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401)
제 401화
에필로그 –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5
“어…….”
“이건, 뭐라고 해야 하나…….”
“……엄청나군.”
“……그러게.”
기사단장들은 말문이 턱 틀어막힌 채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벌어진 입은 다물어질 줄은 몰랐고, 두 다리 역시 제자리에 못 박힌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 본 적 있어요, 미네르바 님?”
“한 번도 없단다. 너는 어떠하니, 아이야?”
“나 역시 마찬가지이니라.”
아우로라는 물론이고 정말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야 잘 놀라지 않는 미네르바와 카이킬리아도 눈앞의 광경에 무척이나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아우로라는 살짝 위축된 듯도 보였다.
“흐, 헤헤. 키히힛…… 아, 뭐야. 또 들어갔어?!”
닉스는 존댓말 닉스와 반말 닉스, 플로르의 인격이 번갈아가면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플로르가 존댓말 닉스와 반말 닉스의 인격을 좀 나오라고 강제로 끄집어내면, 눈앞에서 전해져오는 위압감을 견디다 못한 두 인격이 다시 숨어버리는 식이었다.
“성자님의 결혼식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되어야 마땅한 일이지요.”
“성국 전체가 준비를 마쳤을 것입니다.”
“성역 끝자락에까지 사람들이 들어차 있을 거예요.”
“그러지 않을 사람은 성국에 없을 터이니 안심하십시오.”
플로레타와 루나, 스텔라와 셀레네만이 지금 이런 분위기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넷은 조금도 놀라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행동했다.
“……제 정체를 알면 큰일이 났을 테니, 다행이네요.”
이클립스는 정체를 숨기길 잘했다며 약간 애매한 미소를 짓고선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라고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어주었다.
‘큰일날 뻔 했네.’
속으로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말이다.
하마터면 무심코 이름을 부를 뻔 했다. 그랬다간 지평선까지 뒤덮을 정도로 모인 사람들 앞에서 성대한 결혼식이 아니라 성대한 절정쇼가 펼쳐졌을 거다. 추태를 보일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준비 다 됐지?”
이런 내 말에, 각자의 머리색 혹은 눈동자 색에 맞춘 웨딩 드레스를 입은 여자친구들이 활짝 웃으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하나같이 노출도가 굉장히 극심한 드레스였다.
그나마 건전한 축에 속하는 클라우디아의 드레스조차 가린 면적보다 드러낸 면적이 더 많았고, 이클립스쯤에 이르러서는 평소에 입던 천쪼가리와 별반 다를 게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여자친구들은 저걸 ‘웨딩 드레스’라고 인식하고 있기에, 나는 눈 둘 곳 없는 노출도에서 애써 눈 둘 곳을 찾았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여자친구들은 무척 좋아했다.
“가자.”
드디어 마지막 발자국을 내딛을 시간이었다.
종소리가 울렸다. 신성한 수녀복을 입은 수녀 열 명이 어지간한 건물만큼이나 커다란 종을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모습으로 치고 있었다.
그에 맞춰 성역을 가득 채운 성국의 시민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일반적인 종소리라면 성역 전체에 울리는 것이 불가능하였겠으나, 이것은 성자의 결혼식이다.
성자의 이름 앞에 불가능이란 존재할 수 없었다.
무릎을 꿇은 방향은 모두 한 장소를 향해 있었다. 태양과 달이 머리 위에 떠오른 장소이자, 살아계신 성자와 그분의 여인들이 성체를 의탁하실 장소.
태양과 달이 만나며, 낮과 밤이 만나며, 구름과 별이 하늘의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스쳐지나가듯 흘러가는 장소.
그 기적의 밑에서 사람들은 둘로 나뉘었다. 태양을 믿는 자들은 태양의 영역에, 달을 믿는 자들은 달의 영역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자리를 잡았다.
성국 전체가 황금색과 은색으로 갈라져 단 하나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마침내, 성역의 정중앙에 위치한 저택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그토록 기원하던 바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날만을 위해 한 달을 연습했다. 성국 신민들은 일제히 머리를 조아렸다.
