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99)
제 399화
외전: 마지막 이야기 – 6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훌쩍 흘러갔다.
이클립스까지 내 자취방에서 같이 살게 된 이후로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정말로 많은 일이 있었고, 지루할 틈이라곤 한 번도 없이 복작복작했다.
그 많은 일들 중 대표적인 하나를 꼽아보라면,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5의 개발이 미뤄진 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클립스와 본격적으로 같이 살게 된 이후부터 브닼 5의 개발은 잠시 미뤄진 상태였다. 내가 허락했기 때문이었다.
브닼 5를 일찍 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지금은 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더 중요하다. 어차피 지구의 시간이라면 몇 번이든 되돌릴 수 있으니까.
세계를 먹는 자를 잡고 지구로 돌아왔을 때처럼 말이다.
“당신…….”
이런 내 배려에 이클립스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고마워했다. 그 모습을 보니 약간 양심이 찔렸다. 그동안 너무 재촉만 했나 싶은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눈물까지 글썽인 것과는 별개로 이클립스는 얼마 쉬지 않았다. 내가 배려해주는 모습을 보니 더더욱 의욕이 생겼다나. 물론 그러면서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고.
완성까지는 지구의 시간으로 대략 3년 정도가 걸릴 거라고 했다. 나도 그 정도는 더 기다릴 수 있었으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꼬박 10년을 기약없이 기다려왔는데 기껏해야 3년을 더 못기다릴까.
그 말을 했더니 이클립스는 애매하게 웃고 말았다. 언제나처럼 여신다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클립스다운 웃음이었다.
시간은 또다시 계속해서 흘러갔다. 그동안 나는 기나긴 휴학을 끝내고 복학을 했다.
미리 새 신분을 만들어둔 이클립스 덕분에 내 여자들과 같이 학교를 다니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 여자친구는 명목상 한 명뿐이었기에 매일 번갈아가면서 역할을 바꿔야 하긴 했지만.
그리고 캠퍼스 라이프가 펼쳐지는 일도 없었다. 서로 주구장창 붙어다니는 게 전부였으니까. 나는 될 수 있는 한 여자들이랑 거리를 뒀고, 내 여자친구들은 남자들이랑 아예 철벽을 쳤다.
나 없으면 같은 강의실에서 숨도 안 쉬려한다면서 친구 몇몇이 혀를 내둘렀을 정도였다.
“아들, 결혼식은 언제ㅡ 윽!”
“이 양반이! 아직 졸업도 못한 애들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아들, 이 못난 아저씨 말은 무시하고 언제든 원하고 싶을 때 하렴. 여자친구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만 말고.”
졸업할 시기가 다가오니 집에서는 슬슬 결혼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빠는 우리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그러길 원하는 분위기셨고, 엄마는 너무 늦게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분위기셨다.
솔직히 좀 놀랐다. 두 분의 역할이 바뀐 것 같아서.
참고로 군대는 이클립스의 힘을 빌려 갔다 온 것으로 처리하고 넘어갔다. 그렇게 나는23살에 대학교 4학년이면서 현역으로 군대까지 갔다 온 인간이 되었으나, 누구 한 명 문제삼지 않았다.
“이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상식 개변이나 가치관 변경도 가능할 거예요. 지구 자체를 통째로 뜯어고치는 수준만 아니라면요.”
“동화를 막는 건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도 100% 막지는 못해요. 어디까지나 속도를 하염없이 낮출 수 있다는 거죠.”
이클립스는 자신의 세계와 지구가 동화되는 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비록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힘을 너무 과하게 사용하는 것만 아니라면 내가 지구에서의 생활을 완전히 끝낼 때까지도 문제는 전혀 없을 거라던가.
그래. 내가 지구에서의 생활을 완전히 끝낼 때까지도 말이다.
언젠가는 나도 이 세상을 떠나 이클립스의 차원에 완전히 정착해야 한다. 그 사실은 내게 크나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혼자 남몰래 고민에 빠졌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신성을 받아들여 수명이 사실상 무한해진 나와 곧 신성을 받아들일 예정인 내 여자친구들이랑은 달리, 부모님은 앞으로 100년도 더 살지 못하실 테니까.
“영원히 산다면 어떡할 거냐고? 이상한 질문이네, 아들. 안 해야지. 안 하고 말고.”
