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73)
후일담: 행성 단위 가챠 계획 – 1
“슬슬 예전의 그 계획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확실히 그렇단다. 근래 들어 델타가 곤란해지는 상황도 점점 더 잦아지고 있지. 마음은 결코 변하지 않을 테지만, 이래서야 딸들을 만나는 게 곤란해질 것이 분명하잖니.”
미네르바가 세라피카의 말을 긍정했다. 이클립스가 관리하는 세계에서 남자친구 찾기에 실패한 이후로 딸들의 아빠에 대한 공세가 점점 더 거세지는 중이었다.
개중에는 이클립스나 리제, 플로레타나 루나, 닉스가 했던 것과 비슷한 수위의 유혹도 있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비추어서는 기겁할만한 수위라는 뜻이다.
최근에는 단순한 아빠로서의 애정표현조차도 그게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몰라 망설이기 일쑤였다. 단순히 시간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딸들의 눈에 차는 남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에서 기인했으므로, 언젠가는 이상형이 나타날 거란 말로 끝내기도 힘들었다.
“단호하게 쳐내면 될 것을, 왜 그걸 일일이 다 받아주고 있는 것이더냐.”
“저희 남편께서는 절대 그러지 못할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카이킬리아. 그리고, 당신 역시 에일린의 요청을 단호하게 거부한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으신지요?”
에반젤리나가 웃으며 입을 열자, 카이킬리아는 투덜대면서 혀만 찰 뿐 반박하지 못했다. 카이킬리아도 에일린에게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져주었으니까.
먼 과거에 성격 나쁘기로 유명했던 카이킬리아가 이럴진대, 하물며 델타는 어떻겠는가.
델타는 딸들이 정말 어지간히 선을 넘지 않고서야 화를 내기는커녕 목소리를 높인 적조차 없었다. 언제나 조곤조곤 타이르기만 했지.
딸들도 그걸 알기에 저런 식으로 격렬한 ‘애정 표현’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선만 넘지 않는다면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무제한적인 자유를 허용받았으니.
“왜 그러지, 리제?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아 보이는데. 마음에 안 드는 거라도 있나?”
“아니, 그냥. 내 딸들이 행성을 창조한다니까 실감이 안 나서. 언제 그렇게 컸나 싶기도 하고.”
“크기는 진작부터 다 컸죠. 어쩌면 그런 쪽으로는 저희보다 훨씬 더 익숙할지도 모릅니다, 언니.”
“그렇긴 해. 태어날 때 여신님…… 아니, 이클립스가 축복도 잔뜩 불어넣어줬고, 지금까지 신성이 넘쳐흐르는 땅에서 생활했으니까.”
한때는 인간이었던 기사단장들과는 다르게 딸들은 태어날 때부터 사실상 무한에 가까운 수명과 막대한 신성을 부여받았다. 당연히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요. 실감 안 나는 건 저희도 마찬가지니까요.”
“그렇습니다. 저희가 교황 성하들이랑 맞먹게 되리라고 감히 상상이나 하였겠습니까.”
스텔라와 셀레네는 무덤덤했다. 이미 살아계신 성자와 맺어지고, 태양의 교황과 달의 교황으로도 모자라 태양과 달 그 자체와 동일한 경지에 오른다는 경험을 했으니까.
이것보다 더 놀랄 일을 찾기도 힘들었다. 설령 자신의 딸이 세계의 창조주 역할을 부여받는다 해도 말이다.
“키히힛…… 히히히힛…….”
“뭐야, 넌 또 왜 그렇게 웃어?”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튼. 인격 바꾸는 게 아주 만능이지.”
아우로라는 자기 혼자서 음침하게 웃다가 플로르의 인격으로 전환된 닉스를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방금 왜 웃었는지를 알려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예전부터 불리할 때 인격을 바꿨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신경써봐아 이쪽만 손해다.
“그런데 행성 남자가 전부 다 델타만 빼다박았으면 어떡하지?”
“알아서 걸러내지 않겠나. 단순히 외모나 능력 때문에 그런 마음을 품은 건 아니니까.”
