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74)
“…….”
달의 교황이 태양의 교황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눈앞에서 지켜본 우리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갔다. 교황 두 명이 같은 장소에 모인 상황부터가 게임에서 본 적이 없는 일인데, 저런 행동을 보여주기까지 하는 건 더더욱 예상 밖이었다.
나는 차분히 둘의 대화를 되짚어보았다.
달의 교황이 무의미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태양의 교황을 질책했다. 그 희망이라는 건 본인이 직접 말했던 운명이니 정해진 길이니 하는 말과 연관된 것일테고.
운명은 바꿀 수 없다, 태양과 달이라도 정해진 길을 걸어야 한다는 말에 플로레타는 언니를 포기할 수 없다고 항변하려다 뺨을 맞았었지.
‘여기서도 교황끼리 혈연 관계인가보네.’
그 둘이 자매라는 사실 자체는 전혀 놀랍지 않았다. 게임에서도 태양의 교황과 달의 교황은 형제였으니까. 모드로 성별이 바뀌었다면 당연히 자매가 됐겠지.
내가 정말로 고민해봐야 할 점은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였다. 일단, 게임처럼 상대방을 소 닭보듯 생각하는 관계는 아닌 듯 했다.
그랬었다면 달의 교황이 여기를 찾아올 일도, 태양의 교황이 침울한 눈을 할 일도 없었을테니.
“……예, 죄송합니다. 달의 교황이시여.”
플로레타의 얼굴에서 웃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슬픈 눈동자로 달의 교황을 바라보던 플로레타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건넸다.
“아신다면 됐습니다.”
달의 교황이 손을 거두어들였다. 원하던 대답을 얻어냈는지 찬바람이 쌩쌩 부는 모습으로 몸을 돌리더니, 다시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이힐 소리는 내 바로 옆에서 멎었다.
섬짓한 기세를 내뿜는 보라색의 눈동자가 날 향했다. 전체적으로 이단심문관인 셀레네와 거의 닮은 외모였으나, 달의 교황쪽이 훨씬 더 성숙한 느낌이었다.
“달의 교황의 이름으로 경고하겠습니다. 이방인.”
보석과 비교해도 절대 밀리지 않을 아름다운 자안이 섬짓하게 치켜떠졌다. 날 향한 눈동자에는 명백한 적의가 깃들어 있었다.
태양의 교황이 날 본 적도 없으면서 꼭 만나고 싶었다며 이상할 정도로 호의를 보내던 것과 반대로, 달의 교황은 날 본 적도 없으면서 이상할 정도로 적의를 내비쳤다.
저런 부분까지 정반대일 필요는 없지 않나.
“저희 자매들의 일에 간섭한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헛된 망상을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헛된 망상?’
난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뭐가 헛된 망상이라는건지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시겠습니까?”
대답이 늦자 곧바로 섬뜩한 경고가 되돌아왔다. 목소리에서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무언가 내 목을 단단히 옥죄는 기분이었다.
여기서 달의 교황과 척을 져봐야 좋을 일이 없었기에,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교황 성하.”
내 대답을 들은 교황이 다시금 무표정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홀에는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만이 울려퍼질 따름이었다.
회색의 인영은 어느 순간 마치 눈이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분명 그 뒷모습을 쳐다보는 중이었는데, 햇빛이 빈자리로 내리쬐고 나서야 달의 교황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달이 없어지자 달빛도 점차 희미해졌다. 어둠과 백색광이 사라진 자리를 따스한 태양빛이 메웠다. 우리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플로레타를 쳐다보았다.
플로레타는 달의 교황에게 얻어맞은 뺨을 한 손으로 감싸쥔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일방적으로 폭언과 폭력을 당했음에도 그 얼굴에서 분노라는 감정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슬픔과 동정심이라는, 폭력의 피해자가 지니기에 무척이나 모순된 감정만이 자리잡고 있을 뿐이었다.
자기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들을 알아차린 플로레타가 급히 표정을 가다듬었다. 약간 붉게 부풀어올랐던 뺨이 말끔히 가라앉았다. 얼굴에는 다시 방긋거리는 웃음이 떠올랐다.
하지만 바로 직전에 보여주었던 슬픔으로 가득 찬 얼굴 탓에, 오히려 더 안쓰러워 보이는 모습밖엔 되지 않았다.
“추태를 보여드렸습니다.”
“……교황 성하, 방금은?”
“별 일 아닙니다. 그저 단순한 의견차이였을 뿐이지요. 조금 전의 일은 잊어주시겠습니까? 부끄러운 치부이기에 그렇습니다.”
자애로운 웃음과 함께 건네진 말이었으나, 동시에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궁금한 점이 아주 많아보이던 기사단장들조차 그 말을 거스르지 못했다.
