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68)
외전: 마지막 이야기 – 4
거창하게 부모님을 만나러 갈 테니 준비하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다.
카이킬리아의 부모는 악마와 연관된 혈육을 처리하면서 카이킬리아가 직접 죽였고, 아우로라의 아버지를 표방하던 쓰레기는 내가 함정을 파서 간접적으로 죽여버렸다.
미네르바의 부모님은 지금까지 살아계실 리가 없고, 닉스는 영혼 수호녀로서 존재했을 때도 부모님 관련으로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던 데다, 이클립스는 애초에 여신이다.
그리고 플로레타와 루나, 스텔라와 셀레네의 경우에는…….
“저 고아인 거 성자님도 아시잖아요? 부모님이 있으시다면 루치아 수녀님인데, 그분은 성자님께서 직접 안식을 주셨는걸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비록 그 당시에는 견디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 순간을 위한 고행이었을 것입니다.”
스텔라는 루치아가 사실상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하며 자랐고, 셀레네 역시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전투 수녀로서 성장한 몸이었다. 둘 다 부모와는 거리가 멀었다.
“저희의 부모님은 오래 전에 태양의 품에 안기시었지요.”
“예. 두분 다 달의 품에서 편안히 안식을 취하시고 계실 것입니다.”
플로레타와 루나도 마찬가지였다. 둘의 부모님 역시 노환으로 사망한 지 오래라던가.
브닼 4에 등장했던 달의 교황과 태양의 교황이 늙은 노인의 외형을 하고 있었으니, 만약 플로레타와 루나의 나이가 그 둘의 나이와 같다면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잠깐. 그러면 너희 몇 살이야?”
“…….”
“…….”
플로레타와 루나는 대답을 피했다. 아무래도 저 둘 역시 생각보다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하는 모양이었다.
예전부터 계속 느껴온 사실이지만, 노화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다보니 외형만으로 몇 살인지를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하나, 이사르 가문의 가주라면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예. 델타 님께서 원하신다면 언제고 만나실 수 있도록 미리 언질을 해두겠습니다.”
“가주라고 해봐야 너희보다 어리지 않아?”
둘의 볼이 한껏 부풀려졌다. 나는 웃으며 그 뺨을 콕콕 찔러 입 안 가득 들어찬 공기를 빼냈다.
결국 약간의 신체 접촉을 동반한 위로 끝에 부모님 대신 이사르 가문의 가주를 만나기로 합의를 봤다. 플로레타와 루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남은 사람은 결국 기사단장들의 부모님뿐이었다.
“이상한 오해 하지 말고 들어줬으면 좋겠어.”
“뭘?”
“너희들 부모님은 잘 살아 계시지?”
“……갑자기?”
나는 기사단장들이 이상한 오해를 하기 전에 재빨리 해명을 했다. 막상 부모님을 만나기로 결정을 하고 보니, 여기 있는 넷을 제외하면 모두 물리적으로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이다.
내 해명을 들은 뒤, 리제는 물론 클라우디아나 에리카, 아이리스까지 모두 미묘한 표정으로 변했다.
여신을 제외하더라도 사람이 무려 열둘이나 되는데, 정작 제대로 된 부모님이 존재하는 사람은 넷밖에 없다는 의미니까. 심지어 그 중에 둘은 자매라서 실질적으로는 3명이나 다름없다.
“그…… 아니다. 이해했어. 그렇게 물어볼 만도 하구나.”
“저도 이해했습니다. 뭐라고 해야 하나, 뭔가 이상한 말을 꺼내면 제가 나쁜 년이 될 것 같은 느낌이에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도록 하지.”
“나, 나도…….”
“어머어머어머어머, 세상에, 세상에! 여보, 우리 애들 좀 봐요! 어디서 저런 훌륭한 남자를 낚아왔대?”
“그럼. 내가 누구 딸인데. 그 정도 보는 눈은 있지!”
“역시 가슴이었니?”
“어…… 나랑 비슷한 크기도 좀 있어서 아주 그런 건 아닌데…….”
서로 꼭 닮은 모녀가 껴안고 꺅꺅거리며 아주 난리를 피워댔다. 키에 비해서 너무나도 커다란 가슴 탓에 자세가 어정쩡하긴 했으나, 둘 모두 전혀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다.
