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46)
ㅡ철그럭.
길 저편에서 익숙한 갑옷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었다. 횃불 특유의 노란색과 주황색이 섞인 불빛과 함께, 은색의 갑주를 입은 기사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익숙한 모습의 갑옷과 익숙한 모양의 무기들.
아이리스와 리제, 에리카였다. 제일 앞에 있는 것이 리제고 그 양 옆으로 선 것이 아이리스와 에리카인 듯 했다. 손에 들린 무기가 그랬다.
제일 앞에 서 있던 리제가 나를 발견했는지 등 뒤를 향해 뭐라뭐라 말을 건넸다. 그러고는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나도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리제는 무기를 허리춤에 차고 투구를 벗었다. 하나로 묶은 푸른 청발이 찰랑거리며 길게 늘어졌다. 머리카락으로 가려지지 않은 한쪽 눈이 나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넸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
“만나서 처음 한다는 말이 그거야?”
나는 머쓱하게 웃었다. 하지만 리제는 웃지 않았다. 찌릿, 하는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 눈빛과 표정으로 보아 정말로 내게 화가 난 것은 아닌 듯 했지만, 그렇다고 어영부영 넘어갈 상황도 아닌 모양이었다. 대답을 확실하게 들어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이거 말고 딱히 할 말도 없…… 케흑.”
건틀릿이 내 양쪽 뺨을 부여잡고 바짝 끌어당겼다. 내 얼굴 바로 앞에 리제의 얼굴이 있었다. 거리를 벌리려고 해봐도 손바닥에 단단히 붙잡혔는지 옴싹달싹 못 했다.
“난 많은데. 그렇지, 신입?”
“농담이었어. 미안. 그러니까 이거 좀 놔주면 안될까?”
리제는 그러고도 한동안 자기 얼굴과 내 얼굴을 거의 닿을듯이 바싹 붙인 채 날 응시하다가 손을 놓았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푸른 눈동자가 날 내려다보았다.
“왜 미리 말 안해줬어? 너 혼자 이럴거라는 거. 우리한테 먼저 털어놨어도 됐잖아.”
여기 앉아있는 내내 대답을 고민했던 질문이다. 리제는 어중간하게 대답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여럿이서 한꺼번에 덤빈다면 혹시나 암석 지네의 어그로가 한 명에게 집중되지 않고 이곳저곳으로 튈까봐 그랬던 것이었으나, 이걸 직설적으로 털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만에 하나 기사단장들이 내 행동에 방해가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버릴 수도 있으니까. 너무 과장된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조차 주기 싫었다.
절대로 그렇지도 않고, 그럴 생각도 없다. 오히려 도움이 됐으면 됐지 방해일 리가 있나. 내가 필수적으로 잡아야 하는 보스가 아니라면 토벌은 되는대로 기사단장들에게 맡길 생각인데.
물론 초반에는 보스를 잡아서 얻는 경험치가 상당히 크지만, 모든 잡몹의 경험치가 상승하는 중반부터는 노가다로 충분히 극복 가능한 격차다.
게다가 닼라 모드에서 통용되는 빌드의 경우엔 신성력과 마력만 적당히 찍어놓으면 그 뒤로 일정 구간까지는 레벨이 올라가든 말든 큰 의미가 없었다.
레벨과 스펙의 격차를 극복할 수 있는 컨트롤만 된다면, 초반부 보스 토벌 경험치 정도는 별로 아깝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그럴 사정이 있다는 말로 넘어가는 건 안되지?”
“될거라고 생각해?”
어느새 아이리스와 에리카까지 다가와서는 나를 리제와 비슷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하나만 있어도 부담스러운 시선이 두 쌍이나 더 생겼으니 느껴지는 위압감이 엄청났다.
하지만 리제가 그렇듯이 아이리스나 에리카도 정말로 내게 화가 난 모습은 아니었다.
리제가 왜 자기들한테 미리 말 안해줬냐면서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것이라면, 아이리스나 에리카는 투정 사이에 약간의 질책이 드러나는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 대답은?”