물론 잊어달란다고 결코 잊을 수 있는 기억도 아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플로레타의 웃음이 살짝 자조적으로 바뀌었다.
“오늘의 만남은 여기까지인 듯 합니다. 무례한 요청이 아니라면, 혹 성국에 며칠 더 머물러주실 수 있으신지요? 최고의 대접을 약속하겠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여기서 더 머무르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했는데 마음 편히 쉴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은색 눈동자와 분홍색 눈동자가 이쪽을 흘끗 돌아보았다. 실질적인 서열 1위와 명목상의 서열 1위가 자연스럽게 내 의견을 구하는 모습을 보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결국 대답을 내가 해야 할 모양이었기에,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렇다면 염치 불구하고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교황 성하.”
“어려운 결정에 감사드립니다.”
그 몸에서 태양빛이 피어올랐다.
ㅡ이단심판관이여.
플로레타의 목소리가 은은한 원형의 파장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신성력이 담긴 언령의 일종인 듯 했다. 파장이 우리를 훑고 지나가자 포근한 감각이 전신을 감쌌다.
홀의 문이 벌컥 열렸다. 스텔라가 싱글싱글 미소를 지으며 걸어들어왔다.
“네. 부르셨어요, 교황 성하?”
“귀빈들에게 거처를 제공하여주시지요.”
“알겠어요. 자, 귀빈님들? 따라오세요. 교황 성하가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걸 보니 며칠은 여기 머무르셔야 할 것 같으니까요. 걱정은 접어두셔도 돼요. 제일 좋은 자리로 드릴테니.”
우리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 대성당을 나섰다.
초록색의 눈동자가 차츰 멀어져가는 우리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쳐다보고 있었다.
스텔라가 안내해 준 건물은 엄청나게 고급스러웠다. 기사단장들의 말로는 제국의 황궁과 비교해도 전혀 꿇리지 않을 장소라나.
나는 액체 속에 빠져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푹신한 침대 위에 누워 앞으로의 일을 밤새 고민했다. 생각 정리를 간신히 끝내니 어느새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었을 정도였다.
아니, 사실 고민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진작에 정해져 있었으니까.
DLC의 최종 보스를 잡는 것. 그게 무조건 1순위였다. 방치하면 성국이 멸망하고 제국까지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는데 어떻게 내버려두겠는가.
이미 스토리가 완전 꼬여버리다시피 했으니 DLC의 스토리도 게임과 똑같이 흘러간다는 보장은 없지만, 방치의 결과가 세계 멸망이라면 언제나 최악의 결과를 상정하는 편이 옳았다.
그리고 ‘깨어나는 악’ DLC의 첫 번째 퀘스트는 이거였다.
“저와 대련을 하고 싶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태양의 교황 직속 이단심판관인 스텔라와 모의 보스전을 치르기.
결국 밤을 꼬박 새워버린 나는, 새벽같이 움직여 이단심판관과 전투 수녀들이 훈련을 하는 장소로 향했다. 어차피 그대로 누워있어봐야 할 것도 없었다.
스텔라는 게임과 똑같은 장소에서 전투 수녀들과 대련을 펼치다가 연무장에 들어선 나를 보고 팔을 멈췄다.
“이유는요?”
“한 판 붙는데 굳이 이유가 필요할까요?”
나는 게임에서 이단심판관이 플레이어에게 대련을 신청하며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그 말을 들은 스텔라의 얼굴에 이것 봐라, 하는 감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입에서 나온 대답은 내 예상을 한참 벗어나는 말이었다.
“보다시피 제 무기가 이래서 말이죠. 검처럼 정밀하게 손속을 두지 못할수도 있어요. 죄송하지만 그럴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네요. 교황 성하께서 당신들을 귀빈으로 대접하라 말하기도 하셨고요.”
스텔라가 바닥에 수직으로 내려놓은 철퇴를 툭툭 건드렸다. 게임이었다면 내가 저 말을 하자마자 좋다고 덤벼들었을텐데. 성격이 제법 신중하게 바뀐 모양이었다.
본인의 입장에서는 썩 내키지 않는 일이겠지만, 나는 스텔라와의 대련이 반드시 필요했다. 여기서 승리를 거둬야 다음 퀘스트가 개방되니까.
“혹시 귀빈님이 저와 대련을 하다 죽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저는 그 뒷일은 생각하기도 싫어요. 그러니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어요.”
“…….”
이런 상황은 생각 못했는데. 스텔라의 거절을 들은 나는 멍청하게 제자리에 서 있었다. 이제 어떡하지. 정말로 스텔라가 나한테 대련을 신청하기까지 기다려야 하나?
“그렇다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 순간, 달이 내려앉으며 누군가 나타났다. 여인의 정체를 확인한 스텔라의 표정이 팍 일그러졌다.
“……이단심문관. 당신이 여기에는 무슨 일이죠?”
셀레네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