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66)
리제는 두 눈을 살벌하게 치켜뜬 채로 스텔라의 손목을 꽈악 붙잡고 있었다. 날 붙잡은 스텔라의 손이, 스텔라를 붙잡은 리제의 손이 파들파들 떨렸다.
사실 스텔라가 지금껏 저지른 일들을 돌이켜본다면 리제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클라우디아가 중독에 걸려 한시가 급한 상황인데 뜬금없이 나타나서는 우리를 이단이라고 선언하며 앞길을 가로질 않나.
전투 수녀들이랑 같이 우리를 포위하더니 신성 주문으로 선제 공격을 한 것으로도 모자라 공방이 오가는 와중에 리제를 조롱하고.
나중에는 기어이 이단을 판별한답시고 눈앞에서 단체로 옷을 풀어헤친데다, 심지어는 내 손으로 가슴을 주무르게 만들기까지 했다.
리제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화를 내고도 남을 행동 뿐이었다.
‘솔직히 의외라면 의외긴 한데…….’
내가 브닼 4의 세계관에 빙의당한 이후로, 상식이라는 단어는 끊임없이 패배만을 기록해왔었다. 전부 다 여기에 적용된 모드들 때문이었다.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모든 여자들이 흠잡을 곳 하나 없는 미인에, 반쯤 헐벗고 다니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실내에는 온갖 현대적인 물품들이 즐비하다.
내 경험으로만 본다면 이단을 저런 식으로 판별한다고 해도 아주 이상한 상황은 아니었다. 원래 외눈박이 마을에서는 두 눈 멀쩡히 달린 사람이 괴물이라고들 하니까.
이단심판관과 그 직속의 전투 수녀라는 여자들이 저런 옷을 입고 다니는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들 납득 못하겠는가.
“내 말 안들려? 지금 뭐하냐고 묻고 있잖아?”
스텔라가 반응이 없자, 리제는 눈살을 한껏 찌푸리며 스텔라의 팔목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내 손을 가슴으로 밀어붙이는 힘이 조금은 가벼워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손바닥에 닿는 물컹한 감촉이 점차 멀어지고, 가슴 가리개 밑에 숨겨져 있던 손등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리제는 스텔라의 손을 완전히 뿌리쳤다.
팔이 풀려났다. 아직도 손바닥에 가슴 특유의 온기가 남아있는 기분이었다. 아쉽다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걸 티내고 싶지도 않았다.
에리카도 어느새 정신을 차렸는지 무기를 빼들고선 스텔라와 전투 수녀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얼굴이 아주 살짝 붉어져 있는 것은 덤이었다.
그에 반해, 스텔라는 오히려 아까 전보다 훨씬 더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멍하니 뭔가를 중얼거리다가 리제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듯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뭘 봐? 눈 안 돌려?”
물론 곧바로 리제에게 저지당했다. 리제는 스텔라의 손아귀에서 억지로 내 손목을 분리한 다음 스텔라를 뒤로 홱 밀었다. 스텔라는 휘청이며 몇 발자국 물러났다.
나는 붙잡혔던 손목을 다른 손으로 살살 문질렀다. 다행히 멍이 들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얼마나 세게 잡고 있었던건지 손목이 다 얼얼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나는 스텔라를 경계하듯 내 옆에 찰싹 달라붙은 리제를 바라보았다.
“이제 정신이 좀 들었나보네? 방금 전까지 넋 놓고 있더니.”
“네가 큰일나기 직전인데 정신이 안 들게 생겼어?”
리제가 단검을 양 손에 각각 하나씩 쥐었다. 근처에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에리카는 어디로 갔나 했더니 클라우디아의 옆에서 얼굴과 목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고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되먹은 상황이야, 델타? 쟤들이 왜 네 앞에서 성복을 벗어대는건데?”
“나도 몰라. 자기들끼리 이단을 판별한다더니 저러고 있잖아.”
“모른다고? 진짜로?”
리제의 눈초리에는 약간의 의심이 담겨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해결해 온 일들을 떠올려보면 이번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 법도 했다.
하지만 이건 나도 진짜로 모르는 일이었다.
이단심판관이 여기까지 찾아온 것도 처음 겪는 상황인데, 설마 이단을 판별한답시고 사용한 방법이 공개 노출에 가슴 만지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흐음…… 알았어. 믿을게. 너라면 이런걸로 우리한테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테니까.”
