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84)
제 384화
외전: 성역 탐방 – 3
꽤나 오랜만에 발을 들이게 된 이클립스의 세계는 예전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반으로 나뉜 하늘에는 여전히 같이 떠올라 있는 태양과 달이 보였고, 낮의 공간에는 꽃밭이, 밤의 공간에는 풀과 나무가 펼쳐져 있는 모습도 그대로였다.
햇빛을 잔뜩 머금은 각양각색의 색채들이 바람을 따라 살랑살랑 흩날리는 광경과, 이슬을 잔뜩 머금은 몇 가지의 단촐한 색채가 고요히 잠든 광경이 공존하는 세계였다.
그 중심에는 창조신의 것이리라고는 믿을 수 없으리만치 단촐한 이층주택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다.
절반은 낮에, 절반은 밤에 걸친 평범한 집이지만 어떻게 보면 진정한 의미의 성역이라 불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저 안에 여신이 거주하고 있으니까.
“여신님? 안에 계십니까?”
문을 열고 들어가며 이클립스를 불렀다. 조용했다. 1층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여신을 찾아다녔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기시감이 느껴졌다.
‘예전에도 이랬던 적 있지 않았나?’
익숙한 감각을 떠올리며 2층으로 향했다. 계단을 반쯤 올라가자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두 번째로 들렀을 때와 똑같은 상황. 그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직감했다.
이클립스가 또 뭔가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이다.
저번에도 그렇고, 대체 뭘 얼마나 집중하고 있으면 자기 집에 누가 들어오는 것도 모른단 말인가. 나는 이클립스를 놀려줄 작정으로 최대한 조용히 문 앞까지 다가갔다.
반쯤 열린 문틈 사이로 말소리가 좀 더 또렷하게 들렸다.
“알고 있습니다. 참기 힘드시겠죠. 저의 완벽한 몸을 눈앞에 두셨으니 당연합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길. 제게는 당신의 욕망을 달래줄 의무 또한 있으니까요. 네? 여신을 어떻게 건드리냐니, 당치도 않습니다. 자, 보세요. 제 입술도, 이 겨드랑이도.”
말만 들으면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 같았지만, 이클립스 외에 다른 기척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혼잣말이라는 얘긴데.
좀 더 강하게 느껴지는 기시감과 함께 문을 힘껏 얼어젖혔다.
“저의 이 모든 것은 당신을 위해ㅡ 꺄아아악! 당신?! 여긴 어떻게?!”
“이번엔 또 뭘 하고 계셨던 겁니까, 여신님.”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화들짝 놀란 이클립스가 비명을 질렀다. 방 안의 풍경은 내 예상과 정확히 일치했다.
저번과 비슷하지만, 이번에는 창문이 아니라 발코니까지 나가서 몸을 기대고 본인 나름의 ‘위엄있는 자세’를 잡고 있던 이클립스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기겁을 하고 겨드랑이를 오므렸다.
“설마 또 어떻게 해야 절 위엄있게 맞이할 수 있을지 연습하고 계셨나요? 저번에 그러셨던 것처럼?”
“아, 아니에요! 물론 비슷한 자세긴 하지만, 이건 그러니까…….”
“그럼 뭘 하고 계셨는지 말해보시죠.”
이클립스는 나를 위엄있게 맞이해주려는 연습이 아니라고 펄쩍 뛰다시피 부정했으나, 내가 그러면 뭘 하고 있었는지 말해보라고 하자 단박에 조용해졌다.
히이잉, 하고 울상을 짓는 이클립스는 무척 귀여웠으나, 제일 눈길을 끌어대는 건 따로 있었다.
“입고 계신 옷은 뭐고요? 여신님이 그 이상한 천쪼가리 말고 다른 거 입으신 모습은 처음 보는데요.”
“처, 천쪼가리라니…… 너무해요, 당신…….”
입고 있는 옷이었다. 이클립스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몸에 걸친 천의 면적이 상당히 넓어진 것이다.
차마 옷이라 불러주기도 민망한 무언가에서 밑가슴을 훤히 드러내는 언더붑에 가깝긴 해도 의복이라 부를 수 있는 정도까진 올라와 있었다.