그 뒤로도 회의는 계속해서 이어졌으나, 부녀근친을 막기 위한 회의 치고는 분위기가 별로 가라앉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딸들에 대한 얘기로 살짝 달아올라있기까지 했다.
다들 계획을 실행하기로 이미 마음을 반쯤 굳혔기 때문이었다. 의견 차이가 없으니 분위기가 나빠질 이유 역시 없었다.
설령 의견이 나뉘었다 해도 서로 오래 보고 지냈으니 얼굴 붉힐 일은 없었겠지만.
“델타와 이클립스에게는 언질을 주지 않아도 괜찮겠느냐?”
“우리만 결정하면 끝날 일이니 걱정하지 말려무나. 계획 이야기를 처음 꺼낸 것이 이클립스였단다.”
“그렇다면 되었다. 이야기가 끝났으니 알려주거라.”
“알겠단다. 잠시만 기다리렴.”
미네르바가 손을 휘저었다. 손가락 끝을 따라 공간이 갈라지고, 그 너머의 풍경이 드러났다.
갈라진 틈새 너머는 하늘이었다. 수없이 많은 공간이 쪼개져 마치 발판처럼 공중에 부유했고, 딸들이 조각난 공간을 밟으며 자유롭게 기예를 펼치고 있었다.
공간에 검을 쑤셔넣어 다른 공간에서 폭발을 일으키거나, 발판 그 자체를 뭉개버리거나, 마법으로 상대를 멀리서 저격하거나, 신성 주문으로 일대를 틀어막는 등. 온갖 화려한 검술과 주문이 오갔다.
수천 수만 갈래의 마법과 참격, 신성 주문이 오가는 공간의 중심에 이클립스가 떠 있었다. 이클립스는 별이 휘몰아치는 눈동자로 딸들의 대련을 동시에 관측하는 중이었다.
델타의 자리는 그 옆이었다.
“대련중이었나보네.”
“히힛, 그러게.”
마치 천지가 뒤집히는 듯한 광경이었지만, 이곳의 누구 하나 놀라지 않았다.
저 정도는 되어야 딸들에게 대련이라 부를 수 있을만한 싸움이 되니까. 그 이하는 단순한 소꿉장난밖에는 되지 않는다.
다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대련장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카이킬리아의 입가에도 어럼풋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발판이 점점 사라질수록 하나둘씩 탈락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몸 움직이는 건 취향에 안 맞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으면서 왜인지 필사적으로 마법을 시전하던 하르나를 필두로, 어느새 싸우는 숫자보다 탈락한 숫자가 더 많을 정도까지 줄어들었다.
“넷 남았네.”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은 넷이었다. 에일린과 세그레투스, 루체와 비올라.
그 모습을 확인한 순간 에반젤리나와 세라피카의 입가에 은은한 만족의 미소가 떠오르는 모습을 다들 놓치지 않았다.
숫자가 넷까지 줄어들자 자연스레 루체와 비올라가 같은 발판에 올라섰다. 루체가 주위를 은은한 빛의 장막으로 감싸고, 비올라가 다른 둘을 향해 신성 주문을 퍼부었다.
저 멀리 떨어진 루체와 비올라보다 가까이 있는 서로와 먼저 싸우려던 에일린과 세그레투스는 옆에서 날아오는 신성 주문에 멈칫 하더니, 눈짓을 주고받은 다음 똑같이 반대편의 둘을 노렸다.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루체와 비올라가 훨씬 유리해지겠죠.”
서로를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는 루체와 비올라에 비해, 에일린과 세그레투스는 상대를 공격하면서도 서로를 흘끔흘끔 곁눈질하고 있었다. 상대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한다는 증거였다.
같이 지낸 시간이 백 년을 넘었는데도 저런 관계인 걸 보면 서로 잘 지내라고 말이라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그저 카이킬리아와 미네르바의 성격을 꼭 닮았을 뿐이었다.
악연에 가까울 뿐이지 진심으로 싫어하는 건 아니기도 했고.
“아, 저기 엄마들 구경하고 계신다.”
“진짜네? 엄마!”
레지나가 손을 붕붕 흔들었다. 스텔라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레지나와 똑같이 손을 붕붕 흔들었다.
