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76)
스텔라는 방금 일어났던 일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분명 가볍게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다. 은빛 여명 기사단에 대해 들어봤었고 그 실력도 알고 있었지만, 어차피 신입 기사랬으니 별로 강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자신에게 대련을 요청한 이유도, 갓 기사단에 들어간 신입이 한껏 부풀어오른 자신감을 주체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실력을 너무 과신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러니 대련이 끝난 후에, 압도적인 패배를 겪고 망연자실해졌을 신입 기사에게 너무 자만하거나 객기를 부리지 말고 더 노력하라며 가벼운 충고를 해줄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망연자실해진 것은 오히려 스텔라 자신이었다.
스텔라의 공격은 하나도 맞지 않았다. 어디를 공격하든, 어떻게 휘두르든, 얼마나 세게 내리치든. 저 남자는 마치 스텔라가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쳤다.
나중에는 신성력까지 몸에 두르고선 전력을 다해 철퇴를 휘둘렀건만, 그 공격마저 특출날 것도 없어보이는 평범한 검 한자루에 모조리 튕겨나왔다.
심지어 스텔라와는 달리 저 남자는 전력을 다한 것도 아니어보였다. 호흡이 가빠지거나 할 기색도 전혀 없었다. 공격을 막을 때 마다 인상을 살짝 찌푸리기만 할 뿐.
한 대. 딱 한 대면 몸에 둘러진 달의 가호를 깨부수고 대련을 끝낼 수 있었다. 정타로 후려칠 필요도 없이 스치듯 들어가는 공격 한 대면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달의 가호가 지속 시간을 다해 사라지는 바로 그 순간까지, 스텔라는 단 한번의 공격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처음이었다. 이렇게 농락당하다시피 패배한 것도. 남자에게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아득한 격차를 느낀 것도.
이 모든 상황이.
‘충격이 너무 컸나?’
나는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선 입을 헤 벌리고 멍한 얼굴을 한 스텔라를 쳐다보며 손목을 어루만졌다.
아직도 오른팔이 저릿저릿했다. 충격을 견딜만 하다는거지 안 아프다는 게 아니었다. 철퇴를 받아칠 때마다 무슨 저주파라도 통하는 것처럼 손목이 징징 울렸다.
여기서 별 것 아니었다고 도발까지 해버리면 완벽한 복수가 되겠지만,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스텔라가 대체 무슨 반응을 보일 줄 알고.
하지만 말 자체는 반쯤 진심이었다. 바닐라에서라면 몰라, 닼라 모드에선 특대무기군으로 분류되는 거대한 무기를 든 보스들이 상대적으로 난도가 쉬운 축에 속했다.
어차피 슬쩍 휘둘러지는 단검에 스쳐도, 전력으로 휘둘러지는 대검에 직격당해도 공평하게 한 방이다. 그렇다면 자잘한 공격이 많은 보스가 더 빡셀 수 밖에.
견제기를 가진 보스라든가,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연격형 패턴을 가진 보스가 경계 1순위였다. 전자는 아차 하다가 처맞기 마련이고, 후자는 그 중에 하나만 삐끗해도 사망이니까.
제일 좋은 예시가 바로 리제였다.
“그래서, 이단심판관님.”
“…….”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던 눈동자가 옆으로 조금 돌아갔다. 대답은 없어도 일단 내 말을 듣고 있긴 하다는 뜻이었다.
“저한테 뭐 하실 말씀 없나요? 뭔가 알려줄 게 있다든가, 막 출입 허가를 내려주고 싶어진다든가.”
“……?”
그 눈에 빛이 살짝 돌아왔다. 하지만 녹안에 떠오른 감정은 의문이었다.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시였다.
이제는 내가 당황할 차례였다.
대련에서 승리를 거두면, 이단심판관은 호탕하게 웃으며 플레이어의 실력을 칭찬하고 어느 룬 던전의 위치를 알려준다. 그 실력이라면 돌파가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바로 그 던전에서 DLC의 최종 보스전을 치르기 위해 꼭 필요한 룬을 구할 수 있었다.
“모르…… 모르, 겠, 어요.”
스텔라가 더듬더듬 말했다. 나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이러면 조금 곤란해지는데. 룬 던전의 위치야 대강 알고 있긴 하지만, 들어가려면 이단심판관의 허가가 필요했다.
룬이 존재하는 던전이니만큼 성국에서 직접 관리하는 장소라서, 위치를 안다 한들 무턱대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냥 대놓고 말해버려?’
