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85)
제 385화
외전: 성역 탐방 – 4
아우로라는 같은 침대에 잠들어 있는 12명 중에서 제일 먼저 눈을 떴다. 높디 높은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가 은은한 빛을 발했다.
뒤통수를 받친 베개도 그렇고, 몸을 지탱하는 침대도 그렇고,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는 이불도 그렇고. 어느 것 하나 완벽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대로 다시 누워서 확 잠들어버리고 싶었다.
‘……허리 아파.’
하지만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해 꾸역꾸역 몸을 일으키려던 아우로라는, 허리를 조금 들자마자 느껴지는 지독한 탈력감과 아랫배의 통증에 눈살을 찌푸리며 도로 드러누웠다.
‘다들 체력도 좋지.’
여기서 나이가 제일 어린 사람이 말하기엔 어색한 표현이었지만, 그럴 사정이 있었다. 꼬박 일주일가량을 시달리는 동안 체력의 한계를 느낀 건 아우로라뿐이었으니까.
당장 아랫배의 통증도 그랬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신체 능력이 받쳐줄 테니 이런 통증을 느낄 일도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아우로라였기에 제일 먼저 눈을 뜰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지만.
‘……똑같이 다뤄졌으면 몸이 못 버텼겠지.’
델타는 아우로라만큼은 일정 선 이상으로 과격하게 다루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당하는 쪽이 그래달라고 부탁해서긴 해도, 선을 넘은 델타는 보는 사람이 다 오싹해질 정도였다.
특히 마조 취향까지 있는 리제나 닉스가 저러다 죽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험하게 다뤄졌던 것과 비교해보면 아우로라에게 한 행동들은 오히려 과보호라고 봐도 무방했다.
‘어떻게 그런 걸 좋아할 수가 있지? 이해가 안 가네.’
기껏해야 엉덩이 스팽킹 정도가 끝이었던 아우로라는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는 리제와 닉스를 번갈아 쳐다보며 넌더리를 쳤다.
대체 뭘 하면 그런 지독한 짓을 당하면서도 눈에서 쾌락을 뚝뚝 흘릴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자신은 설령 신체 능력이 받쳐주더라도 그렇게 당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이제 좀 낫네.’
아우로라는 미네르바가 특별히 만들어준 콜라맛 사탕을 삼켰다. 마나를 다룰 수 없게 된 아우로라를 위해 치료 마법을 각인해둔 사탕이었다.
어금니 사이에서 부서진 사탕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온몸의 통증이 가라앉았다. 욱신거리는 아랫배만큼은 그대로였지만, 그건 통증이 아니라 쾌락에 가까운 감각이니 상관없었다.
몸을 일으켜 나체의 여자들로 뒤덮인 침대를 빠져나왔다.
‘미네르바 님은 왜 저러신대?’
분명 시간이 제법 흘렀을 텐데, 미네르바는 절정의 여운에 몸을 떨며 혀를 쭉 빼물고 반쯤 혼절해 있었다. 생각해봤자 답이 나오지 않을 문제였기에 깔끔히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침대를 빠져나온 아우로라는 제일 먼저 샤워부터 끝냈다. 다음 순서로 욕탕에 30분 정도 몸을 담그고,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 후 옷을 갈아입었다.
물론 황제의 드레스가 아니라 민소매와 돌핀팬츠 차림이었다.
‘일주일 내내 섹스만 해댔는데 예의는 안 차려도 되겠지.’
아우로라는 잠꼬대조차 없이 죽은 듯 잠든 교황들의 옆을 지나 방을 나섰다. 그리고 분주하게 어디론가로 향하는 전투 수녀들을 발견했다.
수녀들은 아우로라와 마주치자 발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숙였다.
“제국의 황제를 뵙습니다.”
“인사는 됐어.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바빠? 어디 가는데?”
척 보기에도 다급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안 물어볼 수가 없었다. 몸은 저리도 분주한데, 얼굴은 황홀하기 짝이 없는 표정이었으니까. 호기심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치료실로 향하는 중입니다.”
“치료실? 누구 다쳤어? 아무리 봐도 누가 다친 얼굴은 아닌데.”