“안녕, 사위! 우리 리제 잘 부탁할게!”
한동안 주위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난리를 피우던 리제의 어머니가 내게 다가와 손을 꽉 쥐었다.
“……뭐 따로 질문이라든가 하는 건 없으십니까?”
“리제가 누구 딸인데, 어련히 알아서 잘 데려왔겠지! 그리고 우리 에리카도 사위한테 반했다면서? 두 딸이 한 남자한테 뿅 갔는데 굳이 내 검증이 필요할까?”
리제의 어머니를 한 줄로 설명하자면, 리제를 복사해서 그대로 붙여넣은 것 같은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었다.
아니, 이 경우는 리제가 어머니를 복사해서 그대로 붙여넣은 것 같은 딸이라고 설명해야 하겠지.
파란 눈에 파란 머리카락, 커다란 가슴과 짜리몽땅한 키, 심지어는 호들갑떠는 성격과 하다못해 한쪽 눈을 가린 포니테일이란 머리 스타일까지도 일치했으니까 말이다.
“열두 명이나 된다고?! 꺄악! 가르친 보람이 있구나, 우리 딸!”
리제의 어머니는 내 여자가 12명이나 되는데 그 중에 선대 황제와 현 황제, 영원의 마법사, 태양의 교황과 달의 교황이 포함된다는 말을 듣고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했다.
모녀관계가 아니라 자매라고 해도 믿을 만큼 행동과 말투 하나하나가 통통 튀었다. 오히려 옆에서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에리카가 더 엄마같아 보였다.
보다못한 리제의 아버지가 사위도 앞에 있는데 체통을 좀 지키라며 한마디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리제의 어머니는 그 한마디를 아주 간단하게 무시했다.
“죄송합니다. 보다시피, 아내가 저런 성격이라서요.”
“전 괜찮습니다. 그리고 저한테 반말 쓰셔도 되는데…….”
“아무리 사위라지만 그럴 순 없습니다. 황제 폐하와 교황 성하를 거느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반대로, 리제와 에리카의 아버지는 에리카를 쏙 빼닮은 사람이었다. 이 경우에도 에리카가 자기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고 해야 하겠지만.
빨간 머리에 빨간 눈이라는 것도 같았고, 차분한 성격이라는 것도 같았으며, 철저하게 존댓말을 사용한다는 사소한 점까지도 같았다.
에리카는 자기 엄마랑 껴안고 꺅꺅대는 언니를 한심해했고, 에리카의 아버지는 딸과 껴안고 꺅꺅대는 아내를 머쓱해한다는 점도 그랬다.
“개성 넘치는 가족이네.”
“좋게 말하면 그렇죠. 안 좋게 말하면 둘씩 나뉘어서 따로 노는 가족이지만요. 언니가 아빠 성격을 반만 닮았어도 좋았을 텐데요.”
“그러면 에리카 너도 어머니 성격을 반 닮게 되는 거 아니야?”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도 나쁘지는 않아 보이네요.”
리제처럼 행동하는 자신을 상상했는지, 에리카가 부르르 몸서리를 쳤다.
“저를 닮아 애교도 모자라고 성격도 무뚝뚝한 아이입니다만, 부족한 딸이나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이리스의 어머니는 굉장히 침착했다. 흔히 말하는 ‘무인’이란 성격의 디폴트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정말 순수하게 검 말고는 아무 관심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일단 첫 만남부터 대련장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부터 그랬다.
아이리스는 어머니가 하필이면 대련장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에 기겁을 하고 먼저 뛰어갔으나, 그 굳건한 의지를 꺾을 수 없었는지 한숨을 푹 내쉬며 날 맞이했다.
“제 아이가 이런 훌륭한 남성의 곁에 머무르게 되다니, 어머니로서 여한이 없는 결과입니다.”
꾸벅, 아이리스의 어머니가 머리를 숙였다. 딸과 똑같은 색깔의 은색 눈동자가 눈꺼풀 너머로 사라지고, 딸과 똑같은 색깔의 은색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찰랑였다.
무릎을 꿇고 있던 나도 같이 머리를 숙여 화답했다. 내 옆에 딱 달라붙어 있던 아이리스가 약간 심통이 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앞으로 가족이 될 사람인데 조금은 풀어져 있었어도 되지 않았나?”
