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74)
후일담: 행성 단위 가챠 계획 – 2
“아버지 앞에서 이런 추태를 보이게 만들다니, 너무나도 가혹한 처사이지 않습니까, 루체.”
“자업자득입니다 비올라. 그러게 누가 멋대로 그런 시도를 하라고 지시하였는지요. 본인의 행동에서 비롯된 벌이니 달게 받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차원을 찢다시피 여기로 들어온 딸들의 파도에 휩쓸린 비올라는, 너덜너덜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지도 못하고 벽에 바싹 붙어 무릎꿇은 채 손을 들고 있었다.
맏이들의 성향을 생각해봤을 때, 벌였던 짓에 비하면 꽤나 온건한 처벌이었다. 에일린과 로렐리아는 무릎꿇고 손들기로 끝낼 게 아니라 거꾸로 매달아야 한다고까지 주장했으니까.
특히 루체가 제일 앞장서서 행동했다. 마지막 가위바위보의 결과에 깔끔하게 승복하고 자리를 양보해줬는데 그런 짓을 벌였다는 배신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딸들이 비올라를 둘러싸고 처분을 논의하는 사이, 아내들이 내게 ‘그 계획’을 실행하자며 눈짓을 해왔다.
“정말로?”
“응. 우리는 다 동의했어. 실은 동의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지만. 남은 건 누구를 제일 먼저 시키냐인데…….”
리제가 딸들이 모인 자리를 슬쩍 둘러보았다. 우리가 딱히 목소리를 낮춰 말한 것도 아니었고, 그 계획에 대해 진작부터 들었기도 해서 그런지 다들 슬그머니 눈을 피하고 있었다.
싫어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찬성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예지 속에서 만났던 에일린은 그런 계획이 있다고 웃으면서 말했었는데.
지금의 내 시간선과는 전혀 관계 없는 미래였기에 뭐가 달라졌는지 이클립스한테 묻기도 조금 그랬다.
나는 마침 제일 가까이에 있던 안젤라와 눈을 맞췄다. 차마 내 시선까지 외면할 순 없었던 듯, 안젤라는 몸을 움찔거리면서도 완전히 피하지 않았다.
“혹시 싫은 이유를 알려줄 수 있을까?”
“……아니, 뭐. 싫은 건 아닌데. 그, 뭐라고 해야 하나. 바로 앞에 진품이 있는데 복제품을 만들어서 그거랑 사귄다는 건 좀…….”
“복제품? 설마 나랑 똑같이 만들 생각이었어?”
“당연한 거 아니야? 지상에 아빠 발끝이라도 따라오는 남자가 있긴 해?”
“…….”
요즘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이쯤되면 이클립스가 원인인 것 같기도 했다. 여자를 창조할 때 들인 노력의 반만 남자에게 투자했더라도 지금같은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아직도 태도 차이가 명백한 걸 보면 아마 영원토록 무리일 테지만. 나는 이클립스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눈빛에 담긴 뜻을 읽었는지 이클립스가 머쓱하게 고개를 돌렸다.
“정말로 아무도 할 생각 없니, 공주님들?”
딸들은 다들 ‘눈치…’ 라는 효과음이 어울릴 것 같은 표정을 하고선 내 시선을 외면했다. 이렇게 되면 살짝 곤란해지는데.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살신성인의 길을 택하기로 했다.
“좋아. 아무도 안 하겠다면 어쩔 수 없네. 선착순 세 명까지는 나랑 같이ㅡ”
“저요! 제가 할래요!”
“저, 아버지. 제가 해봐도…….”
“크흠흠. 저도 참가하겠습니다.”
“아, 그런 거면 나도 할래!”
“너는 상도덕도 없느냐, 세그레투스! 위아래를 지키거라!”
“네가 위아래를 논하는 거니, 에일린? 넌 양심이라는 게 존재하긴 하는 걸까?”
“아버지여, 저 역시 참가하여도 되겠나이까.”
“부디 제게도 그 사사로운 영광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도 할래! 아빠! 응?”