나는 두 번째 이유이자, 가장 당연한 대답을 내뱉었다.
“너희들을 다치게 하기 싫었거든.”
“……?”
순간, 리제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방금 내가 뭘 들은거지, 하는 표정이었다. 그 뒤에 있던 아이리스와 에리카도 별다를 것 없는 얼굴을 했다.
“잠깐만. 방금 뭐라고?”
“너희들을 다치게 하기 싫었다니까.”
“……다쳐? 우리가?”
“그럼 여기 또 누가 있는데? 당연히 너희들이지.”
푸른 눈동자가 뱅글뱅글 돌았다.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신입, 설마 지금 우리 걱정한거야?”
“아무리 너희들이라고 해도 그 높이에서 떨어졌으면 즉사였어. 걱정 안 하는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높으면 얼마나 높다고?”
리제의 얼굴이 샐쭉해졌다.
뭔가 화를 내는 척은 해야겠는데, 내가 자신들을 걱정해줬다는 점이 제법 기뻤는지 입꼬리가 계속 혼자 씰룩댔다. 덕분에 전체적으로 무척이나 오묘한 모습이었다.
“내 체감상으로 거의 20초 가까이 떨어졌었을걸. 대충 어느정도였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
몇몇 특수 NPC들을 제외한 모든 NPC는 낙사에 내성이 없었다. 물론 게임 특성상 보스를 낙사로 죽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몇몇 유저들이 테스트를 해 본 결과로는 그랬다.
낙하할 때 일정 높이마다 최대 체력 비례 대미지가 계속해서 추가되는 방식이라, 이 동굴 정도의 높이라면 그냥 사망 확정이었다.
그래서 낙하 공격으로 낙댐을 씹어야 되는거고.
“신입 너는 멀쩡할 수 있었다는 뜻이겠네?”
“당연하지. 여기 이렇게 살아서 움직이고 있잖아.”
“어떻게 했는지는 안 가르쳐줄거고 말이지.”
“안 가르치는게 아니라 못 가르치는거야. 나도 지식이 아니라 본능으로 하는거라서.”
나는 아직도 아이리스나 리제, 에리카가 낙하 공격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적의 공격을 튕겨내지도 못하고, 구르기를 어떻게 시켜보긴 했는데 구르는 동안 무적 판정이 없고, 본인 무기를 제외한 다른 무기들의 특수 능력을 발동시키지도 못한다.
정말로 순수하게 NPC들이 아는 것만 알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튕겨내기도 못하고 구르기도 안되는데 낙하 공격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이상하다.
여기 오기 전에 혹시나 싶어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적을 발판삼아 다치지 않고 착지하는 방법을 아냐고 물어보긴 했는데, 네 명 전부 머리 위에 물음표만 띄우더라.
나는 그냥 해보니까 되던데? 수준이라 뭘 가르칠 처지가 못 됐다. 내 구르기에만 무적 시간이 적용되는 이유를 어떻게 알겠는가.
“아무리 그래도 그건 과한 걱정이에요, 신입 씨. 신입 씨가 저희를 걱정해줄 필요는ㅡ”
“너희를 걱정해줄 필요가 왜 없는데?”
“……네?”
내 대답에 말문이 막힌 에리카가 눈을 깜빡였다.
“너희라고 안 아프고 안 죽는 게 아니잖아. 맞으면 아프고, 다치면 죽을 수도 있어. 그런데 왜 걱정하지 말라는거야?”
암석 지네를 상대할 때도 패턴이 뭐가 있는지 전부 다 설명해줄 생각이었다. 사람 일은 모르는거니까 말이다. 앞으로도 나 대신 토벌을 맡길 때마다 계속 설명해줄거고.
당장 얘네들은 강인도가 개판이라 초대형 보스에게 한번 처맞기 시작하면 무한 경직에 걸려서 윽윽대다가 죽는다. 닼라 모드는 공격 사이의 간격이 바닐라보다 훨씬 짧아서 더 위험하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저 위에서 기사단장들이 먼저 안 피하고 나랑 같이 있었다간 추락해서 낙댐으로 죽었을거란 사실이다.
