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80)
제 380화
외전: 보스전 체험하기 – 2
설마는 가끔 사람을 잡는다. 아니, 사실 꽤 자주.
“…….”
날 제외하면 칠흑 성야 기사단에서 최고 서열로 통하는 라크시아가 딱 1번, 그 외 나머지 단원은 스치지조차 못했다. 부기사단장 5명을 포함해서 말이다.
무려 백 명이 넘는 인원 중에 누구 하나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했다는 의미다. 심지어 검기를 날리거나 속성 공격을 사용하는 등의 변칙적인 공격마저 허용해준다고 했는데도 저런 꼴이었다.
케이라스는 온갖 기묘한 움직임을 선보이며 자신에게 날아드는 공격을 모조리 피해버렸다. 저 커다란 덩치로 저렇게 빨리 움직이는데 게임에서 어떻게 표현될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앞 순서가 두들겨맞은 방법을 확인한 뒷 순서들이 나름대로 전략을 보완해서 덤볐는데도 그랬다.
라크시아 말로는 순서의 유불리를 감안해서 앞 순서가 돈을 더 많이 챙겨가기로 자체적인 합의를 했다고 하던데, 저래서야 돈을 더 많이 챙긴다는 조건 자체가 무의미한 수준이다.
“난도가 너무 높은 것 아닙니까?”
ㅡ어, 어라? 이렇게까지 세게 만들어졌을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내가 조용히 읊조리자, 머릿속에 이클립스의 당황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렇게까지 세게 만들어졌을 리가 없다니, 이 허접 여신이 뭔가를 또 잘못 건드리기라도 한 건가.
“으으…… 완전 괴물이네요.”
너덜너덜해진 라크시아가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온통 우그러지고 찌그러졌던 칠흑색 갑옷은 말끔하게 수리되어 있었지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돌아왔다는 정신적인 충격은 아직 극복해내지 못한 듯했다.
관객석 중앙에 떠오른 직사각형 화면 속에서는 첫 번째 순서였던 기사들이 다시 보스에게 덤벼드는 중이었다. 나머지는 팝콘과 콜라도 마다한 채 그 전투 장면을 뚫어져라 관찰하고 있었다.
공격을 겨우 1번밖에 성공시키지 못했기에 약속했던 보너스가 110명 전원에게 돌아가기엔 턱없이 적은 금액이 되긴 했으나, 지금 칠흑 성야 기사단이 악에 받친 이유는 돈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자존심 때문이지.’
한때 은빛 여명 기사단과 함께 제국 최고 기사단의 자리를 양분하며 황제를 직접 경호하기까지 했던 기사들이다. 자존심이 강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런 자기들이 공격을 스치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으니 자존심에 상처가 날 수밖에.
얼마나 충격이 컸는지 돈은 필요 없으니 그냥 도전해 보고 싶다고 입을 모아 자청했을 정도였다.
“설마 저희한테 공짜 돈 주기 싫어서 일부러 제일 강한 놈으로 데려온 건 아니시죠?”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농담이었습니다. 충격이 하도 커서 잠시 투정 좀 부려봤어요.”
“그러면 나도 압도적인 성적으로 1위를 차지한 걸 축하해줘야겠네. 축하해, 라크시아.”
라크시아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따위 1등은 공짜로 줘도 안 가집니다. 0번이나 1번이나 거기서 거기잖아요.”
“1위 소감이 그것 뿐이야? 너무 단촐한데.”
“어차피 두들겨맞은 게 전부인데 여기서 더 말할 내용이 있습니까? 그리고 저니까 이런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거지, 다른 애들은 죄다 한 대도 못 맞추고 두들겨 맞아서 뻗어버렸는데 소감이 어떻냐고 물어보면 단장님을 잡아먹으려 들걸요.”
“날 잡아먹는다고? 어떻게?”
“그야 당연히…….”
라크시아는 잠시 멈칫 하더니 얼굴을 붉혔다. 방금 내가 한 말에 다른 뜻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이해한 모양이었다.
나는 웃으며 농담이라고 받아쳐주었다. 라크시아는 얼굴을 붉힌 채로 입술을 달싹였다. 입술 모양으로 봐서 약간 험한 말 쪽에 가까워 보였다.
