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51)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나를 가운데 끼고 여기까지 데려온 메이드 두 명이 동시에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연회장의 가장자리로 가서 아랫배 앞에 손을 모으고 정자세로 섰다.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나는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한쪽 벽에는 5명으로 구성된 악단이 독특한 모양의 악기를 들고선 느긋하게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모양의 악기였지만 소리는 피아노나 바이올린과 비슷했다.
‘저놈의 에어컨은 여기에도 있네.’
어쩐지 바깥보다 안쪽이 훨씬 더 시원하더라니, 연회장의 샹들리에 너머로 천장에서 열심히 제 할일을 하는 에어컨이 보였다. 장소가 워낙 넓어서 그런지 다섯 대나 됐다.
저런 현대적인 물품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있으면 확실히 몸이 편하니까. 단지 괴리감이 너무 심해서 아직도 적응을 못하고 있을 뿐이다.
연회장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세 줄로 늘어서 있었다. 기사단의 지하 식당에 놓인 무지막지한 길이의 테이블과 맞먹거나 조금 더 큰 크기였다.
테이블 위에는 음식이 즐비했다. 칠면조 비스무리한 무언가를 통째로 구워낸 요리라든가, 층층이 쌓여 거의 사람 키와 비슷한 케이크라든가, 엄청나게 두꺼운 생선이라든가.
연회나 파티 하면 떠오를법한 음식들이 어마어마하게 깔렸다.
‘그냥 종류별로 한두입 씩만 맛봐도 배부를 거 같은데.’
음식이 모자란 것 보다는 넘치는 편이 더 낫긴 하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음식의 양은 우리 5명이서 전체의 1/10이라도 먹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 들 정도로 많았다.
내가 지켜본 바로는 기사단장들 역시 리제를 제외하면 다들 입이 짧은 편이었고, 그 리제도 딱히 작정하고 음식을 많이 먹는 타입은 아니었다.
‘저런 것도 있네.’
테이블의 정중앙에 올려진 분수대에서 투명한 액체가 펑펑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게 뭔가 싶어서 가까이 다가가자 메이드 한 명이 순식간에 옆으로 붙었다.
“드셔보시겠습니까?”
“그 전에 이게 무슨 술인지부터ㅡ”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거절이 아니니 승낙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건지, 메이드는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순식간에 유리잔을 집어들고선 분수대 옆의 수도꼭지를 틀었다.
그 안에 채워져 있던 투명한 액체가 콸콸 흘러나오고, 유리잔이 반쯤 차자 다시 수도꼭지를 잠그더니 나를 향해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몸소 시음을 하게 된 나는 멍한 표정을 한 채 유리잔을 받아들었다. 메이드는 고개를 정중히 숙이고선 미끄러지듯 벽으로 돌아가 다시 정자세로 섰다.
멍하니 유리잔의 내용물을 홀짝였다.
‘과일주였구나.’
한 입 마시자마자 비강으로 알코올의 향기와 과일향이 확 퍼졌다. 무슨 과일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이 액체가 과일주라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짜잔, 신입! 우리 왔어!”
내가 유리잔을 거의 다 비웠을 무렵, 연회장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리제가 들어왔다. 여전히 눈 둘 곳이 없어지는 복장에 시선을 강탈하는 마력이 담긴 가슴이었다.
그 뒤로도 기사단장들이 줄줄이 따라들어왔다. 에리카와 아이리스, 클라우디아 순이었고 아우로라가 마지막이었다.
“뭐 하다 왔어?”
“뭐 하다 왔겠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을 당한 내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리제를 쳐다보았다. 리제는 내 시선을 태연히 받아넘기고선 테이블로 다가가 과자 하나를 집어먹었다.
낼름, 입술 사이에서 요염하게 내밀어진 혀가 손가락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를 핥았다.
“나중에 다 알게 될걸?”
“그러니까 어째 더 불안한데. 어떤 방식으로 알게 된다는거야?”
“자, 자! 여기까지 와서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잖아? 그냥 다 내려놓고 즐기자고!”
어느새 나타난 클라우디아가 내 어깨에 팔을 척 둘렀다. 와인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그러면 복잡한 생각 안 해도 되게 밖에서 뭐 했었는지 설명해줘도 되는거잖아요?”
“어허, 신입. 세상에는 미리 알면 재미가 없어지는 것도 있는거라고.”
“아니, 진짜로 대체 뭘 했길래 기사단장님까지 그러는ㅡ”
“일단 마셔! 마시고 생각하면 돼!”
