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7)
감옥을 빠져나오고 사흘 쯤 흘렀을 무렵, 우리는 어느 도시의 성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아이리스가 속한 기사단이 있다는 도시였다.
일단 외형은 내 기억 속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성문의 크기나 생김새도 대강 비슷했고, 앞에 경비병이 서 있는 것도 같았다.
대신 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 마차와, 각양각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길다란 행렬을 이루는 일 따윈 없었지만.
아이리스와 나를 동시에 태우고 내리 사흘을 달렸음에도 지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 말이 위풍당당하게 사람과 마차들의 행렬을 지나쳐 경비병에게로 다가갔다.
“오셨습니까, 아이리스 기사단장님!”
경비병들은 아이리스를 보자마자 정자세를 취하더니 바싹 군기가 든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영주…… 님께 은빛 여명 기사단의 제2 기사단장이 복귀했다고 일러라. 보고를 위해 찾아가는 일은 조금 뒤로 미루겠다고도 이르고. 나는 할 일이 있어서 먼저 성으로 돌아가겠다.”
“예, 알겠습니다!”
‘그 영주 새끼는 안 바뀐 모양이네.’
아이리스가 영주 뒤에 님, 이라는 존칭을 붙이려다 한참을 망설이는 걸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게임에서도 이 도시의 영주는 플레이어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쳐죽일 수 있는 악인이었다.
영주 처리 퀘스트를 조금 빨리 시행하면 아이리스가 좋아하지 않을까. 극단적으로 앞당기면 보스 하나만 더 잡고 그놈을 바로 조져버릴 수도 있는데.
“그런데, 뒤에 타신 분은……?”
의심의 눈초리가 뒤에 타고 있는 날 향했다.
아이리스가 옷을 구해다주었기에 맨몸에 치부 가리개 하나만을 달랑 걸친 신세에서는 벗어났지만, 경비병의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인간이 자기 도시의 기사단장이랑 같은 말을 타고 있으니까 뭔가 싶기는 할 것이다.
“신경쓸 것 없다. 이 자의 신원은 내가 보증하지.”
“알겠습니다. 그러시다면야…….”
말꼬리를 흐리긴 했어도, 아이리스가 내 신원을 보증한다고 말하자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아이리스는 경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말을 몰아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길거리의 풍경을 머릿속에 든 브닼 4의 도시 내부 지도와 대조하고 있자니, 새삼스럽게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여러모로 신기하네.’
게임에서 생략된 점을 그대로 반영시킨 부분도 있고, 반대로 현실과 똑같은 법칙을 따르는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우리들은 여전히 음식을 먹지 않으면 굶어죽는다. 하지만 반대로 화장실을 갈 필요는 없었다. 무언가를 아무리 먹고 마셔도 그것들이 밖으로 배출되지 않았으니까.
애초에 아이리스의 머릿속에는 배설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실제로 나는 여기 와서 화장실을 간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러고도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생기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분명 브닼 4에서는 배고픔 게이지와 배설작용이 둘 다 구현되어 있지 않음에도, 어느 하나는 현실처럼 작용하고 다른 하나는 게임 속 법칙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참…… 뭐라고 해야 하나. 눈이 호강한다고 해야 하나.’
모드의 영향인지,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남성과 여성의 외모 차이가 정말 극명하게 갈리고 있었다.
남자들은 평범하게 생겼다. 게임 속 NPC의 모습을 그대로 빼다막은 사람도 종종 보였고, 굳이 그런 게 아니더라도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사람처럼 생긴 게 대부분이었다.
반면에 여자들은 피부에 잡티라곤 찾아볼 수 없는데다, 예쁘다는 수식어를 아무한테나 막 갖다붙여도 듣는 사람이 납득할만큼 대부분이 미모가 출중했다.
현실이었다면 길 가는 사람들을 백이면 백 뒤돌아보게 만들 수준의 외모인 아이리스도, 군계일학급이 아니라 주변에 널리고 널린 평범한 여자들보다 조금 더 예쁜 정도에 불과했다.
‘그게 엄청나게 예쁘다는 말이긴 하지만.’
성별에 따라 나뉘는 것은 외모 뿐만이 아니었다. 옷차림도 외모와 마찬가지로 성별에 따라 극명하게 갈렸다.
남자들은 게임의 배경이 되는 세계관에 걸맞게 적당히 중세스러운 천으로 옷을 짜 입었는데, 여자들은 전부 다 노출도가 제법 있는 현대적인 의복을 입고 있었다.
짧은 청바지에 반팔티라든가, 배꼽을 그대로 보여주는 크롭티라든가,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이라든가, 극단적으로는 알몸에 와이셔츠 한 장만 입는다든가 뭐 그런것들 말이다.
게다가 남자는 여자가 그런 복장을 입고 다니는 걸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겼다.
대로변에서 와이셔츠 한 장만 달랑 걸친 여자가 활보하고 다녀도, 속옷이 훤히 노출되는 크롭티에 레깅스를 입고 길거리에 서 있어도 누구 하나 음흉하게 쳐다보지 않았다.
