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75)
후일담: 행성 단위 가챠 계획 – 3
나는 금색과 은색의 오드아이로 야릇하게 눈웃음을 짓는 페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페치가 사실 여신의 아바타였다니, 상당히 충격적인 진실이었다.
‘브닼 시리즈에 계속 등장했던 것도…….’
이제야 납득이 갔다. 여신이 인간 세상을 체험하기 위해 직접 만든 아바타라면 그러든 말든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페치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가까이 다가갔다. 처음엔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나를 쳐다보던 페치는 거리가 좁혀질수록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주춤주춤 눈치를 살폈다.
손을 조금만 뻗어도 닿을 거리에 멈춰섰다. 페치가 불안이 가득 담긴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왜…… 왜 그러세요, 델타 님, 아니, 당신…… 그런 무서운 표정으로…… 꺄아아아악!”
저번처럼 핫핑크색 트윈테일을 한손으로 모아 움켜쥐고 들어올리자 페치가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제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요, 여신님.”
“머리! 머리 빠져요!”
“페치가 여신님의 아바타라면, 여신님이 저를 죽이려고 했다는 의미가 되는 게 아닙니까?”
이클립스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이런 커다란 진실을 끝까지 숨기고 있던 것에 대한 괘씸죄와 개인적인 감정을 잔뜩 섞은 추궁이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제가 들어가있지 않을 땐 페치라는 독립된 인격이 활동하고 있는 거니까 저랑은 상관 없ㅡ 꺄아아아악! 더 들어올리지 마세요! 저 페치 몸에 안 들어간지 엄청 오래됐단 말이에요! 진짜로 저랑은 관련 없는 일이에요!”
페치가 아니, 페치 몸 속에 들어가 있는 이클립스가 필사적으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변명은 다급한 목소리를 하고서도 꽤나 길게 이어졌다.
종합하자면, 페치는 일종의 게임 캐릭터 비스무리한 역할이었다.
유저가 게임 캐릭터를 직접 조종하다가 접속을 끊었을 경우 ai가 역할을 넘겨받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페치와 이클립스의 관계도 그와 비슷했다.
이클립스가 유저 역할이라면 페치의 인격은 대리 조종을 맡는 ai 역할인 셈이다. 그리고 이클립스는 세계를 먹는 자가 본격적으로 태동한 이후부터는 한번도 페치의 몸 속에 들어간 적이 없었고.
그 말인 즉, 여태까지 벌였던 페치의 모든 악행은 이클립스와 관련이 아예 없ㅡ
“관련이 아예 없는 건 아닐 텐데요.”
“꺄아아악! 아파요, 당신!”
ㅡ지는 않았다. 저런 사기꾼에 거짓말쟁이스러운 페치의 인격을 만든 것도 이클립스일 테니까.
트윈테일을 위로 주욱 잡아당겼다가 내렸다. 페치의 몸도 따라서 위로 떠올랐다가 바닥에 착지했다. 이클립스는 새된 비명을 질렀다.
“잡아당기실거면 차라리 머리카락 말고 가슴을ㅡ 아파파파파팟! 죄송해요! 죄송해요! 잡아당길 가슴도 없는 몸인데 잡아당겨달라고 해서 죄송해요!”
말본새를 보아하니 안에 들어가있는 게 여신이 맞긴 한 것 같았다. 나는 비명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시야를 공유해 진짜 이클립스가 뭘 하고 있는지를 찾아보았다.
이클립스는 눈을 감고 명상을 하듯 벽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트윈테일을 붙잡힌 채 바동대고 있는 페치와 똑 닮은 표정을 한 채로.
주위에서 아내들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같은 표정을 한 페치와 이클립스를 번갈아 쳐다보는 중이었다. 페치의 이름은 아내들 사이에서도 꽤 유명하니까 말이다.
“애초에 성격을 그따위로 안 만들었으면 될 일 아니었나요?”
“꺄아아아아악! 진짜 빠져요!”
이클립스가 팔딱거리며 필사적으로 까치발을 했다.
가뜩이나 짧은 언더붑 타이즈가 아슬아슬한 정도까지 말려올라가며 옅은 핑크색 유륜을 노출시켰지만, 그 위의 돌기만은 절대로 드러내지 않았다. 저것도 여신이라서인가.
“하, 하지만……! 여신으로서 항상 신중하게 있어야 하다보니 아바타만큼은 조금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만들고 싶었는걸요……!”
“방금 신중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히이이이익! 죄송해요! 죄송해요! 실언이었어요!”
어처구니가 없어진 나머지 손에 힘을 주었다.
내가 봐온 이클립스는 신중한 성격이랑 거리가 멀어도 한참은 먼 여신이었다. 결혼 전에도 그랬고, 결혼 후에도 그랬다. 신중이라는 단어와 이클립스는 상극이라고 봐도 좋았다.
차라리 프리지아가 더 어울렸으면 어울렸지.
“뭐, 일단 알겠습니다. 더 자세한 건 나중에 듣든지 할 테니 강림부터 해제하시죠.”
“……네, 당신.”
트윈테일을 놓아주었다. 이클립스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강림을 해제하려다가 떠오른 게 있다는 듯 요염하게 손가락을 세워 입에 가져다대고선 슬며시 웃었다.
“거칠게 절 잡아채는 당신도 야성미 넘쳐서 멋졌ㅡ”
ㅡ짜아아악!
“아팟?!”
“헛소리는 그만하시고요.”
