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403)
제 403화
후일담: 완성
‘저게 결국 완성이 되는구나.’
나는 저 멀리 떨어진 대리석 조각상을 쳐다보며 속으로 침음을 흘렸다.
성국 최대 높이의 건물인 태양의 대성당 첨탑 창문과 눈높이를 비슷하게 맞출 수 있는 조각상은 라파엘라 성국에 하나뿐이었다.
살아계신 성자인 내 조각상. 라파엘라 성국이 사력을 다해 만들기 시작했던 그것이 어느덧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이다.
내 결혼식 이후로 가장 큰 경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기에 성국의 모든 사람이 교황 직할령의 중앙 광장에 결집한 상태였다. 중앙 광장만이 아니라 작은 골목 하나하나까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태양과 달’은 중앙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위해 기적을 아낌없이 일으켜 모두가 이 마지막 순간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기적이 펼쳐질수록 내 평가는 여기서 더 올라갈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솟구쳤고 말이다. 무려 신앙의 대상이 날 위해 온갖 기적을 펼쳐주고 있는 거니까.
ㅡ아아아아아…….
감히 나를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며 이젠 더 이상 가사조차 존재하지 않는, 오직 수녀들의 화음으로만 이루어진 찬가가 사방에 내려앉았다.
저 노랫소리를 라파엘라 성국 전체에 울려퍼지게 만들어준 것 또한 태양과 달이 내려준 기적 중 하나였다. 수많은 성국 신민들이 그 찬가를 들으며 조각상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대체 얼마나 진심인 건지, 아이테르눔 제국과 라파엘라 성국의 국경선이 빛의 장막으로 틀어막혀있기까지 했다. 이 경건하고 신성한 날에 외부인을 들일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내 아내와 딸들은 예외다.
“기분이 어떠세요, 당신? 감개가 무량하다거나? 아니면 말문이 막히실 정도로 감동했다거나?”
플로레타와 루나는 대리석 조각상 머리 꼭대기의 마지막 자리를 깎아내기 위해 태양빛과 달빛으로 만들어진 계단을 올라가는 중이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내게 이클립스가 말을 걸어왔다.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지금 기분이 감개무량이란 단어랑은 전혀 안 어울린다는 건 알겠네요.”
나는 이클립스 본인의 요청으로 아직까지도 존댓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클립스도 카이킬리아나 미네르바와 비슷한 성향이었기에.
반말은 침대 위에서만 사용해달라고 하는 그런 성향 말이다.
솔직히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런 성향이 아니라고 말하는 쪽이 훨씬 더 놀라웠을 거다. 자기 입으로 아무 망설임 없이 스스로를 마조 암퇘지라고 칭하는 여자니까.
“그러신가요?”
이클립스가 쿡쿡 웃었다. 그 간단한 동작만으로 가슴과 음부를 가린 가리개가 위태롭게 흩날렸다. 제 본분을 지키는 걸 잊지는 않았지만, 그러기가 무척 힘들어보이는 옷차림이었다.
축하해야 할 날이니 특별히 신경 쓴 차림을 했다면서 가리개가 평소보다 훨씬 더 짧고 얇아진 탓이 컸다.
‘프리지아가 옷차림만큼은 엄마를 안 닮아서 다행이지.’
내 필사적인 교육이 효과가 있었다. 속으로 뿌듯해하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플로레타와 루나는 계단 한 칸을 오를 때마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맞잡은 채로 기나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덕분에 꼭대기까지 올라가는데만도 한참이었다.
120m나 되는 조각상의 제일 꼭대기로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데, 계단 한 칸을 오를 때마다 기도문을 외우는 일의 반복이다. 당연히 그 속도는 상상 이상으로 느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곧 끝을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 마지막 칸에 도착한 플로레타와 루나가 최후의 기도를 끝내고 몸을 일으켜 축복이 걸린 망치와 정을 쥐었다.
둘은 서로와 눈빛을 교환하고, 비슷한 높이에 앉아있는 나를 향해 눈웃음을 치고, 마지막 기도를 올린 다음 망치와 정을 가져가 마지막 남은 부분을 깎아냈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 떠올라 있던 태양과 달이 조각상 양 옆에 놓인 성유물 조각상의 윗부분에 정확히 정렬됐다. 세상이 낮과 밤으로 나뉘었다.
달을 믿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달빛이, 태양을 믿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태양빛이 내렸다.
무려 163년에 걸친 라파엘라 성국의 대여정이 마침내 끝을 맺는 순간이었다. 노래를 부르는 대신 머리를 조아리는 걸 택한 수녀들을 대신해 하늘에서 찬가가 울려퍼졌다.
내 곁의 사람들을 제외한 성국의 모두가 그 찬가를 들으며 일제히 머리를 조아렸다. 나는 마치 성역이 라파엘라 성국 전체에 강림한 것만 같은 풍경을 첨탑 위에서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평범한 기분이신가요, 당신?”
그런 질문을 하는 이클립스의 얼굴에는 작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뭐…… 나쁘진 않네요.”
성국 전체가 대를 이어가며 참여하고, 무지막지한 액수의 돈이 투입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단 한번의 실수조차 없었던 결과물을 확인하는 것 치고는 평범한 감상이었지만.
이걸로 충분했다.