여자들도 거의 헐벗다시피 한 옷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고. 단체로 상식이 개변당한듯한 세계였다.
‘뭐, 나한테 나쁠 일은 없지.’
예쁜 여자들이 발에 채일만큼 많은데다, 옷차림은 현대적이고, 하나같이 노출이 많다고 해서 나한테 해로울 일이 뭐가 있겠는가.
단지, 내가 알던 오리지널 브닼 4의 꿈도 희망도 없이 멸망해가는 세계와 괴리감이 좀 심하게 많이 느껴졌을 뿐이었다.
“이곳이다.”
도시 안으로 얼마나 들어갔을까, 아이리스는 어느 거대한 성 앞에서 말을 멈췄다. 높다란 성벽이 주위를 감싸고, 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커다란 구멍만이 휑하니 뚫려 있었다.
“성이네?”
게임에서는 그냥 평범하게 연무장 딸린 기사단 건물이었는데.
“낡은 성이지. 원래는 그 놈이…… 크흠, 영주가 거주하던 성이었다만, 우리에게 여길 떠넘기고 자기는 따로 저택을 지어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기사단이 들어간거고.”
말투가 별로 바뀐 점이 없어서 그렇지, 아이리스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나를 훨씬 더 편하게 대했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서로가 서로에게 나쁜 감정을 가질 이유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리스는 주인공을 너무 쉽게 믿는다는 점이 밈으로 번질 만큼 플레이어에게 강한 신뢰를 보여주는 NPC고, 나 역시 괜시리 아이리스를 적대해서 자체 하드모드를 선택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보니 감옥에서 도시로 같이 복귀하는 3일동안 자연스레 거리가 좁혀진 것이다. 내가 아이리스에게 반말을 하는 이유도 그래서였다.
자기가 기사단장이긴 하지만, 기사단의 사정이 사정인지라 굳이 격식을 차릴 필요는 없다나.
“떠넘겼다고? 그게 뭔 뜻이야?”
“네가 우리 기사단에 들어오고 나서 직접 보여주도록 하겠다. 여기서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직접 경험해보는게 훨씬 더 나을테지.”
이건 정말로 내가 모르는 사항이었다. 원작 게임에서 은빛 여명 기사단의 숙소는 평범한 연무장이었고, 영주가 저택에 있긴 했지만 성을 버렸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스토리가 바뀐 것만 아니라면 좋겠는데.’
그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성벽 안을 반 바퀴쯤 돌았을까, 아이리스가 말을 멈춰세웠다. 바로 옆에 빼꼼히 열린 나무 문이 보였다. 그 안에서 말들이 투레질을 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가 마구간인 듯 했다.
“여기서 기다려라. 금방 돌아오지.”
“너는?”
“말을 매어놓고 올거다. 얼마 안 걸릴테니 잠시면 된다.”
알았다고 대답하며 땅으로 뛰어내리자, 아이리스는 말을 몰고 열린 나무 문 틈 사이로 사라졌다. 아이리스가 건물 안으로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경험 두 번은 사절이다, 진짜로.’
말 타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건 아니었다. 게임에서 말을 아무리 오래 타더라도 캐릭터가 불평하지 않듯이,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아예 몸이 피로감 자체를 느끼지 않는 듯 했다.
문제는 자세였다.
아이리스 혼자서 감옥에 오는데 말을 두 필이나 끌고왔을 리는 없으니, 우리가 같이 돌아가려면 자연히 내가 아이리스의 등 뒤에 타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그래, 흰 민소매 한 장과 짧은 돌핀팬츠 하나만을 입은 여자의의 등 뒤에 말이다.
심지어는 잡을 곳이 마땅히 없으니 자신의 허리나 어깨를 붙잡으라고까지 했다. 어중간하게 말을 붙잡고 버티다가 달리는 와중에 낙마하기라도 하면 죽을 수도 있다면서.
그게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나는 얌전히 부드럽고 말캉한 느낌이 드는 허리를 껴안았고, 덕분에 말을 타는 내내 하반신을 진정시키려 온 힘을 쏟아부어야 했다.
저런 황당한 복장을 정상적인 옷차림으로 인식하는 건 모드로 인해 상식 개변이 일어났다 치더라도, 빳빳이 솟은 막대기가 자신의 엉덩이를 쿡쿡 찔러대는 게 무얼 의미하는지까지 모르지는 않을테니까 말이다.
심지어 크기는 또 더럽게 커서, 어떻게든 그걸 아이리스의 엉덩이에 닿지 않게 하려고 허리를 뒤로 멀리 뺀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느라 여러 가지 의미로 무척 힘들었다.
그나마 도시에 들어와서는 천천히 걷기만 했던지라 몸을 안 잡아도 돼서 다행이었다.
진짜로.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해?”
뜬금없이 옆에서 처음 듣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화들짝 놀란 내가 고개를 들었다.
“안녕!”
푸른 머리에, 흰 민소매와 푸른색 돌핀 팬츠를 입은 여자가 바로 옆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