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61)
복잡한 황금색의 스테인드글라스 너머로 태양이 비춰들었다. 찬란한 태양빛이 닿는 모든 곳이 같은 색으로 물들었다. 성스러운 신의 색깔이었다.
황금색으로 물든 방 안에서, 내리쬐는 태양처럼 환한 금발에 녹색 눈을 가진 어느 여인이 어렴풋한 미소를 지은 채로 제일 높은 계단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의 끝에 있는 것은 환한 금발과 녹색 눈을 한 여인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방긋거리는 웃음이 되돌아왔다. 두 여인의 머리 색과 눈 색은 완전히 동일했다.
허나, 둘의 외모까지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
계단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여인은 마치 온 몸을 감싸고도 남을 듯이 풍성하게 자라난 금발이었으나,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여인은 쇄골까지 내려오는 단발이었다.
계단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여인은 자애로운 모성의 상징과도 같은 모습이었으나,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여인은 무척이나 순둥순둥하지만 장난기가 많아보이는 모습이었다.
동일한 것은 오로지 머리카락의 색깔과 눈동자의 색깔 뿐.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교황 성하?”
계단 위의 여인은 교황이었고, 아래에 있는 여인은 이단심판관이었다. 이단심판관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계단 위를 쳐다보았다.
“정화의 때가 다가왔습니다. 이단심판관이여.”
“어머.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요? 얼마 전에 악마의 흔적을 찾은 듯 싶으니 더 조사하겠다는 보고를 받은 것 같은데.”
이단심판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로 의외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교황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정화의 때, 라는 말이 가리키는 바는 정해져 있었다.
악마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것. 그러니 어떤 방법을 동원하고 무슨 희생을 치러서라도 반드시 악마와 연관된 존재들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
이른바, 성전의 개막이었다.
“알겠어요. 전투 수녀들은 얼마나 동원할까요?”
“이단심판관의 뜻대로 하시지요.”
“그러면 다 데려갈래요. 그래도 상관 없죠?”
“예. 그러셔도 됩니다.”
교황의 허락이 떨어지자, 이단심판관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볍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선 옆에 놓아두었던 무기를 집어들었다.
자신의 머리보다도 훨씬 더 큰 무게추를 단 철퇴였다. 철퇴의 무게추에는 아주 흉악하게 생긴 돌기가 솟아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무기였다.
이단심판관은 자신의 머리보다도 두 배 가까이 큰 철퇴를 가방 들듯이 가볍게 집어들어 한쪽 어깨에 걸쳤다.
“한가지 더 당부할 내용이 있습니다. 이단심판관이여.”
“네? 이번에는 뭔데요?”
철퇴를 오른쪽 어깨에 걸치고 물러나려던 여인이 발을 멈췄다.
“그때 말하였던 그 사내 또한, 이번 출정에서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계시가 내려졌습니다.”
“우와! 정말요?”
풀빛 녹안이 반짝반짝 빛났다.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와 똑같은 호기심의 감정이 듬뿍 담겼다.
“예. 그렇습니다.”
그에 화답하듯, 또 하나의 녹안이 눈웃음을 지었다.
“어디서 찾을 수 있는데요? 지금 출정하는 마을인가요?”
“그것은 알지 못합니다. 허나.”
교황이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았다.
“신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제국 변두리의 작은 마을은 나름대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가끔 굴러들어오는 마물은 주민들이 힘을 합쳐 사상자 없이 격퇴 가능한 수준에 불과했고, 드문드문 외지인이 찾아오긴 했어도 숙식을 해결하고 곧장 떠나는 것이 전부였다.
제국에 세금만 꼬박꼬박 바친다면 아무런 문제 없이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유지된다. 마을의 주민들은 그런 일상이 계속 이어지리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마물 떼거지가 들이닥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악! 살려줘!”
“같이 가!”
평화롭던 마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대체 누가 첫 불씨를 당겼는지 마을 곳곳에서 화마가 피어올랐으며, 마물에게 산 채로 뜯어먹히는 사람들의 비명이 즐비했다. 비릿한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재산을 챙길 겨를도 없이 목숨 하나만을 부지한 채로 허겁지겁 도망치는 신세로 전락한 제임스 역시 이 마을에서 유유히 살아가던 평범한 주민들 중 하나였다.
“으아아아아아아!”
제임스는 달리고 또 달렸다.
