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43)
낙하 공격의 대미지 계산식은 간단했다.
떨어진 거리에 비례해서 적 최대 체력의 일정량만큼 피해를 입히고, 그 상태에서 들고 있는 무기의 대미지가 추가로 더해진다.
즉, 캐릭터가 높은 곳에서 떨어질수록, 무기의 한방 대미지가 강할수록 낙하 공격으로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낙하 공격의 대미지로 적을 죽이는 게 가능하다면 낙댐을 씹을 수도 있었다.
적을 죽이지 못할 경우에는 캐릭터가 땅에 착지하며 공격하는지라 본인도 대미지를 입고, 심지어는 그대로 사망하기까지 하는 상황도 종종 벌어졌다.
하지만 대상이 죽는 경우에는, 캐릭터가 무기군에 따른 특수한 모션을 취하며 적을 죽여버리고 안전하게 땅에 착지한다.
얼마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든 상관 없이 말이다. 오히려 높은 곳에서 떨어져야 체력 비례 대미지가 커지니 더 좋다고 할 수 있겠지.
지금 내가 처해있는 상황 역시 그런 부류였다.
이 구덩이 밑에는 수십 마리의 잡몹들이 득시글거려서 플레이어가 어느 위치에서 떨어지든지 낙하 공격으로 적을 죽이고 무피해로 착지할 수 있게 해놓았다.
덕분에 인간과 맞먹는 크기의 지네 수십 마리가 자기들끼리 모여 꿈틀거리는 모습을 봐야 하긴 했지만.
‘좋아. 바로 밑에 있네.’
중간보스 격에 해당하는 놈이 내가 떨어질 자리에 있는 걸 확인한 뒤, 칼 끝이 아래를 보도록 무기를 바꿔쥐었다.
지네 여러마리가 하나로 뭉친듯한 모습을 하고, 다른 놈들보다 몇 배는 더 커다란 크기를 가진 마물이 위쪽에서 들리는 굉음을 듣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자마자 내가 그 위로 추락했다.
“ㅡ!!!!!!”
놈의 양쪽 어깨를 으스러져라 밟으며, 머리일거라 생각되는 부분에 검을 힘껏 찔러넣었다.
예상대로 착지할 때의 충격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 대신 어깨 갑피가 충격을 고스란히 받고 으직 내려앉았다. 내 발이 껍질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피 묻은 검의 검신이 얼굴 안으로 푹 들어갔다. 손잡이를 옆과 아래에서 각각 붙잡고, 그 안으로 힘껏 밀었다. 검의 크로스가드만 남기고 그 윗부분이 죄다 파묻혔다.
ㅡ콰직! 콰지직!
내가 낙하 공격으로 중간보스를 처리하는동안, 뒤늦게 떨어진 바위 파편이 물웅덩이에서 꾸물거리던 지네들을 사정없이 으스러뜨렸다. 곳곳에서 껍질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플레이어가 추락하지 않는 쪽에 있는 잡몹들은 저렇게 바위가 대신 처리해준다. 덕분에 내가 저것들을 일일이 때려잡을 필요는 없었다.
“…….”
중간보스도 같은 신세가 되었다. 놈은 끔찍하게 많은 다리들을 파르르 떨더니 가운데로 한껏 오므렸다. 목숨이 끊어졌다는 신호였다.
그 몸이 크게 휘청였다. 나는 머리에서 칼을 뽑아내며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아 바닥에 착지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동작임에도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놈은 물웅덩이에 철퍽 엎어지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그 주변으로 역겨운 색깔의 액체가 스멀스멀 퍼져나갔다.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여긴 끝났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근처에 드글거리던 지네들은 단 한 마리도 빠짐없이 천장에서 떨어진 바위에 처맞고 납작포가 되어 있었다.
원래라면 근처에 널린 잡몹들 중 하나에 낙하 공격을 해서 착지하고 중간보스와 예닐곱마리의 잡몹들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까다롭기 짝이 없는 구간이 여기였다.
하지만 유저들은 여기서 일말의 가능성을 발견하고는 기어코 중간 보스에게 낙하 공격을 먹일 수 있는 자리를 찾아냈다. 닼라 모드에서도 이것만큼은 바뀌지 않았다.
