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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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조우때 무조건 사용하는 돌진 패턴을 포함해 나머지 4개의 패턴이 보스전 도중에 번갈아 나오고, 마지막 1개가 바로 지금부터 시작될 이거였다.
인간 도살자의 체력이 10% 이하로 떨어지는 순간 발동되는, 이른바 최후의 발악. 이 패턴을 봤다면 사실상 클리어 한 거나 다름없었다.
자기 몸에 있는 피를 끌어다가 폭탄으로 만들어 플레이어를 향해 날려대는데, 그걸 피하기만 해도 알아서 피가 깎였다. 체력이 딱 1만 남기 전까지 말이다.
체력이 1까지 내려가면 제풀에 지쳐 풀썩 주저앉게 되고, 그 앞으로 다가가 맨손으로든 뭐든 톡 건드려주기만 해도 인간 도살자 보스전은 끝이었다.
물론 ‘사실상’ 다 클리어 한 거라는 말마따나, 마지막까지 방심은 절대로 금물이었다.
바닐라에서야 대충 몇 바퀴 굴러주면 끝이었지만, 브닼 모드에서는 마지막 한 발까지 죽어라 뛰어다니며 필사적으로 회피해야 하는 패턴이었으니까.
ㅡ크아아아아아악!!!!!!
놈이 기나긴 포효를 내지르고선 둔기를 땅에 내팽개쳤다. 그러고는 공터의 한가운데로 씩씩대며 걸어가더니 손톱을 세워 자기 몸을 마구 헤집었다.
손톱으로 헤집어진 상처에서 검은 피가 줄줄 새어나왔다. 포효가 다시 한 번 터지자, 흘러나온 핏방울들이 놈의 근처에서 인간 머리만한 크기로 뭉치기 시작했다.
바닐라에서는 9발에서 10발 정도만 피하면 되지만, 다키스트 라이트 모드의 경우에는 49발에서 50발 가까이를 피해야 했다. 그 중에 하나라도 맞으면 즉사인 건 덤이고.
게다가 저거, 구르기로는 못 피한다. 한 번 구르고 다음 구르기를 준비하는 그 잠깐의 후딜레이 동안에 날아드는 폭탄을 처맞고 픽 죽어버리는지라.
핏방울들이 서로 뭉쳐 인간의 해골 형상을 만들어내는 걸 확인한 뒤, 공터 벽까지 물러났다. 벽에 딱 붙어서 반시계 방향으로 빙글빙글 도는 것이 제일 확실한 파훼법이었다.
인간 도살자가 하늘을 바라보며 울부짖었다. 인간의 해골 형상으로 뭉쳐진 동그란 혈액 폭탄들이 그 포효를 신호삼아 나를 향해 내쏘아졌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인간 도살자를 기준으로 오른쪽, 그러니까 내 기준으로는 왼쪽에 있는 폭탄들부터 쏘아지므로, 조금이라도 착탄 거리를 늘어나게 하려면 무조건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편이 맞았다.
시계 방향으로 돌아도 피해지기는 하는데, 폭탄의 착탄 거리가 반시계 방향으로 돌 때보다 아주 미세하게 짧은지라 가끔 지지리도 재수없게 한 대씩 얻어맞을 때가 있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 건 사절이었다.
내 뒤로 혈액 폭탄이 땅에 퍽퍽 처박히며 거대한 산성 폭발을 일으켰다. 검은 액체가 사방으로 퍼지며 벽과 바닥을 녹여먹었다. 뒤쪽의 광경이 어떨지는 충분히 예상이 갔다.
공터 한 바퀴를 거의 다 돌았을 무렵, 어느 순간 등 뒤가 조용해진 것을 확인하고 발걸음을 멈췄다. 인간 도살자는 힘을 다 쓴 채로 자리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는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로 천천히 접근했다. 내가 9발이나 10발, 혹은 49발 아니면 50발이라고 말한 이유 때문이었다.
이렇게 주저앉은 상태에서 진짜 최후의 발악으로 마지막 혈액 폭탄 한 발을 날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걸 날린다면 10발이나 50발이고, 안 날린다면 9발이나 49발이다.
그리고 내 우려대로, 놈의 머리 위에 인간의 해골 형상을 한 구체가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역시 조심해서 나쁠 게 없다니까.’
날아오는 방향을 보고 반대로 구를 준비를 했다. 한 발쯤은 구르기로도 얼마든지 피하는 게 가능했기에.
그런데, 마지막 폭탄이 날아간 방향은 내 쪽이 아니었다.
혈액 폭탄은 하늘 높이 치솟더니, 감옥의 제일 꼭대기 층으로 날아가선 거기에서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꼭대기 층의 절반이 날아갔다.
최후의 발악을 끝낸 인간 도살자는 완전히 탈진한 듯 바닥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내쉬었다. 이제 다가가서 맨손으로든 뭐든 톡 건드려주면 보스전은 끝이었다.
“……뭐야?”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바닥에 주저앉은 인간 도살자와 절반이 날아간 감옥 꼭대기 층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게임에서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었다.
내가 눈앞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 충격에 멍하니 굳어 있으려니, 감옥의 꼭대기 층에서 먼지 구름을 뚫고 갑옷 입은 기사 한 명이 훌쩍 뛰어내렸다.
찰그락, 가벼운 쇳소리만을 내며 무척이나 가벼운 몸놀림으로 공터에 착지한 기사가 몸을 일으켰다.