얘네는 낙하 대미지 못 씹잖아. 당연히 걱정해야지.
“우리는 기사다, 신입. 만약 죽어야 한다면 언제든 그럴 준비가 되어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너흰 기사이기 전에 인간이야. 언젠가는 죽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오늘이 되는건 안 돼. 앞으로도 마찬가지고. 내가 있는데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거야.”
앞으로 나 대신 토벌해줘야 할 마물이 얼마나 많은데, 여기서 허무하게 낙사해버리거나 암석 지네 따위에게 죽어버리는 건 내가 절대로 용납 못 한다.
얘들 목숨이 곧 내 목숨인데 설마 그러게 놔둘까봐.
“미리 말 안해준 건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그 상황에서는 그게 최선이었어. 괜히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에 너희들까지 휘말리게 만들기는 싫었으니까.”
“신입…….”
내가 말을 끝내자, 리제는 왠지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고, 아이리스와 에리카도 뭔가 확연히 달라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된건가?’
대체 어디서 성공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무사히 넘어간 듯 했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는 좋게 끝나서 다행이었다.
“그래서 이 뒤의 일 말인데…… 저기, 듣고 있어?”
암석 지네가 무슨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를 설명해주려고 했는데, 왠지 다들 내 말은 안 듣고 각자의 생각에 잠긴듯한 모양새였다.
리제야 늘 저러니까 그렇다 쳐도, 아이리스랑 에리카는 왜 저러는거지.
‘특이한 녀석.’
아이리스와 에리카의 머릿속에 동시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말 그대로 특이한 녀석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이제 갓 기사단에 입단한 신입 주제에, 기사단장조차 토벌에 실패한 마물을 혼자 토벌한걸로도 모자라 며칠에 걸쳐 백에 가까운 마물을 추가로 쓸어버리기까지 했다.
이제 갓 기사단에 입단한 신입 주제에, 행동에 전혀 망설임이 없는걸로도 모자라 언제나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제 갓 기사단에 입단한 신입 주제에, 어릴 때부터 기사로서 혹독히 훈련받은 자신들과 맞먹는걸로도 모자라 역으로 걱정해주기까지 한다.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체 누가 누구를 걱정한다는 말인가. 심지어 본인은 저주 탓에 본연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지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남을 걱정할 처지가 못 됐다.
‘이상한 기분이로군.’
그런데 신기하게도, 신입에게 걱정을 받고 있으니 왠지 마음 한 켠이 간질거리는 느낌이었다.
언제나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기사로서 누구보다 앞에 서서 싸우는 것은 마땅히 그래야 하리라 여겨지는 일이었고, 죽음은 언제나 곁에 있었다.
황제 역시 그랬다. 본인부터가 제국 최강이라 불리는 존재였으니 한낱 기사 따위를 신경 쓸 리가 없었다.
마물에게 희생당한 단원들도 많았다. 하지만 죽음을 슬퍼하고, 죽음을 두려워할지언정 그 누구도 죽는 것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죽음을 향한 두려움은 당연하지만, 죽는 것도 당연하다. 걱정을 해야 할 이유도, 받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죽는다면 그저 목숨이 거기까지인 것이다. 여태껏 그런 생각 뿐이었다.
‘기사이기 전에 인간, 이라…….’
헌데 이 남자는 달랐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다 말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심지어 진짜 속내를 숨긴 채 내뱉는 가식적인 언행조차 아니었다. 그 눈에는 진심이 묻어났다. 정말로 본인보다 한참은 더 강할 기사단장들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누굴 걱정하냐며 어이없어해도 된다. 그런 건 스스로 조금 더 성장하고 나서 말하라며 핀잔을 줘도 된다. 가벼운 농담으로 생각해 웃고 넘겨도 된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러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왠지,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