떨어지는 높이가 어마어마해서 체력이 평범한 적보다 몇십 배는 높은 중간보스조차 확정 원킬이 나는데다, 다른 잡몹들은 전부 다 떨어지는 바위에 깔려서 죽는다.
이 방법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혹시 아이템 떨군 게 있으려나.’
바위에 깔려 납작해진 지네들의 시체 근처를 기웃거렸다. 혹시라도 드람템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피웅덩이와 더러운 살점조각 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걸 아쉽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다행이라고 해야할지는 솔직히 의문이었다. 어차피 인벤토리도 없고, 상태창도 없어서 아이템이 드랍돼봤자 들고갈 수단이 없었으니 말이다.
게임에서야 그냥 E키 눌러서 습득하면 아이템들이 알아서 종류별로 인벤토리에 차곡차곡 쌓이는데다 그 숫자에 딱히 제한도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아니다.
당장 게임이었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습득하고 인벤토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을 목 없는 철갑 기병의 창 역시, 내가 낑낑거리며 말로 들고가서 안장에 묶어놔야 했었다.
기사단에 있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템으로 취급받던 물품들을 집어봤는데 딱히 아무 일도 안 일어났고.
‘이래서야 나중에 강화 재료 파밍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
어차피 현실성은 내다버린거, 그냥 인벤토리도 같이 넣어줬으면 안 됐던건가.
ㅡ쿠르르르릉!
저 멀리서 동굴이 진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진동이 느껴지자 본능적으로 짜증이 치솟았다. 이 던전의 보스를 마주할 시간이 점차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빌어먹을 암석 지네.’
그걸 생각하기만 해도 치가 떨렸다. 저게 룬을 얻기 위해 반드시 잡아야하는 필수 보스만 아니었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냥 건너뛰었을거다.
이 던전의 보스인 ‘암석 지네’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그냥 더럽기 짝이 없는 보스라고 할 수 있었다.
브닼 4를 갓 시작해서 처음 여기까지 온 뉴비들을 제외하고는 호불호가 전혀 갈리지 않았다. 호는 한 명도 없고 불호만 가득했으니까.
그냥 조금만 고여도 욕이 안 나올수가 없는 구조였다. 커뮤니티에서는 아예 보스 자체를 잘못 만들었다는 평가가 압도적이었다.
나중에 한 30년쯤 지나서 브닼 4의 리메이크가 나온다면 암석 지네는 좀 삭제해버리라는 말이 나돌만큼.
이유는 다양했지만, 제일 큰 문제는 세 가지였다.
재미없음.
시간이 오래 걸림.
패턴이 더러움.
‘사실 첫 번째 이유가 제일 압도적이지만.’
잡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도 재미만 있다면 사람들은 납득하기 마련이다. 브닼 4의 최종 보스가 암석 지네와 똑같이 4페이즈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찬사를 듣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저걸 안 잡고 그냥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 나는 마음을 다잡고 물웅덩이의 한쪽 벽에 뻥 뚫려있는 길 안으로 들어섰다.
길은 엄청나게 넓었다. 좌우로 사람이 족히 6~7명은 나란히 설 수 있지 않을까 싶었고, 위쪽으로도 내 키와 비교해서 거의 두 배에 달했다.
하지만 벽과 바닥은 울퉁불퉁하기 짝이 없었다. 잘못 넘어졌다간 피부 찢어지는 것쯤은 일도 아닐 것 같았다. 혹시 그걸로도 죽으려나, 하는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갔을까, 나는 누가 봐도 벽과 바닥과 천장에 부자연스러운 구멍들이 뚫려있는 자리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이 장소였다.
이제 저 구멍으로 다가가면 첫 번째 페이즈가 시작된다. 나는 벌써부터 치밀어오르려는 짜증을 가라앉히며 천천히 그 앞으로 걸어갔다.
내가 그 앞에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동굴이 크게 진동하며 사방에서 암반이 갉아먹히는 서걱서걱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그에 맞춰 떨림도 더 강해졌다. 벽에서도, 바닥에서도, 천장에서도 서걱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침착하게.’
이 상황에서 함부로 움직였다간 재수 없으면 구멍에서 튀어나오는 암석 지네에게 처맞고 즉사한다. 그냥 근처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최선이었다.
ㅡ콰아아아앙!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가까운 구멍에서 근처 지형을 박살내며 거대한 괴물이 튀어나왔다.
