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400)
제 400화
외전: 마지막 이야기 – 7
졸업식은 특별할 것 없이 조용히 끝났다.
성대한 축하도, 인파에 둘러싸인 졸업 앨범도 없었다. 친구 몇 명 모여서 사진 찍고, 부모님이랑 같이 사진 찍고, 졸업 증거 몇 개 받고. 그걸로 끝.
부모님은 아무래도 졸업식이니만큼 나랑 같이 있어주려 하셨다가, 내 옆에 대놓고 달라붙어 팔짱을 낀 채 부비적대는 여자친구를 보시더니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떠나가셨다.
나는 백유진을 데리고 떠나가는 부모님을 배웅하며 옆의 여자친구를 돌아보았다.
아니, 여자친구 ‘들’을 돌아보았다.
“신기하네. 아무도 우리한테 신경 안 쓰는데 다가오지도 않아.”
“예전에도 몇 번 봤었잖아요. 뭘 그리 신기해 합니까, 언니?”
주위에서 우리들을 한 명으로 인식하는 걸 신기해하는 리제와, 예전에도 몇 번이고 봤던 마법이지 않냐며 핀잔을 주는 에리카.
“졸업이라, 실제로 겪으니 조금 간지러운 기분이군.”
“그러게. 술은…… 아직 안 되겠지? 이 분위기엔 조금 그러나?”
졸업이라는 단어에 쑥스러워하는 아이리스와, 술을 못 마시는 게 아쉽다며 입맛을 다시는 클라우디아.
“학생이라는 건 미네르바 님이랑은 인연이 없ㅡ 아야야야얏! 아파요! 아파! 항복!”
“뒷말을 잘 선택하려무나, 아이야? 나는 더 이상 배울 게 없으니 인연이 없다는 뜻이겠지?”
“가뜩이나 소란스러운 장소에서 뭐 하는 짓이더냐.”
나이를 들먹이려 했다가 머리를 붙잡혀 버둥거리는 아우로라와, 조금 살벌한 미소를 띠고 있는 미네르바, 그리고 그런 둘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카이킬리아.
“졸업 축하드립니다, 델타 님.”
“이제 진정한 성인이 되시었습니다. 그 전에도 물론 성인이셨지만요.”
졸업 축하한다며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꽃다발을 내미는 루나와, 그 전에도 다른 의미의 성인이었다며 의미심장한 말장난을 하는 플로레타.
“역시 언더붑에 청바지는 노출이 너무 높지 않을까요, 교황 성하……?”
“괜찮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저희를 볼 수 없지 않습니까, 스텔라.”
교황들의 옷이 노출도가 너무 높다며 걱정하는 스텔라와, 어차피 다른 사람들은 우리를 못 보니 걱정할 것 없다며 달래주는 셀레네.
“흐, 히히. 다들 엄청 크네…… 엄청 비교된다, 키히힛.”
“원한다면 몸을 더 키워줄 수 있는데 어떠신가요?”
주위 사람들을 최소 머리 두 개는 올려다봐야 해서 그런지 평소보다 조금 더 음침하게 웃는 닉스와, 그런 닉스에게 새 몸을 만들어줄 수 있단 제안을 건네는 이클립스까지.
다들 어디에 데려다 놓아도 분위기를 단숨에 지배할 수 있을만큼의 미인들이었으나, 이런 미인이 있음에도 주위의 누구 하나 신경쓰지 않았다.
내 친구 몇몇만이 졸업 축하한다며 인사를 하려다 사전에 차단당한 다음 진짜 독한 여자라고 혀를 내두르며 떠나갔을 뿐이었다.
“인사 정도는 하게 놔두지 그랬어? 너희한테 하려는 것도 아니고 나한테 하려는 거였는데.”
“내가 왜 그래야 하느냐? 오늘의 너는 오롯이 우리들의 것이니라. 아버님과 어머님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허락할 수 없노라.”
하필 내 옆에 있던 사람이 카이킬리아여서 더 그런 것도 있겠지만 말이다.
조금 더 유한 성격인 리제나 클라우디아, 교황들이나 스텔라, 아우로라나 이클립스였다면 인사 정도는 대충이나마 허락해줬을 것이다.