“저, 저도 하고 싶…… 은데요…….”
“하르나 넌 귀찮다고 빠진다지 않았어? 손은 왜 드는데?”
“키히힛. 아빠랑 같이 하는 게 귀찮을 리가 없잖아.”
“아, 나 방금 손 들려고 했었는데! 아빠, 치사해! 이 타이밍에 그러는게 어딨어!”
“……얘들아. 같이 뭘 할 건지는 들어야 하지 않겠니?”
나랑 같이 행성을 꾸밀 수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지원 요청이 쇄도한 끝에 또다시 대련을 빙자한 배틀 로얄이 벌어졌고, 최종적으로 남은 승자는 3명이었다.
레지나와 안젤라, 그리고 하르나.
에일린과 세그레투스는 시작부터 서로 싸우다가 자멸했고, 루체는 집중 포화에 당해 첫 번째로 탈락했으며, 비올라는 선을 넘었다는 이유로 참가 자격조차 얻지 못했다.
프리지아는 최후의 3인에 남게 되기 직전까지 갔지만, 승리를 확신하고 내게 손키스를 하는 틈을 타 하르나가 달려들어서 패배했다. 프리지아는 넋을 놓은 표정으로 끌려나갔다.
그 결과로 남은 인원이 셋, 아니, 다섯이었다. 레지나가 자기랑 취향이 비슷하다면서 셀레나를 데려왔고, 안젤라가 이쪽도 취향이 비슷하다면서 르네를 데려왔으니.
둘이 순식간에 넷이 된 모습을 본 나머지 탈락자들이 하르나를 눈독들였지만, 하르나는 평소의 음침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완고하면서도 집요하게 버틴 끝에 기어코 혼자서 이클립스를 따라갔다.
최종 승자 셋과 취향이 같다며 추가로 선택받은 2명이 이클립스에게 행성 창조 방법을 속성으로 교육받으러 간 뒤, 나는 탈락의 충격에 시무룩해진 딸들을 위로해주었다.
덤으로 다음 순서에 대한 약속도.
‘괜찮겠지?’
사실 최악의 경우는 행성 단위로 남자를 기르고도 눈에 맞는 남자를 못 찾는 건데, 솔직히 그렇게 된다면 뭘 해야 할지 확신이 안 섰다.
만약 정말로 딸과 결혼하게 된다면 그 사이에서 낳은 딸이 또 남자를 못 찾았으니 나랑 결혼하겠다고 주장하는 끔찍한 도돌이표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딸이랑도 결혼했는데 왜 딸겸 손녀랑 결혼하는 건 안 되냐는 끔찍한 질문을 듣고 싶지는 않다.
“다 됐어요! 아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서 레지나가 도도도 달려왔다. 그 뒤에서 셀레나가 손목을 붙잡힌 채 빠른 걸음으로 허겁지겁 따라붙고 있었다. 다음으로 안젤라와 르네, 하르나 순이었다.
“다 됐어?”
“네! 기반은 전부 다져놨어요! 이제 아빠랑 같이 사람만 채우면 돼요!”
“알았어, 가보자.”
나는 스텔라와 셀레나를 안아들었다. 레지나와 셀레나가 꺄르륵 웃더니 힘을 합쳐 공간을 열어젖혔다. 그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드넓은 도시가 바로 눈앞에 펼쳐졌다.
일단 도시의 전체적인 모습은 평범했다. 성국과 제국을 적절하게 섞어놓은 듯한 느낌.
한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도시 전체에 대련장으로 보이는 시설이 빽빽하게 들어차있다는 것이다. 체감상 건물의 1/3 정도는 대련장이지 않나 싶었다.
“저거 전부 대련장 맞지, 레지나?”
“네! 아빠!”
“뭘 저렇게 많이 만들었어?”
“서로 싸우게 하려고요!”
“……응?”
레지나가 해맑게 웃으며 내뱉은 말에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저희 남자친구가 되려면 일단 엄청 강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서로 한곳에 몰아넣고 싸우게 하는 거예요! 그렇게 거르고 걸러서 제일 강한 사람만 남기는 거죠!”