주위에서 제발 도와달라는 애원이 들려도, 마을에 닥친 참사를 보며 비통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도 모조리 무시하고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허겁지겁 도망쳤다.
내 목숨 하나를 보존하기에도 벅찬 상황이다.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쓸 겨를 따위는 없었다.
마을 전체가 불구덩이에 마물 투성이였다. 제임스는 저 앞의 대로에서 인간을 뜯어먹고 있는 마물 하나를 확인하고선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바로 옆의 골목으로 냅다 뛰어들어갔다.
그러자마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골목 안쪽에는 팔다리를 퍼덕거리며 꼭 늑대처럼 생긴 마물에게 내장을 파먹히는 어느 남자가 있었다. 아직 목숨은 부지하고 있는 듯 했으나, 부질없는 일이었다.
저 남자 말고도 희생자가 여럿 나왔는지 골목은 붉은 피로 범벅이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제임스는 비명을 지르지 못한 스스로에게 감사했다. 덕분에 마물이 자신을 눈치채지 못했으니까.
이대로 몸을 돌려 빠져나가면 된다. 제임스는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며 저 마물이 제발 고개를 들지 않기를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벌벌 떨리는 다리 탓에 속도는 턱없이 느렸다.
이제 조금만 더. 앞으로 몇 걸음만ㅡ
ㅡ콰직.
제임스는 자신의 발이 그을린 나무 판자를 밟아 부수자마자 일이 잘못됐음을 직감한 채 자리에 굳어버렸다.
어느샌가 목숨이 끊어진 남자의 시체에 코를 박고 내장을 파먹던 마물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 주둥아리에서 으르릉, 하는 소리가 들렸다.
풀썩, 다리에 힘이 풀렸다.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려왔다. 이제 몇 걸음이면 됐는데. 조금만 더 갔으면 여기서 나갈 수 있었는데.
시체보다는 신선한 인간 쪽이 더 낫다고 판단한건지, 아니면 단순히 살아있는 인간을 사냥하기 위해서인지. 마물은 시체를 밟아 짓이기며 천천히 제임스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제임스는 버둥거리며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하지만 다리의 힘이 풀린데다, 공포에 질려 팔조차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니 거리를 벌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히이익! 히이이이이익!”
마물이 괴상한 비명을 질러대는 인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 놈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도약하는 모습을 본 제임스가 눈을 질끈 감았다.
ㅡ텅!
“……?”
텅? 본래라면 들릴 수 없어야 하는 소리였다. 제임스가 살며시 눈을 떴다. 바로 앞에 무언가 커다란 물체가 있었다.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시선을 조금 더 돌렸다.
그제서야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커다란 것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방패였다. 그것도 성인 남성의 몸을 전부 다 가리고도 남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제임스를 옆으로 툭 밀치고 누군가 걸어나왔다. 한 손에는 철퇴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자기 몸보다 더 커다란 방패를 든 여인이었다. 허리까지 길게 내려온 금발에, 녹색 눈동자.
옷차림은 무척이나 성스러워 보였다.
몸을 가린 곳보다 맨살을 드러낸 곳이 더 많을 지경에, 허벅지에는 가터벨트를 맸으며 다리 사이의 치부는 땅바닥에 닿기 직전까지 길게 늘어진 넓은 천 하나로 가렸다.
치부를 가린 천에는 황금으로 수놓아진 이상한 문자가 줄줄이 적혀 있었다. 한 번도 본적 없는 문자였다.
옆구리와 허벅지가 모조리 트여 겨드랑이 밑에서 간신히 연결된 것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가슴조차도 제대로 가릴 생각이 없어보이는 옷차림이었다.
가슴을 가리는 것은 어깨에서 내려오는 삼각형의 천조각 두 개 뿐이었다. 그마저도 바람이 불거나 몸을 격렬하게 움직인다면 그대로 가슴이 드러날 것 같았다.
신의 축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저 성스러운 옷차림. 제임스는 저런 옷차림을 한 여인들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었다.
라파엘라 성국의 전투 수녀.
그것도 이단심판관 직속의 전투 수녀였다.
방금 전까지 죽음의 문턱 앞에 서 있었음에도, 제임스는 수녀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눈앞에 보이는 옷은 그 정도로 성스러운 기운이 넘쳐 흘렀다.