수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성자께서 태양과 달의 곁으로 승천하셨는데, 그 파장을 느끼고 다들 실신해버려서 돌볼 일손이 모자란 상황이라더군요. 그래서 도와주러 가고 있습니다.”
‘아, 여신님 만나러 갔나 보네.’
성국에서 태양이나 달의 곁으로 승천했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당사자의 사망을 의미하는 표현이지만, 델타는 예외다. 델타가 여신을 만나러 갔다면 그건 말 그대로의 의미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이 정도로 요란하게 떠났다고? 델타가?’
눈에 띄거나 과한 관심을 받는 걸 별로 선호하지 않는 델타 성격상 이렇게 사방팔방에 알리면서 떠났을 이유가 없었다.
“너,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봐. 나머지는 하던 거 계속 하고.”
일단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니 한 명만을 남기고 모두 돌려보낸 아우로라가 남은 한 명을 재촉했다.
수녀는 황홀한 표정을 유지한 채 설명을 이어갔다. 온갖 미사여구와 환희와 찬양이 한가득 섞인 설명이었다.
아우로라는 끙끙대며 그 속에서 핵심을 추려냈다. 핵심만 요약하면, 승천을 직접 목격한 건 아닌데 호수 쪽에서 발현된 신성력이 퍼져나가자마자 다들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 일단 알았어.”
핵심만 요약해도 대체 뭔 소리인지 이해가 안 갔다. 하지만 성국은 이해하려 들수록 손해였기에, 아우로라는 어련히 대단한 일이겠거니 하고 수녀를 돌려보냈다.
수녀는 본인의 신앙과 신성력을 한껏 드러내는 옷자락을 나풀거리며 총총총 뛰어갔다.
“저것들은 왜 아침부터 저리도 분주하단 말이냐.”
“아, 고모님. 깨셨어요?”
두 번째는 의외로 카이킬리아였다. 아우로라는 카이킬리아가 벌써 일어났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놀랐다.
“몸은 좀 어떠세요? 조금 심하게 당하셨던데.”
지난 일주일간 어떤 추태를 보였었는지 모두 지켜봤으니까.
그 자존심 강한 카이킬리아가 어린아이처럼 울부짖으며 혀 꼬인 소리로 제발 그만해달라며 애원하는 모습을 말이다.
“……보면 모르겠느냐. 아직도 몸 전체가 욱신거리는 느낌이다.”
카이킬리아는 벽에 손을 짚고 허리를 살짝 숙인 채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이고 있었다. 보면 모르겠느냐, 하는 말에 정확히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괜한 부스럼을 만들기는 싫었으니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여기서 밤에 무슨 짓을 당했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해봐야 한 대 맞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 저것들이 왜 저리도 분주한지는 알지 못하는 것이냐?”
“델타가 여신님 만나러 갔대요. 그 파장이 퍼져나가서 다들 실신하고 있다나 뭐라나. 직접 본 것도 아니라는데 말이죠.”
“……여신을?”
그렇게 되물으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창문 밑의 소파에 몸을 던지다시피 앉은 카이킬리아는, 엉덩이가 쿠션에 닿자마자 흐읏, 하고 입을 막으며 끈적한 신음을 토해냈다.
“왜 이렇게 빨리 나오셨어요? 더 쉬고 계셔도 될 텐데.”
“너 같으면 그 나체들 사이에 끼어서 제대로 쉴 수 있겠느냐, 아우로라.”
“……죄송해요. 안 될 것 같네요.”
그러고보니 다들 알몸으로 누워 있었지. 아우로라는 머쓱하게 사과를 건넸다.
“그것들이랑 부대끼며 누워 있느니 차라리ㅡ 끄읏?!”
“왜, 왜 그러세요?!”
카이킬리아가 말을 하다 말고 몸을 비틀었다.
“……괜찮느니라. 아직 여운이 다 가시지 않아 그런 것이니.”
일부러 여운이 다 가시지 않았다며 두루뭉실하게 대답하고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지난번의 정사를 떠올린 것만으로 아랫배가 떨렸다고는 죽어도 말할 수 없었다.
