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4)
돌로 쌓아올린 벽이 스티로폼마냥 무너져내리고, 그 안에서 흉측하게 생겨먹은 거구의 괴물이 튀어나왔다. 놈이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을때마다 복도 전체가 진동했다.
아까도 그랬지만, 저걸 이렇게 실제로 보고있자니 흉측한 외모에서 풍기는 위압감이 엄청났다. 내 키보다도 훨씬 큰데다 두께까지 어마어마한 곤봉을 들고 있어서 더 그랬다.
괴물은 벽을 뚫고 쿵쿵거리며 걸어나오다가, 저 앞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다시 한 번 포효를 내질렀다.
ㅡ쿠오오오오오오!!!!!!
포효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순간적으로 귀가 시큰거렸다. 헤드폰 볼륨이 최대치까지 올려져있는 줄 모르고 음악을 틀었을 때보다 더했다.
만약 여기서 도망칠거라면 그냥 뒤돌아서 냅다 뛰면 된다. 등장을 워낙 임팩트 있고 충격적으로 해서 그렇지, Shift키만 제대로 누를 줄 안다면 도망치는 것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저 놈을 반드시 때려잡아야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피 묻은 검 없이는 초반 진행 자체가 꽉 막힐 것 같았던데다, 첫 대면에서 인간 도살자를 때려잡으면 연계되는 이벤트 또한 지금의 내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중요했기에.
중간 보스가 사용하던 강철 검을 오른손으로 들고, 인간 도살자와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게임에서는 중간 보스를 죽여도 무기를 드랍하지 않고 그냥 사라져버리니, 그놈이 들고 있던 검을 내가 주워서 쓰는 짓 따위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아니었다.
이게 정말로 게임과 똑같은 강철 검이 맞다는 가정 하에, 아마 20분 남짓이면 놈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닼라 모드로 체력이 늘어난 점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회피는 필요 없고, 패링은 아직 못 쓰고, 튕겨내기랑 구르기 뿐인가.’
머릿속으로 쓸 수 있는 전략의 가짓수를 떠올렸다.
둔기를 들고 있을 때는 튕겨내기가 불가능해 구르기로만 공격을 피해야 했지만, 지금은 한손 검을 들고 있으니 튕겨내기도 같이 쓸 수 있다. 그거면 충분했다.
‘첫 공격은 무조건 돌진.’
자세를 잡았다. 인간 도살자가 포효를 내지르며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 쪽으로 달려왔다. 체형이 워낙 뚱뚱한 탓에 달린다기보다는 뒤뚱거리며 걷는 것에 가까워보이긴 했지만.
어깨와 부딪힌 돌벽이 통째로 박살나며 무너져내렸다. 나도 그에 맞춰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옆으로 굴러서 공격을 피하려면 공간이 어느정도 확보되어야 했다.
놈이 가까이 접근하기만을 기다렸다가, 몸통과 부딪히기 직전에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내 몸은 완벽한 자세로 바닥을 한 바퀴 굴렀고, 커다란 발은 텅 비어버린 허공을 짓밟았다.
돌진 공격을 깔끔하게 회피한 나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반대 방향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어리둥절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인간 도살자가 발소리를 들었는지 몸을 돌렸다. 그러더니 저만치로 도망치는 나를 보자마자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질렀다.
포효 소리를 무시하고, 벽이 무너지며 생긴 구멍을 찾아 그 안으로 들어갔다. 가까운 곳에서 환한 빛이 쏟아져들어왔다.
망설임 없이 그 빛을 향해 달려나갔다. 놈은 날 쫓아오느라 바쁜지, 감옥 벽을 아예 박살내다시피 하며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더 빨랐다. 빛이 나오는 구멍을 통해 바깥으로 탈출하자, 바로 밑에 거대한 공터가 나타났다. 그 공터로 훌쩍 뛰어내렸다.
‘이대로 도망쳐버려도 되긴 하지만…….’
나와 정반대편에 위치한, 감옥의 커다란 정문을 흘끗 쳐다보았다. 저게 감옥에서 나가는 유일한 출입구였다. 왜 유일한 출입구냐면, 나머지 세 면은 전부 절벽이라서다.
만약 복도에서 여기로 나오는 게 아니라 인간 도살자를 피해 도망친다고 해도, 여길 빠져나가기 전이라면 언제든지 이곳에서 그놈이랑 싸울 수 있었다.
내가 그 중간 과정을 모조리 스킵했을 뿐.
유저들이 발견해낸 꼼수 같은게 아니라, 실제로 브닼 4편의 제작사가 의도한 사항이었다. 인간 도살자를 피해 그게 나왔던 곳으로 돌아가면 바로 탈출할 수 있다고 말이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금방 날 따라붙은 인간 도살자가 공터에 내려앉았다. 발과 맞닿은 바닥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움푹 꺼졌다. 주변 땅도 쩍쩍 갈라졌다.
사냥감이 요리조리 도망치는 게 짜증이 솟구쳤는지, 씩씩거리며 거친 콧김을 내뿜고 있었다. 어긋난 이빨끼리 마주치며 딱딱 소리를 냈다.
이제 시작이다. 나는 강철 검을 치켜올렸다.
왼쪽 다리 옆으로 굴러들어간 내가 몸통에 칼을 휘둘렀다. 칼 끝이 배를 파고들며 옅은 자상을 하나 더 추가했다. 길게 그어진 상처에서 검은 피가 방울져 흘러내렸다.
ㅡ쿠아아아아악!