뭐, 이런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도 그만큼 내가 편하다는 방증이다. 그 금빛으로 번쩍번쩍하는 병신이 단장이었으면 이런 농담은 꿈도 못 꿨을 거다.
“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을 데려오신 겁니까?”
“너도 나랑 비슷한 위치까지 올라오면 알 수 있는데, 어때?”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5에 등장할 보스다, 라고 세계의 비밀을 알려줄 순 없으니까.
“그냥 알려줄 생각이 없다고 똑바로 말하셔도 됩니다.”
라크시아는 피식 웃으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냥 농담이겠거니 하고 넘기려는 모양이었다. 나도 화면을 바라보았다. 보스의 칼질 한방에 두세명씩 붕붕 날아가 나뒹굴고 있었다.
‘스펙 차이가 그렇게 심한가?’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부기사단장들은 중간 보스에 일반 단원들은 필드몹 포지션이라고 해도, 칠흑 성야 기사단은 최후반부에 상대해야 할 적이었다.
최후반부 필드인 황궁을 돌아다니는 잡몹들은 초중반부의 중간 보스와 비슷한 스펙이다. 최후반부의 중간 봅스는 어지간한 초중반부 보스급 스펙이고.
그런 스펙을 지닌 애들이 칼질 한방에 무슨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가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데.’
내가 고민에 빠진 얼굴을 하자, 라크시아가 이쪽을 흘끔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별 거 아니야. 나중에 내가 잡아야 할 텐데, 저걸 어떻게 잡을까 고민중이었지.”
지금 당장은 추측의 영역일 뿐이다. 나는 미리 생각해뒀던 다른 변명을 꺼냈다. 저놈을 어떻게 잡을지 고민하고 있었다는 것도 엄연히 사실이긴 했으니까.
“그럼 구태여 이러고 계실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따로 사정이 있어서.”
내가 직접 잡는 게 아니라 키마 아니면 패드로 잡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속사정을 알 리가 없는 라크시아였기에 머리 위에 물음표가 한가득 떠올랐다.
“단장님이 인간을 초월한 존재시니 이런 점이 불편한 것 같습니다. 제대로 알려주시는 게 없네요. 업무가 부단장인 제게 떠맡겨지는 건 둘째 치더라도요.”
“난 엄연히 인간이야. 아직은.”
미래에는 이클립스처럼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된다고 하니 양심상 ‘아직은’을 붙였다. 라크시아는 이것도 내 농담으로 받아들였는지 입꼬리에 미소를 걸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아직은’ 인간인 단장님. 그럼 말을 바꾸죠. 인간을 초월하신 존재가 아니라, 인간을 초월하실 존재라고요.”
라크시아도 첫 만남 때랑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다. 은빛 여명 기사단에 시비를 걸다가 나한테 망가진 직검으로 엉덩이를 얻어맞으면서 신음 소리를 내던 것이 첫 만남이었으니까.
‘……잘 바뀌었을지도?’
어쩌면 좋은 쪽으로 잘 바뀐 걸지도 모르겠다.
“일단 내가 먼저 잡아볼까?”
“네?”
“너희가 워낙 갈피를 못 잡는 것 같아서. 시범이라도 보여주면 참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음…… 그러시다면야 사양하진 않겠습니다. 단장님이 사용하시는 방법을 저희가 참고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요.”
마침 타이밍 좋게 첫 번째로 진입했던 편제가 전멸한 참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부기사단장이 관객석으로 소환됐다. 박살나고 찌그러진 갑옷이 순식간에 고쳐졌다.
“다음 순서ㅡ”
“나야.”
“……서어어? 단장님, 방금 뭐라고요?”
“네가 말한 그 다음 순서, 나라고.”
다른 사람들이 라크시아와 나 사이에서 오간 대화를 알 턱이 없었기에 단체로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날개 잃은 악몽을 빼들고 보스 앞으로 이동했다. 케이라스가 곧장 전투 태세를 갖췄다.
설정상 지금까지 명예로운 전사로 살았고, 자신이 믿는 종교의 전통에 따라 명예롭게 싸우다 죽기를 원하는 보스였다. 싸우다 죽으면 전쟁의 신이 천국으로 인도한다는 설정이다.
몸을 저렇게 한껏 치장해놓은 것도 자신을 상대하는 전사들에 대한 본인 나름의 예우다.
