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59)
“…….”
감았던 눈을 조심스레 떴다. 내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계획이 제대로 먹힌 듯 싶었다. 아니면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죽어서 사후 세계에 와 있거나.
곧이어 양쪽 팔을 으스러뜨릴 것처럼 조여들던 압력이 약해졌고, 나는 밑으로 떨어져 바닥에 풀썩 엉덩방아를 찧었다. 엉덩이가 욱신거리고 있으니 일단 사후 세계는 아니었다.
고개를 들었다. 내 바로 앞에 쩍 벌어진 거미의 입이 있었다. 고개를 더 들었다. 눈을 까뒤집고 입을 벌린 채로 전신을 꿈틀꿈틀 경련해대는 아라크나이네라가 보였다.
하반신에 달린 네 쌍의 거미 다리는 제멋대로 파들거리고, 인간의 팔이 아래로 축 늘어졌다. 의식은 약간 남아있는데 행동을 할 여지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나는 무척이나 멀쩡했다.
계획 성공이었다.
‘아슬아슬했네.’
마지막 순간에 내 머리 위로 벼락이 떨어지려 했을 때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을 정도였다.
만약 아라크나이네라가 나를 잡아먹기 직전까지 간 것이 아니라, 우리 둘 사이에 조금이라도 틈이 더 벌어졌었더라면 틀림없이 내가 벼락을 맞았을 것이다.
나름대로 그런 세부사항까지 다 계산해서 저지른 행동이긴 한데, 머릿속으로 숨가쁘게 암산한거라 틀린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자연스레 그런 반응이 나오게 됐다.
처음부터 클라우디아와 리제, 아라크나이네라의 방향을 보고 즉석에서 떠올린 방법이었으니까. 시간이 촉박해서 계산을 검증해 볼 시간 따윈 없었다.
‘이게 풀차지 벼락 폭풍의 위력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근처를 가득 메우고 있던 새끼 거미들은 단 하나의 예외조차 없이 모조리 감전사해서 바닥에 널브러졌고, 살아남은 놈들은 벼락의 여파가 남은 탓에 접근도 못했다.
방금 클라우디아가 사용한 것은 ‘휘몰아치는 벼락의 폭풍’이라는 이름의 기술이었다.
대검을 하늘로 치켜들며 정신을 집중했다가, 그걸 내리치면서 자신을 중심으로 원형의 충격파를 터뜨리고 근처 넓은 범위에 장판을 깔아 어마어마한 양의 벼락을 흩뿌리는 공격.
내가 최대한 세게 날리라고 한 말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듯이, 정신을 집중하는 시간에 따라 범위와 공격력이 달라진다. 끝까지 집중하면 지금처럼 보스룸 전체를 뒤덮을 수도 있었다.
바닐라에서 나오는 기술은 당연히 아니고, 닼라 모드에서 추가된거다. 경직도 높은 무기로 안 끊으면 보스룸 전체에 장판이 깔리는 억까 패턴이었다.
왜 진작부터 저걸 안 썼냐면, 피아 구분이 불가능해서 그렇다.
리제와 에리카야 각자 살아남을 방법을 하나씩 갖고 있지만 나는 그게 안 되니까. 저걸 냅다 갈겼다간 저기에 휘말려서 나도 같이 죽는다.
애초에 내가 아라크나이네라의 잡기 패턴을 유도한 이유부터가 그것 때문이지 않던가. 나 대신 니가 벼락이랑 충격파 다 처맞으라고.
“델타 씨!”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에리카가 나를 들쳐메고 순식간에 뒤로 물러났다. 거미 여왕과 나 사이의 거리가 확 벌어졌다.
몸을 돌려 에리카의 모습을 확인했다. 숨이 조금 많이 가쁜데다 전신에 자잘한 상처가 수도 없이 나 있긴 했지만, 그래도 크게 다친 곳은 없어보였다.
그 반대급부로 갑옷은 완전히 끝장났다. 투구는 진작 찢겨나갔고, 상반신은 어깨 부분만 간신히 걸친 수준에 하반신은 허벅지 아래로만 남아 있었다. 갑옷이라 부르기도 민망했다.
