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65)
항상 파릇파릇한 미소가 떠올라 있던 스텔라의 얼굴이 처음으로 다른 모습을 보였다. 당황이 웃음을 먹어치우고, 경악은 여유를 집어삼켰다.
“이럴 리가…… 이럴 리가 없는데……? 어째서……?”
내가 이단이 아니라고 판명났을 때의 일은 아예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듯, 엄청나게 당혹스러운 얼굴로 끊임없이 이럴 리가 없다는 말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정신이 무너져버릴 기세였다. 동공이 쉴 새 없이 데굴데굴 굴렀다.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다리를 휘청이며 온 몸으로 자신이 받은 충격을 표출해댔다.
충격을 받은 것은 우릴 둘러싼 전투 수녀들도 마찬가지였다.
내 앞에서 혼자 스트립쇼를 펼친, 이리스라 불리던 전투 수녀는 어……? 하는 얼굴로 맨가슴과 여성기를 고스란히 드러낸 채 쩌적 굳어 있었다.
어깨와 팔을 붙잡은 손길 역시 금방이라도 뿌리치려면 그럴 수 있을 듯이 느슨해졌다. 내 뒤의 둘도 아마 이리스와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이겠지.
일단 이대로 남의 은밀한 부위들을 대놓고 쳐다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내가 기억하는 이단 판별법은 이런 공개 노출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다, 당신! 어째서…… 어째서 이단이 아닌 거죠?”
스텔라가 날 부르는 호칭이 너, 혹은 이단에서 어느새 당신으로 바뀐 사실을 눈치채고 속으로 피식했다.
나를 아직 이단이라 여기고 있었다면 저 여자의 성격상 ‘당신’처럼 친근한 호칭은 절대로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난 악마 숭배랑은 조금도 관련 없는 사람이라고 몇 번을 말해? 리제도, 에리카도, 클라우디아도 마찬가지야. 넌 그냥 헛다리 짚은거고.”
“말도, 말도 안 돼…… 분명 악마의 냄새가 나는데…….”
“그것도 에리카가 말 안해줬나? 악마와 연관된 적이 있긴 했지만 이단으로 불릴만한 행위는 한 번도 안했다니까? 우리는 분명 피해자라고 몇 번을 강조했었는데, 사람이 말하는 걸 듣긴 했어?”
“이익…… 그럼 이단이라고 판명 날때까지 해드리죠! 전부 나오세요! 나와서 이 자의 순수성을 검증하세요!”
스텔라는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다가 내 뒤를 바라보며 외쳤다. 양쪽에서 날 붙잡고 있던 전투 수녀들이 팔을 홱 놓더니 스텔라에게로 걸어갔다.
지지대가 없어지자 앞으로 기우뚱 쓰러지려는 몸을 누군가 우악스레 잡아챘다.
스텔라였다. 어느샌가 내 뒤로 다가온 스텔라는 철퇴의 손잡이와 자기 팔뚝 사이에 내 얼굴을 단단히 고정시켰다.
전투 수녀들이 한 줄로 나란히 섰다. 하나같이 속옷을 벗어 오른손에 쥐고, 나머지 왼손은 가슴 가리개에 얹고 있었다.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건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얘네들, 방금 이리스가 했던 짓을 단체로 따라하려는 게 분명했다.
“진심이야? 여기서 단체로 옷을 벗어제끼겠다고? 너넨 부끄럼도 없어?”
“시끄러워요! 이건 단순히 성복을 풀어헤치는 행위가 아니라 당신의 순수성을 검증하는거예요!”
“이미 검증했잖아?”
방금 이리스가 한 행동은 뭔데. 노출증 환자의 스트립쇼였냐.
“저런 이단의 말은 들을 필요 없어요! 시작하세요, 지금 당장!”
스텔라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말이 안 통하는 인간이다. 혹시 리제나 에리카가 도와줄 수 있을까 싶어 눈동자를 최대한 굴려 옆을 쳐다보았다.
