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73)
“……저를 만나고 싶었다니요?”
이건 또 대체 어떻게 되먹은 상황인가 싶었다. 내가 대체 뭘 했길래 황제로도 모자라서 태양의 교황까지 날 만나고 싶었다느니 신경을 쓴다느니 한단 말인가.
플로레타는 내 의문에도 아랑곳 않고 방실방실 웃으며 내 손 이곳저곳을 만져댔다.
손등끼리 맞댄 채 천천히 쓸어보기도 하고, 손가락을 조물대거나 꼬옥 감싸쥐기도 했다. 태양의 교황이라서 그런건지 체온이 무척이나 높게 느껴졌다.
그렇게 내 손을 한참동안이나 만지작거리던 플로레타가 입을 열었다.
“신께서 제게 계시를 내리셨으니까요. 머지 않아 빛이 찾아오리라는 계시를.”
‘어?’
플로레타의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더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4의 첫 번째 DLC인 ‘깨어나는 악’을 사면 진행 가능한, DLC 스토리의 시작을 알리는 바로 그 대사였다.
‘……그런데, 그 대사가 왜 지금 나오지?’
교황이 한 말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나니 더 어안이 벙벙했다.
게임을 정석대로 진행한다면, 해당 DLC는 본편의 메인 스토리를 어느정도 끝낸 이후에야 진입 트리거가 활성화 된다.
아직 필수 보스도 다 못잡고 메인 스토리 진행도 제대로 못한 상황에, 뜬금없이 플레이어를 성국으로 초대해서는 신이 계시를 내려주었다고 스토리를 시작시키진 않는다는 뜻이다.
심지어 해당 DLC의 스토리는 본편으로 따지자면 후반부 지역에 해당했고, 지금의 내 스펙으로는 건드리기에 한참 모자랐다.
잡몹은 상관 없다. 내가 스펙을 따지는 이유는 순전히 해당 DLC의 최종 보스인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 때문이었다.
보스룸에서는 어느 특정한 룬의 착용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데다, 보스 자체도 신성 계열의 공격에만 제대로 된 피해를 입는지라 무장이 반쯤 고정되기까지 했다.
그런데 플레이어가 준비가 됐든 말든, 일단 스토리가 시작되는 순간 게임이 사실상 타임어택으로 변해버린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교황에게 저 말을 들은 시점에서 메인과 서브를 가리지 않고 총 25개의 퀘스트를 클리어하거나, 5기의 보스를 토벌한다면 최종 보스가 성국 지하에서 지각을 갈아엎으며 깨어난다.
최종 보스가 깨어나면 성국은 멸망하고, 해당 회차에서 성국과 연관된 모든 퀘스트를 진행할 수 없게 되며, 제국 역시 막대한 피해를 입어 스토리가 크게 비틀린다.
놈을 그 상태로 더 방치할 경우에는 아예 결말이 꿈도 희망도 없는 엔딩으로 고정되어버리기까지 했다.
‘그건 절대로 안되지, 시발.’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사라진 세계에서 혼자 가만히 앉아 굶어죽을 날을 기다리라니, 무조건 사절이었다.
“괜찮으신지요?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십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부정적인 생각에 골머리를 앓다가, 플로레타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현실로 돌아왔다. 걱정을 가득 담은 녹안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네요.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당신께서 사과하실 필요는 조금도 없습니다.”
플로레타는 그렇게 말하며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쿡쿡 웃었다.
“하지만, 정말 특이하신 분이시로군요. 저를 앞에 두고도 다른 생각을 하실 수 있다니. 정말 강인한 심장을 가지신 분인 듯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태양의 교황을 앞에 두고 딴생각을 했다? 무례하다며 지금 당장 철퇴에 대가리가 으깨져도 할 말이 없는 짓이었다.
이유는 몰라도 플로레타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었기에 넘어간거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몸 성히 나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생각이 모두 끝나신 듯 하니 다시 여쭙겠습니다. 이제 의문이 조금은 풀리셨습니까?”
“…….”
풀렸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더 깊어졌으면 깊어졌지.
갑자기 해야 할 일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보스전을 대비해 룬 던전을 클리어해야 하고, 신성 무기를 구하거나 버프를 찾아다녀야 하고, 경험치를 벌어 힘 스탯도 올려야 했다.
‘일단 DLC 스토리가 최우선이야.’
최종 보스가 깨어나는 조건이 퀘스트 25개 혹은 보스 5마리인데, DLC의 스토리만 진행해도 퀘스트 13개에 보스 3마리를 무조건 거치게 되니 실질적인 한도는 그것보다 훨씬 더 적었다.
게다가 퀘스트나 보스만 건드리지 않으면 시간도 흘러가지 않는 게임 속과는 달리, 지금은 그냥 숨만 쉬어도 시간이 계속 흘러갈 것이다.
무조건 DLC 스토리부터 처리하는 편이 맞았다.
“……교황 성하, 계시라니요? 델타가요?”
이제야 충격에서 벗어난건지, 리제가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 푸른 벽안이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불안을 가득 담은 눈동자가 나와 교황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저 역시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합니다. 한낱 인간의 몸으로 어찌 감히 신의 뜻을 이해하겠습니까?”
내 손을 놓은 플로레타가 부드러운 눈초리로 싱긋 웃었다. 보는 사람의 마음마저 편안해지도록 만드는, 무척이나 자애로운 미소였다.
하지만 리제에게는 별 소용이 없는 듯 했다. 그 고개가 푹 숙여지고, 꽉 쥔 주먹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계시의 내용을 알려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교황 성하?”