ㅡ목도하라, 저 하늘을…… 영광이 그대에게 내리노니…….
분명 머리를 조아렸음에도 모든 사람들의 눈에 살아계신 성자의 모습이 각인되는 기적이 펼쳐짐과 동시에, 하늘 높이 떠올라 있는 성가대가 감동의 눈물을 줄줄 흘리며 찬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성가대는 찬가를 부르면서도 느꼈다. 이 찬가가 자신의 마지막이리라는 것을. 모든 음악이 끝나면, 자신은 기쁨에 심장이 터져 죽어버리리라는 것을.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모두 이 날만을 위해 고르고 또 고르고 또 고른 다음 마지막으로 몇십 번을 더 골라서 발탁된 여성들이었으니까. 죽음 따위는 이미 각오해뒀다.
아니, 각오라는 말도 필요 없었다.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으니까.
살아계신 성자의 결혼식에서 하늘 높이 떠올라 찬가를 부르다 기쁨에 심장이 터져 죽는다니, 그게 영광이 아니면 뭐가 영광이겠는가. 오히려 각오보다는 준비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성자와 그 여인들을 위하여 이 보잘것 없는 한 목숨을 기쁘게 바칠 준비 말이다.
ㅡ태양과 만월이 굽어 살피리라…….
완벽하게 화음을 맞춘 목소리가 하늘을 향해 울려퍼졌다. 실수가 있어서도 안 되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지난 한 달간 성가대의 수면 시간은 3시간이 채 안 됐다. 하루가 아니라 한 달 기준이다. 모두 이 날만을 위해 지독한 훈련과 연습을 반복해왔으니, 그 결실을 발휘할 시간이었다.
찬가는 곧 수천 겹으로 뒤덮인 신성력을 타고 성역 전체로 퍼져나갔다.
성역 중앙에서 끄트머리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수많은 성국 신민들의 귀에도 찬가를 부르는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
성국은 환희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감히 환희할 자격조차 없었다. 이 신성한 자리에서, 그런 기쁜 감정을 드러낼 자격조차 없는 하찮은 존재들이었다.
그저 조용히 머리를 조아리고 기도를 올릴 뿐이었다. 태양과 달이 살아계신 성자와 그 여인들을 축복하길 기원하면서. 그 축복이 영원토록 이어지기를 기원하면서.
성역에 모인, 셀 수 없을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두 같은 심정이었다. 모두가 무릎을 꿇었고, 모두가 머리를 조아렸고, 모두가 눈을 감았고, 모두가 기도를 올렸다.
“…….”
하지만, 눈을 감고 머리를 조아렸다 해서 그 모습마저 볼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성자의 배려인지, 아니면 태양과 달의 배려인지, 분명 눈을 감았음에도 눈앞에 행복한 표정으로 낮과 밤이 마주친 길을 걸어가는 성자와 그 여인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심지어 태양과 만월이 성자의 머리 위를 환히 비추고, 무려 하늘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커지는 모습까지 눈을 감고 있음에도 똑똑히 보았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지난 한 달간 감정을 죽이고 기도를 올리는 것만을 죽어라 연습했음에도, 머리로는 이 울음을 터뜨리는 행동조차 불경임을 알고 있음에도, 도저히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당장 눈앞에 펼쳐진 기적만 해도 두 가지나 됐으니까.
ㅡ마음껏 울어라.
그래서 사람들은.
ㅡ오늘은 기쁜 날이니.
머릿속에 성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을 때 더는 참아내지 못했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 채, 어린아이처럼 앙앙 울음을 터뜨렸다. 성국의 그 누구 하나 예외란 존재하지 않았다.