클라우디아는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들더니 엄지손가락만으로 코르크 마개를 뽑아버렸다. 마개가 빠져나오는 특유의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코르크를 손으로 따버리네.’
그걸 한 손에 들고 병나발을 불기 시작한 클라우디아에게서 슬쩍 빠져나왔다. 바로 옆에서 에리카와 아이리스가 오묘한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너희도 말 안해줄거지?”
“유감스럽게도요, 신입 씨.”
“리제와 클라우디아가 말했던대로 나중에 알게 될테니 걱정 말도록. 단지 조급해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만 알아두면 된다.”
‘대체 뭔 작당을 하고 온거야?’
이쯤 되니 슬슬 오기로라도 무슨 대화를 주고받았었는지 알아내고 싶어지는데.
하지만 에리카와 아이리스는 엉덩이를 강조해대는 걸음걸이로 다른 두 명에게 가버렸고, 아우로라만이 어디 물어볼테면 물어보라는 듯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은 채로 서 있었다.
절대로 안 알려주겠다는 의지가 표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나한테는 안 물어봐?”
서로 눈만 마주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아우로라가 작게 툴툴거렸다.
“어차피 안 알려주실거잖아요. 괜히 힘 뺄 필요는 없죠.”
“그래도 예의라는게 있잖아, 예의라는 게. 기사단장들한테는 다 물어봤는데 이곳의 영주인 나한테만 안 물어보는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거 몰라?”
“퍽이나 그렇겠네요.”
아우로라는 손에 든 부채로 입을 가리며 푸훗, 하고 웃었다. 그러고선 조신한 걸음걸이로 내게 다가왔다. 검은색 하이힐이 레드카펫으로 장식된 바닥을 또각또각 밟았다.
“뭐, 그건 됐고. 그래서 감상은 어떤데?”
“네?”
“이 드레스 말이야. 제법 신경써서 골랐거든. 이 안에 수많은 남자들이 한 번 따먹어보고 싶어서 온갖 술수를 쓰던 여체가 있잖아. 그걸 잘 포장까지 해서 눈앞에 들이밀어줬는데, 당연히 감상 한 마디 정도는 해줘야되는 거 아니야?”
“진짜로 단어 선택 좀 조신하게 하시면 어디 덧납니까?”
내 코앞까지 다가온 아우로라가 부채로 내 입가를 톡 건드렸다. 내 입술과 맞닿은 자리에는 조금 전에 새겨진 듯한 옅은 립스틱 자국이 있었다.
아우로라의 입술 색깔과 똑같았다.
“난 조신함이랑은 거리가 먼 사람이라서. 빨리 감상이나 얘기해주는 게 어때?”
“네, 네. 예쁘시네요. 무척 잘 어울리세요. 됐죠?”
“성의가 없네, 불합격.”
톡, 이번에는 부채가 내 머리를 건드렸다.
“불합격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벌을 받아야지.”
황금빛 금안을 위아래로 감싼 눈꺼풀이 살짝 휘어졌다. 눈웃음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그 얼굴에 떠올랐다.
“여기서 실컷 즐기다 가. 그게 벌이야. 제대로 못 즐긴다면, 그때는 진짜로 가만 안 둘거다?”
말을 끝낸 아우로라가 싱긋 웃고는 다른 기사단장들처럼 엉덩이를 강조하는 자세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연회의 주역들이 다 모이자, 악단의 연주 소리가 한층 더 경쾌해졌다.
온 몸을 꽁꽁 싸매서 노출이 하나도 없는, 여기 기준으로 굉장히 드문 형태의 복장을 한 메이드가 유리잔이 올려진 은쟁반을 들고 다가왔다.
연보랏빛을 띠는 액체가 그 안에서 기포를 조금씩 터뜨리고 있었다. 술 종류가 맞긴 해보이는데, 무슨 술인지는 불명이었다.
아우로라는 유리잔 하나를 집어들고선 주위보다 약간 높게 솟아오른 단상에 올라섰다.
아이리스와 리제, 에리카도 각자 하나씩을 손에 쥐었다. 클라우디아는 이미 신나게 병나발을 불어대는 중이라 해당 사항이 없었다. 텅 빈 유리병이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메이드는 내게도 다가와선 은쟁반을 내밀었다. 나는 마지막 남은 하나를 잡았다. 이쪽을 흘긋흘긋 쳐다보던 아우로라가 나까지 참여한 것을 확인하자 팔을 위로 치켜들었다.
