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40)
성으로 돌아오는 길은 나갈 때보다 훨씬 더 조용했다.
나는 마지막에 느낀 위화감이 대체 뭐였을지 생각하느라 머리가 여러모로 복잡해져서 말을 할 겨를이 없었고, 이네르마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텅 빈 눈구멍과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배경이 겹쳐 여러모로 오싹한 모습이었다.
나도 말이 없는데 이네르마도 딱히 대화를 이어갈 생각이 없으니 자연스레 걸음만 점점 빨라졌다. 정신을 차리니 우리는 어느새 성에 도착한 뒤였다.
이네르마는 정확히 내가 있는 방향을 향해 꾸벅 머리를 숙여보였다.
“오늘은 제 억지에 어울려주셔서 감사했어요, 신입 기사님.”
“감사 인사는 됐어. 나도 오랜만에 밤공기 쐬서 좋았으니까.”
사실 숲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느라 머리가 조금 많이 복잡해져있긴 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기로 했다. 확실한 증거도 없이 생사람을 의심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저는 이만 들어가볼게요. 이제 슬슬 졸려서요.”
“그래. 나도 들어가면 바로 자야겠네.”
의례적인 대화를 나누고 각자의 방으로 헤어지려는 찰나, 이네르마가 나를 불러 멈춰세웠다.
“그리고 기사님. 기사님은 아마 오늘 조금 늦게 주무실 것 같으세요.”
“내가 늦게 잘 것 같다니, 뜬금없이 그게 무슨ㅡ”
“신입!”
뭔데.
뒤에서 복도를 쩌렁쩌렁하게 울려대는 목소리에 몸이 덜컥 굳었다. 더 볼 것도 없이 리제였다. 리제는 사방에 얼음조각을 흩뿌려대며 순식간에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오른팔에 찰싹 달라붙더니, 이네르마를 향해 귀엽게 으르릉거렸다. 하나도 위협적이지 않은 모습이다. 그냥 고양이나 강아지가 버둥대는 걸 보는 느낌에 가까웠다.
“안녕하세요, 리제 기사님. 좋은 밤이에요.”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네르마는 평소와 같이 싱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목소리 톤으로 감정을 다 알아차렸을테니 리제가 어떤 표정일지를 모르는 것은 아닐텐데도.
“……이 늦은 시간에 둘이서만 어딜 갔다온거야?”
경계심이 잔뜩 담긴 목소리였다.
“잠시 신입 기사님과 밤 산책을 나갔다 왔어요.”
“산책? 정말로 그거 뿐이었어?”
“물론이죠. 기사님도 멀리서 다 지켜보셨으니 아시잖아요?”
이네르마의 말에 내 고개가 홱 돌아갔다. 리제는 두 눈을 동그렇게 뜬 채, 무척이나 놀란 표정이었다.
“……다 지켜봤다고? 리제가?”
“네. 저희가 처음 성에서 나갈때부터 지금까지 쭉이요.”
“왜 말 안해줬어?”
“저희한테 숨기고 몰래 따라오신거잖아요. 혹시 그러실만한 사정이 있으셨을까 해서요.”
“…….”
리제는 ‘대체 어떻게 들켰지?’ 하는 얼굴로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우리 사이에 폭탄 발언을 던진 이네르마는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훌훌 떠나갔다.
성 복도에는 이제 멍하니 굳어버린 한 쌍의 남녀만이 남아있을 따름이었다.
“……잘 숨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한다는 말이 그거야?”
한동안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던 리제가 제일 처음 꺼낸 말이었다.
나도 리제가 우릴 미행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그저 황당한 감정이 들었을 뿐. 굳이 사과를 받고 싶지는 않았고, 리제도 그 점을 잘 아는 듯 했다.
게다가 나도 화를 내기는 애매한 입장이었다. 저런 행동들이 전부 다 나를 향한 애정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러겠는가. 선만 넘지 않는다면 그냥 애교로 보고 넘어가야지.
“그래서, 나는 왜 미행했어?”
물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나는 일부러 추궁하듯이 물었다.
“아니, 나도 어쩔 수 없었는걸. 너랑 저 애가 같이 성 밖으로 나가는게 보이는데 어떻게 내버려둬?”
리제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어이가 없어진 내가 표정을 살짝 풀었다.
“그냥 산책 가는거겠구나 하고 적당히 넘겨도 됐잖아. 뭘 미행씩이나 하고 그래?”
“남자랑 여자가 밤 늦게 단 둘이서만 외출하는데 내버려두라니, 밖에서 무슨 일을 저지를 줄 알고? 지금 제정신이야, 신입?”
“제정신이냐니, 그건 내가 해야 할 말 같은데.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다니길래 머릿속에 그런거밖에 없어?”
아무리 모드의 영향 탓에 여자들의 옷차림이 죄다 극단적인 노출도를 자랑한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가 19금 야겜의 세계마냥 정조관념이 박살난 세계는 아니었다.
당장 길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여성 패션들 중 하나가 와이셔츠 한 장에 팬티만 달랑 입은 옷차림인데, 사람들은 길에서 그런 옷을 입은 여자를 보고도 무덤덤하게 넘겼다.
모드가 적용되기 전에는 알몸 와이셔츠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천옷이나 가죽옷이었을테니까. 여자가 성욕이 넘쳐서 노출을 주체 못하고 그러는게 절대로 아니라는 뜻이다.
그냥 리제가 자기 혼자서 이상한거다.
“그럼 아니야?”
“당연히 아니지.”
“증명해봐.”
“응?”
나는 손쓸 틈도 없이 리제에게 손목을 붙잡혀 밖으로 끌려나갔고, 그대로 밤산책이라는 명목 하에 리제와 둘이서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 도시를 돌아다녔다.