지난 한 달간 해온 모든 준비들이, 하루에 여덟 번 몸을 씻고 그 외의 시간은 모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기만 했던 그 순간들이, 저 한 마디로 차고 넘치도록 보답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울음은 얼마 가지 못하고 그쳤다. 성자와 신부들의 키스가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그 황홀한 광경에 이 비루한 것들의 울음소리를 섞을 순 없었다. 모두가 필사적으로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였던 정체불명의 흑발 여자까지 성자와 입맞춤을 나누었을 땐, 성역의 지평선 너머까지 가득 메웠던 인파는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전원이 기절해 있었다.
차라리 기절만 했더라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성가대는 전원이 찬가의 마지막 소절을 부르자마자 심장이 파열되어 죽어버린 상태였다.
얼굴에 한 점의 미련도 후회도 없는 기쁨의 미소를 떠올린 채 말이다.
ㅡ일어나라.
그리고 두 번째로 부활을 경험한 성국 신민이 되었다.
죽음에서 돌아온 성가대는 처음엔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있다가, 곧 진실을 알고선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진 나머지 죽음과 부활을 서너번 정도 더 반복했다.
그런 ‘사소한’ 사건이 있긴 했어도, 아무튼 오늘은 기쁜 날이었다.
아이테르눔 제국의 결혼식 준비는 라파엘라 성국과는 전혀 달랐다.
황제의 결혼식이니만큼 국경일을 선포하고 축제 준비에 돌입하긴 했지만, 모두가 하나되어 성자를 떠받들 생각으로 가득했던 성국과는 달리 축제라는 말에 걸맞게 노는 날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애초에 성국처럼 행동할 사람은 진작 성국으로 넘어갔을 테니까.
제국의 국민들이 무려 2주일이나 이어지리라 선포된 국경일을 틈타 신나게 축제 분위기를 만끽하는 사이, 황궁은 그 어떤 때보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약간의 실수에도 불호령이 떨어졌고, 황궁에 근무하던 모든 사람이 최고의 모습만을 보일 것을 요구받았다. 복도의 모두가 날이 바짝 서 있는 상태였다.
다행스럽게도, 라나는 그 날이 바짝 선 모습을 요구받는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아우로라가 직접 ‘다른 중요한 일’을 시켰다는 이유로 준비에서 빠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다른 중요한 일이란 그냥 아우로라의 옆에서 수다나 떠는 것에 불과했다. 라나를 위한 배려인 것이다. 아우로라는 웃음꽃이 핀 라나의 얼굴을 보며 몹시 만족스러워 했다.
라나도 행복해하는 아우로라의 미소를 보며 몹시 만족스러워 했고.
“……드디어 시작하는구나.”
“드디어, 라기에는 몇 시간 차이 안 납니다만, 카이킬리아.”
황궁에서의 결혼식은 성국에서의 결혼식이 끝난 바로 직후에 치러졌다.
식을 치르는 당사자 모두가 바쁘게 움직였지만, 특히 신부 쪽은 하나같이 안달이 난 듯 어쩔 줄을 몰라하는 분위기를 풍겼다. 결혼식이 시작되기 바로 전까지 시계를 몇 번이고 쳐다보았다.
델타가 첫날밤을 제국에서의 결혼식까지 모두 끝낸 다음 치르겠다고 말해서였다.
“……너무해, 델타.”
“아니, 그게 대체 왜?”
어쨌거나, 황궁에서 펼쳐진 결혼식은 성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지평선까지 사람으로 가득 찰만큼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화려함은 절대 뒤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신부들이 머리색이나 눈동자색과 깔맞춤한 웨딩 드레스가 아니라 황금과 보석을 퍼바르다시피 해서 치장된 제복을 입었다는 것도 차이점이었고.
성국에서 준비했던 ‘웨딩 드레스’의 노출도로 눈 둘 곳이 없어 꽤나 곤욕을 치러야 했던 델타로서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또한, 이번에도 주례는 없었다. 감히 황제와 영원의 마법사, 태양의 교황과 달의 교황, 살아계신 성자의 주례를 설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황궁에서 돈을 뿌려가며 무려 한 달을 준비한 결혼식은 꼬박 이틀을 이어졌다. 그 동안 델타에게는 꽤 뜻밖의, 아니,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손님들도 찾아와 축하를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단장님.”