성국은 올해를 ‘축제의 해’로 선포했다. 몇 일, 몇 주, 한 달도 아니고 1년을 통째로 축제를 벌이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그럴 자격은 있었다.
중간부터 일정을 약간씩 조율해서 해가 바뀌는 시간에 맞춰 조각상이 완성되도록 짜맞춰놨으니까. 아마 그때부터 축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겠지.
나는 축제의 개막을 알리며 약간의 덕담도 같이 섞어주었다. 조각상이랑 관련된 이야기도 조금 해주고.
덕담을 들은 사람들이 감동받다 못해 단체로 거품을 물며 사망하는 ‘작은’ 소란이 있긴 했지만, 내가 모두 살려냈기에 최종적으로 죽은 사람은 0명이었다.
뭐, 결론이 좋으면 된 거니까.
“저기부터 가보자!”
“앗, 치사해! 내가 먼저야!”
“야……! 천천히 가……!”
그리고 축제가 열린다는 말인 즉, 아직 어린 딸들에게는 최고의 놀이터가 펼쳐진다는 말이기도 했다. 저 멀리서 낮과 밤을 오가며 시끌벅적하게 뛰어노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대부분은 저렇게 격식 없이 뛰어놀기엔 너무 많이 커버렸다. 그 너무 많이 커버린 딸들이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이런 곳에서 무얼 하고 있느냐, 아버지여.”
“아빠는 내려가서 같이 놀지 않는 것일까?”
언덕 위에서 어린 딸들과 열심히 놀아주는 아내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관찰하고 있으려니, 에일린과 세그레투스가 불쑥 튀어나왔다. 기척 숨기는 솜씨가 꽤 많이 늘었다.
“이기고 온 거니, 우리 딸들?”
“당연하지 않느냐. 내가 모조리 다 압도적으로 짓누르고 왔느니라.”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날에 아빠의 곁을 독차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잖니.”
에일린과 세그레투스의 표정에 뿌듯함이 깃들었고, 발걸음은 한층 더 위풍당당해졌다.
진작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뭔가 꿍꿍이가 있지 않은 이상에야 내 옆이 텅 빌 리가 없으니까. 언제나 조금이라도 더 옆을 차지하려고 북적였으면 북적였지.
저 밑에서 천진난만하고 순수하게 뛰어노는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 딸들이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한곳에 모이는 걸 보기도 했고 말이다.
내가 본 것을 설명해주자 아내들은 축제가 끝나려면 아직 1년이나 남았으니 괜찮다며 순서를 양보해줬다. 그것 역시 내 옆이 텅 비어있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혼자 이런 곳에 있으면 궁상맞게 보일 것이다.”
“안심하려무나. 우리가 아빠 곁에 있어줄 테니.”
어느새 바로 옆까지 다가온 에일린과 세그레투스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 그럼 고맙다고 해야겠네. 궁상맞게 보이지 않도록 해줘서 고마워, 우리 공주님들.”
나도 똑같이 미소로 답했다. 그러자 둘 다 주춤하더니 순식간에 화끈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선 큼큼 헛기침을 하면서 내 옆에 달라붙었다.
팔과 팔이 슬그머니 얽혔다.
“아, 시작하려나 보네.”
저 밑에서 신나게 뛰어다니던 딸들이 제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춰섰다. 아내들이 그 어깨에 손을 얹고 다른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뭐라뭐라 말하고 있었다.
얼마 안 가 달빛과 햇빛을 듬뿍 머금은 첫 폭죽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고, 정확히 낮과 밤의 경계에서 터져 황금빛과 은빛으로 하늘을 수놓았다.
곧이어 수많은 폭죽들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터지기 시작했다. 수천에 달하는 불꽃들이 몸을 불살라 별처럼 화려하게 빛나고선 천천히, 혹은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불꽃놀이.
이클립스와 내가 지구에서 가져온 것들 중 하나였다.
ㅡ지금 하겠느냐?
ㅡ해야지.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오겠니? 내가 기억한 순서대로라면 약 13초 뒤에 제법 큰 불꽃이 터질 거란다.
ㅡ그때를 노리자는 이야기로구나. 충분히 이해하였다.
양 옆에서 에일린과 세그레투스가 대화를 주고받았다. 나름대로 숨기기 위해 마나로 대화를 주고받은 건지, 아니면 대놓고 들으라고 마나로 대화를 주고받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둘은 서로에게 속삭인대로, 척 보기에도 여태까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만큼 거대한 불꽃이 수직으로 솟아오르는 순간을 틈타 내 귓가에 입술을 붙였다.
“사랑한다, 나의 아버지여.”
“사랑하고 있단다, 나의 아빠.”
그와 동시에 펑! 이 아니라 꽈앙! 이라고 묘사해도 될 정도의 굉음이 천지를 뒤엎었다. 황금색과 금색으로 정확히 반씩 나누어진 불꽃이 하늘을 수놓았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딸들의 고백을 듣지 못하는 일 따윈 없었다. 나는 에일린과 세그레투스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 품에 끌어안으며 같이 속삭여주었다.
“그래. 나도 사랑한다.”
나를 꼭 닮은 칠흑색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너희 아빠로서.”
“윽.”
“엑.”
그리고 다시 작아졌다.
어딜 감히 분위기에 편승하려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