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79)
제 379화
외전: 보스전 체험하기 – 1
“오랜만에 뵙습니다, 단장님.”
“잘 지냈지, 라크시아?”
“여기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성자님을 모시는 성스러운 기사단이라면서 실컷 떠받들어지는 마당에 잘 못 지낼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너무 잘 지내서 탈이죠.”
라크시아는 “그렇다고 못 지내고 싶단 소리는 절대 아닙니다.” 라고 덧붙이며 가볍게 웃었다.
다키스트 워리어가 찾아왔던 이후로 처음 만나게 된 라크시아는 예전보다 얼굴이 꽤 많이 밝아져 있었다.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척 봐도 보였다.
마지막으로 전투를 벌였던 적이 언제인지조차 가물가물하고 작업해야 할 서류마저도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던데, 아마 그래서인 듯했다.
나머지 단원들의 심정은 8대2 정도라는 모양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 돈을 이만큼이나 받아도 되나 하고 걱정하는 쪽이 8, 지금은 놀다가 시켰을 때 잘하면 된다고 태평한 쪽이 2.
딱히 뭐라 할 마음은 없었다. 나같아도 놀기만 하는데 돈이 따박따박 들어온다면 좋아했을 테니까. 뭣보다 단장인 내가 아무것도 안 시키는데 얘들끼리 뭘 하겠는가. 하던 대로 성소나 지켜야지.
“할 일이 그렇게 없어? 성국에서 하루에도 몇백 명씩 찾아올 텐데.”
“저 광신도들이 성자님과 연관됐다 하면 눈 돌아가는 게 어디 한두 번입니까. 여기서 무례하게 구는 것은 곧 성소를 더럽히는 일임과 동시에 성자님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나 다름없다더군요. 지금까지 몇 만이 넘게 들락날락했는데 사건 하나 안 터졌습니다. 저희와 같은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에요.”
라크시아가 넌더리를 치며 집무실 창문에 기대어 성소를 내려다보았다. 실물 크기로 만들어진 ‘성자’의 대리석 동상 앞에 수백 명이 질서정연하게 꿇어앉아 기도를 올리는 중이었다.
드문드문 섞여 있는 남자 몇 명을 제외하면 압도적인 살색의 향연이 펼쳐져 있었다. 몇몇은 무릎 꿇고 허리를 숙이는 자세 탓에 드러나버린 음부나 항문을 가릴 생각조차 없는 차림새였다.
예전엔 저 정도 노출은 전투 수녀나 사제쯤 되는 직위여야 가능했는데, 최근에는 신성력이랑 신앙 인플레가 하도 심해진 탓에 평범한 수녀까지도 저런 복장을 입는다고 했다.
‘복장이라면 이쪽도 딱히 꿇리진 않지만.’
나는 창틀에 기댄 채 한쪽 팔로 밑가슴을 받치고 커피를 홀짝이는 라크시아를 바라보았다. 바로 근처에 역바니를 입은 부기사단장이 있으니 저쪽을 노출로 뭐라 할 입장은 못 됐다.
어디 라크시아 뿐이던가, 다른 부기사단장들도 유두와 음부에 붙인 스티커 모양만 다르지 죄다 역바니다. 일반 단원들은 기어코 정복을 투명 바니걸로 교체해놨고 말이다.
‘저런 걸 봐도 별로 감흥이 없는데 교황들이 흰 티랑 청바지 입고 있던 거에는 왜 반응했지? 노출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가?’
내가 노출과 꼴림 사이의 상관 관계에 대해 쓰잘데기 없는 고찰을 하는 사이, 라크시아가 빈 커피잔을 책상에 내려놓으며 질문했다.
“그런데, 저희는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시킬 일이 있어서.”
“……시킬 일이요?”
제자리에 각을 맞춰 선 기사들이 눈앞의 괴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꽤나 오래 실전을 겪지 않았던 탓에 흠집 하나 없는 칠흑색 갑주가 빛을 받아 번쩍번쩍하게 빛났다.