“에리카, 괜찮아? 다친 곳은 없어?”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
에리카가 버럭 소리치며 내 어깨를 붙잡더니 얼굴을 바싹 들이밀었다. 온갖 복잡한 감정을 듬뿍 담은 적안이 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진짜 미쳤어요? 누가 그렇게 무모한 짓을 벌이래요!”
“우리 둘 다 살았으니까 됐잖아. 너무 열내지 마. 그러면 다친 줄도 모르게 되니까. 나중에 픽 쓰러질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면 뭐가 중요한데?”
“…….”
내 반박에 에리카는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그래. 내가 어떤 정신나간 계획을 실행했든, 무슨 말도 안되는 짓거리를 벌였든, 결과적으로 아라크나이네라는 무력화됐고 우리 둘 다 목숨을 건졌다.
그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었다.
“……저번에도 말씀드린 사항입니다, 델타 씨. 마물을 토벌하다 죽는 것은, 저희 기사들에게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만약 그래야 한다면 저는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ㅡ”
본인도 할 말이 없었는지, 목소리가 살짝 부드러워져 있었다.
“나는 아닌데?”
“네?”
에리카가 순간 멍한 얼굴을 했다.
“에리카 너한테는 몰라도, 나한테는 아니라고.”
붙잡힌 어깨를 풀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접근한 에리카의 몸을 조금 뒤로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희생이라니, 아주 웃기는 소리였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절망적인 위기 상황에서도 아니고, 기껏해야 이런 초중반부 보스한테 은빛 여명 기사단의 기사단장들 중 하나가 희생한다니. 내가 그렇게 두고볼 것 같은가.
그리고 설령 그런 위기 상황이 밀어닥친다 한들 어떻게든 내 선에서 해결 방법을 찾을거다.
‘얘네들은 무조건 살려야지.’
플레이어가 먼저 통수를 치지만 않는다면, 은빛 여명 기사단의 기사단장들은 주인공을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 브닼 4에서 이 넷만큼 든든한 아군도 없었다.
어느 상황에서도 무조건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런 아군들이 죽도록 내버려 둘 리가 있나.
“……델타 씨. 그게 무슨ㅡ”
“에리카! 델타! 괜찮아?!”
에리카는 멍하니 굳은 표정으로 뭔가를 중얼거렸으나, 곧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지는 리제의 목소리에 덮였다. 무척이나 다급한 모습으로 달려온 리제가 바로 앞에서 멈췄다.
“그럼. 봐, 멀쩡하지? 이번에도 약속 지켰다?”
나는 일부러 과장되게 두 팔을 벌리며 웃었다. 리제는 그런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투구 탓에 표정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마 별로 좋은 표정은 아닐 듯 했다.
“그래.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고. 에리카 너는? 괜찮아? 다친 곳 없어?”
“네? 아, 그, 그렇죠. 네. 저도 멀쩡합니다, 언니. 다친 곳 하나도 없어요.”
리제가 괜찮냐는 질문을 하고 나서야 허둥지둥 정신을 차린 에리카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얘는 또 왜 혼자서 횡설수설하는거지.
“꺄아아아악!”
저만치에서 찢어지는듯한 비명이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비명은 아라크나이네라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느새 가까이 접근한 클라우디아가 대검으로 아라크나이네라를 두들겨패기 시작한 것이다.
대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다리가 잘려나가고, 복부가 찢어지고, 갑피가 박살났다. 그걸 본 리제와 에리카도 정신을 차린 듯 무기를 다시 쥐었다.
“그렇네요. 아직 저게 남아있었죠.”
“금방 처리할테니까, 델타 너는 함부로 움직일 생각 하지 말고 내 옆에 붙어있어.”
벼락 장판이 잦아들자 새끼 거미들이 단체로 몰려들기 시작했지만, 뭘 어떻게 해보기도 전에 리제와 에리카의 공격에 싹 쓸려나갔다.
특히 에리카는 자신이 당했던 짓의 분풀이라도 하듯 어마어마한 화염을 일으켜댔다. 불길에 닿은 새끼 거미들은 찍 소리도 못하고 잿더미로 변했다.
