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9)
‘……쟤 뭐야?’
딱히 할 일도 없겠다, 자기 방에서 멍하니 창 밖을 내려다보던 리제가 두 눈을 부릅뜨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 늦은 시간에 신입과 이네르마가 자기네들끼리 성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슬금슬금 다가오던 잠이 확 달아났다. 리제는 그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네르마가 앞서가고 신입이 뒤따라가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신입이 나가자고 권유한 것은 아니다. 즉, 저 장님 여자가 먼저 신입을 꼬셨단 의미나 다름없었다.
‘어딜 감히 상도덕도 없이 내가 먼저 찜해놓은 남자를 낼름하려 들어?’
저 둘이 대체 무슨 목적으로 나가는지 그 이유까지는 몰랐지만, 일단 이 야밤에 남녀 둘이 외출한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였다.
예를 들어, 저런식으로 아무렇게나 밖을 돌아다니다가 으슥한 곳에서 갑자기 서로 눈이 맞아서는 그 자리에서 야외 섹스를 해버릴수도 있지 않은가.
에리카가 듣는다면 그게 대체 무슨 미친 소리냐면서 등짝을 사정없이 갈겨버릴 망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끝낸 리제는 그 둘의 뒤를 따라 창문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미행 시작이었다.
“…….”
“…….”
뜬금없는 제안을 받고 밤 산책에 끌려나오긴 했지만, 안에서 할 말이 없었는데 밖으로 나왔다고 말문이 트일 리는 없었다. 우리는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히 걷고 또 걸었다.
분명 앞이 안 보일텐데 이네르마는 어째 아무렇지도 않게 슥슥 걸어나갔다. 혹시라도 어디 부딪힐까 싶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건만 쓸데없는 걱정인 듯 했다.
꽤나 늦은 시간이다보니 밤거리는 조용하기 짝이 없었다. 서서히 기울어가는 달만이 길을 밝혀줄 따름이었다.
“우리 지금 어디 가는거야?”
“딱히 정해둔 건 없어요. 말 그대로 산책이니까요. 그냥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거에요.”
그걸 끝으로 우리는 다시 입을 다물었고, 산책은 결국 도시 내부에 있는 작은 숲까지 이어졌다. 내가 기사단장들에게 말했던 달이 걸리는 나무가 위치한 숲이었다.
밤의 숲은 제법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마물이건 뭐건 아무것도 없는 숲이다. 여길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사람들이 이런 장소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그 특유의 소름끼치는 분위기 때문인데, 난 이미 여기가 안전한 장소라는 걸 알고 있으니 겁먹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만약 여기서 내 예상이랑 다르게 뭐가 튀어나온다면 그때부터는 살짝 무섭긴 하겠네.
혹시 이네르마가 넘어지지는 않을까 싶어 옆을 흘끗 돌아보았다. 내 걱정이 무색하게도 잘 따라오고 있었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린 채, 내게 귀 뒷부분과 뒤통수만을 보여주는 기묘한 자세를 하고있을 뿐.
그러면서도 또 신기하게 넘어지거나 휘청거리지도 않고 앞을 향해 또박또박 잘 걸어갔다.
나도 그러려니 하고 걸었다. 설마 여기서 어떤 공포영화마냥 갑자기 비명 지르고 사지 뒤틀면서 달려오기라도 하겠어.
“……신입 기사님은.”
숲에 들어오고 시간이 꽤 지났다는 생각이 들 무렵, 이네르마가 입을 열었다. 고개를 여전히 반대편으로 향한 채였다. 나는 얘가 뭘 말하려는건가 싶어 걸음을 멈췄다.
“무섭지 않으신가요?”
“무서워? 뭐가?”
“지금까지 하셨던 행동들이요.”
“……?”
이네르마도 걸음을 멈췄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내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는데.”
“말 그대로에요. 지금껏 해오셨던 일들이 무섭지 않으셨나요?”
지금껏 했던 일들이 뭐가 있더라.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감옥에서 검 한자루로 인간 도살자 때려잡은거, 리제랑 입단 시험으로 한 판 붙은거, 혼자서 목 없는 철갑 기병 토벌한 거.
이네르마한테 말해준 내용은 이렇게 3개가 끝인 거 같은데.
악마가 깃든 책을 사용해 영주를 죽였다는 이야기는 외부인에게 해줄만한 이야기가 아니었으니 쉬쉬했고, 그러면 당연히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어야 한다.
아, 그 황금빛 기사놈을 두들겨팼던 것도 이야기해줬던가. 내가 말해준게 아니고 리제가 나를 자랑하듯이 떠벌린거라서 잘 모르겠다.
“그게 왜 무서워?”
“죽을지도 모르는 일들이잖아요. 오히려 무서운 게 당연하지 않나요?”
‘그런가?’
잠시 말을 곱씹었다.
물론 처음에 닼라 모드가 적용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때야 적 강화 모드로 한참 강화된 인간 도살자를 때려잡고 가야한다는 사실에 성심성의껏 불안해했던 것은 맞았다.
그런데 그걸 무서워한거라고 부를 수 있냐면 그건 또 애매했다.
이미 수천 번도 더 해온 행동이었고, 머릿속에 하나부터 열까지 상대법이 전부 들어 있는 상대였다. 그러니, 내가 실수하거나 삐끗하지만 않는다면 죽을 일은 없었다.