은빛 여명 기사단과 칠흑 성야 기사단이었다.
라크시아를 비롯한 칠흑 성야 기사단장들은 ‘특별히 더 신경써서 꾸민’ 칠흑 성야 기사단의 정복이랍시고 토끼귀 머리띠와 스티커 3장만을 붙인 채 찾아왔다.
마찬가지로 ‘특별히 더 신경써서 꾸민’ 일반 단원들의 정복은 유두와 음부 근처만 살짝 물들인 100% 투명 바니걸이었다. 노출도만 따지자면 역바니와 다를 게 전혀 없었다.
칠흑 성야 기사단은 정복을 입고 토끼귀 머리띠를 쫑긋거리며 기사단장에게 경례를 올려 델타의 표정을 미묘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모든 차례가 끝났을 때, 델타는 이제 아내가 된 자신의 여자들을 데리고 포탈 안으로 사라졌다. 뺨이 잔뜩 붉어진 여자들이 델타의 팔을 잡아당기며 재촉하고 있었다.
이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알고 있는 라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 뒷모습을 배웅했다.
라파엘라 성국에서 이틀, 그리고 아이테르눔 제국에서 이틀. 꼬박 나흘에 걸친 결혼식을 끝낸 우리는 미네르바가 완성시킨 수중 저택에 와 있었다.
분명 저택이 물 속에 통째로 잠겨있는데도 창문으로는 햇빛과 달빛이 비쳤다. 미네르바는 웃으며 창문을 열어젖혔고, 물이 쏟아져내리지 않는 모습에 놀라는 우리들을 보며 즐거워했다.
기사단장들과 아우로라, 닉스는 신기한 듯 창문 바로 앞에서 저택 내부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물에 손을 넣어 찰박거렸다.
하지만 신기함은 오래 가지 못했다. 더 중요하고 자극적인 순서가 남아있었으니까.
나를 저택 맨 꼭대기층의 거대한 침실까지 끌고간 여자들은 14명이 동시에 누워서 뒹굴거려도 공간이 한참 남을 정도로 거대한 침대에 다 같이 누웠다.
그리고는 입고 있던 웨딩 드레스를 하나둘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뽀얀 살결이 점점 더 많이 드러났다. 그렇게 남은 것이 속옷밖에 없거나 혹은 아예 없을 때쯤, 이클립스가 웃으며 속삭였다.
“이제 첫날밤만 남았네요, 당신?”
“그러게.”
첫날밤이라고 부르기엔 몸을 섞은 기억이 너무 많긴 하지만, 어차피 단어의 정의는 그게 아니니까.
나는 벌써부터 허벅지를 비비적대고 있는 아내들에게 다가갔다. 침대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가녀린 손가락들이 내 몸을 감싸 끌어당겼다.
밤은 굉장히 길게 이어졌다.
몇 달, 혹은 그 이상.
어쩌면 1년 넘게.
“드디어 내일이네. 맞지? 내가 시간 잘못 본 거 아니지?”
“내일 맞아요, 당신. 정확히 보셨어요.”
이클립스가 안절부절못하는 내 어깨를 감싸안으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은 채 내 바로 뒤에 서 있었고, 다른 아내들은 조금 떨어진 침대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열세 쌍의 시선을 받으며 지금 이 순간을 위해 특별히 장만한 60인치 8k 모니터 앞에 앉아 초조하게 시선을 확인했다.
이제 앞으로 30초.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대로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정말 영원과도 같은 30초였다.
마침내 시계 숫자의 앞자리가 바뀌고 뒷자리가 0을 가리키는 약속했던 시간이 다가왔을 때, 나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바탕화면에 새롭게 추가되어 있는 바로가기 아이콘을 클릭했다.
웅장한 오케스트라 음악과 함께 화면이 잠시 어두워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고딕풍 폰트로 써진 글자가 떠올랐다.
The Brightest Darkness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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