동굴에 살아 움직이는 인영이 다섯으로 줄어들기까지는 그닥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케흑. 헥. 하악…….”
아라크나이네라는 몸의 대부분이 뜯겨나가서 인간의 상반신만이 남은 채로, 눈물과 초록색 체액을 줄줄 흘려대며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어딜.”
“꺄아아악!”
푹, 클라우디아가 그 아랫배에 대검을 찔러넣었다. 엉망이 된 손가락이 바닥을 필사적으로 긁어댔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후우, 간신히 끝났네.”
클라우디아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선 맹독으로 범벅이 된 갑옷을 집어던졌다. 다행히 저 초록색 액체가 갑옷을 녹여먹는 일 같은건 없었던 모양이었다.
에리카는 벗어던질 갑옷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간신히 남아있던 부위도 진작에 다 떨어져나간지 오래였다.
그나마 리제가 갑옷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은색보다 초록색이 더 많았으니 무의미했다. 챙그랑, 리제도 맹독으로 범벅이 된 갑옷을 풀어헤쳤다.
땀에 젖은 흰 민소매와 자기 머리카락 색깔의 돌핀팬츠가 바깥으로 드러났다.
“그러고보니, 델타.”
민소매의 가슴 부분을 펄럭여 그 안에 바람을 불어넣던 클라우디아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아까는 상황이 급박해서 미처 물을 시간이 없었는데 말이야.”
이제 여유가 좀 생겨서 그런건지, 그 입가에 능글맞은 미소가 다시 떠올랐다. 뭘 말하려고 이러는거지.
“내가 벼락 폭풍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아, 이쪽이었나.’
순간적으로 반말 사용한 것 때문에 그런건가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클라우디아는 방금 전 같은 상황에서 반말 썼다고 그걸로 트집을 잡아댈 성격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나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면서 칭찬해줬으면 칭찬해줬지.
“리제한테 들었습니다.”
“그래? 와, 이거 아주 그냥 다 알려줬네?”
리제는 응? 하는 반응이었지만, 내 시선을 보고 자기 혼자 납득한 듯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대신 입을 뻥긋거려 빚 하나 추가, 라는 말을 전달하는 건 잊지 않았다.
“아파, 아파, 아파…… 흐윽.”
아라크나이네라는 배에 대검이 꽂힌 채, 무력하기 짝이 없는 상태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아프다는 말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앞의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치명상을 입은 절세의 미녀가 알몸으로 배에 대검이 꽂혀선 아프다고 울먹이는 상황일테니 거미 여왕이 불쌍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게 마물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그리고 에리카가 이 녀석에게 죽을 위기를 간신히 넘겼었으니 연민의 감정이란 어불성설이었다.
게다가 이미 사람을 수백 명은 죽인 마물이다. 그 시체들이 보스룸 전체에 널려있고. 저것도 어떻게든 동정을 사보려는 전략일 뿐이었다.
‘뒤처리는 맡기면 되겠지.’
기사단장들이 무기를 치켜들고 아라크나이네라에게 다가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혼자 몸을 돌려 보스룸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보스전 도중에는 거미줄로 막혀 있지만, 거미 여왕이 처치되면 들어갈 수 있는 장소로.
리제와 에리카, 클라우디아는 내가 혼자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 또 어련히 뭔가를 하고 오겠구나 싶은 생각일 것이다.
나는 아라크나이네라에게 피를 빨아먹혀 죽은 시체들이 즐비한 동굴로 들어섰다.
‘으.’
들어서자마자 환영인사를 건네는, 바싹 말라 비틀어진 인간의 시체를 본 내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바싹 말라비틀어진 얼굴임에도 아직 고통의 표정이 생생했다.
ㅡ아아아아아아아악!
‘어우, 깜짝아.’
안으로 걸어가다가 뒤편에서 들리는 비명을 듣고 제풀에 깜짝 놀라 움츠러들었다. 토벌이 끝난 모양이었다.
원래는 거미줄로 뒤덮인 벽이 길을 막고 있어야 할 장소를 지나쳐, 계속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제일 안쪽에 있는 막다른 길로 들어서자 내가 원하던 것이 보였다.
‘찾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