전체적인 외형은 평범한 지네와 다를 바 없었으나, 온 몸이 바위로 이루어져 있었다. 갑피와 외골격이 돌처럼 단단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몸 자체가 바위라는 의미다.
‘암석 지네’라는 이름에 정확히 어울리는 외형이었다.
그리고 무지막지하게 컸다.
족히 수백 개는 되어보이는 숫자의 다리 하나하나가 내 키와 맞먹는 길이에, 앞부분의 일부만 구멍에서 튀어나와 있음에도 그게 어지간한 다층 주택의 높이와 비슷했다.
아직도 구멍 안에서 드러나지 않았을 나머지 부위까지 합친다면 몸 전체의 길이는 아마 아파트나 다름없는 크기일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보니까 더 장난 아니네.’
몸은 바위에, 외형은 지네처럼 생기고, 크기는 건물보다 더 큰 마물이 날 내려다보고 있으니 위압감이 생각보다 엄청났다. 이게 뉴비들이 얘를 처음 만나면 혼비백산하는 이유였고.
하지만 딱 거기까지. 앞으로 이놈과 치러야 할 실랑이를 생각하니 공포나 불안보다는 짜증이 먼저 차올랐다.
ㅡ쿠웅!
암석 지네의 몸이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동굴 전체가 우르릉 떨렸다. 놈이 아래턱을 서로 마주쳐 딱딱거리며 내게로 슬금슬금 기어오기 시작했다.
돌로 이루어진 수백 개의 다리들이 바닥을 긁으며 기분나쁜 소리를 끝없이 흘려댔다. 저런 동작 하나하나도 신경에 거슬렸다.
나는 슬슬 뒷걸음질을 치며 벽 쪽으로 물러났다. 암석 지네도 천천히 나를 따라 몸을 돌리며 다가왔다. 그러더니, 점차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바위로 이루어진 거대한 지네가 수백 개의 다리를 파닥이고 관절을 뒤틀며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그대로 날 들이받아 벽에 짓이겨버릴 기세였다.
문제는, 제딴에 전속력으로 달려온다는 속도가 플레이어의 기본 걸음걸이보다 조금 빠른 수준이라는 것이다. 타이밍을 잡지 못할 일도 없고, 따라잡혀 죽을 일은 더더욱 없었다.
‘……지금.’
거리가 더 줄어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머리가 나를 들이받기 직전에 옆으로 굴러 사선에서 빠져나갔다. 암석 지네는 내가 시야에서 없어졌음에도 돌진을 멈추지 못했다.
ㅡ쿠웅!
그리고는, 스스로의 속도에 못이겨 벽을 거세게 들이받았다. 동굴 전체가 진동하고 천장에서 돌 부스러기들이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암석 지네는 온 몸을 뒤틀며 발광을 해댔다. 나는 그 발광에 맞지 않도록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저놈 근처에 흩날리는 돌쪼가리에만 처맞아도 죽는다. 뉴비들이 떨어져 있었는데 왜 죽는거냐고 물어본다면 십중팔구는 돌 처맞고 죽은거였다.
몸을 뒤틀고 발광하며 주변을 온통 헤집어놓던 암석 지네는 아래턱을 신경질적으로 몇 번 마주치곤 바위 속으로 다시 파고들었다. 몸이 워낙 거대한지라 사라지는데만도 한참 걸렸다.
‘이제 또 한참 기다려야겠네.’
나는 그대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차피 저렇게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려면 1분 가까이 걸린다. 제작사가 말한 바로는 몸이 워낙에 커서 방향 전환이 제깍제깍 안 된다나 뭐라나.
이제 이 짓거리를 총 59번만 더 반복하면 4페이즈였다. 바닐라에서는 29번인데, 닼라 모드 때문에 2배로 늘어서 그렇다.
닼라 모드 만든 놈들도 욕 푸짐하게 먹었다. 기믹 횟수를 줄여주지는 못할 망정 왜 더 늘려놓냐고 말이다.
그 59번을 반복하는 동안 중간중간 1분씩 기다려야 하고, 지랄발광을 해대는 수백 개의 다리에 더해 날아오는 돌 한조각까지 세심하게 피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자리에 주저앉은 나는 암석 지네가 다시 밖으로 튀어나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