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71)
“도착했습니다.”
셀레네의 무기질적이고 무감정한 목소리와 함께, 나는 다시 땅에 발을 디뎠다. 어지럼증은 빠르게 가라앉았다. 머리가 약간 핑 돌기만 할 뿐, 다른 증상은 없었다.
“…….”
하지만 기사단장들은 달랐다.
아이리스도, 클라우디아도, 리제도, 에리카도. 너나 할 것 없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엎어진 채 속에 든 것을 게워내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중이었다.
처음 순간이동을 했을 때는 어지럽다고 비틀거리며 말을 할 정도는 되더니, 두 번째부터는 일어서는 것만으로도 벅차 보였고, 세 번째부터는 아예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갑옷은 진작에 벗어던진 지 오래였다. 저걸 쓰고 있으면 머리가 징징 울려대서 어지럼증이 몇 배는 더 길게 지속된다나. 벗어던진 갑옷은 옆에 고이 모셔놓았다.
기사단장들이 저러고 있으니, 결국 순간이동 사이의 휴식 시간도 점차 길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제야 왜 셀레네가 하필이면 호위라는 명목으로 우릴 데리러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저런 상태로 적과 싸우는 게 가능할 리가 있나. 일어서지도 못하고, 속에 든 걸 게워내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중인데.
그냥 원래 계획대로 마차를 타고 성국으로 향했더라면 호위는 굳이 필요 없었을테지만, 성국의 대성당까지는 아마 개월 단위로 소요됐을 것이다.
셀레네가 순간이동으로 옮겨준 덕분에 중간중간 휴식 시간을 고려하더라도 하루만에 도착했던거지.
“괜찮아, 리제?”
“…….”
리제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푸른 눈동자가 네 눈에는 이게 괜찮아 보이냐고 말하고 있었다. 하긴, 척 보기에도 안 괜찮아보이니 괜한 질문이었다.
자세가 자세인지라 가슴이 상체와 바닥 사이에 짓눌려 옆으로 부드럽게 퍼졌다. 퍼진 옆가슴이 겨드랑이 밑으로 한참을 삐져나왔다. 저런 모습으로도 탄력을 멀쩡히 유지하고 있었다.
정작 본인은 눈앞이 핑핑 도는 탓에 자기가 저런 모습인지도 모르고 있는 듯 했다. 만약 알았다면 틀림없이 나한테 유혹 겸 장난을 쳤겠지.
“제가 할 일은 끝났습니다.”
셀레네는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기사단장들을 깔끔하게 무시하고선 손에 들린 신성 촉매에 힘을 불어넣었다. 주변에 깔린 회색과 은색의 빛무리가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언젠가 다시 뵐 수 있을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그 손에 들린 신성 촉매가 빛을 발했다. 셀레네의 모습이 자취를 감추고, 달의 흔적이 사라졌다. 포근한 태양빛이 그 빈자리를 메웠다. 노란색을 섞은 백색광이 지천에 깔렸다.
기사단장들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회복까지는 시간이 제법 많이 필요할 듯 싶었기에, 나는 얌전히 옆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엄청나네.’
모든 곳이 흰색이었다. 길거리의 모든 건물과 그 지붕이, 눈 닿는 모든 곳이, 하다못해 대로변에 깔린 타일마저 전부 다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대로변의 타일은 분명 흰색임에도 티끌 하나 없이 순수하기까지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경건한 모습으로 걷고 있는데, 발자국은 물론이고 흙조차 묻지 않았다.
NPC의 설명으로는 이 교황청 전체가 신성력으로 보호받고 있어서 그렇다던가. 게임에서는 대충 넘겼는데, 실제로 눈앞에서 보니 기적이나 다를 바 없었다.
저렇게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접 보여주는 세계관이니, 사람들이 종교에 빠지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잠시 스쳐지나갔다.
다만, 진짜로 내 눈길을 끄는 점은 따로 있었다.
‘……여자들 옷차림이 왜 저렇게 건전하지? 모드 제작자가 귀찮아서 건너뛰었나?’
바로 제국과는 180도 다른 성국 여성들의 옷차림이었다.
크롭티에 미니스커트 따위는 노출 축에도 못 끼는 제국 여자들의 옷과는 달리, 성국의 여자들은 현대적이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몸을 꽁꽁 싸맨 옷이 대부분이었다.
맨살이라곤 목 위로 드러난 얼굴이 전부인 패션도 심심찮게 보였고, 노출이 있다고 해도 기껏해야 한쪽 허벅지를 살짝 드러내거나 검은색의 민소매를 입는 것이 전부였다.
제국에서처럼 가슴을 끈 하나로 가리고 속옷이나 다름없는 핫팬츠 같은 걸 입은 여자는 눈을 씻고 둘러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건전한 풍경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단심판관이 특이한 부류였을지도.’