혹시라도 실수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은 당연히 있다. 하지만 그게 두려운 감정이라거나 무섭다는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불안과 공포는 같은 듯 하면서도 다른 감정이니까.
“깊게는 생각 안 해봤는데, 딱히 그런 느낌을 받진 않았던 것 같아. 내가 실수만 안 하면 죽을 일이 없는거잖아?”
솔직히, 아직도 내가 브닼 4에 빙의했다는 사실이 완전히 실감나질 않았다.
인간의 기본적인 생리 현상을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
말은 얼마나 많이 달리든, 얼마나 무거운 물건을 싣든 절대 지치지 않는다.
몸을 아무리 험하게 굴려도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잠 역시 필수가 아니고, 그저 밤에는 자야하니까 잔다는 느낌이 강하다.
평소에 ‘게임이니까 그렇다’며 넘어갔던 사항들이 그대로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으니, 이걸 현실이라고 느끼기에는 너무 비현실적인 상황이었다.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선 게임을 종료시키고는 사실 브닼 4의 VR 버전이었다고 해도 위화감이 없을 지경인데, 당연히 실감이 나지 않을 수 밖에.
“……실수요?”
이네르마의 말투에 의문이 깃들었다. 실수만 안 하면 안 죽는다니, 저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너도 내가 어떤 상황인지는 들었지?”
“네, 마녀의 저주를 받으셨다고…….”
“내가 옛날에 대체 뭐였던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직감과 기억을 따랐을 때 손해 본 적은 없었어. 다시 말해서, 내가 그걸 따라할 때 실수만 안 한다면 죽을 일은 없다는거지. 머리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 몸이 기억하고 반응하는대로 움직인다는 뜻이야.”
이미 기사단장들에게 써먹은 변명이었다. 머리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대로 움직인다고 말이다.
실제로도 보고 반응하면 늦는 패턴들이 수두룩했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카이킬리아의 평타질이라든가.
“내가 그 와중에 실수하지만 않는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무사할 수 있겠지. 그러니까 딱히 겁은 안 나.”
“그러신가요…….”
소녀는 한동안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약간은 섬짓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요?”
“응?”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만큼 커다란 시련이 닥쳐오더라도, 겁먹지 않으실건가요?”
“…….”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표현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만큼 커다란 시련’이란, 게임의 최후반부 즈음 해서 나타나는 브닼 4의 최종 보스를 가리킬 때 황제가 사용했던 표현이었다.
최종 보스의 난이도가 하도 극악이라 자연스레 밈에 가까운 지분을 차지하게 됐었고.
“아마 그럴걸?”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놈이 내 기억 속에 있는 최종 보스와 똑같다면, 게임에서 했던 그대로 때려잡으면 될 뿐이다. 늘 해왔던대로, 실수 하나 없이.
“역시…….”
내 그런 모호한 대답에도 이네르마는 의외로 납득했다는 목소리였다. 그 뒤로도 뭔가를 더 중얼거리긴 했는데,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안 들렸다.
그렇게 혼자 뭔가를 계속 중얼거리던 이네르마가, 문득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라?’
아주 잠깐이지만, 그 눈에서 얼핏 황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를 본 것 같았다.
그래. 꼭 황제의 것처럼 말이다.
‘기분탓이었나……?’
그건 정말로 아주 잠깐에 불과했다. 내가 잘못봤나 싶어 눈을 깜빡이는 바로 그 찰나에, 소녀의 두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이미 퀭한 검은색의 동공만이 남아 있었으니까.
“그러면 이제 돌아가죠. 산책은 충분히 즐겼으니까요.”
이네르마는 홀가분한 목소리로 말하고선 왔던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망설임 없이 숲을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나도 약간은 찝찝한 기분으로 그 뒤를 따랐다.
무언가 계속 마음에 걸리는 느낌이었다.
“그랬느냐.”
황궁의 불이 다 꺼진 중앙홀.
그 모든 장소를 내려다볼 수 있는 옥좌에 앉은 카이킬리아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달빛을 받은 금안이 살벌하게 빛났다.
“역시 그랬느냐.”
환희에 찬 목소리가 텅 빈 홀을 울렸다.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다. 정확히는, 대답의 내용이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라 대답을 하는 자세와 행동이 마음에 들었다.
말 자체는 두루뭉술하고 확신이 없는 듯 했지만, 정작 그것을 말하는 태도가 확신에 차 있었다. 망설임이라곤 느껴지지 않았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어투였다.
그 말인 즉, 스스로의 실력에 대해 확실하게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기억을 모두 되찾은 자신에 대해서도 말이다.
하지만 그뿐이었다면 카이킬리아도 긴가민가 했을 것이다. 카이킬리아가 이토록 환희하는 것에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카이킬리아는 그 신입 기사가 능력 확인 구슬을 사용하는 장면도 눈을 빌려 처음부터 끝까지 감시했다.
그리고, 능력 확인 구슬을 만지기 전과 후를 비교해 마력이 말도 안 되게 늘어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있을 수 없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필시, 무언가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드디어…… 드디어 그토록 염원하던 것을 찾았노라.”
저 자라면 자신의 원대한 꿈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 자신의 꿈에 짓눌리는 것이 아니라, 그걸 감당하고 함께 이루어낼 수 있으리라.
이 지독히도 허무하고 덧없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카이킬리아와 맞먹을 수 있으리라.
옥좌에 앉은 카이킬리아에게서, 소름끼치는 광소가 터져나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