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55)
거미 여왕 아라크나이네라.
은빛 여명 기사단 루트에서 메인 스토리의 진행을 위해 반드시 잡아야 하는 보스들 중 하나로, 초반부에 클라우디아가 영주의 명령을 받고 토벌하러 떠난 대상이 바로 이놈이었다.
정작 본인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대략적인 위치만을 전달받은지라 설마 이런 종류의 마물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 같지만.
거미 여왕이라는 이명에서 알 수 있듯이, 아라크나이네라는 엄청나게 큰 거미의 외관을 하고 있는 보스이기도 했다.
정확히는, 하반신만.
하반신은 다리가 여덟 개 달리고 징그러운 무늬가 돋은 거미 그 자체인 외형인데, 거미의 머리 부분에 인간 여성의 상반신이 붙어있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꽤나 예뻤다. 여자 알몸을 그대로 내보내기에는 심의가 걱정됐는지 갑피로 목 밑까지 뒤덮어놓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 탓에 몬무스를 선호하는 특정 계층에겐 그야말로 컬트적인 인기를 구가했고, 굳이 몬무스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브닼 4에서 몇 안되는 미형 여성이었기에 인기가 제법 많았다.
게다가 데스신 중 하나가 그렇고 그런 부류였던지라 더더욱.
패턴 자체는 초반부 보스답게 별 것 없어서, 닼라 모드를 감안해도 10가지 남짓밖에 안 됐다. 페이즈도 하나 뿐이었고.
후반부 보스들은 평균적으로 패턴의 가짓수가 20가지를 훌쩍 넘기는 걸 감안해보면 확실히 쉬운 편에 속했다.
딱 하나, 무수히 많은 새끼 거미들을 소환하는 패턴만 빼면 말이다.
체력이 60%까지 깎여나갔을 때 한번, 그리고 30%까지 깎여나갔을 때 한번. 이렇게 총 2번에 걸쳐 등장하는 패턴인데, 그게 닼라 모드 아라크나이네라의 최고 난관이라 할 수 있었다.
바닐라에서는 그냥 거미 50마리 정도를 소환하고 마는지라 적당히 알아서 구르고 회피하고 두들기면서 일일이 다 때려잡을 수 있다. 정 귀찮으면 범위 마법으로 싹 정리하거나.
하지만 닼라 모드에서는 달랐다.
소환되는 숫자가 껑충 뛰어올라서, 60%까지 깎여나갔을 때 250마리가 튀어나오고 30%까지 깎여나갔을 때는 무려 750마리가 한꺼번에 튀어나온다. 그래서 1000마리인거다.
최소사양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컴퓨터는 두 번째 상황에서 과부하가 걸려 본체가 득음을 해버리거나 더 견디지 못하고 아예 튕겨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일단 새끼 거미들의 체력 자체는 뭐든 스쳐도 죽는 수준으로 낮았다. 1회차 기준으로 고작 1에 최고회차에서조차 11밖에 안 될 정도니까.
숫자가 너무 지랄맞게 많고, 모든 방향에서 한꺼번에 몰려드는 것 때문에 그렇지.
심지어 자기 엄마인 거미 여왕처럼 독까지 축적시킨다. 일단 새끼 거미에게 공격을 허용한다면, 경직 때문에 윽윽대다 죽거나 독 걸려서 골골대다 죽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래서 내가 지속적으로 넓은 범위를 휩쓸어버릴 수 있는 종류의 공격 마법이 필요하다고 한거야. 거기에 딱 들어맞는게 에리카 너잖아?”
아니면 불타는 골렘을 잡고 얻는 마법을 쓰거나.
새끼 거미를 안정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넓은 범위에’ ‘빠르게’ 대미지를 투사할 수 있는 공격이 필수적이었고, 그 조건에 딱 맞아떨어지는 마법이 바로 불타는 골렘 처치 보상이었다.
화염 회전 고리.
시전자를 중심으로 30초간 화염의 고리를 생성하는 마법.
시전 속도도 빠르고, 지속 시간도 나름 길고, 마나 소모도 적지만 그 대가로 대미지가 처참하리만치 낮았는데, 그 처참하게 낮은 대미지로도 새끼 거미는 한방에 보낼 수 있었으니 소환 패턴을 저격하는 용도로 제격이었다.
