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98)
제 398화
외전: 마지막 이야기 – 5
한분한분 개성이 넘치셨던 부모님들과의 대면이 끝난 후, 이제 마지막 순서만을 남겨둔 나는 이사르 가의 저택을 방문하기 전에 플로레타와 루나를 불렀다.
“내가 방문한다고 가문에 미리 말해뒀댔지?”
“예, 그렇습니다.”
“만약 저택 도착했는데 입구부터 머리 박고 줄지어 있다거나, 레드카펫 대신 몸으로 직접 카펫을 만들었다거나,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냐고 물어봤는데 일주일 전부터 그러고 있었다는 대답이 돌아오거나 하면 너희 순서는 3바퀴 뒤로 미뤄질 거야.”
“…….”
여기서 언급된 순서가 무슨 뜻인지 이해 못할 2명이 아니었다. 플로레타와 루나의 얼굴에서 핏기가 모조리 가셨다. 한순간이지만 말을 꺼낸 내가 기겁해서 괜찮냐고 물어볼 뻔했을 정도였다.
“난 분명히 그런 대접 조금도 필요 없다고 말해뒀는데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건, 너희가 내 말을 제대로 전달 안 했거나 아니면 내 말을 듣고도 무시했다는 뜻이 되겠지. 맞아?”
“아, 아닙니다…… 저희는…… 그런, 것이…….”
내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혹은 내 말을 듣고도 무시했다. 둘 모두 교황들의 입장에선 끔찍하기 짝이 없는 선택지였다.
플로레타와 루나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금방이라도 실신해버릴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저 둘의 반응이 저런 걸 보아하니 저택에서 무슨 소란이 벌어졌을지가 짐작이 갔다.
내가 방문한다는 말에 있는 살림 없는 살림 죄다 꺼내서 날 대접하려고 했겠지. 분명 플로레타와 루나를 위해 내려가는 거니까 판을 너무 크게 벌리지 말라고 했는데도 말이다.
‘가끔은 이렇게 충격요법도 사용해줘야지.’
그래야 어느정도 통제가 된다. 보석 비키니는 전혀 예상치 못한 사안이었고 대리석 조각상은 이미 한참을 진행돼서 어쩔 수 없었지만, 이것만큼은 안 된다.
차라리 내가 뻔뻔한 성격이었다면 성국에 내려갈 때마다 수천 명의 여자와 온갖 산해진미로 이루어진 주지육림을 즐길 수도 있었겠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뻔뻔한 성격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지라.
나한테 그런 걸 내밀어봤자 부담밖에 안 된다.
“스텔라, 셀레네.”
“……네, 성자님.”
“……무슨 일이십니까.”
바로 눈앞에서 교황들의 미래가 핏빛으로 잔혹하게 물들어가는 것을 목격한 스텔라와 셀레네가 잔뜩 위축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둘을 바싹 끌어당기고 등 뒤로 팔을 둘렀다. 겨드랑이 밑으로 들어간 팔이 옆가슴에 닿자, 화들짝 놀란 둘이 내게 달라붙었다.
“자취방에 잠시 들를 일이 생겼는데, 같이 가자.”
“저, 저희랑 말인가요……?”
“교황 성하들께서는……?”
“따로 할 게 있을 수도 있잖아? 이를테면, 내가 간다고 지상에 연락하는 일이라든가. 적어도 내가 오기 전까지는 끝나 있겠지.”
말 속에 담긴 의도를 알아차린 교황들의 얼굴에 급속도로 핏기가 돌아왔다. 둘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날 배웅했고, 문이 닫히자마자 막대한 양의 신성력이 흘러나왔다.
이걸로 필요 이상의 대접은 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성국이 진심으로 날 대접하려 한다면 사치의 끝이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것도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는 나였기에 더더욱 값진 성과였다.
“감사해요, 성자님.”
“저 역시, 감사드립니다.”
스텔라와 셀레네는 문 뒤에서 흘러나오는 신성력을 확인한 뒤에야 내 의도를 알아차리고 조심스레 감사 인사를 건네왔다.
방금 전까지 혹시라도 교황들이 불이익을 받을까 싶어 잔뜩 위축되어 있던 탓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미처 없었던 듯했다.
나 역시 정말로 교황들에게 벌을 내릴 생각은 없었다. 단지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채워주고, 내가 너무 과한 대접을 싫어한다는 사실도 각인시켜줬을 뿐.
“아니, 감사 인사는 안 해도 돼.”
“네? 꺄앗?!”
“흐읍?!”
나는 스텔라와 셀레네를 그대로 소파 위에 겹치듯 던졌다. 소파에 안착한 둘의 몸이 자연스럽게 서로 껴안은 자세가 되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
대략 6시간 정도가 지난 뒤, 플로레타와 루나는 나랑 같이 방으로 돌아온 스텔라와 셀레네에게서 느껴지는 ‘냄새’를 맡고 무척이나 시무룩해했다.