아우로라가 혹시 몰라 꺼냈던 콜라맛 사탕을 도로 집어넣었을 때였다. 담요 한 장으로 몸을 가린 플로레타와 루나, 스텔라와 셀레네가 다급히 문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무슨 일이냐, 교황?”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모양새에 카이킬리아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교황들이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 일도 없었나요?”
“……아무 일도 없었습니까?”
“델타가 여신을 만나러 갔다는 것 외에는 없었느니라. 진정하고 왜 그러는지나 말해보아라.”
“무언가 심상치 않은 신성력이 느껴졌습니다.”
“지금도 몸 전체가 찌릿찌릿해요.”
“아직도 잠이 덜 깼느냐? 들어가서 잠이나 더 자는 것을 추천하겠노라.”
스텔라와 셀레네의 말에 코웃음을 친 카이킬리아가 손을 휘적였다. 그 순간, 복도 저 멀리서 전투 수녀 한 명이 전력을 다해 이쪽으로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 모습을 드러날 때까지만 해도 어렴풋하게 느껴지던 인영은 순식간에 바로 옆까지 다가왔다.
“교, 교황…… 교황 성하……!”
“무슨 일이십니까?”
“일단 진정하고 말씀하여보시지요.”
“그, 그것이…… 그것이…….”
하지만 수녀는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고 헉헉대기만 했다. 카이킬리아가 창문 밖의 이변을 눈치챈 것이 그쯤이었다. 내리쬐던 햇빛이 조금 전보다 어두워진 것이다.
구름이 태양을 가려서 어두워진 느낌이 아니라, 마치 밤이 찾아온 것 같은 검은색으로. 수상함을 느낀 카이킬리아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검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너의 말이 맞았던 듯하구나, 교황.”
카이킬리아의 중얼거림을 들은 아우로라가 창 밖을 돌아보았다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아직 시간이 아침 7시밖에 되지 않았건만, 하늘이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것도 칼로 자른 듯 정확히 절반만이.
“성역, 성역이…….”
한참을 헥헥대던 전투 수녀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성역의 절반이 밤으로 바뀌었습니다.”
못 참았다.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5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여준다는데 그걸 무슨 수로 참겠는가. 솔직히 여신이 어떤 방식으로 게임을 제작하는지 궁금했던 것도 사실이었고.
“여기에요. 먼저 들어가시면 돼요, 당신.”
안내받은 장소는 2층이었다. 이클립스는 문 옆에 서서 눈짓을 했다. 나는 기대감을 품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곧장 내 뒤에 따라붙은 이클립스가 문을 닫았다.
ㅡ철컥!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났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확히는, 게임 제작과 관련된 장비가 아무것도 없었다. 있는 거라곤 평범한 침실에 놓여있을 법한 가구들뿐이었다.
“아니요, 확실히 있어요.”
“어디 말입니까?”
“돌아보시면 아실 거예요.”
‘…….’
나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돌렸고, 설마가 이번에도 사람을 잡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클립스가 나를 보며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여기 있네요.”
“……분명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5를 만드는ㅡ”
“만드는 공간을 보여준다고 했죠. 이 공간에서 게임을 제작하니 틀린 말은 안 했는걸요.”
이거 사기 아닌가. 내가 황당해하는 사이, 이클립스가 눈웃음을 치며 한층 가까이 다가왔다.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5를 제작하는 도구도, 방법도, 모두 저예요.”
손가락이 금색 가리개를 쥐고 들어올렸다. 움직임은 아슬아슬하게 유륜이 보이지 않을 높이에서 멈췄다. 어떤 상황에서도 묵묵히 제 역할을 수행하던 가리개가 힘을 상실하려 하고 있었다.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해보실 수도 있는데…….”
몸이 더 가까워졌다. 이클립스는 내 왼손을 붙잡고 슬그머니 자기 아랫배로 이끌었다.
“어떠신가요, 당신. 직접 제작해보실ㅡ”
ㅡ델타 님! 델타 님! 잠시 괜찮으시겠습니까?
머릿속에 루나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