물론 이단심판관과 그 직속 전투 수녀들의 악명이 여러모로 자자했다는 이유도 있긴 했지만.
전투 수녀는 제임스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 방패를 철퇴로 텅텅 두드리며 마물을 도발했다. 마물은 크아악! 하는 살벌한 소리를 내지르며 수녀에게 덤벼들었다.
ㅡ퍼억!
전투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지경의, 일방적인 죽음의 선고는 아주 짧은 순간에 이루어졌다. 닿는 모든 것을 씹어삼킬 듯 덤벼들던 마물의 주둥아리는 수녀의 목에 닿지도 못했다.
그러기 전에 철퇴에 머리가 으깨졌으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마물의 머리를 터뜨려버린 전투 수녀는 무감정하게 팔을 치켜올려 두 번을 더 내리쳤다. 시체는 금방 곤죽으로 변했다. 임무를 마친 철퇴에서 피가 뚝뚝 흘렀다.
그 끔찍한 광경을 모두 지켜본 제임스의 바지가 축축해졌다. 히끅, 하는 딸꾹질이 새어나왔다. 확인 사살까지 깔끔하게 마무리 해낸 전투 수녀가 허리를 곧게 폈다.
녹색의 눈동자가 바닥에 엎어진 제임스를 향했다. 그 시선이 닿자 정신이 번쩍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도와주셔서 감사ㅡ 컥?!”
제임스가 미처 감사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전투 수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철퇴를 허리춤에 걸치고선 제임스의 뒷목을 잡은 채로 질질 끌며 골목을 나섰다.
자비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마치 짐승을 다루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제임스는 감히 반항한다거나 할 생각은 조금도 없이 찍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 우악스러운 손길에 몸을 맡겼다. 반항? 불평? 그런게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그 상태로 대체 얼마나 멀리 끌려갔을까,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제임스가 케엑, 하는 꼴사나운 비명을 질렀다. 입 안에 잔뜩 들어간 흙먼지를 퉤퉤 뱉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 이 난장판 속에서 살아남은, 마을의 주민들이었다.
하나같이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자신들이 왜 여기에 모여 있는지, 대체 뭘 하려고 이러는건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 사람이 마지막인가요?”
청아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만을 쳐다보고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울려퍼진 곳을 향했을 정도로 맑고 고운 목소리였다.
“그렇습니다. 스텔라 이단심판관님.”
“좋아요. 준비하도록 하세요.”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이상했다. 전투 수녀가 살아남은 사람들을 원형으로 둘러싸며 포위하고 있었다. 한두 명이 아니라 이곳에 모인 전부를 말이다.
물 샐틈 없는 포위망이 완성되자, 스텔라 이단심판관이라 불린 여자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이곳에 모인 다른 모든 전투 수녀들과 마찬가지로 금발에 녹색 눈을 가진 여자였다.
“자, 여러분. 여러분은 마물의 습격에서 살아남으신 운 좋은 사람들이에요. 나머지는 모두 죽거나 뜯어먹히거나 둘 중 하나인 신세가 됐죠. 비록 재산은 다 잃었지만, 살아남았으니 된 게 아닐까요?”
짝, 스텔라가 손뼉을 쳤다. 그에 맞춰 가슴이 좌우로 출렁였다. 옷차림이 전투 수녀들보다 더했다. 노출도가 어마어마하게 높았다.
이단심판관이 입을 가치가 충분할 정도로 성스러운, 신성함 그 자체인 옷이었다. 악마들은 저 옷을 보기만 해도 정화되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옷차림 때문인지는 몰라도 인상 역시 아주 순둥순둥하고 착해보였다. 말투 또한 나긋나긋한데다 입가에는 방실거리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감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서 마치 골렘처럼 느껴지는 전투 수녀들과는 전혀 달랐다.
“저도 마음같아선 이대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 전에 여러분들은 본인의 순수성을 검증받으실 필요가 있어요. 혹시 저것들에게 눈이 어지럽혀지지는 않았나, 하는 순수성을요. 아, 너무 걱정하지는 말아요. 금방 끝나니까.”
순수성? 살아남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임스도 마찬가지였다. 순수성이라니, 대체 뭘 증명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리스.”
“예, 이단심판관님.”
이리스라 불린, 제임스를 여기로 끌고 온 전투 수녀가 스텔라의 옆에 다소곳이 섰다.
“진행하세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