‘……아우로라는 아닌가?’
어쩌면 아우로라도 대놓고 거절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3년간 키가 훨씬 더 자라서 카이킬리아랑 쌍둥이가 아닌가 싶을만큼 성장한 아우로라다. 외형에 걸맞게 분위기와 성격도 제법 많이 바뀌었다. 주로 카이킬리아를 닮는 쪽으로.
예전의 장난기가 완전히 죽은 건 아니지만, 브닼 4에 집중하느라 입을 다물고 있거나 앉아서 다리를 꼰 채 주위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황제답다는 느낌을 물씬 풍겨대곤 했다.
그러니 자기 고모와 똑같이 행동한다고 해도 아주 놀랄 건 아니었다.
‘의외로 마음에 들어했지.’
카이킬리아는 의외로 그런 아우로라의 모습을 제법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뿌듯한 심정도 조금은 있어보였고.
“이제 슬슬 돌아가자.”
매우 협소한 인간관계 덕분에 더 이상 우릴 찾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포탈을 열어 여자친구들을 먼저 자취방에 돌려보냈다.
13명 모두 지난 3년간의 시간은 조금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듯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이 포탈 안으로 사라졌다. 나도 마지막으로 뒤따라가려다 멈칫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마 앞으로는 다신 올 일이 없을 것이다. 캠퍼스의 모습을 잠시 눈에 담고, 푸른 빛 너머로 발을 내딛었다.
우리 모두 이제 남은 순서는 하나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혼식.
서로에 대한 호칭이 바뀌는 날 말이다.
부모님이 몇 년 전부터 눈치를 주고 계셨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대학생이라는 명목으로 그 눈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이제 끝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여자친구들이 번갈아가면서 은근슬쩍 부모님께 바람을 불어넣었다고 한다. 내 부모님이야 여자친구가 먼저 결혼 의지를 드러내니 좋다구나 하면서 날 재촉하셨고.
왠지 그러실 분들이 아닌데 갈수록 압박의 강도가 세지더라니 그런 이유에서였나.
“그래서 말인데요…….”
진짜는 이클립스의 세계로 넘어간 다음에 치른다 한들, 이 세계에서도 부모님을 위해 한 번 보여주기는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잘 생각했어, 주원아. 이 엄마가 다 해줄게.”
“알았다. 알아보마.”
부모님은 내가 뜻을 밝히자마자 아주 의욕적으로 움직이셨다. 얼마나 의욕이 넘치셨는지 내가 너무 과하게 하진 말라고 옆에서 몇 번이나 말려야 했을 정도였다.
“엄마 역할 말입니까? 제가요?”
여자친구쪽 어머니의 역할은 라나에게 맡기기로 했다. 처음에는 부모 둘 다 분신으로 대체하려 했는데, 아우로라가 라나를 엄마로 해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을 해와서였다.
“그거 좋네요. 당장 하죠.”
라나는 내 부모님 못지 않게 의욕을 불태우며 수락했다. 공식적으로 아우로라의 새엄마로 인정받은 기분이 든다나.
그래서 엄마가 될 정도로 늙었다는 뜻이 아닐까, 라고 놀렸더니 아우로라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그걸 일러바쳤다. 아우로라는 라나가 엄마뻘인 건 맞지만 나이로 놀리지는 말라며 한소리 했다.
라나는 오히려 그 말에 더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분신…… 이라기엔 조금 더 상위 차원의 작업이겠네요. 새 생명을 창조할 거니까요.”
결혼식과 관련해 우리가 할 일이라곤 부모님께서 가져온 목록 중에 마음에 드는 쪽을 고르는 일 뿐이었고, 진짜로 해야 할 건 따로 있었다.
내 옆에 설 여자를 창조하는 일이었다.
지구는 이클립스의 세계와는 달리 일부일처제니까. 누구 한 명만 세우지 말고 다른 방법을 선택하기로 합의를 본 것이다. 이클립스는 맡겨달라며 자신만만하게 웃어보였다.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그렇죠?”
조금은 불안감이 들기도 했지만, 이런 내 불안이 무색하게도 이클립스는 13명의 특징을 완벽하게 나누어 담은 생명체를 창조해내는데 성공했다.
