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58)
머리가 급박하게 굴러갔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우연에 우연이 겹치며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지라, 상황이 너무 심각하게 안 좋았다.
리제는 나를 지키면서 싸우느라 제대로 된 범위 공격을 할 수 없어서 점점 밀리는 중이었고, 클라우디아는 애초에 무기가 대검이었던지라 한계가 뚜렷했다.
아라크나이네라에게 붙잡혀 산 채로 피를 빨리기 직전인 에리카는 말할 것도 없었다.
‘방법이 있나? 있어야 하는데.’
내 얼굴로 펄쩍 뛰어 달려드는 거미를 단칼에 베어 넘기고, 다시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해결책을 생각하는 데 집중했다.
일단은 에리카를 구하는 것이 최우선 순위에 다음으로는 리제와 클라우디아가 새끼 거미떼에 압도당하지 않도록 해줘야 하는데, 그 두가지를 거의 동시에 이루어내야 한다.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 생각을 쥐어짜냈다. 각각의 상황에 대한 해결책은 떠올랐으나, 그걸 같이 처리할 수 있는 해결책은 도통 떠오르질 않았다.
두 가지를 같이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그럴 방법이…….
‘있다.’
문득, 한 줄기 광명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잘만 하면 그 두가지를 한꺼번에 처리하고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해결책이었다.
‘……가능할까?’
하지만, 이건 나조차도 성공한다는 확신이 없었다.
만약 전개가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거나, 혹은 아라크나이네라의 행동 방식이 내 예측과 다르다면 꼼짝없이 죽어야만 했다. 이번만큼은 확률에 맡기는 도박이었다.
‘아니지. 어차피 이대로 있어도 죽는 건 똑같잖아.’
나는 결심을 굳혔다. 그래. 어차피 이대로 있어도 죽는 건 똑같다.
제일 먼저 에리카가 죽어버릴테고, 체력을 회복한 아라크나이네라가 우리에게 달려들테니 에리카와 똑같이 피를 빨려 죽거나 산 채로 씹어먹혀 죽거나 둘 중 하나겠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그나마 확률이 높은 쪽에 거는 것이 맞았다.
“클라우디아!”
클라우디아를 소리쳐 불렀다. 상황이 워낙 급박한지라 존칭을 붙일 시간도 없었다. 투구를 쓴 머리가 이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벼락 폭풍! 최대 위력으로!”
내 말을 들은 클라우디아와 리제가 동시에 몸을 흠칫거렸다. 앞뒤를 다 잘라먹은 말이었지만, 저 문장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뻔한 일이었다.
“제정신이야, 델타?! 그러면 너도 죽어!”
“상관 없으니까 서둘러! 안 쓰면 다 죽는다고!”
나는 존댓말이고 예의고 다 생략한 채 윽박지르듯이 외쳤다. 클라우디아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나를 믿기로 했는지 대검을 쥐는 자세를 바꿨다.
그걸 최대 위력으로 사용하기 위한 시간을 확보하려는 듯, 주변에 사정없이 벼락을 내리치는 클라우디아를 본 나는 새끼 거미 두 마리를 한꺼번에 터뜨리며 리제에게로 몸을 돌렸다.
“리제! 너는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지?”
“난 가능한데, 델타 너는 어떡하려고?! 두 명은 무리야!”
“저기로 집어던져!”
“뭐?!”
리제가 경악을 내뱉었다.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에리카와 아라크나이네라가 뒤엉켜 있는 자리였다.
에리카는 나름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며 아라크나이네라를 밀어내고 있었지만, 그것도 한계는 명백했다. 저대로 내버려둔다면 길어야 30초였다.
“진짜로 제정신이야, 너?!”
“시간 없으니까 빨리 내 말대로 해! 그래야 에리카까지 구한다고!”
리제는 발만 동동 구르다가, 아라크나이네라에게 붙잡혀 죽기 직전인 자기 동생과 사방에서 몰려드는 새끼 거미떼, 내 말대로 벼락 폭풍을 준비하려는 클라우디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결심을 굳힌 듯, 서리 폭풍을 일으켜 주변을 싸그리 얼려버렸다.
“확실한거지?!”
“내가 안 확실했던 적 없었잖아!”
“아, 진짜! 이거 끝나고 두고 봐!”
내 발밑에 얼음으로 된 벽이 깔리고, 몸이 위로 치솟았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이 공중으로 치솟아 오르더니 아라크나이네라를 향해 똑바로 날아갔다.
시선을 살짝 돌리자 벼락 폭풍을 준비하는 클라우디아가 보였다. 치직, 그 몸에 벼락이 뭉치기 시작했다. 무릎을 어깨너비만큼 벌리고, 대검의 끝을 하늘을 향해 치켜들었다.
“얌전히 죽어, 이 조그만한 것아!”
에리카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자기 피를 빨기 위해 송곳니를 들이미는 아라크나이네라를 노려보고 있었다. 입고 있던 갑옷은 넝마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그러다가, 내가 날아오는 것을 확인하고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피 묻은 검을 확인했다. 아직 버프의 지속 시간은 충분하다. 조건은 다 갖춰졌으니, 지금부터는 몸이 이끄는대로 행동하면 된다. 나는 아래를 향해 추락했다.
검을 한 손으로 단단히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라크나이네라의 목 뒤를 움켜쥐었다. 목을 움켜쥔 왼팔에 커다란 반동이 찾아왔다. 이를 악물고 내 무게를 지탱했다.
몸이 자연스레 다음 동작으로 연결됐다. 마치, 룬 던전에서 중간 보스에게 낙하 공격을 할 때처럼.