“우리가 그렇게 오래 살아봤자 뭐 하겠냐. 쓸데없는 소리 말아라.”
그러고도 불안감을 견디다 못해 술기운을 빌려 조심스레 물어봤을 때, 부모님은 할 생각 없다며 딱 잘라 대답하시고는 왜 영생이 무의미한지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으셨다.
앞으로 내 여자친구들과 내가 걸어갈 길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연설이긴 했지만, 듣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나한테는 안 물어봐, 오빠?”
“너는 뒤지든 말든.”
“와, 너무하네 진짜.”
“너무한 건 니 양심이고.”
백유진은 마침내 원하던 크기의 가슴을 얻었다. 겉으로도 속으로도 지랄맞게 굴던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최소한 겉으로는 오빠 대접을 해주게 됐고.
속내는 그대로겠지만 그것까지 고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가슴을 인질로 잡아뒀으니 나한테 개길 생각은 죽어도 못할 게 분명한데다, 속으로 나한테 무슨 지랄을 하든 겉으로 드러내지만 않으면 된다.
“원하신다면 부모님께도 신성을ㅡ”
“괜찮습니다.”
나도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부모님은 일장연설에서 ‘친구’를 무척이나 강조하셨다. 설령 우리 가족만 영생을 누리게 되더라도 외부와의 관계가 없다면 다 무의미하다면서.
물론 원한다면 부모님의 친구들까지 싹 다 영생을 누리게 해주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친구의 친구들까지 겉잡을 수 없이 범위가 늘어나버릴 수도 있다.
그 한없이 늘어나기만 하는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아예 처음부터 빌미를 주지 않는 것이 정답이었다.
“괜찮아요. 설령 그런 때가 온다 해도, 저희는 언제나 당신 곁에 있을테니까요.”
이런 내 속내를 들은 이클립스는 그걸 여자들한테 죄다 알려줬고, 나는 그 길로 방문을 박차고 쳐들어온 13명에게 둘러싸인 채 침대로 끌려가 위로를 받았다.
여태껏 늘 그랬듯이 성적인 의미의 위로가 아니라 진짜 단어 그대로의 위로였다. 나를 품에 감싸안고, 따뜻한 말을 속삭이며 토닥토닥.
나는 그렇게 한참을 토닥여졌다.
“내가 이런 삶을 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 드래곤이었을 시절에도, 인간으로 처음 폴리모프했던 시절에도.”
오랜만에 만난 파르나리는 인간 세상에 한층 더 완벽하게 적응해 있었다. 살짝 더듬거리던 말투도 교정이 끝났고, 더 이상 바깥 물정을 모르지도 않았다.
여전히 공부에 미쳐 있는 마탑의 분위기엔 적응을 못하는 듯했지만 말이다.
“어떤 삶 말이죠?”
“인간으로 사는 삶?”
“저랑 처음 만나셨을 때도 인간 모습이셨던 건 기억 안 나시나봐요.”
“인간이긴 했지. 근데 나 혼자 살았잖아. 지금처럼 다른 인간들이랑 어울리지도 못했고.”
맞는 말이었다. 내가 파르나리를 만난 장소는 깊은 숲 속이었으니까.
“아, 맞다. 드래곤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까먹을 줄도 몰랐어.”
“확실히 상상도 못할 일이긴 하죠.”
“……놀리지 마.”
파르나리가 뚱한 표정을 했다.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세상의 어떤 드래곤이 인간으로 폴리모프했다가 돌아가는 방법을 까먹어서 계속 인간으로 살게 됐단 말인가. 아마 파르나리가 유일할 것이다.
사실 거기까지 갈 것도 없이 파르나리가 이 세계에 남은 유일한 드래곤이긴 했다.
“원하신다면 알아봐드릴 수도 있습니다. 드래곤으로 돌아가는 방법.”
그런 제안을 건네봤지만, 파르나리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난 인간 몸이 편해. 원래 몸으로 돌아가봐야 쓸데없이 커서 불편하기만 하지. 그리고 드래곤이 되면 이런 것도 못 먹잖아?”
파르나리는 책상 위에 올려뒀던 다 먹은 치킨 상자를 가리켰다. 눈앞의 드래곤도 내 세계 음식에 맛을 들인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이클립스는 요즘들어 자신의 세계에 지구 음식들의 레시피를 퍼뜨려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어차피 좋다 싶은건 다 가져온 세계였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황궁에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 있는 시점에서 고민하기엔 이미 글러먹은 거다.