리제는 나를 잠깐동안 지긋이 응시하더니, 아는 것이 없다는 내 말을 깔끔하게 수용하고 다시 스텔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스텔라는 아직도 멍하니 굳은 채로 뭔가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고, 전투 수녀들은 얼이 빠져선 무릎을 꿇고 땅에 엉덩이를 붙인 자세로 앉아 있었다.
약간은 섬뜩하기까지 한 광경이었다.
“그래서, 쟤들이 왜 저러는지도 몰라?”
“저건 대충 알아. 나한테 신성력이 느껴져서 저러는 거 같던데.”
“……신성력이라고?”
리제는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델타 너 모든 능력치가 퇴화됐다며. 그런데 너한테 신성한 힘이 왜 느껴져?”
‘아, 그러고보니까 이걸 말 안해줬었네.’
말해야지 말해야지 하고 있었는데 그냥 까먹어버렸다. 그러니 아직도 내가 모든 스탯이 1인줄로만 알고 있는 리제는 저런 반응을 보일 수 밖에.
“나 이제 스탯들 조금 올랐어. 더 이상 1 아니야.”
“어? 진짜로?! 그런데 왜 지금까지 말 안했어?!”
“말하는걸 까먹었어.”
“…….”
샐쭉하게 변한 푸른 눈동자가 나를 흘겨보았다. 나는 그 눈동자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슬쩍 피했다.
그래. 변명처럼 들리는 건 안다. 하지만 진짜로 사건이 계속 벌어진 탓에 말하는 걸 까먹어서 그랬다.
영주 일이 마무리되고 황제를 접견했다 돌아가자마자 얼마 뒤에 금빛 황혼 기사단이 나를 감시한다고 찾아왔었다가, 그 다음에는 이네르마가 나타났다.
또 그 다음에는 룬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암석 지네를 잡으러 갔고, 룬을 얻은 뒤에는 아우로라와 기사단장들이 서로 짜고 나한테 술을 먹여 비밀을 캐내려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황당함이 좀 가시니 스탯이 올랐다는 걸 털어놔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메인 스토리를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고.
“아무리 봐도 수상해, 델타. 쟤들이 이럴거라는 사실도 미리 다 알고 있었던거지?”
“……진짜로 아니야.”
나는 애써 변명을 했고, 리제는 나를 의심이 한층 더 깊어진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결국에는 시선을 거두어들였다. 후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저건 어떡할까?”
리제가 단검으로 스텔라를 가리켰다. 충격에서는 조금 벗어난 듯 싶었지만, 나를 보는 시선 자체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여태까지는 겉으론 순둥순둥하면서도 어딘가 자신감이 넘치는 시선이었다면, 지금은 온갖 고뇌와 고민으로 범벅이 된 시선이었다.
“글쎄. 그냥 저대로 내버려두고 가도 되지 않나 싶은데.”
“가슴 만지면서 이단이 아니라는 걸 확정받았으니까?”
“……불가항력이었어. 진짜야. 내가 쟤 힘을 무슨 수로 이겨? 너랑도 비등비등하잖아.”
“뭐가 됐든 가슴 만지면서 좋았을거잖아. 그렇지?”
“…….”
할 말이 없어진 내가 입을 다물어버리자, 리제가 웃으며 입술을 내 귓가로 가져갔다.
“그런걸로 델타 널 책망할 생각은 없어. 그건 남자의 본능 같은거고, 충분히 납득해줄 수 있거든. 그러니까…….”
ㅡ나중에 내 것도 만져.
그 말을 끝으로 귓가에서 입술이 멀어졌다. 나는 잠깐 멍하니 서 있었다가, 내가 방금 뭘 들은거지? 하는 눈으로 리제를 쳐다보았다. 나중에 뭘 하라고?
시선이 무심코 아래를 향했다. 리제의 움직임에 맞춰 흰 민소매 안에서 출렁출렁 흔들리는 풍만한 모성의 상징이 있었다.
가뜩이나 옷도 얇은데 속옷조차 안 입고 있어서 흔들림이 엄청났다. 스텔라도 크다고 말할 수 있는 사이즈였지만, 실질적인 크기라면 아마 리제가 조금 더 클ㅡ
“관심이 가?”