사방팔방으로 휘둘러지는 꼬리를 피해 재빨리 뒤로 빠져나갔다. 그러자마자 놈이 오른팔을 내저어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장소를 휘적거렸다.
저런 휘적이는 것처럼 보이는 공격에도 스치는 순간 즉사였다.
인간 도살자가 오른손에 들린 거대한 둔기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둔기로 전방을 내리찍으며 앞으로 전진하는 패턴. 그걸 보자마자 검을 고쳐쥐었다.
튕겨내기로 받아칠 수 있는 패턴이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튕겨내기를 어떻게 구사해야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자연스레 자세를 잡았다.
검을 살짝 비틀고, 왼손으로 오른손 손목을 지탱했다. 나는 평생 검술이라곤 배워본 적 없는 인간이었건만, 몸이 먼저 반응해 움직였다.
터엉! 하고, 사람보다 더 두꺼운 크기의 나무 곤봉을 기껏해야 사람 팔목 두께밖에 되지 않는 칼이 막아냈다.
정확히는, 공격을 튕겨냈다. 거대한 나무 곤봉의 궤도가 옆으로 꺾이며 허공을 갈랐다.
‘견딜만 하다.’
충격에 손바닥이 징징 울려대긴 했지만 아주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의 내 스탯이 전부 다 1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나중에는 훨씬 더 가뿐히 튕겨낼 수 있겠지.
‘게임이랑 비슷해. 깊게 생각할 거 없이, 그냥 적당히 타이밍 맞춰서 휘두르기만 해도 몸이 알아서 공격을 튕겨내주는 느낌이야.’
게임에서도 플레이어 캐릭터는 검 한자루로 별의 별 공격을 다 튕겨낼 수 있었다. 몸집이 어지간한 성보다도 훨씬 큰 골렘의 내려찍기 공격마저 피해 없이 받아칠 수 있었으니 말 다한거다.
내 키보다 훨씬 더 거대한 나무 곤봉을 나름 가뿐히 받아치는 걸 보면, 지금의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했다.
그 뒤로도 공격은 계속 이어졌다. 저놈과 나 사이에 있는 힘의 격차 자체를 줄일 수 있는 건 아니어서 다리가 계속 뒤로 밀려났지만, 자세가 무너지지는 않았다.
놈이 내리찍는 둔기를 검으로 튕겨내고, 다시 한 번 튕겨내고, 또 다시 튕겨내는 일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런 공방이 정확히 10번 흘러갔을 때, 인간 도살자의 몸이 잠시 주춤거렸다. 패턴이 끝났음을 확인하자마자 곧장 안으로 파고들어 다시 검을 휘둘렀다. 그 복부에 상처가 추가로 새겨졌다.
자기보다 몇 배는 작은 인간에게 10분이 넘도록 농락당하고 상처를 입기까지 했으니, 열이 끝까지 뻗쳤는지 놈이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이며 왼발을 치켜들었다.
발구르기 패턴이다. 그 틈을 타서 뒤로 멀찍이 물러나 잠시 숨을 골랐다.
쿵! 소리를 내며 인간 도살자가 바닥을 짓밟았다. 충격파를 타고 먼지 구름이 사방으로 피어올랐다. 게임에서는 저 먼지 구름에만 스쳐도 즉사였었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물론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바닥에 깊게 박힌 발을 뽑아내고선 다시 접근했다. 둔기를 든 오른손이 옆으로 들어올려졌다. 3연타 패턴이었다.
횡으로 휘둘러지는 무기를 굴러 피하고 다시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내가 파고들든 말든, 인간 도살자는 게임에서처럼 끝까지 무기를 휘둘렀다.
배 부분은 이미 길다란 상처와 흘러내린 검은 피로 범벅이었다.
‘게임에서는 이런 흉터 같은 건 안 생겼었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자상을 두어개쯤 더 추가하고 다시 거리를 벌렸다.
발구르기만 없었더라도 죽을 때까지 옆으로 빙빙 돌며 농락하다시피 처치할 수 있었겠지만, 바로 그걸 견제하기 위해 추가된 패턴이 발구르기였으니 어쩔 수 없이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
이후로도 상황은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연속 내려찍기, 3연속 횡베기, 발 구르기, 바디 프레스, 돌진. 나는 그 어느 것에도 스치지조차 않고 인간 도살자를 두들겨팼다.
놈은 짜증과 울분을 가득 담아 포효를 내지르며 미친 듯이 곤봉을 휘둘러댔지만, 모조리 허공만을 가를 뿐이었다.
몸 곳곳에 상처가 늘어감과 동시에, 근처의 땅도 점점 더 검게 물들어갔다.
‘슬슬 마지막 패턴이 나올 때가 됐는데.’
속으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지를 가늠해보았다. 슬슬 체력이 다 깎이고 발악 패턴으로 넘어갈 시간일텐데. 체력바가 안 보이니까 여러모로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다키스트 라이트 모드를 적용시키고도 올보스 노 대미지런에 성공하고 그걸 영상까지 찍었으니, 대략적인 클리어 시간은 어느정도 외우고 있었다. 인간 도살자는 20분쯤이었던가.
저걸 맨손으로 패죽이려면 2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기본 지급 무기인 조잡한 나무 곤봉 하나만 있어도 30분 언저리로 클리어 타임이 확 줄어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강철 검을 들고 있으니, 스탯이 전부 다 1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아무리 길어야 20분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 정도 시간은 진작에 다 흐르지 않았나?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고 있으려니, 놈이 갑자기 동작을 뚝 멈추고선 몸을 파르르 떨어댔다.
‘됐다.’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저건 내가 인간 도살자를 사실상 클리어 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신호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