“원하신다면 그리하겠습니다. 허나, 신께서 내려주시는 계시는 온전한 것이 아니랍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의 해석에 따라 수십 가지의 결론이 내려질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래도 괜찮으신지요?”
“네. 괜찮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석본이라면 대충은 외우고 있었다. 교황의 말마따나, 계시의 내용은 플레이어의 행적을 가리키는 것이 맞았다.
인간 우호 루트에서는 세계를 먹는 자와 싸우는 모습이 묘사되고, 인간 적대 루트에서는 황제나 교황과 싸우는 모습이 묘사되고, 생명 절멸 루트에서는 괴물 그 자체가 된 모습이 묘사되는 식이다.
물론 인간 우호 루트를 제외하면 이런 온건한 분위기에서 들을 순 없었다. 태양의 교황 보스전을 치르고 다 죽어가는 교황에게서 간신히 챙겨듣는 정도니까.
“암흑으로 뒤덮인 장소에서 밝은 빛 하나가 걸어가고 있습니다. 빛이 닿는 자리마다 암흑이 사라지고, 수많은 인간이 그 뒤를 따르며 안식을 찾고 있지요. 암흑 속에서 수많은 괴물들이 덤벼들고 있으나, 모두 빛에 녹아 사라집니다.”
“…….”
어라.
은빛 여명 기사단 루트라면 저 설명이 나와서는 안 되는데.
“빛이 걸어가는 길의 끝에는, 인간이 감히 상상조차 불가능한 존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빛은 절대 겁먹지도, 물러서지도, 주저하지도 않고 그 존재를 향해 나아가지요. 계시는 이 장면에서 끝났습니다.”
“그렇다면…… 교황 성하. 그 빛이…… 델타를 의미한다는, 말인가요?”
“해석은 인간의 몫이니 정해진 답은 없지요. 허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저 분을 처음 알게된 날, 신께서 제게 계시를 내려주셨으니까요.”
플로레타의 말이 끝나자, 기사단장들의 시선은 도로 날 향했다. 각양각색의 눈동자가 온갖 복잡한 감정을 담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중에 또 이게 뭔 소리냐며 추궁당하게 생겼다.
‘빛이라…….’
해석 자체는 간단했다. 플로레타가 말한 ‘인간이 상상조차 불가능한 존재’란 브닼 4의 최종 보스인 세계를 먹는 자를 뜻하는 단어였다.
인간 적대 루트나 생명 절멸 루트를 타지 않는 이상은 무조건 최종 보스로 세계를 먹는 자를 상대하게 되니, 여기까지는 내가 예상한대로다.
그런데 플레이어를 빛으로 지칭하는 건 내 예상과 한참 달랐다. 최소한 은빛 여명 기사단 루트에선 들을 기회가 없는 표현이었다.
“성함이 델타라고 하셨습니까? 당신께서는ㅡ”
ㅡ또각.
말이 끊어졌다. 또각, 하는 하이힐 소리가 홀에 울려퍼진 탓이었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플로레타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고, 기사단장들은 평범한 운동화였고, 내가 하이힐 소리를 냈을 리도 없었다.
플로레타의 얼굴이 점차 굳어가기 시작했다. 어딘가 슬퍼보이는 모습에, 어딘가 울먹이는듯한 모습이었다. 하여간 절대로 좋은 얼굴은 아니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우리들도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쓸데없는 행동을 하고 계십니다, 태양의 교황.”
어둠이 빛을 몰아냈다. 정확히는, 백색광이 황색광을 몰아냈다. 또각또각 하는 하이힐의 걸음소리에 맞춰 주변이 달빛으로 뒤덮였다. 내리쬐던 태양은 힘없이 사그라들었다.
황금 사이로 은빛이 퍼져나갔다. 마치 한밤중에 떠오른 보름달이 그대로 내려와 우리 앞에 강림한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으나, 누구인지를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달의 교황이시여. 어인 일로 이런 누추한 곳까지 행차하셨는지요?”
달의 교황.
플로레타의 입에서 그 이름이 흘러나오자,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정녕 몰라서 그러십니까.”
대성당 안에 달이 떠올랐다. 짙은 은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여인이, 아랫배 앞에 손을 모은 채 태양의 교황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무의미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품는 행위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리라 여기십니까?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십니까?”
달의 교황이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으며 플로레타에게로 향했다. 달의 교황과 태양의 교황. 성국 최고의 권력자들 사이에 낀 신세가 된 우리들은 옴싹달싹도 하지 못했다.
그 걸음은 플로레타에게서 고작 몇 발자국 떨어진 곳까지 옮겨지고서야 움직임을 멈췄다.
“운명은 바꿀 수 없습니다. 진실을 외면해서도 안 됩니다. 설령 태양과 달이라 할지라도, 이미 정해진 길을 걷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바꿀 수 없다면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럴 것입니다.”
플로레타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절대로 언니를 포기하지 않을ㅡ”
ㅡ짜악!
침묵이 감돌았다. 눈앞에서 펼쳐진 일을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달의 교황이 오른손을 휘둘렀고, 그 손바닥이 플로레타의 뺨에 닿았고, 짜악 소리가 울려퍼졌고, 플로레타의 머리가 오른쪽으로 돌아갔고……
기사단장들은 상황을 이해하자마자 헛숨을 들이키며 굳어버렸다. 나 역시 그랬다.
달의 교황이, 태양의 교황의 뺨을 때린 것이다. 그것도 맞은 부위가 시뻘겋게 물들며 살짝 부풀어오를만큼 강하게.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맞은 쪽은 분명 플로레타인데, 정작 그 녹안에는 동정심과 안쓰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심지어는 어딘가 슬퍼보이기까지 했다.
“그리 부르지 말라 했습니다, 태양의 교황.”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