‘저건 뭐지. 스타킹인가.’
하의는 빼고.
음부를 가리는 의복이라곤 여전히 천쪼가리 한 장 뿐이었다. 길이만 좀 더 길어졌다뿐이지 위태로운 모습은 그대로였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졌다. 이번 가리개는 옆구리에 고정된 게 아니라 가슴에서부터 내려와 있었으니까. 아랫배 앞의 장신구가 하트 문신 모양인 것은 덤이었다.
그 대신이라고 해야 할지, 데니아가 굉장히 높은 스타킹이 다리를 덮고 있었다. 아랫배 근처의 Y존에 정확히 걸치는 길이였다.
‘……저거, 플로레타가 입고 있는 그 옷 같은데.’
루나가 입은 것이 평소 이클립스의 의상이라면, 플로레타가 입은 것은 지금 이클립스가 착용한 의상이다. 가슴께부터 내려오는 길다란 실과 아랫배 앞의 하트모양 가리개까지 정확히 일치했다.
물론 플로레타는 상의가 언더붑이 아니라 평소의 그 천쪼가리에 불과하고 스타킹도 안 신었지만 말이다.
내가 새로운 의상을 관찰하는 사이, 이클립스가 우물쭈물 자기 변호를 시작했다.
“당신을 지켜보니 과한 노출이 아니라 가릴만큼 가린 의상에 더 많은 욕망을 표출하시길래…… 저도 이런 쪽으로 변화를 줘보면 어떨까…… 해서, 요…….”
변화라.
확실히 엄청 큰 변화긴 했다. 저것도 옷이냐고 물어보면 대답이 약간 애매하긴 하지만, 뭐가 됐든 원래 차림새에 비하면 온 몸을 꽁꽁 싸맨 수녀복이나 마찬가지다.
이클립스 세계 수녀복 말고, 내 세계 수녀복.
하지만 이클립스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날 지켜보고 있었다며 제 입으로 실토한 건 둘째 치더라도, 내가 평범한 복장에 반응한 이유는 단순히 노출이 줄어들어서가 아니었으니까.
“아, 앗…… 당신?”
가까이 다가간 내가 어깨를 붙잡고 몸을 뒤로 돌리자, 이클립스는 잠시 당황하는가 싶더니 두 손으로 발코니를 쥐고 허리를 오목하게 휘도록 만들면서 엉덩이를 뒤로 살짝 뺐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뭔가 아주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듯했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고 허리 근처로 손을 가져갔다. 나중에 자기 혼자서 깨닫고 부끄러워하면 될 일이다.
“흐읏……!”
손가락이 등을 훑자마자 터져나오는 음란한 신음을 무시하고 머리카락을 걷어냈다.
‘역시.’
스타킹은 엉덩이 밑부분 살 바로 아래까지밖에 올라와 있지 않았다. 그 위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토실토실한 엉덩이가 보였고. 결국 뒤를 가리는 건 어젼히 머리카락 뿐이라는 뜻이다.
손을 뗐다. 찰랑거리는 흑발이 폭포처럼 유려하게 아래로 흘러내리며 절묘한 각도로 엉덩이를 가렸다.
몸을 어루만지던 손의 느낌이 사라지자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두근두근한 얼굴로 눈을 감아버렸던 이클립스가 살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는 내 입가에 걸린 미소를 확인하고 입술을 뻐끔거렸다.
“제가 설마 야한 짓이라도 할 줄 아셨습니까, 여신님?”
“네? 아, 아니에요. 그런 건ㅡ”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아주 잔뜩 기대하고 계시던데. 여신님이 지금 어떤 자세인지 사진이라도 찍어서 보내드릴까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려는 시늉을 했다. 이클립스가 기겁을 하고 몸을 돌렸다. 몸이 옆으로 격렬하게 회전했음에도 의복은 굳게 제자리를 지켰다.
“그, 그치만…… 당신 말대로 위엄을 차리기엔 이미 늦었기도 했고…… 이제 저한테 남은 역할은 하나밖에 없는걸요…….”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5 만드시는 거 말이죠?”
“……사실 두 가지였어요.”