“이렇듯 만나뵙게 되어 저에게, 또 이사르 가문에, 또 라파엘라 성국에 무한한 영광이 아닐 수 없사옵니다, 살아계신 성자시여.”
이사르 가문의 저택에서는 가주라 불린 사람이 평범하게 나를 맞이해주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긴 했지만, 라파엘라 성국에서 저 정도 예의는 어디까지나 평범한 축에 속한다.
가주는 당연하다는 듯이 여자였고, 당연하다는 듯이 미인이었으며, 당연하다는 듯이 엄청나게 폭력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가슴 크기가 교황들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세라피카 이사르 님과 에반젤리나 이사르 님의 결혼을 위해 오셨다고 하셨나이까?”
“맞아.”
교황들이 플로레타와 루나가 아닌 세라피카 이사르와 에반젤리나 이사르로 불리는 모습은 꽤 생소했다. 지금은 교황이 아니라 한 명의 여인으로서 내 옆에 섰으니 그렇게 부르는 거라던데.
“당연히 수락ㅡ 큼큼. 그 전에, 으레 그렇듯이 일단 저택에서 그간의 여독을 푸시는 것이 어떠실까 하옵니다. 성자를 보필하는 것은 곧 모든 성국 신민들의 무한한 영광이나 다름없사오니, 부디 허락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살아계신 성자시여?”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우리들의 요청을 받아들이려던 가주는, 양 옆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플로레타와 루나에 의해 헛기침을 하며 다급히 말을 바꿨다.
플로레타와 루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내 팔을 한쪽씩 차지하고 저택으로 들어갔다. 이것만은 포기하기 싫었던 모양이니, 기꺼이 어울려주기로 했다.
나는 그렇게 꼬박 이틀 동안 감히 상상조차 못 할 수준의 대접을 받았다.
‘……플로레타랑 루나가 온 힘을 다해 줄여서 이 정도면 그러기 전에는 대체 뭘 하려고 했던 거지?’
같은 생각이 들 만큼.
라파엘라 성국에도 계급과 재산의 격차는 존재한다. 머릿속에 든 것이 오직 신에 대한 찬양뿐이기에 재산이 많든 적든, 계급이 높든 낮든 잘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이사르 가문 역시 그 중 하나에 속했다.
예전에도 교황을 몇 번이나 배출한 적 있고 플로레타와 루나가 교황으로 있는, 신앙과 신실함으로는 따라갈 자가 없다고 봐도 좋은 가문이었으니 돈이라면 차고 넘칠 만큼 있었다.
그런데 그 넘치는 재산과 높디 높은 계급에 살아계신 성자를 대접해야 한다는 명분까지 더해졌다. 이 3가지 조건이면 성국에서 감히 이루저 못할 것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내가 듣기로는 저택에 존재하는 모든 액체가 빛을 머금은 성수라던가. 그 다루기 까다로운 걸 잘도 사용하고 있구나 싶었다.
“에반젤리나 이사르 님과…… 세라피카 이사르 님을…… 잘 부탁, 드리옵니다…….”
날 대접하려는 의도 이상의 의미는 없었던 이틀간의 휴식 끝에, 이사르 가문의 가주는 벌벌 떨면서 허락을 내렸다. ‘감히’ 나를 허락한다는 사실이 불경하다는 이유였다.
아마 우리가 돌아가면 바로 고행을 떠날 것 같다는 말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가주를 친히 일으켜 세워주며 너의 죄를 사하노라, 라고 말해줘야 했다.
“끄, 그르르르륵…….”
가주는 내 손을 잡자마자 눈물을 흘리더니 흰 거품을 물면서 뒤로 쓰러졌고, 죽었다. 과장 하나 안 보태고, 진짜로 기쁨을 견디다 못해 죽어버린 것이다.
결국 나는 이클립스에게 부탁해 팔자에도 없는 부활 능력을 선보여야 했다. 그걸 본 이사르 저택의 수녀들이 한층 더 눈이 돌아갔음은 물론이었다.
부활한 당사자인 가주는 말할 것도 없었다.
“방금 떠오른 건데요, 헤헤.”
상견례 아닌 상견례를 모두 끝마친 다음 날, 존댓말 닉스가 음침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 저흰 따로 엄마가 없는 게 아니라…… 어떻게 보면 이 세계를 만든 여신님이 저희 엄마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요…….”
도저히 관심을 안 가질래야 안 가질 수가 없는 폭탄 발언이었다. 마침 타이밍 좋게 거실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이클립스에게 집중됐다.
신성한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4에서 더러운 수작을 부렸다는 이유로 꽁꽁 묶인 채 거실 중앙 천장에 매달려 있다가 방금 막 풀려난 이클립스를.
“제, 제가요? 여러분들의?”
갑자기 8명이나 되는 여자들의 엄마가 될 위기에 처한 이클립스는, 처음엔 당황하는 기색이더니 곧 뭔가를 떠올린 듯 고민에 빠졌다.