역시 여신은 여신인 건가 싶었다.
“자, 잠깐! 팔 누가 움직이는 건데?”
“저희들 중에 한 명이겠죠!”
“움직이지 마라! 다리가 꼬인다!”
“내가 움직이는 거 아닌데?!”
“아, 이제 좀 적응이 되는 느낌이네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이런 감각이었니? 신기하구나.”
“……이 무슨 추태란 말이냐. 델타 앞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노라.”
“두 명이서 움직일 때보다 훨씬 불편합니다, 에반젤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세라피카 언니.”
“제, 제가 교황 성하들과 한몸을…….”
“진정하십시오, 스텔라.”
“히힛, 키 커졌다. 높은 곳에서 쳐다보는 게 이런 느낌이었네.”
“확실히 30cm 차이면 높은 곳이긴 해요.”
그 다음부터는 내 여자친구들이 함께 극복해나가야 할 단계였다.
13명이 각각 영혼을 나누어담아 다 같이 조종하기로 했는데, 쉴 새 없이 나불대며 13명 분량의 목소리를 떠드는 입과 삐걱거리는 팔다리가 그게 결코 순탄치 않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순탄치 않은 것도 처음 뿐이었고, 여신의 조력 덕분인지 순식간에 행동을 맞춰나갔다. 움직임이 안정화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30분에 불과했다.
“자, 그럼 이제 시작하죠, 당신!”
사실 내가 던진 미끼 때문인 것 같긴 하지만.
13명이 한 몸에 담긴 채 나와 몸을 섞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는 무시무시한 호기심을 해결해주겠다던 미끼 말이다. 내 여자친구는 동화에 성공하자마자 당당하게 두 팔을 벌렸다.
어쨌든 약속은 약속이었으니 나는 그 몸을 안아들고 침대로 향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절정 역시 동화가 가능했다.
결혼식은 별 탈 없이 끝났다. 애초에 별 탈이 있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부모님은 걱정 말라며 자신감을 표출하셨던 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완벽한 계획을 세워주셨고, 라나는 맡은 바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으니까.
‘딸’의 몸 안에 아우로라 말고도 12명이나 더 들어가 있다는 것과 그 들어가 있는 사람들의 목록을 듣고 바짝 긴장하긴 했어도 실수는 일어나지 않았다.
여자친구쪽 아빠와 지인 역할은 모두 분신이 채웠다. 진실을 안다면 지구 측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겠지만 뭐 어떡하란 말인가.
안 들키면 그만인데.
“다녀오겠습니다.”
“아들, 왜 멀리 떠나는 사람처럼 말하니?”
엄마가 왜 멀리 떠나는 사람처럼 말하냐는 말을 했을 땐 뜨끔하기도 했지만, 나와 관계 있는 사람들이 모두 없어지기 전까진 두 세계를 왕복할 예정이었기에 어영부영 표정을 관리하면서 넘겼다.
우리는 이클립스의 세계에 넘어온 그날로 결혼을 공표했다. 남자 하나에 여자가 무려 열셋이나 되는, 아이테르눔 제국과 라파엘라 성국을 통틀어 역사에 전례가 없던 결혼을.
그러니 제국과 성국이 발칵 뒤집힌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여자가 무려 열셋이나 되는 것만으로도 경악하기에는 충분한데, 그 여자들이 하나같이 대륙에서 손꼽히는 강자이자 권력자들 뿐이었으니까.
다만, 뒤집힌 방향은 정반대였다. 제국이 급작스러운 결혼 발표에 혼란스러워 했다면, 성국은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축제 분위기로 흘러갔다.
제국이 혼란에 빠진 동안 황궁에서는 나를 일찍이 국서라 부르며 이런 상황에 대비했던 메이드들이 주축이 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성국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여신님의 정체는…….”
“알고 있어요. 어쩔 수 없죠.”
다른건 모두 공개했지만 딱 하나, 이클립스의 정체만은 숨기기로 했다. 이 세계의 창조주라고 곧이곧대로 말했다간 그 뒤에 벌어질 일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클립스도 예지로 미래를 확인했다며 내 의견에 동의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까지 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끔찍한 미래였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무려 한 달에 걸친 준비 끝에 결실을 맺을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