“뭐 하고 있었어요, 우리 딸?”
“대련이요!”
탈락했다고 축 처져 있던 레지나는 신이 나서 스텔라에게 이것저것 털어놓았다. 스텔라는 딸이랑 똑같이 신나게 맞장구를 치며 그걸 들어주었다. 그 엄마에 그 딸이었다.
“처음에는 간단한 대련이었는데, 규모가 너무 커졌습니다.”
“상품으로 뭐가 걸렸길래 그런 것입니까, 셀레나?”
“아빠입니다.”
나는 슬슬 결과가 드러나기 시작한 대련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프리 포 올에 가까운 규칙이었지만, 중간부터 루체와 비올라가 슬금슬금 협력을 시작하더니 네 명밖에 남지 않자 본격적으로 협력을 개시해 팀전처럼 변한 것이다.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이클립스가 즉석에서 만든 규칙에 의하면 승자는 한 명뿐이다. 루체와 비올라 둘 중 한명은 탈락해야 한다는 건데, 그걸 알고도 저렇게 협력할 수 있다는 게 말이다.
당장 에일린과 세그레투스가 서로를 견제하느라 제대로 된 협력이 안 되는 것부터가 그랬다. 하필 걸려있는 상품이 나다보니 뒤통수를 맞을 위험이 아주 없다는 말도 못 하니까.
에일린과 세그레투스는 연신 뒤로 밀려났고, 루체와 비올라는 상대가 옮겨탈 수 있는 공간을 제거해가며 경쟁자들을 차근차근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루체와 비올라가 다른 둘보다 더 뛰어나서는 아니었다.
애초에 내 딸들 사이의 재능은 거의 동일했다. 이클립스가 축복을 내려줬으니까. 능력의 차이가 발생한다면 그건 오롯이 본인의 성격 차이 때문이었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같은, 그런 성격 차이 말이다. 엄마를 닮아서 잠이 많은 하르나라든가, 우다다다 뛰어다니는 걸 좋아하는 레지나라든가.
그러니 에일린과 세그레투스가 루체와 비올라에게 밀리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상호간의 협력이 거의 안 된다는 것.
“……방금 그 성검. 나한테 휘두른 거니, 에일린?”
“실수였느니라. 루체를 노렸거늘, 그 궤적에 네가 있었는데 어떡하겠느냐. 알아서 피할 거라고 생각ㅡ 하, 웃기지도 않는구나. 방금 나한테 마법을 날린 것이더냐, 세그레투스.”
“실수란다. 비올라를 노렸는데 그 사이에 네가 있었지 않니. 알아서 피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을까?”
“퍽이나 실수겠구나.”
저런 대화가 몇 번씩이나 이어지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제 저희만 남았습니까.”
“그렇습니다. 마지막이지요.”
결국 에일린과 세그레투스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탈락했다. 둘은 관중석으로 돌아가면서도 투닥댔다. 마지막 남은 발판 위에 선 루체와 비올라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가위바위보를 했다. 공간을 넘나들고 수만 개의 마법이 사용된 끝에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결승전 치고는 꽤 초라한 경기였다.
“제가 졌습니까. 안타깝지만 이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운명이겠지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루체.”
가위바위보의 승자는 비올라였다. 루체는 보자기를 낸 자신의 오른손과 가위를 낸 비올라의 오른손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비올라를 꼭 껴안아주었다.
작별 인사를 나눈 루체가 관중석으로 돌아가고, 비올라는 공간을 열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이클립스가 짝짝, 하고 옆에서 박수를 쳐주었다.
“제가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이 되었나이다, 아버지시여.”
“그렇게 됐네. 축하해, 비올라.”
“환희에 감사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그러니, 제게 약속하였던 포상을 내려주시옵소서.”
비올라가 옷깃을 풀어헤치며 한 발짝씩 다가왔다. 그리고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뜨겁고 짙은 입맞춤을…….”
“그거 아니었잖아.”
“……쳇. 들켰사옵니까.”
저 밑에서 비올라의 모습을 본 다른 딸들이 앞다투어 공간을 열어젖히며 이쪽으로 쳐들어오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