성으로 돌아오는 리제의 표정을 보니, 처음부터 이걸 노렸구나 싶었다.
그 요란한 밤산책이 있었던 바로 다음 날, 소녀는 은빛 여명 기사단에 조용히 작별을 고했다.
아이리스와 에리카는 얼마든지 더 머물러도 된다고 말했지만, 이곳에 더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기에 조용히 거절했다.
황제께서 이미 목적을 달성하셨다고 언질을 주셨으니 곧바로 돌아가는 것이 맞았다.
소녀는 이곳에 처음 왔을 때처럼 천 한 장으로 몸을 칭칭 감싸고 기사단을 나왔다. 대신, 성에 있는 동안 천을 깨끗하게 빨아놓았던지라 그때보다는 조금 더 나은 몰골이었다.
걷고 또 걸어서 어느 깊숙한 산 속으로 들어온 소녀는, 몸을 감싸고 있던 천을 훌훌 벗어던졌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벗어던진 천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천이 자기 혼자 두둥실 떠오르더니 몸을 휘감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 입고 있던 가죽옷으로 변했다.
몸에 딱 달라붙어 빈약한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상의와, 머리까지 푹 뒤집어 쓴 후드티, 그리고 손가락 하나 수준밖에 되지 않는 길이의 극도로 짧은 가죽 바지.
목 부분에는 옷을 천으로 바꿀 때 사용했던 아티팩트가 다시 걸려 있었다.
소녀는 저번에도 그랬듯이 잠시 주위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목에 걸린 아티팩트를 작동시켰다.
소녀의 발 아래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곧바로 나타난 빛기둥과 함께 소녀의 몸이 어디론가로 사라지고, 마법진도 소녀의 몸이 사라지는 즉시 자취를 감췄다.
“왔느냐.”
눈 깜짝할 사이에 황궁으로 이동한 소녀는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한쪽 무릎을 꿇고 양 손바닥을 바닥에 붙이며 깊게 머리를 조아렸다.
황제 카이킬리아. 자신이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원하던 사람은 찾았니?”
하지만 이번에는 목소리가 하나 더 있었다. 소녀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몸을 뻣뻣하게 굳히고는 움직임을 멈췄다. 황금빛 눈이 미동조차 않는 소녀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실로 그러하다. 드디어 원하던 것을 찾았느니라.”
“흐음, 그래? 네가 그런 반응을 보일 정도라면 정말 괜찮은 사람인가 보구나. 누구일지 궁금해지는걸.”
“확인해보겠느냐? 절대로 후회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노라.”
“사양은 않을게. 그럼, 어디 한 번.”
카이킬리아와는 또 다른 느낌의, 고고하고 신비로운 감각으로 가득 들어찬 목소리가 손가락을 작게 튕겼다. 바닥에 납닥 엎드려 있던 소녀가 고개를 홱 쳐들었다.
텅 비어있어야 할 두 동공에서, 이른바 울트라마린이라 불리는 색깔의 신비한 군청색 눈동자가 환하게 빛을 발했다.
카이킬리아의 옆에 있는 목소리와 똑같은 색깔을 한 눈이었다.
“어머?”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살짝 놀란 듯 그 말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그걸 본 황제가 득의양양하게 입을 열었다.
“짐이 말하였지 않느냐. 너 역시 후회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노라고.”
“흐음, 확실히 그렇네. 그 잠깐 사이에 마력량을 이토록 증폭시킨 아이라…… 제법 흥미로운걸. 절대적인 수치 자체는 별 것 없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눈동자에서 흘러넘치던 군청색의 빛이 꺼졌다. 눈이 퀭한 검은 동공으로 되돌아온 소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군청색 눈동자의 주인이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소녀의 몸이 푸르게 변하더니, 마나로 흩어지며 목소리에게 모여들었다.
소녀는 처음부터 인간이 아니라 마법으로 이루어진 무언가였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은빛 여명 기사단의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정교하고 인간을 닮은.
소녀가 장님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사방을 돌아다닌다는 사실이 전혀 위화감 없게 받아들여진 것 역시, 그 몸에 적용된 특수한 마법 때문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인지 능력을 아주 살짝 왜곡시키는 마법.
“사용한 마나를 다시 회수할 정도라니, 그렇게나 마음에 들었던 것이냐.”
“흥미가 생겼거든. 이 마법을 더 개량할 겸 해서 그 남자도 같이 연구해보려는거란다. 오랜만에 대서고가 아니라 마탑으로 가야겠는걸.”
군청색 눈동자의 여인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작게 휘저어 바닥에 마법진을 슥슥 그려나갔다. 이내 마법진이 완성되고, 빛기둥이 여인의 몸을 감쌌다.
“허나, 분명히 말해두어야 할 것이 있노라.”
여인이 카이킬리아의 말에 전송을 멈췄다. 신비한 색깔의 눈동자가 다시 카이킬리아를 향했다.
“그 사내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신경 쓰지 않겠다. 나 역시 그러하였고, 너 또한 마땅히 그러리라 생각하였으니.”
황금빛 눈동자가 이글이글 타올랐다.
“허나, 그것에 나 이상으로 관심을 가진다면, 짐은 결코 얌전히 좌시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명심하여라, 미네르바.”
미네르바라 불린 여인은 황제의 살벌한 경고에도 전혀 겁먹지 않은 표정이었다.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한 마디와 함께 빛기둥 안으로 사라졌다.
“걱정 말고 질투는 접어두렴. 그럴 생각은 없으니.”
이내 빛기둥이 사그라들고, 마법진도 사라졌다.
카이킬리아는 여전히 황금색으로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한 채 미네르바가 사라진 자리를 한동안 쳐다보다가, 휙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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