“…….”
뭔가 근본부터 잘못된 판별법 같은데.
“아, 아버지.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저희가 공간 밟고 싸웠던 것처럼, 일종의 대련이라고 생각하, 셔도…….”
이런 내 분위기를 알아차렸는지 셀레나가 애써 변명했지만, 날 설득하지는 못했다. 레지나가 생각하는 싸움과 셀레나가 생각하는 싸움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 같았으니까.
나는 신이 나서 열을 올리며 설명하는 레지나의 말을 부드럽게 끊었다.
“다른 방식을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
“네?!”
“……예.”
셀레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레지나는 진심으로 놀랐다는 표정이었다.
“……죄송해요, 아빠.”
“괜찮아. 시간은 많잖니. 그러니까 너무 시무룩해있지 마렴, 우리 공주님?”
둘을 바닥에 내려놓고 차례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손을 떼자, 하르나가 자연스레 두 팔을 벌리고 내게 다가왔다.
“이제 나야, 아빠.”
그 몸을 안아들었다. 레지나가 셀레나랑 같이 전력으로 달려오길래 받아서 멈춰줄 겸 해서 안아준 거였는데, 하르나는 그걸 조금 다르게 인식한 모양이었다.
하르나는 날 보며 엄마와 꼭 닮아있는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키히힛. 엄청 놀랄 테니까 기대해도 좋아.”
“정말로?”
“당연하지. 내가 누구 딸인데.”
하르나가 그렇게 웃으며 공간을 열어젖혔다. 칠흑색 마나로 이루어진 틈이 생겨나고, 그 너머로 생각보다 얌전한 도시의 모습이 보였다.
‘딱히 놀랄 건 없어 보이는데?’
엄청 놀랄 거라고 단언했던 것 치고는 무척 평범했다. 뭐에 놀라야하나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찰나, 전혀 예상치 못한 색깔이 눈에 들어왔다.
보는 것만으로 눈이 아려올 듯한 핫핑크색 트윈테일과 핫핑크색 눈동자, 핫핑크색 언더붑에 핫핑크색 타이즈까지.
“안녕하세요! 델타 님! 여기서 또 뵙네요!”
페치였다.
“……뭐야. 쟤가 왜 여기 있어?”
“말했잖아, 아빠. 키히힛. 기대해도 좋다고. 어떻게 하면 아빠 관심 끌수 있을까 싶어서 고민하다 나온 결과물이거든.”
분명 남자친구 찾을 목적으로 만든 행성 아니었나. 주객이 조금 많이 전도됐는데. 나는 당당하게 내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고 선언하는 발칙한 딸을 내려다보았다.
“제가 왜 여기 있는지 궁금하시죠, 델타 님?”
“당연한 거 아니야?”
“그걸 알려드리려고 온 거예요. 이런 식으로 들통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뭐, 상관 없겠죠. 영원히 비밀로 숨겨놓을 수도 없었을 테니까요.”
페치가 평소와는 전혀 다른 눈웃음을 지었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듯한, 아니, 확실하게 본 적 있는 미소였다. 내가 저 미소를 어디서 봤는지 고민하는 동안, 페치가 눈을 살며시 감았다 떴다.
“이렇게 하면, 아시겠나요?”
“그건…….”
선명한 핫핑크색이던 동공이 금색과 은색의 오드아이로 바뀌어 있었다. 내가 아는 한, 저 색깔의 동공을 가진 사람은 이 차원에 한 명뿐이었다.
“이클립스……?”
“정확히는 이클립스‘였죠’. 이 몸은 제가 여신이 아니라 한 명의 피조물로서 인간 세상을 다니고 싶을 때 사용했던 아바타거든요.”
내가 머릿속으로 게임 속 페치와 이클립스 세계 페치의 행적을 정리하다 말고 멍하니 굳어버린 사이, 하르나가 의기양양하게 속삭여왔다.
“어때, 아빠. 진짜 놀랐지? 내 말 맞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