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63)
기회는 빠르게 찾아왔다. 발 닿는대로 걸음을 옮긴지 채 사흘도 되지 않았을 무렵, 스텔라는 그토록 고대하던 이단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신께서 인도하여 주셨어요.’
스텔라는 저 멀리서 무언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한 무리의 인간을 보며 순수한 웃음을 지었다. 정말로 순박하고 착해보이는 미소였다.
비록 그 내막은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람에 섞여 풍겨오는 악마의 냄새에, 이단을 고문할 생각으로 가득 차서 즐거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새어나오는 웃음이었으니까.
틀림 없었다. 세 명의 여자들 사이에 섞인 남자 한 명. 저 남자가 악마의 봉인을 푼 것이 분명했다.
‘헌데, 이상하네요…….’
녹색 눈동자가 이단의 주위를 살폈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푸른색 머리의 여자와 붉은색 머리의 여자, 그리고 나무에 기대어 힘없이 축 늘어져 있는 분홍색 머리의 여자. 다들 본 적 있는 얼굴이다.
제국의 황궁을 수호하는 최정예 기사단이라 불리던, 은빛 여명 기사단의 기사단장들이었다. 스텔라는 자신의 눈이 잘못되지 않았으리라 확신했다.
그런데 그런 인간이 왜 악마 숭배자와 같이 다닌단 말인가?
협박도 아니고, 속임수에 넘어간 것도 아니다. 저 여자들은 오롯이 자신의 의지로 악마 숭배자와 함께 행동하는 중이었다. 그것도 상당한 친분을 보이면서.
‘확인이 필요하겠어요.’
카이킬리아 그 여자야 성격이 조금 많이 지랄맞다지만 절대로 악마를 불러들일 인간은 아니니 넘어간다 치더라도, 그 밑의 부하들은 다르다.
혹시 카이킬리아의 눈이 닿지 않는 장소에서 암암리에 악마 숭배자들의 이단 행위가 이루어지는 중일 수도 있었다.
나중에 이단심문관에게 조사를 요청해봐야지. 스텔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한층 더 순박하게 바꾸고는, 어느새 자신의 존재를 알아챈 이단을 향해 걸어갔다.
“도움이 필요하신 듯 하네요?”
‘……누구지?’
경계를 최고로 끌어올렸다. 아라크나이네라 보스전 직후에 누군가 플레이어를 찾아오는 이벤트는 한 번도 겪어본 적 없었다. 그러니, 나로서도 이 뒤에 일어날 일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혹시 정체를 알아차리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여자를 찬찬히 관찰했다.
웨이브가 살짝 가미된 금색의 머리카락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쇄골과 어깨를 감쌌다. 앞머리 또한 눈썹과 눈가를 뒤덮고 있었다. 그 앞머리 사이로 초록색 녹안이 작게 빛났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눈길을 끌어대는 것은 노출도가 상당히 높은 수녀복이었다.
어깨를 반원형의 흰색 천이 덮었고, 그 반원형의 천에서 내려오는 삼각형의 가슴 가리개가 자신의 머리만큼이나 커다란 가슴을 아주 살짝 덮고 있었다.
당연히 그걸 고정하는 끈이나 옷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옆에서 바람이라도 불면 가슴을 그대로 드러낼 듯 싶었다. 밑과슴과 옆가슴은 아예 내놓다시피 한 상태였다.
옆구리의 옷은 거의 명치 높이까지 파여선 맨살을 보여주었다. 옆트임이 있는 자리에는 단어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하다못해 속옷으로 보이는 끈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가리는 옷 역시 아래로 길게 늘어진 수녀복의 옷자락 뿐이었고, 가슴 밑에는 버클이 단단히 조여들어 그렇지 않아도 엄청난 크기인 가슴을 한층 더 부각시켰다.
허벅지는 망사로 이루어진 검은색 스타킹이 감싼데다 발에는 하이힐이 신겨져 있었다.
‘……성국 쪽 NPC 같긴 한데, 그 이상은 모르겠네.’
외형 변경 모드가 적용되며 사제에서 수녀로 바뀐, 성국 쪽의 수녀 NPC들이 아마 저런 차림새였지 않나 싶은데. 워낙 오래전의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수녀 NPC들의 옷은 저렇게 노출도가 무지막지하지 않았다. 일단 원본이 수녀복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릴 정도는 됐었으니까.
게다가, 성국의 사제들이 아라크나이네라 보스룸 앞에는 대체 왜 나타난단 말인가? 여기서 할 일이 뭐가 있다고?
“도와줘? 우리를?”