부기사단장들 사이에 섞여 있던 헬가가 문득 되물었다.
“저희가 저걸 상대하라고요?”
“맞아. 별 거 아니지?”
“척 봐도 별 거 아닌 게 아닌 것 같은 놈입니다만.”
평범한 인간의 서너배는 족히 될 듯한 커다란 덩치, 네 개나 달려있는 팔, 각 팔마다 하나씩 들려 있는 똑같은 모양의 황금색 대검, 그리고 온갖 보석과 황금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갑주까지.
값비싼 보석으로 온 몸을 도배하다시피 한 마물의 모습에 일반 단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렸다.
“야, 누가 성에 가만히 있는 게 싫다고 했어?”
“왜 날 보는데? 나 아니야.”
“지금이라도 성에 틀어박혀 있는 게 좋다고 말하면 돌려보내주실까?”
“혹시 말할 때 생각이라는 거 해본 적 있어?”
“와, 저거 하나만 갖다 팔아도 얼마야?”
“포기해. 흠집 많으면 값 제대로 안 쳐주니까. 그리고 넌 돈을 그렇게 많이 받는데 저게 탐이 나냐?”
거의 속삭임에 가까운 음량이었지만 내 귀를 피할 수는 없었다. 내가 다 들리는데도 일부러 모르는 척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라크시아만이 쩔쩔 매고 있을 뿐이었다.
“뭐라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 말에 라크시아의 얼굴이 펴졌다. 딱히 저런 걸로 갈구고 싶지는 않다. 기강이 완전히 박살났다면 또 몰라, 일단 시키는 건 빠릿빠릿하게 잘 해낸다고 하니까.
“자, 그러면 지금부터 뭘 할 건지 설명할테니 주목.”
내가 입을 열자 방금 전까지 곳곳에서 들려오던 웅성거리는 소음이 싹 없어졌다. 백 쌍도 넘는 시선들이 내게 집중됐다.
바니걸이 아니라 풀 플레이트 아머를 두르고 있으니 제법 기사같아 보였다. 성에서 집합시켰을 땐 바니걸이랑 역바니밖에 안 보여서 얘들이 대체 뭐 하는 애들인가 싶었는데.
“편제대로 부기사단장 한 명과 일반 단원 열 명씩, 총 열한 명이 저놈한테 달려든다. 전투 방식은 각자 상의해서 정하면 되고. 꼭 죽인다는 마음가짐으로 덤벼들지 않아도 된다. 전투 그 자체에 의미가 있으니까.”
누구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대련이라고 생각하면 됩니까?”
“비슷해. 대신 대련이랑은 다르게 맞으면 좀 많이 아플 거다. 죽을 일은 절대로 없겠지만, 죽기 직전까지 갈 정도는 되겠지. 걱정 마라, 숨만 붙어있다면 완벽하게 치료해줄 테니까.”
이번에는 다른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언제까지 하실 예정인지 질문드려도 되겠습니까?”
“오래는 안 한다. 각 편제당 전투 한 번씩, 한 바퀴만 돌 예정이니 안심하도록. 아, 저놈한테 공격을 성공시킨 횟수에 따라 추가적인 보상이 나갈 예정이다. 공격을 더 많이 성공시킬수록 보상도 더 좋아지겠지. 당연히 전액 현찰 지급이고, 액수는…….”
추가 보상이라기엔 상당히 심상치 않은 액수가 언급되자 방금 전과는 다른 형태의 웅성거림이 퍼져나갔다. 갑자기 의욕이 마구 샘솟는다느니 뭐 그런 내용들이었다.
“그럼 각자 알아서 준비해라.”
한때 황제를 호위했던 기사단답게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집합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이클립스의 목소리가 자그맣게 들려왔다.
“준비 끝났어요, 당신. 인지 능력을 살짝 손봐놨으니 칠흑 성야 기사단을 죽이지는 않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신님.”
