귀갑 묶기로 거실 천장에 묶어놨어? 그것도 알몸으로?”
“그런게 있어. 아, 조만간 저쪽 세계로 돌아갈 건데 준비할 수 있지?”
“준비야 당연히 할 수 있는데, 준비? 뭐 하려고?”
“나도 너희들 부모님 만나야 할 것 아냐?”
“……응?”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