“원래 몸이면 자위도 못하고. 보지에 손이 안 닿을 테니까.”
“크흡! 쿨럭, 쿨럭!”
미네르바에게 그렇고 그런 책을 전달받은 뒤부터 파르나리는 미네르바와 내 앞 한정으로 저런 말을 서스럼없이 하게 됐다. 미네르바가 물을 잘못 들여도 단단히 잘못 들였다.
나는 방 안에 크기별로 다양하게 비치된 무언가에게서 애써 시선을 외면했다. 아마도 그냥 우연찮게 여성용 자위기구와 닮았을 뿐인, 다른 용도의 물건이리라.
“전부 미네르바 님 때문이잖아요.”
“잘된 일이지 않을까, 아이야?”
“대체 뭐가 말입니까?”
“여성으로서의 기쁨을 알았다는 것이.”
최근들어 마탑에 거의 방문하지 않게 된 미네르바는 파르나리가 그렇게 됐다는 말을 듣자마자 박장대소하더니 나를 데리고 파르나리를 찾아갔다.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던 2명은 무슨 말을 한 건지 미네르바가 뜬금없이 날 감싸안으며 독점욕을 드러내는 걸로 대화를 끝냈다.
“이 아이는 못 빌려준단다.”
“어차피 내 취향 아니야. 너무 말랐어.”
파르나리도 나는 너무 말라서 싫다며 못을 박았다. 자기 취향은 나보다 훨씬 더 크고 듬직한, 마치 짐승같은 남자라면서 말이다.
대체 뭐에 울컥했는지 나도 침대에선 짐승이 된다고 말하려는 미네르바를 뜯어말리느라 고생을 좀 해야했다.
“벽 보고 손들고 서 있으세요.”
“아이야……?”
자취방에 돌아와서 나한테 혼난 것은 덤이었다.
라나는 내 여자친구들을 제외하면 나와 엮이며 인생이 활짝 편 사람들 중에서도 제일 꼭대기에 위치해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아우로라의 아버지를 표방하던 쓰레기에게 언제 죽거나 험한 일을 당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신세에서, 황제 직속 메이드가 된 것으로도 모자라 아무도 모르는 진실을 혼자서만 알고 있으니까.
“아우로라 님과 아이는 언제 낳으실 겁니까? 그래야 제가 유모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자기 위치를 알고 아주 당당하게 유모 역할을 요구하는 뻔뻔한 면모까지 보이고 있었다.
“유모? 라나 네가?”
“이래뵈도 아우로라 님은 제가 키웠습니다. 아우로라 님의 아이까지 돌볼 수 있다면 이 메이드 라나,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일 거예요.”
“확실히 나이는 엄마뻘이 되긴 하겠네.”
“…….”
라나는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파들파들 떨었다.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분명 외모로 나이를 구분할 수 없는데도 이 세계 여자들은 나이에 제법 민감했다. 이유는 불명이었다. 여자로서의 본능 같은 게 있기라도 한 건가.
“그래서, 본심은?”
“계속 쉬고 있는 것도 지루해요. 일을 하고 싶습니다.”
“황궁에서 하면 되잖아.”
“그 깐깐한 메이드 밑에서 말고요, 좀 느긋한 일이요.”
심지어는 나한테 투정까지 부려댔다. 황궁의 메이드장이나 성국 사람들이 들었다면 입에 거품을 물고 펄쩍펄쩍 뛸 행동이었다.
하지만 라나는 저런 요구를 할 자격이 충분히 됐다. 나와 만나기 전의 아우로라를 지켜줬던 사람이 라나였으니까. 게다가 어쩌면 아우로라와 같이 신성을 받을지도 모르는 사람이고.
아우로라와 라나 본인이 모두 그러기를 바란다면 말이다.
“물 속 저택이라고 하셨어요?”
나는 고민 끝에 앞으로 만들게 될 미네르바의 성역 관리를 부탁했다. 성국의 성역에는 우리 말고 아무도 없을 거라지만, 미네르바의 저택은 다를 테니까.
물 속에 있는 저택과 수중 정원 관리직은 어떻냐는 말에 라나는 재밌겠다면서 눈을 빛냈다. 메이드가 그래도 되냐는 내 핀잔에도 굴하지 않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