“그럼 남은 하나는 저 밑의 세계를 관리하는 일이겠네요.”
울상을 지은 이클립스가 뺨을 한껏 부풀렸다. 웃으며 빰을 찔렀다. 푸시시, 입 안 가득 들어찼던 공기가 빠져나갔다. 여전히 울상인 이클립스를 내 옆으로 끌어당겼다.
이클립스는 말없이 내 품에 안겨왔다. 팔을 어깨에 두르고 말랑말랑한 뺨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원래 입던 옷 입으셔도 됩니다. 저라고 노출 많은 옷을 싫어하는 건 절대 아니거든요.”
나도 엄연히 정상적인 성욕을 지닌 남자인데 왜 그러겠는가. 교황들이 흰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었을 때 반응했던 건 신선함 때문이었지, 과한 노출이 싫어져서가 아니다.
‘보석 갑옷’처럼 상식을 깡그리 파괴하는 무언가만 아니라면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여신님이 몸을 안 드러내니까 영 어색하네요.”
첫 대면때부터 계속 천쪼가리 3개만 걸친 모습만 봤다보니 몸을 가리는 쪽이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클립스는 내 말을 듣자마자 화색이 도는 얼굴로 환복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내가 원래 알던 복장으로 돌아와서는 방긋 웃었다.
‘차라리 저게 낫네.’
그래, 평소 입던 천쪼가리를 억지로 늘려놓고 그런 이상한 스타킹을 신은 옷차림보다는 이게 훨씬 낫다.
기분이 풀렸는지 이 세계 특유의 걸음걸이로 엉덩이를 씰룩이며 걷는 여신의 뒤를 따라 거실까지 내려갔다.
이클립스는 테이블 옆 소파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고, 내가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자 테이블 맞은편이 아닌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맞닿은 몸에서 은은한 우유 냄새와 과일향이 풍겼다.
“절 찾아오신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당신?”
나는 여기 온 목적인 미네르바의 하늘 성역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해주었다. 하늘에 도시를 짓겠다는 말에 제법 고민하는 기색이던 이클립스는 얼마 안가 꽤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불가능하진 않아요. 그런데 하늘에 성역을 짓는 것과 제가 상관이 있는 건가요?”
“가능성의 여부에 대해 확답을 듣기 위해서도 있고, 저는 개인적으로 하늘이 아니라 다른 장소가 되기를 원하거든요.”
“다른 장소라니요?”
“여기랑 컨셉이 겹치잖아요. 아마 성국의 성역이랑은 다른 분위기를 내고 싶어서 하늘에 짓겠다고 했을 텐데, 정작 여기랑 컨셉이 겹치면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여긴 엄연히 따지자면 하늘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개념에 가깝긴 하지만, 이클립스가 여기서 지상을 ‘내려다본다고’ 언급했던 걸 생각하면 이미지상으로 크게 다를 건 없다.
언젠가는 내 여자들도 여기 방문할 때가 찾아올 거다. 그 시기가 찾아왔을 때 만에 하나라도 미네르바가 상심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내 말을 듣고 한동안 고민에 빠졌던 이클립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면 물 속에 짓는 건 어떠세요?”
“물 속이요?”
“네. 필요한 공간은 제가 만들어드릴게요. 물 속에 짓는다면 분위기가 닮지도 않을 테고, 하늘에 짓는 것만큼이나 상징성도 대단하겠죠. 그리고 당신이 제대로 방향만 잡아주신다면 제가 개입하지 않아도 영원의 마법사가 지닌 능력으로 충분히 가능할 거예요.”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다. 내가 지상으로 내려가서 할 말을 고르는 사이, 이클립스가 팔뚝을 콕콕 찔러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었다.
“저…… 당신. 여기 온 이유는 방금 그게 전부인가요? 이후에 따로 할 일은 없으신 거죠?”
“일단은 그렇습니다.”
“그, 그러시면 혹시…… 여기 제가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5를 만드는 공간이 있는데…….”
이클립스가 새빨갛게 붉어진 얼굴로 내 팔을 쥐며 속삭이듯 읊조렸다.
“보, 보고 가실래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