스텔라는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야하기 짝이 없는 수녀복을 입었고, 그 휘하의 전투 수녀들도 바람 한 번 불면 그 안이 훤히 드러날만큼 노출이 심했다.
그런데 성국의 길거리에 있는 여자들은 전신을 꽁꽁 싸매고 있으니, 자연스레 걔네들이 이상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으으으…….”
내가 성국 여자들의 단정하고 조신한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며 심신을 가라앉히는 동안, 기사단장들이 정신을 차렸는지 비틀거리며 일어서기 시작했다.
“머리는 좀 어때? 나아졌어?”
“……일어설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아직 제대로 걷지는 못하겠다만.”
제일 먼저 일어선 아이리스를 부축해 근처 나무에 기대주었다. 아이리스는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이마를 감싸쥐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에리카와 클라우디아를 차례차례 부축해주고, 마지막으로 리제에게 손을 뻗었다. 리제는 얌전히 내 손에 몸을 맡겼다.
왼팔을 어깨에 걸친 다음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어 일으켜 세웠다. 내 손은 어정쩡하게 허공을 휘적였다. 여기서 더 들어갔다간, 위치상 리제의 밑가슴에 손이 닿아서였다.
아니, 이것만으로도 오른쪽 팔뚝에 옆가슴이 비벼지고 있었다. 인간의 신체 구조상 부축해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연신 속으로 되뇌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거, 두 번 하고 싶지는 않아. 갈 때는 시간 오래 걸려도 마차 타고 가자.”
리제가 몸을 살짝 틀더니 내 품에 얼굴을 푹 파묻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다른 기사단장들도 그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어지간히도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정신이 좀 들어요?”
우리 등 뒤에서 쾌활한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본 적 있는 음성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스텔라와 그 휘하의 전투 수녀들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혹시나 또 이단이니 어쩌니 말하려는 게 아닐까 하고 잠시 긴장했었지만, 아무도 무기를 들고 있지 않은 모습에 마음을 놓았다.
“이제 뭐 마실 정신은 있어보이니까, 이것부터 마셔요.”
스텔라의 손짓에 전투 수녀들이 다가와 각자의 손에 들린 포션 비스무리한 병을 땄다. 그리고는 기사단장에게 한 명씩 다가가 그 입에 병의 주둥아리를 들이밀었다.
기사단장들은 얌전히 전투 수녀들이 먹여주는 포션을 받아먹었다. 저런 행동에 일일이 반항할 힘조차 없는 듯 했다.
‘저거 제법 비싼건데.’
감화를 제외한 모든 상태 이상에는 그걸 해제할 수 있는 소모품이 하나씩 배정되어 있었다. 감화는 그걸 파훼할 방법이 신성력과 신앙을 왕창 올리는 것 뿐이라 논외였고.
모든 상태 이상을 해제해주는 방법 역시 당연히 존재했는데, 마법으로 하나, 신성 주문으로 하나, 소모품으로 하나였다.
이 중에서 소모품은 오직 성국에서만 제값으로 구매 가능한 물건이었다. 제국에서도 아주 못 살건 아닌데, 중간에 상인 놈들이 더럽게 떼먹는지 성국보다 거의 10배는 비쌌다.
마지막 전투 수녀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수녀는 내 품에 거의 안기다시피 한 리제에게 포션을 먹이려다가, 우리 자세를 보고선 잠시 멈칫 하더니 대신 날 향해 그걸 들이밀었다.
“나보고 먹이라고?”
끄덕. 내게 억지로 포션병을 쥐어준 전투 수녀가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왼손에 포션병을 들고 리제를 툭툭 건드렸다.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스읍거리며 숨을 들이쉬던 리제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왜?”
“나보고 너한테 이거 먹여주래.”
왼손에 들린 포션병을 찰랑찰랑 흔들었다. 리제는 그걸 흘끗 곁눈질하더니 자세를 바꿨다.
내 어깨에 둘러진 팔을 풀어 아랫배 앞에 다소곳이 모은 다음, 내 오른팔에 등을 기대며 완전히 체중을 실었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살짝 뒤로 젖혀 하늘을 쳐다보고 입을 벌렸다.
벌려진 입술 사이로 새하얀 치아와 침을 삼킬 때마다 꿈틀거리는 목젖, 선홍색의 혀와 그 사이에 약간 고여있는 투명한 타액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뭔가 이상한 생각이 자꾸 떠오를 것 같았기에, 급히 포션병의 주둥아리를 입에 물리고 기울였다.
리제는 꼴깍꼴깍 소리를 내며 포션을 삼켰다. 정정해야겠다.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 것 같은게 아니라,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리제의 표정을 보니 더더욱 그랬다.
나는 포션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넣어준 뒤, 그렇고 그런 생각이 내 머리를 지배하기 전에 황급히 병을 뗐다.
푸하, 하고 리제가 혀를 반쯤 내민 채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병 주둥아리와 혓바닥 사이에 아주 얇은 은빛 실이 늘어졌다가 허공에서 툭 끊겼다.