“그럼 이제 저희도 모녀덮밥이 가능해지는 건가요?”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고, 해맑은 미소와 함께 튀어나온 말은 우리 모두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쳤다.
거실에 침묵이 감돌았다.
‘……방금 뭐라고?’
세계의 창조주가 내뱉었다고는 믿을 수 없으리만치 천박한 말. 아니, 여신이라면서 저딴 단어를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여신이라서 아는 건가.
나는 이미지의 밑바닥에도 밑바닥이라는 것이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는 이클립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여신님.”
손가락을 튕겼다. 마나로 이루어진 사슬이 방금 전까지 묶여 있던 자리를 정확히 다시 한번 휘감았다.
“딱 일주일만 더 묶여 있죠.”
“네?!”
“야, 세레스! 누가 너 찾는다!”
“이번엔 누군데?”
“나와보면 알 거라던데? 널 키워준 사람이래. 아무리 봐도 헛소리 같은데 그냥 돌려보낼ㅡ”
“그, 그 사람 지금 어딨어?!”
“어, 어? 휴, 휴게실ㅡ 야! 이 미친년아! 이걸 이대로 놔두고 가면 어떡해!”
눈이 확 커진 세레스는 하던 일을 곧바로 내팽개치고 커다란 가슴을 출렁이며 우다다 달려나갔다. 옷이 이리저리 비틀리며 맨가슴을 끄집어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 탓에 소식을 전하러 왔다가 졸지에 세레스 몫의 일을 하게 된 여자가 등 뒤에 대고 투덜거렸으나, 세레스는 무시하고 달려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견할 수 있었다.
가벼운 미소를 띠며 손을 흔드는 은인의 모습을.
“내 손님이니까 다 나가! 빨리!”
세레스는 주변의 여자들을 모조리 쫓아보냈다. 휴게실에서 삼삼오오 모여 세레스를 찾는다는 남자의 외모를 품평하던 여자들은 궁시렁거리면서도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내며 떠나갔다.
그 의미심장한 미소에 담긴 감정을 알아차린 세레스는 코웃음을 쳤다. 저 남자에게 느끼는 감정은 고마움이었지 연애 감정이 아니었으니까.
세레스는 자신의 추악한 과거를 아는 사람과는 절대 사귀고 싶지 않았다. 그건 아무리 은인이라 해도 예외일 수 없었다.
물론 자신과 사귀기에는 은인이 너무 심각하게 많이 아깝단 생각이 제일 컸지만.
“여긴 무슨 일로 왔어? 안 그래도 언제쯤 다시 볼 수 있나 하고 있었는데.”
“일 얘기로 왔습니다.”
“일 얘기! 그렇지! 뭐 필요해? 뭐 만들어줄까? 칼? 창? 방패? 도끼?”
자신도 모르게 몸을 일으킨 세레스가 눈을 빛내며 가까이 다가갔다. 그렇지 않아도 갚을 은혜가 마땅치 않아 끙끙대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기회가 제발로 굴러들어왔다.
“따로 필요한 건 없는데, 강화를 하고 싶어서요.”
“강화? 그것도 괜찮지! 잘 찾아왔어!”
강화란, 특정한 금속과 재료를 사용해 무기의 내구도나 절삭력, 강도나 경도를 높이는 과정이었다.
주기적으로 강화를 해준 무기와 그렇지 않은 무기는 모든 측면에서 굉장한 차이를 보이니 수요가 높고, 그렇기에 대장장이라면 필수적으로 익혀야 하는 기술이라고 봐도 좋았다.
최근에야 마물이 모두 없어진 탓에 조금 주춤하긴 했지만, 그 자리를 새로운 ‘동물’들이 채워나가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도 맥이 끊길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떤 무기인데?”
손수 만든 무기를 선물해줄 수 없다는 게 조금 아쉽긴 해도, 강화 역시 절대 나쁜 선택지는 아니었다. 결국 은인의 무기에 세레스의 손길이 닿는단 것 자체는 사실이었으니까.
‘온 힘을 다해서.’
정말 영혼까지 갈아넣을 기세로, 한땀한땀 심혈을 기울여 칼 끝부터 손잡이 끝까지 강화해주리라. 세레스는 그렇게 다짐했다.
은인의 허리춤에 있는 칠흑색의 칼을 보고 내린 다짐이었지만, 그 생각은 곧 바뀔 수밖에 없었다.
“일단 가볍게 이 정도부터 시작하시죠.”
은인이 강화를 부탁한다면서 포탈을 열더니 오십 개에 달하는 무기들을 쏟아부었기 때문이었다.
“……가볍게?”
“네. 여기 가져온 양의 3배 정도 더 있거든요.”
‘오, 온 힘을 다해, 서……?’
온 힘을 다해 은인의 무기를 강화해주겠다, 는 세레스의 결심이 아주 약간이지만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