“뭘요. 저도 보스전에서 등장할 NPC들의 패턴을 참고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인걸요.”
“굳이 이러지 않더라도 직접 인간을 창조해서 실험할 수 있으셨지 않습니까.”
여태껏 그래왔듯이 말이다.
“그러니 제 쪽에서 감사해야죠.”
“…….”
이클립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순서 정해졌습니다, 단장님.”
“알았어. 누가 먼저야?”
라크시아가 순서를 모두 정했다며 다가왔다. 나는 첫 번째 순서로 지목된 11명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한참 떨어진 건물로 이동시켰다.
기사들은 딜레이 없는 순간이동에 신기해하면서도 내 의도를 알아차린 듯 차례차례 관객석에 자리를 잡았다.
허공에 커다란 직사각형을 만들어 그 안에 보스 쪽 기사들의 모습을 띄웠다. 공간 그 자체를 투영하는 마법은 살면서 처음 봤는지 소란이 한층 커졌다.
“저, 단장님. 그런데 이 행동에 따로 의미가 있는 겁니까?”
바로 옆에 착석한 라크시아가 조심스레 질문했다. 그렇게 큰 의미는 없었다. 단순한 내 호기심 때문이었으니까.
저놈은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5에 등장할 예정인, ‘명예로운 기사, 케이라스’라는 이름의 보스였다. 최대 11명이나 되는 NPC와 함께 대규모 레이드를 벌이는 것처럼 싸울 수 있도록 기획됐고.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시리즈의 전통적인 보스전과 한참 동떨어져 있는 이질적인 구성이었기에, 그런 보스가 등장할 예정이란 말을 듣고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얘들이 제일 적당하기도 하고.’
일단 내 근처 여자들은 너무 강해서 안 된다. 한 명이서 덤벼도 대등한 싸움을 할 수 있을 텐데, 11명이 간다면 보스전이고 나발이고 두드려맞는 보스가 불쌍할 지경일 테니까.
그렇다고 이클립스가 소환한 NPC를 쓰자니 뭔가 스포일러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칠흑 성야 기사단을 데려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여태껏 신나게 놀고먹었으니 슬슬 몸을 좀 움직여 줘야지.
“다른 세계의 마물과 비교해서 너희 실력이 어느정도 되는지 시험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하지만 이런 내용을 그대로 언급할 순 없는 노릇인지라, 나는 적당히 거짓말만 안 하는 선에서 내용을 생략하고 말해주었다.
“……잠시만요. 다른 세계라고 하셨습니까?”
라크시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맞아.”
“어떻게……?”
“내가 성국에서 뭐라고 불리는지 까먹었어?”
그 말 한마디에 라크시아는 납득한 눈치로 고개를 끄덕였다.
라크시아를 납득시킨 나는 커다란 콜라와 팝콘 하나씩을 기사들의 양손에 쥐여주었다. 다들 내 세계의 음식에 익숙해져 있는지라 곧바로 팝콘을 씹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관객석에서 마치 영화를 관람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퍼지는 동안, 직사각형의 화면 속에서는 칠흑색 갑옷을 착용한 기사들이 보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여태껏 펑펑 놀기만 했어도 한때 황제의 경호를 담당했던 실력은 어디 가지 않았는지 동작 하나하나가 상당히 날카로웠다. 제일 선두에 선 단원의 무기가 푸른색으로 빛났다.
ㅡ콰직!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몸을 움직인 보스한테 풀스윙으로 얻어맞고 거의 10여 미터를 넘게 날아가버렸다. 충격이 꽤 컸는지 낙법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쿠당탕 바닥을 굴렀다.
팝콘 씹는 소리가 사라졌다.
‘설마 건드리지도 못하지는 않겠지.’
아무리 다대일을 상정하고 만든 보스라서 광역기 투성이에 연타 계열 공격이 대부분이고 공격 하나하나가 넉백을 일으키는 구성이라지만, 설마 그럴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