내 시선을 단박에 눈치챈 리제가 의미심장한 눈웃음을 지으며 오른팔로 가슴을 슬쩍 찌그러뜨렸다. 나는 애써 시선을 돌렸다. 리제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거기, 당신.”
그러다가, 갑자기 들려온 스텔라의 목소리에 우리 둘 다 흠칫 놀라선 고개를 돌렸다. 리제와는 달리 나는 무기까지 빼들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경계를 풀지도 않았다.
“당신에 대해서는, 더 이상 제가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에요.”
스텔라의 뒤에서 전투 수녀들이 주춤주춤 일어섰다. 얼굴은 여전히 멍했으나 동작까지 멍하지는 않았다. 절도 있는 손놀림으로 철퇴와 방패를 주워들고 있었다.
“니가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면 뭐? 어떻게 해결하려고? 다시 한 판 붙기라도 하게?”
“그러니, 나중에 라파엘라 성국에 들리세요. 교황 성하를 알현할 수 있도록 해드릴게요.”
스텔라의 말에 나는 물론이고 옆에서 으르렁대던 리제까지도 깜짝 놀랐다.
태양의 교황을 볼 수 있도록 해준다니, 성국에서 교황이 갖는 위상을 생각해본다면 정말로 큰 결심이었다.
게임에서도 교황을 만나려면 사전에 엄청난 숫자의 퀘스트를 진행해야 하고, 중간 과정을 대폭 쳐낼 수 있는 꼼수를 쓴다 해도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교황한테 얻어야 하는 주문 때문에 어떻게 만나야할지를 고민중이었는데 이게 왠 떡이지.
“성국에서 제일 큰 문으로 향하세요. 그 앞의 성기사에게 스텔라 이단심판관이 교황 성하와의 접견을 허락했다고 말하면 돼요. 안내를 받을 수 있을테니.”
“……우리한테 그렇게까지 해주는 이유가 뭔데?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까 미안하다거나 뭐 그래?”
“어쩌면 당신이 교황 성하께서 말씀하셨던 사람일수도 있으니까요.”
“그게 무슨ㅡ”
내가 교황이 말했다는 게 뭐냐고 되묻기도 전에, 스텔라가 오른손을 들었다. 그 손바닥 위에 백색광이 모였다. 백색광을 맞고 감화에 걸렸던 경험이 있는 리제가 몸을 움찔거렸다.
반대로 나는 침착했다. 저건 감화를 거는 신성 주문의 형상이 아니었다. 내 기억상으로는 아마 치유 쪽의 신성 주문일텐데.
ㅡ신의 손길이 닿으라.
스텔라의 주문과 함께 부드러운 백색의 빛이 뻗어나가 클라우디아의 몸을 감쌌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도 폐가 찢어질 듯 기침을 해대던 클라우디아가 멀쩡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 옆에 있던 에리카의 눈이 동그래졌다.
클라우디아가 회복되자, 리제도 조금은 경계를 누그러뜨린 듯 천천히 단검을 아래로 내렸다. 표정으로 보아 아직까지 스텔라가 마음에 들진 않는 듯 했다.
“당신을 멋대로 이단이라 칭한 점, 대단히 죄송했어요. 사과드릴게요.”
스텔라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기사단장들은 너무 확 바뀌어버린 스텔라의 태도가 적응이 안 되는지 오묘한 눈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나도 그랬다.
“성국에서 기다릴게요. 최대한 빨리 방문해주시길.”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스텔라는 전투 수녀를 이끌고 조용히 등을 돌렸다. 우리는 그 떠나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스텔라 이단심판관님, 그 남자는…….”
“저도 알아요, 이리스.”
성국으로 돌아가는 길. 스텔라와 그 휘화의 전투 수녀들은 아직도 넋을 놓다시피 한 채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그 자가 이단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고, 심지어는 믿음조차 없는 주제에 신성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스텔라와 전투 수녀들이 받았을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교황 성하께 돌아가서 이 사실을 알려야만 해요.”
그래. 이번 일은 반드시, 최우선적으로 교황께서 아셔야만 했다. 스텔라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어쩌면, 저 남자가 태양의 교황께서 말씀하셨던 ‘선지자’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