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76)
후일담: 행성 단위 가챠 계획 – 4
결론부터 말하자면, 1등은 ‘키운다’라는 개념에 충실하면서도 이클립스마저 그럴듯하다고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세계를 만들어낸 세그레투스가 가져갔다.
“잘하였단다, 우리 딸.”
“당연하지 않니, 엄마. 내가 누구 딸인데.”
미네르바는 자신의 딸이 1등 자리에 오른 것을 무척 자랑스러워 했고, 세그레투스는 기세가 등등해졌다.
항상 자의든 타의든 세그레투스와 붙어다니던 에일린이 투덜대며 뭐라 한마디 하려 했지만, 카이킬리아가 눈빛으로 제지했다. 딸들은 몰라도 엄마들은 평범하게 축하해주는 분위기였으니까.
사실 이건 세그레투스가 영리하게 머리를 잘 썼다고 봐야 했다.
앞 순서라면 나랑 더 일찍 대화를 나누고 더 일찍 껴안길 수 있지만, 반대로 뒷 순서라면 앞 순서가 어떤 평가를 받는지 보고 세계를 내 입맞에 맞게 수정해서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
순서를 정할 때 누가 앞이 아닌 뒤로 가느냐를 두고 경쟁이 벌어졌고, 그 결과 에일린과 루체, 세그레투스가 나란히 제일 뒷 순서를 차지한 걸 보아하니 다들 그 사실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내가 원래 계획대로 진행했으면 아마 절대 성공 못했겠지만.’
원래는 그냥 조언이나 몇번 해주고 행성 꾸미기나 조금 도와주는 걸로 끝내려 했었다. 여기로 돌아오니 자기들끼리 순서 다 짜놨다면서 대뜸 순위 경쟁을 하는 구도가 되어버려서 그렇지.
저렇게 의욕을 불태우는 상황에 초를 칠 순 없어서 모르는 척 넘어가줬다는 건 아내들과 나만 아는 비밀이었다.
“이건 너무 잔혹한 처사이나이다, 아버지…… 부디 제게도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실 수 없겠나이까…….”
세그레투스의 자랑 시간이 끝나자 비올라가 울먹이며 내게 애원해왔다. 피해자라고 하긴 애매하지만, 어쨌든 여기서 제일 손해를 본 사람은 참가 자격조차 얻지 못한 비올라였으니까.
자업자득이라고 신나게 비올라를 비웃어대던 세그레투스는, 내가 비올라를 달래주며 나중에 잠시 시간을 내주겠다고 하자 발빠르게 따라서 울음을 터뜨렸다.
식겁한 나는 세그레투스를 달래주러 갔고, 결국 차례대로 울음을 터뜨리는 백 수십살 짜리 딸내미 13명을 모두 달래주고 나서야 간신히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울었다. 으아아앙- 하고. 평소에 꽤 무게감 있는 성격이던 에일린이나 로렐리아, 빅토리아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넌 너무 물러, 델타. 쳐낼 떄는 단호하게 굴 수도 있어야지. 계속 그랬다간 점점 더 심해지기만 할걸. 뭐, 다들 영리한 아이들이니 선을 넘지는 않겠지만.”
나잇값 지지리도 못하는 딸내미들을 모두 어르고 달래 울음을 그치게 만든 다음 자리에 앉아 숨을 돌리고 있으려니, 아우로라가 한소리 해왔다.
솔직히 나도 내가 딸들에게 심각할 정도로 무르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딸들이 시무룩해 있다거나 울고 있는 모습을 도저히 못 보겠는데 어떡하란 말인가.
마음을 독하게 먹으려 해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이나 초롱초롱하게 떠진 눈동자가 내 팔에 달라붙는 순간 도저히 그게 안 됐다.
일단 나를 꼭 빼닮은 눈동자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하면 그게 가짜라는 걸 머리로는 인지하면서도 몸이 알아서 당황하기 시작하는지라.
이런 내 심정을 전달하니 아우로라는 160년이 넘게 지났는데 바뀐 게 하나도 없다며 피식 웃고 말았다. 내 그런 성향 때문에 딸들이 더더욱 적극적으로 어필한다는 것도 수없이 들은 말이었다.
“결과만 따지면 실패라고 봐야겠지?”
첫 번째 실험은 일단 세그레투스의 1등으로 막을 내렸지만 문제는 아직 남아 있었다. 딸들을 모두 돌려보낸 내가 입을 열자 리제와 에리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패죠. 딱히 남자친구감을 찾는다거나 키운다는 느낌이 아니었으니까요.”
“맞아. 그런 것보다는 어떻게 해야 델타 너한테 칭찬받을 수 있을지에 편중했다는 느낌?”
그랬다. 첫 타자인 레지나와 셀레나, 그리고 안젤라와 르네를 제외하면 하르나를 보고 따라한 나머지 다들 어떻게 해야 내 관심을 끌 수 있을지에만 집중해버린 것이다.
‘점수를 괜히 매겼나?’
하르나가 하도 충격적인 짓을 저질렀길래 반사적으로 그래버렸는데, 이제와서 돌이켜보니 쓸데없는 짓을 해버린 것 같았다. 그것만 아니었더라도 점수제가 되지는 않았을 텐데.
“마땅한 방법이 있겠느냐?”
“사실상 없다고 봐야죠. 제일 확실한 방법은 델타가 그러지 말라고 화를 내거나 윽박지르는 건데, 그게 가능할 것 같아요?”
아우로라가 그렇게 말하며 나를 흘끗거렸다. 같이 나를 흘끗거린 미네르바가 카이킬리아를 대신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확신할 수 있단다.”