리제가 한층 더 날카로운 기세를 내비쳤다. 허튼 짓이라도 했다간 그대로 눈앞의 여자와 무기를 맞댈 기세였다. 에리카도 분위기가 제법 살벌했다.
“네. 물론이죠. 뒤에 계신 분의 상태가 제법 위독하신 것 같은데요?”
금발의 여자가 손가락으로 클라우디아를 가리켰다. 그 제스쳐를 본 리제가 발끈하며 되받았다.
“클라우디아한테 함부로 손가락질 하지 마. 경고 했어.”
“경고? 경고라고요? 지금 저한테 경고하신다고 했나요? 풉, 푸훗, 푸하하하하핫!”
순간, 금발 여자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군살 하나 없는 매끈한 배를 부여잡고는 숨 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한참을 깔깔 웃어대더니,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 헐떡거리면서 손가락으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크흐흐흡…… 아, 정말 이렇게 크게 웃은 적은 오랜만이에요. 경고요? 저한테요? 아아, 이토록 패기 넘치는 이단은 대체 얼마만인지.”
‘……이단?’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NPC가 한 명 있었다.
이단. 그리고 수녀복.
“하지만 웃긴 건 웃긴거고. 나머지 일은 별개니까요.”
스텔라가 손을 들었다. 그에 화답하듯 어디선가 나무들이 박살나는 콰지직,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무심코 소리가 나는 방향인 여자의 뒤쪽을 쳐다보았다.
소리의 정체는 철퇴였다.
끝에 달린 무게추가 사람 머리를 두 개쯤 합쳐놓은 크기인, 통짜 쇳덩이나 다름없는 철퇴가 금발의 여자를 향해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수며 날아가고 있었다.
금발의 여자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척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외형의 철퇴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 손으로 붙잡았다. 텅ㅡ 하는 소리가 숲에 울렸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금발 여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저런 특징적인 철퇴를 사용하는 인물은 한 명 뿐이었다.
‘이단심판관……!’
태양의 교황이 직접 이끄는, 성국 최고이자 최강의 무력 집단. 그 집단의 수장인 이단심판관이 분명했다. 내 기억 속 외모와 한참 달라져 있어서 눈치를 못 챘다.
‘왜 이단심판관이 여기까지 온거야?’
금발 여자의 정체는 알아차렸으나, 아직도 저 인간이 왜 여기까지 온건지는 전혀 짐작이 가질 않았다.
성국 소속의 전투 사제들이야 제국 안에서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몇 번 마주칠 수 있긴 하지만, 이단심판관만큼은 두 교황들과 마찬가지로 성국을 벗어나는 일이 절대 없었다.
뭔가 이상했다.
“저는 태양의 교황 직속 이단심판관, 스텔라에요. 그리고 당신들은 악마를 숭배하는 이단이죠.”
콰앙! 스텔라가 철퇴를 수직으로 세우며 말했다. 살짝 내려놓은 것 같은데도 무게추가 흙 안으로 절반이나 틀어박혔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태양의 교황 직속 이단심판관이 있다면, 혹시 달의 교황 직속 이단심문관도 있을지 모른다. 한 명이 왔는데 두 명이라고 못 오겠는가.
동시에 싸우는 적의 수가 늘어날수록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브닼 4의 전투 특성상, 보스 둘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건 아무리 나라도 자신이 없었다.
“감히 성국의 사제들이 목숨 바쳐 봉인해놓은 악마를 세상에 풀어놓고도, 그 죗값을 치르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나요?”
악마, 라는 말을 듣자마자 우리는 단체로 움찔거렸다. 나는 물론 기사단장들도 내가 영주를 죽이기 위해 짜놓은 계획을 모두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사 다 제쳐놓고, 악마와 연관되었던 것은 맞았으니까.
그렇다고 우리들이 악마를 숭배했다거나 세상에 강림시키려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저 이단심판관에게는 그런 사소한 일들은 별로 중요치 않은 듯 했다.
“저희가 악마와 연관된 적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결코 성국에 이단이라고 낙인찍힐만한 행위를 한 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저희 역시 피해자에 가깝죠. 그것은 황제 폐하께서 직접 확인하셨던 일입니다. 무기를 내려주세요.”
에리카가 칼 끝을 바닥으로 향해 싸울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내비치며 차분히 스텔라를 설득하려 시도했다.
한시라도 빨리 클라우디아를 치료해야 했으니 이런 곳에서 싸움으로 낭비할 시간 따윈 없었을 뿐더러, 성국과의 싸움은 최대한 피하는 편이 맞았다.