“자, 즐기기도 바쁠테니까 길게는 말 안할게. 그딴 좆같은 놈 밑에 있느라 고생했고, 그딴 좆같은 놈 말 듣느라 고생했고, 그딴 좆같은 놈 밑에서 순결 지키느라 다들 고생했어.”
푸흡, 나는 아우로라가 뜬금없이 내뱉은 소리에 혼자 사레가 들려 콜록거렸다. 저 미친 인간이 아까부터 계속 뭐라는거야?
날 보고 히죽거리는 모습으로 보아 무조건 의도였다. 일부러 저런 말을 해놓고 내가 어떻게 반응하나 확인하려는거다. 다른 기사단장들까지 비슷한 시선인데, 아닐 수가 없었다.
“오늘은 그걸 축하하기 위해 모인거야. 지금껏 힘들었던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즐기면 돼. 그러니까ㅡ”
아우로라는 유리잔을 단숨에 비워버렸다. 텅 빈 유리잔을 옆에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우리들에게 차례대로 눈을 마주치며 씨익 미소지었다.
“ㅡ즐겁게 놀아. 영주 명령이야.”
연회는 제법 오래 이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악단의 연주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을 정도였다. 몽롱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주변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그 동안 우리들은 실로 어마어마한 양의 술을 들이켰다. 아우로라는 의외로 술이 엄청나게 강했고, 기사단장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클라우디아는 진짜 사람이 아닌 수준이었다. 나중에는 아예 와인이 든 오크통을 직접 들고 마셔댔다. 자체 무게만 50kg에, 술을 가득 채우면 300kg 가까이 하는 물건을 말이다.
‘……와. 죽겠네, 진짜.’
나 역시 그랬다.
기사단장들은 물론이고 아우로라마저 웃고 떠드는데 나 혼자 주량을 조절한답시고 적당히 홀짝이거나 나한테 먹으라고 준 술을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어차피 설령 거절했다 하더라도 클라우디아와 리제한테 붙잡혀서 결국은 마시게 됐을거다. 그 둘이 나 혼자서 한 발 물러서는 꼴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리가 있나.
이런 속사정 탓에 나는 대체 몇 잔째인지 기억조차 안 날 만큼 술을 마셔댔고.
‘토할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거의 만취한 채로 연회장 한 쪽 의자에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었다.
세상이 핑핑 돌았다. 가만히 앉아있는데도 과일주 특유의 향기가 비강과 입 안으로 계속해서 역류했고, 팔다리를 제대로 가누기가 힘들었다. 의자에서 안 떨어지도록 하는게 전부였다.
기분이 자꾸 붕 떠서 행동을 자제하기가 힘들었다. 평소였다면 가볍게 넘겼을 신체 접촉에도 몸이 계속 반응해댔다.
내가 굳이 구석에 처박혀 앉아있는 이유도 그래서였다. 이게 정말로 내가 지닌 최소한의 이성이었으니까. 지금 리제가 유혹이라도 했다간 그대로 덮쳐버릴 것만 같았다.
“신입, 뭐해?”
‘이게 된다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리제였다. 대체 왜 리제가 유혹이라도 한다면 못 버틸 것 같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나타나는거지.
“……그냥, 조금 쉬고 있어.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흐음, 그래?”
근처에서 의자 하나를 가져온 리제가 내 바로 옆에 털썩 걸터앉았다. 과일주 특유의 달콤한 알코올 냄새가 풍기고, 그 사이사이에 리제의 냄새가 섞여들었다.
술 때문인지는 몰라도 몸의 감각 하나하나가 죄다 예민했다.
“얼마나 취했는데?”
“……조금, 많이?”
“흐으으음, 그렇구나…….”
리제의 말꼬리가 길게 늘어졌다. 뭔가 안 좋은 느낌이 들었다.
“신입.”
“……왜?”
“우리가 밖에서 왜 늦게 들어왔는지 궁금하다고 했었지?”
“……그랬었지. 그런데?”
“내가 그때 나중에 알게 될 거라고 했었잖아. 그것도 기억나?”
끄덕,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마자 머리 위에 그림자가 비쳤다. 뭔가 싶어 머리를 들었다. 날 둘러싸고 기사단장들과 아우로라가 서 있었다.
전혀 취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분명 술 냄새를 풀풀 풍겨대는데, 나와는 달리 연회를 시작할 때와 조금도 다른 곳이 없었다.
리제가 히죽 웃었다.
“지금이 그 나중이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