“델타 너, 방금 나한테 길다란 막대기를 물려주고 그 안에 든 액체를 먹인거지?”
“……헛소리 하는 걸 보니까 멀쩡해졌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일어서기나 해.”
리제는 내 손을 잡고 얌전히 일어서는가 싶더니 옆에 달라붙어 슬쩍 가슴을 부벼왔다.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다른 기사단장들 역시 언제 바닥에서 빌빌거렸냐는 듯 멀쩡한 모습으로 일어서 있었다.
“제법 비싼 포션이에요. 비싼 값은 충분히 하죠?”
“그 말대로군. 호의에 감사한다.”
“감사 인사는 됐어요. 우리가 먼저 당신네들 오해했었잖아요? 멀쩡한 사람을 이단으로 몰았는데, 그 죄를 갚으려면 아직 한참 모자라죠.”
스텔라는 그러면서 셀레네가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자리를 흘끗 살폈다.
“교황청에 이렇게 빨리 도착한 것도 그렇고, 달의 신성력이 남아있는 것도 그렇고. 이단심문관이 여기 왔다간 듯 하네요. 맞나요?”
“그렇다. 이단심문관이 우릴 도와줘서 하루만에 도착할 수 있었지. 조금…… 많이 힘들긴 했다만.”
“하여간 착해빠져서는…… 따라와요. 교황 성하가 계신 곳으로 안내해드릴테니.”
‘뭐지?’
방금 스텔라의 낯빛이 살짝 어두워졌는데. 뭔가 짜증이라기보다는 우울이나 슬픔에 가까운 감정이 떠올랐었다. 너무 잠깐이라서 확신은 못하겠지만.
기분탓인가.
“여기가 대성당이에요. 교황 성하께서 거주하시는 곳이죠.”
대성당은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고개를 한참 꺾어 위를 쳐다보아야 간신히 꼭대기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게임상으로도 거대한 건축물이었는데, 실제로는 훨씬 더 컸다.
건물 전체가 노란색과 흰색의 벽돌, 그리고 황금빛의 장식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 솟아오른 첨탑은 단어 그대로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
외형 역시 엄청나게 복잡했다. 내 눈으로는 대체 구조가 어떻게 되어먹은건지조차 파악하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스텔라는 성당 건물에 가볍게 예를 표한 다음 옆으로 돌아갔다. 주변에는 아예 바닥에 무릎을 꿇어가며 기도하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대성당을 한참이나 돌아 건물의 뒤편으로 향한 스텔라가 정문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문을 가리켰다. 반쯤 열린 문에서 태양처럼 따스한 빛이 새어나왔다.
“여길 지나면 바로 교황 성하께서 계신 곳으로 연결될거예요. 교황께서 직접 당신들의 알현을 허락하셨으니 자잘한 절차는 모두 생략했거든요.”
척, 그 가녀린 손가락이 나를 향했다.
“대신, 당신 먼저예요. 나머지는 제가 들어가라고 하면 들어가요.”
“나는 일단 명목상 신입 기사인데? 서열 순으로 기사단장들부터 들어가는 게 맞지 않아?”
“당신들이 여기 왜 왔다고 생각하는거죠?”
그 한마디에 바로 납득했다. 당장에 우리들이 여기로 오게 된 계기부터가 나 때문이었으니까.
스텔라가 문 옆으로 비켜섰고, 전투 수녀들이 우리를 호위하듯이 감쌌다. 비슷한 상황을 겪어보긴 했지만, 그때와는 달리 분위가 험악하지도 않았고 손에 무기를 들고 있지도 않았다.
나는 등 뒤로 따끔따끔하게 꽂히는 시선을 느끼며 빛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눈꺼풀을 콕콕 찔러대는 빛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가, 빛이 조금 잦아든 듯 하자 조심스럽게 떴다.
“드디어 제게 오셨군요.”
눈을 뜨고 제일 먼저 마주한 것은 태양이었다.
아니, 마치 태양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화려한 무늬의 스테인드글라스와, 그 스테인드글라스보다 더 화려하고 풍성한 금발이었다. 금발 여인의 뒤로, 후광이 비쳐들고 있었다.
여인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쩌적 굳어버렸다. 머릿속이 깨끗이 표백되고, 떠오른 생각이 모조리 녹아 없어졌다.
그 따스하고 포근한 분위기에 압도당해서도, 스테인드 글라스의 화려함과 여성의 미모에 홀려서도, 자비롭고 자애로운 여인의 목소리에 감화되어서도 아니었다.
일러스트보기 Click
“태양의 이름으로 그대를 환영하겠습니다. 한 때 이단이라 불렸던 자여.”
‘저게…… 뭐지?’
여인의 옷차림.
‘옷인가?’
눈앞의 여성이 입은, 무지막지한 노출도의 옷차림 때문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