“가족이 될 사람이기에 더욱 예를 갖춰야 하는 것이다, 아이리스. 예가 없다면 어느 순간 친분이라는 명분 하에 선을 넘게 되고, 선을 넘는다면 감정이 상하게 되며, 한번 상한 감정은 평생 치유되지 않지. 감정이란 언제나 그저 덧씌움에 불과함을 명심하거라.”
하나뿐인 딸의 부탁이건만, 아이리스의 어머니는 단호했다. 아이리스 특유의 딱딱한 말투와 성격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아이리스와 대화할 때 얼굴에 떠오르는 따스한 미소를 보아하니 딸을 향한 애정만큼은 진짜인 듯했다. 아이리스도 어머니 앞에서는 애교가 훨씬 많아졌고.
둘 다 성격이 저래서 표현이 잘 안 되고 있을 뿐.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온갖 소란과 요란의 결정체인지라 이것저것 잡다한 일로 시간을 잔뜩 잡아먹었던 리제와 에리카의 어머니와는 달리, 아이리스 어머니와의 만남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저 성격 덕분에 소란을 떨거나 시간을 끌 이유도 없고, 나를 반대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다만 아버지 쪽을 만나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쉬웠는데, 워낙 자유분방한 사람이라 대륙 어딘가에 멀리 떠나 있다길래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당신의 장모 될 사람으로서 부탁 하나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아이리스의 어머니는 대련을 청해왔다. 아내를 열둘이나 거느릴 정도로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니 가진 능력이 얼마나 뛰어날지 호승심이 솟는다면서.
거절할 이유도 없었으니 수락하고 대련용 목검을 쥐었다. 아이리스는 첫 만남부터 사위한테 뭐하는 짓이냐고 타박했지만, 이번에도 엄마를 이기지 못했는지 슬그머니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전력으로 상대해라, 델타. 다신 덤빌 생각조차 하지 못하실 정도로 철저하게. 회복 마법이 필요하다거나 상급 포션을 마셔야 할 만큼 뼈를 부러뜨려도 좋다.”
“그래도 네 어머니인데 너무 매정한 거 아니야, 아이리스?”
“내 어머니니까 이런 말을 하는 거다. 걱정하지 말고 박살내도 된다. 어머니의 성격이라면 아주 잘 알고 있으니. 내, 내…… 남편 될 사람이 당신을 쓰러뜨린다면 필시 무척이나 기뻐하실 것이다.”
“알았어.”
아이리스의 어머니를 두드려 팰 순 없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지만, 저렇게까지 말한다면 오히려 봐주는 쪽이 무례한 행동이다.
그렇다고 정말로 전력을 다할 순 없으니 힘의 격차를 보여주는 선에서 끝내기로 했다. 아이리스는 뼈를 부려뜨려도 된다고 했지만 그건 조금 그렇고, 혹 정도로 끝내면 되겠지.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뜬금없이 펼쳐지게 된 대련이었고 브닼 4에서 겪어보지도 못한 상황이었지만 상관은 없었다.
지금의 나라면 굳이 패턴을 외울 필요 없이 단순한 신체 능력으로도 카이킬리아나 미네르바, 플로레타와 루나 같은 대륙 최상위권의 강자도 이길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아이리스의 어머니는 팔을 제대로 휘둘러보지도 못한 채 한 합만에 머리를 얻어맞고 대련장 한가운데 뻗어버렸다. 얻어맞은 이마가 새빨갛게 변해 부풀어올라 있었다.
“……역시, 훌륭하시군요.”
“기절했다 30분 만에 깨어나서 한다는 말이 고작 훌륭하다는 한마디라니, 부끄럽지도 않나?”
“……크흠. 조용히 하렴, 아이리스.”
아이리스의 어머니가 뺨을 붉히고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는 상황을 마무리하려는 듯 아이리스에게 조언을 건넸다.
“우리 둘 다 자고로 무인이기 이전에 여자이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는 기쁨 또한 중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주 좋은 남자를 만났구나, 아이리스. 절대 놓치지 말렴. 필요하다면 몸을 써서라도.”
“…….”
이번에는 아이리스가 얼굴을 붉힐 차례였다.
마지막으로 만난 클라우디아의 어머니는 조금 특별했다.