비록 제국의 변두리까지 끌려내려오긴 했으나 실질적으로 은빛 여명 기사단은 아직까지 황제를 섬기는 몸. 자칫하다간 외교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었다.
하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스텔라는 활짝 웃으며 철퇴의 무게추를 우리 쪽으로 치켜올렸다.
“무언가 크게 착각하시고 있네요. 죄가 있고 없고를 판단하는 것은 이단들의 몫이 아닌데.”
사방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에리카가 다시 검을 치켜들었다. 스텔라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낮은 노출도를 가진 수녀복의 여자들이 우릴 포위하고 있었다.
나야 이렇다 할 직감이 없고 클라우디아는 중독에 걸려 제 컨디션이 아니니 그렇다 치더라도, 대체 언제 리제와 에리카의 감각마저 속이고 우릴 포위했는지 의문이었다.
처억, 이번에는 철퇴의 무게추가 나를 가리켰다.
“악마의 봉인을 푼 죗값은, 오직 신께서만이 심판하실 수 있으신걸요.”
“……아하. 그러니까 지금, 우리를 다 죽이시겠다?”
“죄가 있다면 죽을 것이요, 죄가 없다면 살 것이라. 당신들이 진정 악마와 연관이 없다면, 신께서 당신들을 구제하실거에요. 그런데…….”
녹안을 사이에 둔 눈꺼풀이 마치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정말로 살 수 있으시겠어요?”
“왜 못할거라고 생각해?”
리제와 스텔라 사이의 분위기가 일촉즉발처럼 변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서로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이단심판관님. 뭔가 아주 크게 착각을 하고 계신 듯 합니다. 저희가 정말로 그랬었다면, 이미 황제 폐하께서 저희를 처단하셨을ㅡ?!”
스텔라의 손에서 백색광이 뿜어져나왔다. 리제와 에리카는 동시에 눈을 가렸다. 오직 저 백색광이 무엇인지 알고 있던 나만이 재빨리 옆으로 몸을 굴러 피했다.
내가 빛을 피하는 모습을 본 스텔라의 미소가 한층 더 살벌해졌다.
무슨 오해를 하는지 안다.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빛을 피했으니, 내가 정말로 악마 숭배자라는 확신이 들었겠지. 정상적인 사람은 눈 좀 가리고 말테니까.
‘저거에 맞으면 상태 이상이 확정인데 어떡하라고?’
신성 공격에 처맞으면 걸리는 상태 이상을 떠안은 채로 전투 수녀들과 싸워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시간만 있었다면 다른 둘에게도 경고를 해줬을테지만, 애석하게도 시간이 부족했다.
피 묻은 검을 겨누며 차분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투 수녀의 숫자는 총 열둘. 사방으로 포위되지만 않는다면 아주 못 이길 숫자는 아니었다.
포위되지 않도록 하기가 더럽게 힘들어서 그렇지.
“그래. 한 번 해보자 이거네?”
온 몸에 얼음을 휘감은 리제가 먼저 스텔라에게 달려들었다. 이단심판관이 우리를 악마 숭배자라고 확신하고 있는 이상, 싸움은 필연적이다. 저쪽이 죽거나 우리가 죽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단심판관이란 그런 존재니까.
에리카도 설득을 포기한 듯 무기를 양 손으로 단단히 쥐고서 내 옆에 바싹 붙어 주위를 경계했다. 이제 남은 선택지는 싸움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리제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칼 끝이 정확히 스텔라의 목덜미를 노렸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리제는 방금 전의 백색광 때문에 상태 이상에 걸려있다는 사실이다. 그걸 알고 있는 내가 리제를 미처 멈춰세우기도 전에, 단검이 목을 파고들었다.
ㅡ푸욱!
“이런걸로는 절 못 죽이는데요?”
정확히는, 파고들려 했다.
스텔라는 리제의 공격에 직격당했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HP가 존재하는 탓에 공격 한 번으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지는 않는다지만, 그런 것과는 또 다른 개념이었다. 저건 대미지 자체를 거의 입지 않은 쪽에 가까웠다.
스텔라가 멀쩡한 것을 본 리제는 곧바로 다음 공격을 이어갔다. 이번에는 오른쪽 눈동자였다. 왼손에 들린 단검이 스텔라의 오른눈을 파고들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
허나, 분명히 단검이 눈동자를 찌르고 있음에도 스텔라는 태연한 표정이었다. 오히려 힘을 너무 과도하게 주었는지 공격을 한 리제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런걸로는 저를 못 죽인다고요.”
푸른색을 띠는 칼날은 스텔라의 눈동자에 막혀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