아예 공략법 자체가 패턴이 시작되면 마법 사용하고 죽어라 달리면서 새끼 거미들을 불태우는 짓거리를 보스룸이 말끔히 정리될때까지 반복하는거였으니 말 다한거다.
“…….”
“…….”
“…….”
내 설명을 들은 리제와 에리카, 클라우디아의 표정이 차츰 썩어들어갔다.
아이리스는 자기랑 안 맞는 마물이라면서, 우리 발목을 잡을 순 없다고 빠졌다. 어차피 성을 지켜야 할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하기도 했으니까.
“왜 델타 씨가 무조건 넓은 범위를 공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했는지 이제 알겠네요. 새끼 거미라…….”
“게다가 이빨이랑 발톱에 독까지 있다면서? 무조건 다가오기 전에 잡아야겠네.”
“처음에 거미 천 마리라고 말했을때는 대체 뭔가 했는데, 그러면 납득이 가지. 마물 중에는 군체형 마물도 있으니까 대충 비슷한 부류라고 생각하지 뭐.”
기사단장들이 한 마디씩을 내뱉었다. 셋 모두 징그럽다며 투덜대는 듯한 느낌은 있어도 아라크나이네라를 두려워하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여기야. 도착했어.”
말을 멈췄다. 기사단장들도 나를 따라 제자리에 섰다. 우리는 숲이 울창하게 우거진 어느 골짜기의 입구에 있었다.
저 안쪽은 분명 대낮임에도 나무가 너무 심하게 우거져서 어두컴컴했다. 나뭇잎 사이로 간신히 햇빛 몇 줄기가 비치는 것이 전부였다.
“척 보기에도 벌레가 많을 것처럼 생긴 장소네요.”
에리카가 질색하며 말했다. 나도 동감이었다. 게임 그래픽으로 볼 때는 몰랐는데, 직접 확인하니까 정글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좋아. 그러면 다시 점검해보자.”
스릉, 우리는 각자 무기를 빼들었다. 말은 저번에 암석 지네를 잡으러 갔을 때 썼던 그 보석으로 잘 감춰두었다.
“독이 어디에 발라져 있다고?”
“거미 형태의 하반신입니다. 인간 형태의 상반신은 상관없고요. 두어 대만 맞아도 독에 감염되니 공격 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리를 유지하라고 하셨죠.”
“거미줄 공격은?”
“될 수 있으면 피하는게 좋지만, 다른 공격과 동시에 들어오면 다른걸 피하고 거미줄 공격을 맞으랬지. 한두 방 정도는 맞아도 금방 떼어낼 수 있으니까.”
“그 이상 맞으면 못 떼어낼테니 알아서 사려야 하고.”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는 다 설명해줬으니…… 참,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우리가 싸워야 되는 장소가 조금 많이 징그러울수도 있어. 충격 받지 말라고 하는 소리야. 알겠지?‘
“……얼마나 징그럽길래?”
“말로 설명하긴 애매해. 그냥 직접 보면 알게 될테니까 마음의 준비나 해 둬.”
그냥 나중에 들러야 할 벌레 던전의 열화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반대로 말하면 아라크나이네라 보스룸의 강화판인 벌레 던전은 그야말로 상상 이상의 마굴이라는 소리겠지만.
최종 점검도 끝났겠다, 우리들은 거미 여왕의 보스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길을 아는 내가 선두를 맡고, 나머지 세 명이 각자 나를 옆과 뒤에서 감싸는 형태였다.
길은 엄청나게 험했다. 온갖 곳에 나무 뿌리가 널려서 발을 몇 번이나 헛디딜 뻔 한데다 온갖 잡초 투성이에 식물 줄기는 얼마나 억센지 제대로 잘리지도 않았다.
리제가 앞을 가로막는 식물들을 죄다 얼린 다음에 부숴버리는 방식으로 길을 트지 않았더라면 시간을 훨씬 더 잡아먹었을 것이다.
“……척 봐도 여기네. 그렇지?”
“왠지 내부 풍경이 벌써부터 예상이 가는데요.”
우리가 발을 멈춘 곳은 골짜기의 훨씬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길 앞이었다.