다들 하나같이 저 말에 긍정하는 분위기였다. 나도 찔리는 게 있었기에 딱히 아니라고 할 생각은 없었고.
“그, 정말로 방법이 없으면 나중에는 델타 분신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 같은데요, 헤헤…….”
닉스가 음침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새삼 ‘엄청나게’라는 말이 확 와닿았다.
맏이들부터 시험해봐서 그렇지, 당장 에반젤리나와 세라피카의 딸만 합쳐도 서른 두 명이다. 스텔라와 셀레네의 딸까지 합치면 50명을 훌쩍 넘기고.
거기에 나머지 아내들의 딸을 더하고 아직 자식 계획이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니 미래에 낳을 딸까지 합하면? 자칫 잘못했다간 내 분신만 200명이 넘게 만들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건 안 돼. 절대로.’
내 딸이 나를 꼭 닮은 분신과 연애하고, 결혼하고, 임신해서 자식을 낳는 꼴을 떠올리자마자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 꼴은 도저히 보고 싶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면 그렇겠지. 하지만 그걸 좋아하지는 않을 듯하군.”
“네. 맞아요. 레지나도 저희 남편이라서 좋아하는 거지 남편의 외형을 한 남자라고 해서 다 좋아하는 게 아니니까요.”
“셀레나 역시 그렇습니다. 무작정 분신을 만들어준다 하여 해결될 일은 아닐 것입니다. 당신이 그걸 허락하실 일도 없겠지만 말입니다.”
이미 다들 원본인 나를 놔두고 왜 복제품을 고르겠냐며 간접적으로 불호 의견을 표시한 적 있었다. 단순히 분신을 만든다고 해결될 일은 아닌 것이다.
에반젤리나와 세라피카는 입을 다문 채 명상하듯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클립스를 쿡 찔렀다.
“여신님이 일을 제대로 하셨으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말이죠.”
“그, 그래서 다음 세계는 남자도 공들여서 창조하려고 했는걸요!”
“딱히 공들인 것 같지는 않던데요?”
이클립스는 정곡을 찔렸는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마 저 성향은 평생 갈 거다.
“완벽한 저를 본따서 만드는 작업이 질릴 리가 없잖아요?”
계속 여자만 만들면 질리지 않냐는 질문에 이런 대답을 내놓았으니.
나는 저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외모만 따지고 본다면 이클립스를 표현할 수 있는 수식어는 완벽 외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비록 성격만은 완벽이랑 거리가 한참 멀더라도 말이다.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눈꺼풀을 내리고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세라피카와 에반젤리나가 동시에 눈을 떴다. 자주색과 녹색의 동공이 회의실에 앉은 우리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에반젤리나가 빙긋 웃으며 언니의 말을 이어받았다.
“백이 넘는 자매들을 하나씩 설득하는 것보다는, 단 한 명을 설득하여 마음을 바꾸게 하는 것이 더 빠르지 않겠는지요?”
뭐?
나는 루나와 플로레타, 아니, 세라피카와 에반젤리나의 머리에 딱밤을 한 대씩 놓아준 다음 목에 스케치북을 걸어 손들고 있게 시켰다.
특단의 조치까지 취했음에도 어수선해진 분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는 시선들이 수상했기에 결국 회의를 흐지부지 끝낼 수밖에 없었다.
‘설마 진짜로 딸 대신 날 설득하려 들지는 않겠지?’
나는 약간의 불안감을 안은 채 방으로 돌아왔다.
“어, 어서 오세요, 당신.”
방 안 먼저 들어와 있던 누군가가 나를 반가우면서도 야릇한 목소리로 맞이해주었다.
침대 머리맡에 등을 기대고 앉아 두 팔을 들어올려 목 뒤에서 교차한 자세로 겨드랑이를 드러내고, 황금색과 금색의 천쪼가리로 중요 부위만을 아슬아슬하게 가린 채, 무릎을 굽힌 자세로 두 다리를 옆으로 벌려 음부가 훤히 보이도록 한…….
“대체 아빠 방에서 뭘 하고 있는 거니, 프리지아?”
프리지아가 말이다.
나는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고 손을 휘저었다. 벌어졌던 다리가 오므라들고, 팔이 원래대로 돌아오며 겨드랑이가 팔뚝과 가슴 사이로 사라졌다.
스르륵, 그 위에 두꺼운 이불이 덮이며 딸내미의 탈선에 마무리를 지었다. 온 몸이 꽁꽁 묶인 프리지아가 머리만 불쑥 내밀고 투덜거렸다.
“어떻게 알았어, 아빠? 분명 눈 색도 엄마랑 똑같이 맞춰놨는데.”
“그게 벌써 몇 번째 시도인줄은 알고 그런 말을 하시는 걸까요, 공주님?”
이 말대로, 눈 색깔을 제외하면 내 유전자라곤 찾아보기가 힘들만큼 엄마를 쏙 빼닮은 딸들이었기에 이런 일은 지난 160년간 수도 없이 벌어졌다.
대부분은 내 선에서 제지당하거나 아니면 나보다 조금 더 일찍 들어오려 했다가 자기랑 똑같은 모습을 한 누군가가 침대에 먼저 누워있는 모습을 본 엄마들에 의해 제지당했지만.
닉스 같은 경우는 멋대로 숨어들어온 벌을 줘야 한다며 아예 하르나를 묶어두고 눈앞에서 몸을 섞자는 제안을 해서 나를 기겁하게 만든 적도 있었다.
“그리고, 아빠가 돼가지고 설마 자기 딸이랑 아내도 구분 못할까봐?”
“구분 못 해주면 어디 덧나?”
“많이 덧난단다, 우리 귀엽고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딸아.”
그것도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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