‘브닼 5가 출시되면 명예랑은 거리가 먼 모습으로 죽게 될 텐데.’
아주 약간은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다. 저런 설정을 가지고 있다면 고인물들의 능욕 목표가 되어버릴 것이 뻔했으니까. 아마 명예랑은 거리가 한참 먼 방식으로 죽게 될 거다.
발로 깬다거나, 보라색 피부의 망자 커마를 만들어서 맨몸으로 깬다거나, 예능 무기로 깬다거나 하는 그런 방식들.
‘뭐, 그건 그거고.’
안타까운 감정도 어디까지나 아주 약간이다.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할 예정인지라.
자세를 잡았다. 놈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오른쪽 윗팔이 들어올려지고, 동시에 왼쪽 아래팔이 뒤로 당겨졌다. 빙빙 돌면서 연타로 공격하는 패턴이던가.
따로 하단 공격도 없으니 가볍게 튕겨내기부터ㅡ
ㅡ째애애앵!!!!!!
‘뭐야?!’
첫 회전 베기를 튕겨내자마자 몸이 뒤로 주욱 밀려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격까지 계속 튕겨내자 다리가 무슨 무빙워크에 올라탄 듯 뒤로 쭉쭉 밀려나고 있었다.
아무리 가벼운 마음으로 덤벼들었다지만 힘 대결에서 이렇게까지 밀리는 것은 명백히 비정상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힘을 조금 더 끌어올렸다.
밀려나던 다리는 밈췄지만, 팔에 닿는 충격은 여전했다. 놈은 8번째 공격까지 끝낸 뒤 곧바로 다음 패턴을 이어갔다.
바닥을 두 번 휩쓸고 팔 네 개 동시에 내려찍기라든가, 옆으로 회전하면서 한 팔당 하나씩 총 4방향을 공격한다든가,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가 칠흑색 불꽃을 휘감아서 내려찍으며 폭발을 일으킨다든가.
대놓고 다수전을 저격하는 패턴이 무지막지한 속도와 대미지로 날아들어왔다.
‘이거 그대로 게임에 출시되면 레판테카 이상일수도 있겠는데?’
솔직히 내가 느끼기에 이클립스가 대놓고 제일 어렵게 낼 거라 말했던 히든 보스랑 맞먹는 난도였다. 이상하다는 느낌이 점점 더 강하게 들었다.
‘빨리 끝내야겠어.’
땅을 박차고 솟아오르며 날개 잃은 악몽을 신성 속성으로 바꿨다. 검신에서 찬란한 황금빛이 터져나왔다. 날개 잃은 악몽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특수 능력을 준비했다.
머리 위에서 내리꽂히는 빛무리를 본 케이라스가 칠흑색 불꽃을 끌어올렸다. 검은색 불덩이가 솟아올랐다. 놈의 머리 위를 향해 팔을 수직으로 휘둘렀다.
ㅡ콰아아아아앙!
하늘에서 무지막지한 굵기의 빛기둥이 내리꽂혔다.
빛기둥은 막 솟구치려던 검은색 불꽃을 압도적으로 찍어누르며 땅에 처박아버렸다. 신성 폭발이 터져나오며 일대를 휩쓸었다. 돌과 파편 섞인 흙먼지가 휘날렸다.
‘…….’
바닥에 착지했다. 놈은 이 공격을 맞고도 잠시나마 살아 있었다. 다 부서진 상태였고 칼 끝으로 톡 건드리자마자 와장창 부서지긴 했지만, 어쨌든 살아있었다는 점이 중요했다.
나는 조용히 이클립스를 불렀다.
“여신님.”
“……네. 당신.”
“이번에는 뭡니까?”
당연히 잘못했다는 사실을 깔고 가는 듯한 태도였지만, 이클립스의 반응으로 미루어보아 딱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수, 수치를 잘못 입력했어요…….”
“이유는요?”
“…….”
“이유는요?”
척 보기에도 우물쭈물 망설이고 있던 이클립스는, 내가 한번 더 재촉하자 간신히 입을 열었다.
“조, 조만간 제 차례라고 생각하니까 자꾸 몸이 달아올라서요…… 자, 자궁도 욱씬거라고…… 생각만 해도 찌릿찌릿하고…….”
“…….”
이 여신이 진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