잡초와 나무, 그리고 식물 대신 거미줄로 뒤덮인.
리제가 바닥을 한번 퍽 밟았다가 들어올렸다. 은색 사바톤의 밑부분에 거미줄이 찐득하게 묻어났다. 발을 몇 번 터는걸로는 쉽사리 떨어지지도 않았다.
“이거, 우리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긴 해?”
“회색빛이 강한 곳은 되도록이면 밟지 마.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거야.”
게임에서도 거미줄에 뒤덮인 곳에서는 구르기가 제일 느린 구르기로 고정되고, 빠르게 걷거나 뛸 수 없어서 무조건 걸어다녀야 했다. 거미줄로 덮인 곳은 피하는 게 맞았다.
“온 사방이 회색인데?”
단지, 거미줄로 덮이지 않은 곳을 찾기가 더 힘들 뿐.
“그래서 되도록이잖아. 어쩔 수 없어.”
“이거, 태울 순 없는건가요?”
“어…… 글쎄. 잘 모르겠는데. 한 번 해보는 건 어때?”
내 말을 들은 에리카는 망설임없이 검에 화염을 불어넣어 수평으로 휘둘렀다. 거미줄을 화염이 휩쓸고 지나갔지만, 불에 타지는 않았다.
“안되네요.”
에리카는 깔끔하게 포기하고 뒤로 물러났다.
사실 처음에는 리제한테 부탁해서 바닥을 얼려버리고 가볼까도 생각했었는데, 얼음 위에서 싸우는 것보다는 차라리 거미줄 위에서 싸우는 게 낫겠다 싶어서 그만뒀다.
“그래도 저 안쪽은 나름 괜찮을거야. 들어가자.”
지금부터는 일직선으로 뻗은 길이었기에 클라우디아가 앞장서서 골짜기 안으로 들어갔다. 그 다음이 리제, 세 번째가 나, 마지막이 에리카였다.
중간에 내 허벅지까지 오는 크기의 거미들이 열댓마리나 줄지어 등장했지만 클라우디아 혼자서 대검을 휘둘러 싸그리 다 정리해버렸다.
방금 나온 것들이 거미 여왕의 소환 패턴에 등장하는 새끼 거미들이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골짜기 벽을 둘러싼 거미줄이 점점 더 두꺼워졌고, 역으로 덤벼드는 거미들의 숫자도 점차 줄어들었다. 사방에서 쿱쿱한 냄새가 풍겼다.
“……윽.”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아라크나이네라 보스룸에 도착했다. 그러자마자 에리카가 앓는 소리를 냈다. 다른 두 명도 딱히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절대 좋아보이는 기분은 아니었다.
온 사방이 초록색 알로 드글드글했다.
벽은 물론이고 거미줄로 가려진 천장과 벽 근처의 바닥까지 둥그런 모양의 알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알의 피막 너머로는 새끼 거미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보였다.
알이 놓이지 않은 곳은 거미줄로 덮였고, 거미줄로 덮이지 않은 곳은 알이 놓였다. 군데군데 박혀있는, 바싹 말라붙은 인간의 시체는 덤이었다.
“어머, 손님이니?”
알 사이에서 무척이나 요염한 목소리가 들리고, 거미 여왕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바닥에 잔뜩 깔린 거미줄 탓인지 발자국 소리는 전혀 없었다.
거리가 점차 가까워지자 마침내 그것의 모습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초록색이고 징그러운 무늬가 그려진 거대한 거미의 하반신과 거미 몸체의 머리 부분에 붙어있는 예쁜 여성의 상반신. 틀림 없는 거미 여왕이었다.
짙은 초록색의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길게 늘어졌고, 상의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탓에 회색에 가까운 창백한 피부가 가감없이 드러났다. 눈과 입술은 초록색이었다.
우리들을 확인한 거미 여왕은 마치 손님을 환영하는 것처럼 두 팔을 양 옆으로 활짝 벌렸다. 그 움직임에 맞춰 맨가슴이 크게 출렁였다.
나는 다른 기사단장들을 따라 전투 준비를 하려다가, 내가 잘못봤나 싶어 잠시 동작을 멈추고 아라크나이네라를 다시 쳐다보았다.
‘……어라?’
왜 알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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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