찬란하게 빛나고 있어야 할 은색의 갑옷은 검은 피를 잔뜩 뒤집어쓰고선 연기를 내며 녹아내리고 있었다. 곳곳이 잔뜩 부식되어 갑옷으로써의 기능을 거의 상실해버린 모습이었다.
피를 뒤집어 쓴 몰골로 미루어보아 혈액 폭탄에 직격당한 듯 한데, 그러고도 사지가 멀쩡히 붙어있으니 갈 땐 가더라도 갑옷 본연의 역할은 다 마친 셈이었다.
본 기억이 있는 갑옷이었지만, 어째 외형이 조금 많이 달랐다. 정체모를 위화감을 느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날 향해 걸어온 기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설마 마지막 공격을 이쪽으로 날릴 줄은 몰랐건만. 내 실수다.”
잔뜩 녹슬고 더러워진 은빛 투구 안에서 중성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갑옷도 내 기억이랑 달랐는데, 목소리도 내 기억이랑 달랐다.
뭔가 이상했다. 그것도 좀 많이.
“너 혼자 저걸 쓰러뜨린건가?”
게임에서와 똑같은 질문이 나오자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여기가 게임이었다면 그렇다 혹은 아니다로 선택지가 뜨겠지만, 지금은 내가 직접 입을 열어 대답해야 했다.
“그렇습니다.”
“……굉장하군.”
기사는 바닥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내쉬며 탈진해버린 인간 도살자를 이리저리 관찰하더니, 내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직 살아있는 듯 한데, 죽이지 않을건가? 네가 쓰러뜨렸으니 마무리를 하는 것도 네 몫이겠지.”
“아, 네. 그러겠습니다.”
땅에 내팽개쳤던 검을 다시 집어들었다. 놈은 내가 바로 앞까지 다가왔음에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기사는 옆으로 몇 발자국 물러나며 가볍게 고갯짓을 했다.
배를 푹 찔렀다. 검은 손쉽게 들어갔다. 마지막 일격을 받은 인간 도살자가 숨 넘어가는 포효를 지르더니, 기우뚱 하고 대각선 방향으로 엎어졌다.
게임에서는 적을 죽이면 자동으로 시체가 사라지면서 아이템이 드랍되는데, 여기서는 어떠려나 싶어 놈의 시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부글부글, 인간 도살자의 머리 부근이 기포와 연기를 내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시체 밑으로 흐물흐물해진 살점과 검은 혈액이 번졌다.
살점이 녹아내려 휑하니 구멍이 뚫린 자리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이런 방식인가.’
이제 쓸모가 없어진 강철 검은 대충 던져버리고, 최대한 살점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움켜쥐고 힘껏 잡아당겼다. 그건 의외로 손쉽게 뽑혀나왔다.
내 손에 들린 것은, 칼날이 흉흉한 붉은색을 띠는 검이었다. 그 익숙한 모습에 속으로 안도했다.
‘이제 한시름 덜겠네.’
이게 내가 꼭 먹어야 했던 무기다. 혹시나 아이템이 드랍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싶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피 묻은 검이라 불리는 이 무기가 초반부 한정 치트키 소리를 듣는 이유는 간단했다.
극초반 튜토리얼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무기 주제에, 대미지가 중반부에 얻는 무기들과 비교해도 전혀 꿇리지 않았으니까.
그 반대급부로 스탯 보정치와 강화 상승치가 한참 부족해 시간이 지날수록 효율이 떨어지는 무기이긴 했지만, 오히려 그 특성 때문에 더욱 더 초반 한정 치트키로 명성이 드높았다.
어차피 초반에는 강화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캐릭터의 스탯도 바닥을 기어가니 깡댐과 기본 능력치가 높은 쪽이 몇 배는 더 이득이었다.
공격력은 이 무기 하나로 때우고, 힘에 투자할 스탯을 그만큼 다른 주요 능력치로 돌릴 수 있는 것이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초반 빌드의 안정성 자체가 확 달라졌다.
물론 안정성을 따지는 건 바닐라 한정이고, 길가는 잡몹에게 처맞아도 한 방에 죽어버리는 닼라 모드에서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피 묻은 검을 든 채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은빛 갑옷의 기사에게로 돌아오자, 투구 안에서 다시 중성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무기는ㅡ?”
기사가 말을 다 내뱉기도 전에, 위태롭게 버티던 투구에 쩌적 소리를 내며 커다란 균열이 생겨났다. 착용자의 목숨을 구해준 것으로 제 할 일을 끝내고 수명이 다 한 모양이었다.
이 NPC의 갑옷이 부서지는 건 게임에선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그걸 따지자면 마지막 혈액 폭탄이 다른 곳으로 날아간 것부터 되짚어봐야겠지.
어차피 스토리의 큰 틀은 바뀌지 않은 듯 하고, 인간 도살자의 배에 자상이 남거나 놈이 발을 구를 때 바닥이 박살났던 것처럼 현실성이 더해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기사는 쯧, 하고 혀를 차더니 반으로 쪼개지려는 투구를 붙잡고선 직접 뜯어냈다. 반토막난 투구 조각이 쇳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그 안에 감춰져 있던, 은빛의 긴 생머리가 출렁이며 아래로 쏟아져내렸다.
‘……잠깐, 뭐? 긴 생머리?’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내가 멈칫거리기도 잠시, 기사와 눈이 마주쳤다.
머리카락과 똑같은 색을 한 은색 눈동자에,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예쁘다고 칭하기에 손색이 없을 미모를 지닌 얼굴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갑옷 안에 있던 것은 젊은 여자였다.
내 기억 속의 NPC처럼 중년의 남자가 아니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