리제와 에리카는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 둘 다 입을 반쯤 벌린 모습으로 멍하니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래서야 도움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였다.
제일 앞에 서 있던 전투 수녀가 내 얼굴에 자기 아랫배를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이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가슴 가리개와 하의를 들춰 맨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옷은 걸리적거리는 것 하나 없이 위로 말려올라갔다.
그 뒤부터는, 가슴 끝의 핑크빛 돌기와 속옷을 벗어던진 탓에 고스란히 드러난 치부를 경악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다가 풀썩 주저앉는 일의 반복이었다.
나는 반강제적으로 얼굴 바로 앞에서 압도적인 미모와 폭력적인 몸매를 자랑하는 미인들이 차례대로 스트립쇼를 펼쳐대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아주 싫지만은 않았다. 이 상황을 싫어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건 게이거나 동성애자거나 남자를 좋아하거나 셋 중 하나겠지.
하지만 이걸 대놓고 좋아하기에는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이딴걸로 이단 판별이 돼? 대체 무슨 의미가 있길래?’
속옷을 벗어던지고 가슴과 치부를 드러내는 행동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길래, 이런 짓거리로 내가 악마 숭배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는 말인가?
내가 혼란스러워하는 것과는 관계 없이, 저들의 표현으로 ‘순수성 검증’은 빠르게 끝났다.
애초에 붙잡혀있는 내 앞으로 자기들이 다가와서는 옷 들추고 경악해서 물러나는 일의 반복이었으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전투 수녀들은 모조리 다 하늘이 무너진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건 스텔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나같이 자기 믿음이 부정당한 얼굴이었다.
아니지, 일단 믿음이 부정당한 건 맞겠구나. 나를 이단으로 낙인찍은 게 신 아니면 태양의 교황일텐데, 둘 다 쟤네들 입장에서는 신앙과 숭배의 대상이니까.
“어떻, 게…… 어떻게…….”
스텔라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다리를 좌우로 벌린 채,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게 여자들만 된다는 자세였나?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된 나는 의기양양하게 스텔라와 눈을 마주치며 몸을 일으켰다.
“봤지?”
이제 내가 움츠러들 일은 전혀 없었다. 이단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단죄하지만, 반대로 선량한 사람들에게는 밑도 끝도 없이 친절한 것이 성국의 이단심판관이다.
순수성 검증이 끝났으니, 저들이 섬기는 신께서 나는 악마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확인을 해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내게 해를 가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만약 그런 짓을 저지른다면, 스스로의 신을 배반하는 행동이 되니까 말이다.
“…….”
스텔라가 고개를 푹 숙였다. 전투 수녀들도 비슷했다. 정말 어지간히도 충격이 컸던 모양이었다. 상황도 정리됐겠다, 내가 리제와 에리카를 일으켜 세워주려는 찰나였다.
“인정 못해요.”
“응?”
다시 고개를 쳐든 스텔라의 녹안이 나와 마주쳤다. 그 눈에는 이글거리는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살짝 긴장한 채로 피 묻은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설마 막무가내로 덤벼들 셈인가.
“제가 직접 검증해봐야겠어요.”
다행히 무작정 내게 덤벼들려는 건 아니어보였기에 속으로 안도했으나, 긴장을 풀지는 않았다. 자기가 직접 검증할거라니,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저러는거지.
“납득할 수 없어요. 악마의 봉인을 풀고 그걸 훔쳐가기까지 한 자가, 어째서 이단이 아니라는거죠?”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스텔라가 오른손목을 콱 붙잡았다. 순간 눈살이 확 찌푸려질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이거에 비하면 전투 수녀들이 날 붙잡은 힘은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스텔라는 내 팔을 자신의 가슴 앞까지 끌어당기더니, 다른 손으로 가리개를 들추고 그 밑으로 집어넣었다. 가리개 밑으로 감춰진 손에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움켜쥐세요.”
“뭐?”