왼쪽 다리로 거미의 갑피 부분을 밟고, 몸을 반 바퀴 돌려 아라크나이네라와 마주보며 쇄골 부분에 피 묻은 검을 힘껏 찔러넣었다.
ㅡ푸욱!
“아아아아아악!”
거미 여왕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발버둥을 쳤다. 그 탓에 에리카를 놓쳤고, 바닥으로 굴러떨어진 에리카는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근처에 널브러진 자신의 무기를 되찾았다.
나는 쇄골에 검을 꽂은 채로 소리쳤다.
“에리카! 화염 방벽! 서둘러!”
“네? 네, 네! 알겠습니다, 델타 씨!”
에리카의 손에 들린 일본도에서 불길이 일었다. 이걸로 에리카도 벼락 폭풍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을테지. 리제는 진작 방어 준비를 끝냈을거고. 이제 나만 남았다.
쇄골에서 검을 뽑아내며 다리 부분을 밟고 위로 뛰어올랐다. 내가 아라크나이네라의 앞에서 공중에 붕 떠오른 모양새가 되도록.
‘제발, 제발, 제발!’
나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라크나이네라를 보면서 속으로 빌었다. 제발 내 예측대로, 게임에서처럼 똑같이 움직여달라고 말이다.
“이 시건방진 녀석이!”
그리고 그런 내 기도에 보답이라도 하듯, 아라크나이네라가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선 나를 덥썩 붙잡았다.
‘됐다!’
방금 내가 한 행동은 일종의 패턴 유도였다. 보스들마다 플레이어가 특정한 조건을 맞추면 반드시 사용하는 기술이 있는데, 그걸 유도하는 방법 역시 당연히 존재했다.
아라크나이네라 같은 경우에는, 상반신의 손이 닿을 거리에서 점프를 하면 무조건적으로 잡기 공격을 시전한다.
일단 붙잡히면 정상적인 상황에서 그걸 자력으로 풀 방법 따위는 없으니, 제작사는 알고리즘을 그렇게 짜두면 아마 플레이어의 행동을 제약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유저들은 착탄 선딜레이가 엄청나게 긴 마법을 사용하고 일부러 적당한 타이밍에 점프를 해 잡기 패턴을 유도해서 마법을 확정적으로 맞히는 행위에 써먹었다.
마법은 마법대로 맞추고, 피격 경직 탓에 아라크나이네라가 플레이어를 놓치므로 잡기의 대미지는 대미지대로 피할 수 있다.
타이밍 맞추기가 더럽게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익혀놓으면 확실히 유용한 기술이었고, 내 노림수도 그것과 비슷했다.
리제가 만들어낸 얼음장 위에서 도약해 높이 떠오르고, 그 상태에서 낙하 공격을 시전해서 에리카를 놓치게 만들고, 검을 뽑고 내려오며 한번 더 점프해서 잡기 패턴을 유도하는 것.
‘진짜로 성공해서 다행이다.’
솔직히, 나로서도 확신하지 못했던 계획이었다.
낙하 공격으로 아라크나이네라가 에리카를 놓친다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그냥 고통을 감수하고 나를 무시한 채 에리카를 죽여버릴 수도 있었다.
게다가 아라크나이네라가 공중에 떠 있는 내게 잡기 패턴을 사용한다는 보장 역시 없었다. 땅에서 점프한 게 아니라 거미 다리를 밟고 불완전하게 도약했었으니 말이다.
둘 중에 하나만 어긋나도 그 대가를 우리들의 목숨으로 치러야 하는 계획이었지만, 그 상황에서 떠올린 방법이라곤 이것 뿐이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진짜 천운이지.’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날 붙잡은 아라크나이네라를 마주보았다.
“또 만났네. 그렇지?”
“제발로 죽으러 왔구나! 죽는 게 소원이라면 그렇게 해주겠다!”
처음의 고풍스러운 말투와 매혹적인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와 험한 말투밖에 들리지 않았다.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씹어먹어주마!”
쩌억, 이번에는 아랫배 밑쪽에 달린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그렇다고 인간의 여성기로 날 잡아먹을거란 의미는 아니었다. 거미의 입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할테니까.
물론 그건 자기가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아무래도 위치가 위치이다보니, 저걸 인간의 성기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이 정도면 안전하겠지?’
잡기 패턴의 종류는 두 가지인데, 인간의 입으로는 피를 빨아 죽여버리고 거미의 입으로는 플레이어를 씹어먹는다.
하지만 점프를 하다가 붙잡힐 경우에는 100% 확률로 아랫입을 통해 씹어먹는 패턴만 나왔다.
나를 벼락으로부터 지켜줄 두 번째 패턴 말이다.
“내가 몇 번을 말해?”
ㅡ콰르르르르릉!
등 뒤에서 커다란 천둥 소리가 들려오자 아라크나이네라는 뭔가 섬짓한 느낌을 받았는지 동작을 우뚝 멈췄다.
벼락 폭풍의 준비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천둥 소리였다. 나는 아라크나이네라의 어깨너머로 클라우디아의 모습을 살폈다.
어두운 회색빛의 강철 대검은 벼락으로 뒤덮여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지경이었고, 클라우디아 역시 그랬다. 주변에 어마어마한 스파크가 튀었다.
새끼 거미들은 미처 다가가지도 못하고 몸을 파르르 떨며 다리를 오므린 채 죽어버렸다.
“그럴 수 있으면 그래보라고.”
ㅡ콰아아아아아앙!!!!!!
이내, 벼락이 작렬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