“자, 자! 쭉 들이키세요, 사위!”
“저기, 대체 얼마나 더 마셔야…….”
“사위는 오늘 두 발로 걸어서 못 돌아갑니다! 제 딸한테 업혀서 가든가, 제 딸이랑 같이 여기서 자고 가든가 둘 중 하나예요!”
“…….”
아니,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특별했다.
앞의 두 명과는 달리 처음으로 딸과 다른 색깔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지닌 클라우디아의 어머니는, 딸에게 비슷한 외형이 아니라 다른 특징을 물려주었다.
“마시고 죽는다니, 그런 건 없어요! 죽으면 술을 못 마시는데 뭐하러 죽나요!”
바로 어마어마한 주당이라는 특징을.
클라우디아의 어머니께서 내가 온다는 말을 듣자마자 살고 있던 도시의 술이란 술은 싸그리 다 매입했단 말을 듣고, 나는 아버지 쪽에게 그만큼의 금화를 내밀었다.
지출이 크지만 감당 못 할 정도는 아니라며 처음엔 몇 번 거절하던 클라우디아의 아버지는 상황을 보다못한 딸의 지원 사격에 의해 감사를 표하며 돈을 넘겨받았다.
솔직히 일정 범위 안이었으면 나중에 클라우디아를 통해서 돌려줄 생각이었는데, 술 구매에 사용된 액수를 들으니 도저히 나중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오늘 우리는 마시고 죽습니다! 알겠습니까, 사위?!”
“……방금 전에 마시고 죽는 건 없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런 사소한 건 신경쓰지 마세요! 중요한 건 술이니까요!”
당연히 그 막대한 양의 술을 처리하는 것은 우리 몫이었고 말이다. 아침부터 시작된 술자리는 시계가 한 바퀴를 넘게 돌아서 밤이 될 때까지 조금도 쉬지 않고 이어졌다.
참고로 클라우디아의 아버지는 술을 잘 못한다고 진작 빠져나가셨다. 그런데 어떻게 결혼할 수 있었냐고 물어보니, 자기한테 잘 보이려고 필사적으로 술을 들이키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나.
클라우디아의 어머니는 남편이 빠진 것에도 아랑곳 않고 자기 딸과 사위를 옆에 낀 채 그냥 마셨다.
마시고 또 마셨고, 코가 삐뚤어지는 걸로도 모자라 360도 삐뚤어져서 원래대로 돌아올 때까지 마셨다. 그 무지막지한 주량에 나조차도 살짝 질려버릴 지경이었다.
“물도 저렇게 마시면 배가 터져서 죽겠다.”
“……우리 엄마가 좀 그래.”
“좀?”
“……엄청 많이.”
과장 하나 안 보태고, 빈 병으로 층 하나를 가득 채울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술을 들이키고도 멀쩡했던 클라우디아의 어머니를 쓰러뜨린 것은 두 가지였다.
딸이 사위를 위해 직접 만들었다는 도수 183%짜리 알코올 덩어리와 성국 밖에선 구경조차 거의 불가능한 달의 입맞춤.
둘 모두 클라우디아의 어머니이자 주당으로서 절대 그냥 넘길 수 없는 것들었으니 눈이 완전히 돌아가버린 것도 당연했다.
“흐헤헤…… 역시 우리 사위…… 합격이야…… 합격…… 엄마 도장 꽝…….”
딸이 직접 만들었다는 도수 183%짜리 술을 두 병이나 마시고도 달의 입맞춤까지 들이킨 다음에야 헤롱헤롱 휘청이던 클라우디아의 어머니는, 똑같은 양의 술을 마신 내가 멀쩡한 것을 확인한 뒤에야 ‘합격’이란 말을 남기고 쭉 뻗어버렸다.
저 알코올 덩어리를 두 병이나 마시고도 달의 입맞춤까지 잠시나마 버틴 걸 보면 확실히 평범한 인간은 아니다. 나는 혀를 내두르며 마법으로 빈 술병의 산을 정리했다.
병을 거의 다 치워갔을 때쯤, 완전히 뻗어버린 클라우디아가 쭈뼛쭈뼛 내 옆으로 다가왔다.
“엄마를 쏙 빼닮았네, 클라우디아.”
“……그거 칭찬 맞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