“못 알아들은건가요, 못 알아들은 척 하는건가요? 꽉 움켜쥐라고요.”
뭘 움켜쥐라고? 라는 말로 되묻기에는, 그 대상이 너무 명백했다. 지금도 내 손바닥에 느껴지고 있는 물컹한 감각. 당연히 이걸 주무르라는 말을 한 것이리라.
“공개 노출로도 모자라서, 이제는 가슴까지 만지라고?”
“순수성을 검증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에요. 왜, 이단으로 판명날까봐 두렵나요?”
“…….”
나는 일단 팔을 뿌리쳐보려 시도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딘가에 단단히 붙잡힌 수준이 아니라 그냥 손목과 손바닥이 하나로 합쳐졌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손목이 한층 더 바싹 끌어당겨졌다. 내 손바닥이 그대로 스텔라의 가슴에 파묻혔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가슴이 부드럽게 찌그러지며 살이 약간 솟아올랐다.
이걸로도 모자랐는지, 스텔라는 다른 손으로 내 손등을 꾸욱 누르며 한층 더 깊게 파묻었다. 물컹, 무심코 손바닥을 쥐었다.
“……읏!”
그러자, 스텔라의 입에서 읏, 하는 옅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 신음을 듣고 뚝 끊어지려는 이성을 간신히 이어붙였다. 여기서 허튼 짓을 했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
“이건, 대체……?”
내가 이성을 유지하려 필사적으로 내면의 갈등을 겪고 있는 동안, 스텔라는 방금 전보다 더 경악한 목소리로 나와 눈을 마주쳤다. 풀빛 녹안이 파르르 떨렸다.
팔목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자연히 내 손은 가슴에 한층 더 깊게 파묻혔다. 그건 전혀 개의치 않은 채로, 스텔라가 입을 열었다.
“어째서…… 어째서 신에 대한 믿음이라곤 조금도 없는 당신한테 신성한 힘이 느껴지는거죠……?”
스텔라의 충격적인 발언에, 단체로 넋을 놓고 있던 전투 수녀들마저 정신이 번쩍 든 듯 나를 쳐다보았다. 조금 전의 리제와 에리카보다도 더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아, 그거였나. 갑자기 이러길래 뭔가 했네.’
스텔라나 전투 수녀들의 반응과는 별개로 나는 태연했다. 갑자기 목소리를 쫙 깔고 다급하게 입을 열길래 뭔가 해서 잔뜩 긴장했었는데, 별 거 아니었다.
방금 스텔라가 한 말은 게임에서도 플레이어가 이단심판관을 처음 만났을 때 볼 수 있는 작은 이벤트였다.
플레이어야 자기 입맛대로 스탯을 올릴 수 있으니 나처럼 신앙을 거르고 신성력만 무작정 올리는 짓도 가능하지만, 브닼 4 세계관의 사람들은 그런 행동을 못하니까.
신앙이 깊어지면 신성력 역시 자연스레 갖추게 된다는 게 성국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니 신앙도 없는 주제에 신성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당황스럽기 짝이 없을 것이다.
우리로 치면 배터리도 없는 스마트폰이 멀쩡히 작동하는 모습을 확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참고로 신앙이 신성력보다 높으면 가진 믿음에 비해서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적으니 더 열심히 수련하라는 말을 하고, 신성력이 신앙보다 높으면 가진 믿음에 비해서 발휘할 수 있는 힘이 많으니 신의 사랑을 받는 게 분명하다고 껄껄 웃는다.
그 밖에도 신앙과 신성력을 하나도 안 올렸을 때, 두 스탯이 전부 다 99일 때, 둘 중 하나만 99일 때 등등 온갖 바리에이션이 많아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쩌면…….”
스텔라가 멍한 표정으로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렸다. 그 입술이 나를 향해 다시 한 번 달싹이며 뭔가를 말하려는 순간, 누군가 스텔라의 손을 콱 붙잡았다.
“너 지금 뭐하냐?”
리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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