이클립스는 엉덩이를 문지르면서도 헤헤 웃었다. 마지막까지 저러는 걸 보면 머리카락 잡혀서 아프다고 비명 질렀던 것도 죄다 연기가 분명했다.
페치의 동공이 다시 서서히 핫핑크색으로 물들었다.
“……어라?”
얼마 안 가 완전히 핫핑크색이 된 동공에 의문이 떠올랐다.
“갑자기 왜 때리세요?!”
억울함도 같이.
“왜 때렸나고?”
“네! 이번에는 아무것도 안하고 얌전히 잘 있었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왜! 그것도 저같은 처, 처녀의 순결한 엉덩이를! 델타 님 변태예요?!”
갑자기 변태 취급을 받게 된 내가 황당해하고 있으려니,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ㅡ기억을 살짝 비틀었어요. 자기가 여신의 아바타라는 사실을 알려서 좋을 건 없으니까요. 평범하게 당신이랑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고 기억할 거예요.
아주 납득 못할 이유는 아니었다.
ㅡ덕분에 제가 변태가 됐는데요?
이것만 빼고.
ㅡ어머. 죄송해요, 당신. 당신의 평판을 떨어뜨렸으니 벌을 받아야 하는 거죠? 침대 위에서 다리 벌리고 기다리고 있으면 될까요? 아니면 엎드려서 엉덩이만 들어올린 자세로?
꿀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간드러지게 웃은 이클립스가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사라졌다. 설마 처음부터 저걸 노리고 있었나. 정말이지, 여러가지로 대단한 여신이었다.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나는 아직도 혼자서 씩씩대고 있는 페치를 쳐다보았다. 첫 만남때 나한테 엉덩이 때려달라고 했던 기억을 끄집어내줄까 하다가 마음을 바꿨다.
“너 아직 처녀였어?”
“‘아직’이라니요! 이렇게 오래 남자 손 한번 안 잡아본 여자가 얼마나 희귀한데!”
곧바로 펄쩍 뛰는 반응이 되돌아왔다.
페치는 무척이나 높아진 목소리로 ‘오랫동안 순결을 지키며 살아온 여자’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그 와중에 자기 나이에 관한 직설적인 언급만은 용케도 피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따지면 이클립스가 더 희귀한 거 아닌가. 여신이니까 희귀한 건 맞겠지만.
아니, 페치도 일단 여신의 아바타니까 비슷하려나.
“그래서 가격은 얼만데?”
“……네?”
내게 설교하다시피 하는 모습이 살짝 괘씸하기도 해서 조금 농담을 섞어 질문했다. 페치는 그제서야 아차 싶었는지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방금 페치 네 입으로 그랬잖아. 그럴 일은 세계가 멸망하더라도 없겠지만, 만약 판다면 엄청 비싸게 팔릴 거라며. 그 엄청 비싼 가격이 얼마냐고.”
“어…….”
페치는 설마 내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는 듯 어버버거렸다.
“그, 그게…… 그러니까…….”
사방에서 딸들의 시선이 날카롭게 꽂혀왔다. 특히 턱 밑에서 꽂히는 시선이 제일 뜨거웠다. 명백히 질투를 담은 눈빛이었다. 설마 진짜 페치를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지만, 혹시 그런다 해도 질투는 아내들이 해야지 딸이 하면 안 되는데 말이다.
“농담이야. 그냥 돌아가도 돼. 여기서 본 건 다 잊고. 알았어?”
“그, 그럼요! 다 잊을게요!”
여기서 더 머뭇거렸다간 정말로 오해가 생길 것 같았기에 재빨리 입을 열었다. 페치는 살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가 열어준 균열을 통해 쏜살같이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갔다.
나는 페치를 돌려보내고, 아직도 내 품에 안겨 방금의 대화를 들으면서 음침하게 키득대는 하르나를 내려다보았다.
“하르나.”
“키히힛, 응. 아빠. 아빠도 방금 봤지? 페치 저 여자 정말 바보같았ㅡ”
“0점.”
“에?”
내가 아예 0점을 매겨버리자 칠흑색 눈동자가 혼탁해졌다. 하르나가 나라 잃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잘했어, 공주님들.”
“응! 봐, 르네. 내가 말했지? 제대로만 하면 칭찬 받는다니까?”
“아, 알았어, 안젤라. 그러니까 조금만 조용히…… 다 들린다고……!”
마지막 순서였던 안젤라와 르네는 무척 정석적인 세계를 구현해놓았다. 제국을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은듯한 그런 세계.
당연히 1등이었고, 칭찬을 듬뿍 받았다. 이클립스의 세계를 그대로 복사해왔으니 특별한 게 없긴 했어도 다른 두 세계와 비교하면 제일 나았으니 당연했다.
레지나와 셀레나는 잘 만들긴 했지만 상식이 약간 부족했고, 하르나는 애초에 평가에서 논외였으니까. 다른 둘은 몰라도 하르나는 자업자득이다.
그래도 딸을 침울하게 보낼 순 없었기에 열심히 옆에 앉아 달래주었다. 셋 모두 얼마 안 가 자신감을 되찾았다.
“이제 우리 차례야! 잘 봐, 아빠!”
“진정해라, 레베카. 이건 경쟁이 아니다.”
“하지만 이기면 기분이 좋아지지. 내 것도 잘 봐둬, 아빠.”
우리가 아래로 내려가 있는 동안 순서를 미리 정해뒀다며 레베카와 빅토리아, 로렐리아가 나섰다.
‘……어째 불안한데.’
셋 다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