룬 던전에 들어가게 해줄 수 있겠냐고 확 직구를 던져버릴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스토리는 이미 대차게 꼬였으니 그런 식으로 대답을 받아내도 별 상관 없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래도 대련 후의 반응이 달라진 게 제법 큰 영향을 끼친 듯 했다. 게임에서는 플레이어의 실력을 칭찬하며 한바탕 웃고 말지만, 지금은 아예 넋을 놓아버린 표정이지 않은가.
“무언가 필요하신 것이 있으십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 스텔라에게서 룬 던전의 입장 허가를 받아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으려니, 셀레네가 내 옆으로 훌쩍 다가왔다.
평소대로 무뚝뚝하고 차가운 얼굴이었지만, 그 일면에서 얼핏 나를 향한 놀라움이 엿보였다.
필요한 거라. 당연히 있다. 빨리 룬 던전에서 보스룸 진입용 룬을 얻고 다음 스토리로 넘어가야 하니까. 하지만 그걸 셀레네에게 말해도 될지는 의문이었다.
“이런 탁 트인 곳에서는 말할 수 없으신 내용이시라면, 알겠습니다.”
이런 내 침묵을 뭐라고 받아들인건지, 셀레네는 우리를 둘러싼 전투 수녀들을 훑어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딱히 저 수녀들 때문에 말을 못 하고 있는건 아니었는데.
“따라오십시오.”
“아!”
셀레네가 내 팔목을 확 잡아끌었다. 그걸 본 스텔라가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우릴 붙잡기라도 하려는 듯 팔을 뻗었다가, 곧 힘없이 추욱 늘어뜨렸다.
내 팔목을 붙잡은 셀레네는 어디론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얌전히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일단 따라가서 손해를 볼 일은 없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이곳입니다.”
셀레네는 대련장과 한참 떨어진 어느 빈 성당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팔목을 놓았다. 회색을 띠는 대리석과 은으로 이루어져, 전체적으로 굉장히 어두운 느낌을 주는 성당이었다.
이곳이 어디인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스테인드글라스 너머로는 회백색의 빛이 들어오고, 천장에는 마치 달을 형상화 한 듯한 그림이 있는데 모를 수가 없었다.
달의 교황을 섬기는 예배당이 분명했다.
“이단심판관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으셨던 듯 한데, 무엇을 요청하려 하셨습니까? 태양과 연관된 일이 아니라면, 이단심판관이 가능한 일은 저 역시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보라색 눈동자가 나를 빤히 응시했다. 오해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지만, 여기서는 사실 밑져야 본전이었다. 셀레네에게 말해서 되면 좋고, 실패하더라도 내가 손해 볼 것은 없다.
계산을 끝낸 내가 입을 열었다.
“이 근처에 있는 룬 던전의 출입 허가를 내려주실 수 있나요?”
“이 근처에 있는 룬 던전이라면…… ‘심연’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네. 맞습니다.”
“……룬 던전의 출입 허가를 내려달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아시고 계시리라 믿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룬 던전에 진입하겠다는 말은 곧, 그 안에 있는 룬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흡수하겠다는 말이기도 했다.
발견한 사람들이 낼름 먹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어디까지나 명목상에 불과하긴 했지만, 일단 발견된 룬 던전은 해당 국가의 재산으로 취급했다.
그 룬이 어떤 유용한 효과를 지니고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예를 들어, 마법 위력 증폭처럼 간단하고 효과가 확실한 룬이라면 모든 마법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거다.
그런데 나는 성국이 아니라 제국의 사람이다. 한마디로 말해, 국가의 재산을 다른 나라 사람이 낼름 먹어버리겠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다.
“알고 있죠. 하지만 별 문제 없을 것 같은데요. 어차피 성국도 공략에 실패해서 그대로 방치해 둔 곳이잖아요?”
셀레네는 정곡을 찔린 듯 몸을 움찔거렸다.
한참 전에 발견된 던전임에도 왜 아직까지 내부에 룬이 멀쩡히 남아있느냐, 그건 바로 성국에서 해당 던전의 토벌을 몇 번이나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이단심판관이 그렇게 선뜻 출입 허가를 내려준 이유도, 자신을 이길 정도의 실력이라면 그곳에 한 번 도전해보는게 어떻겠냐는 의미에 가까웠다. 당연히 위험한 곳이라며 경고는 해주고.
그래서 플레이어가 룬 던전을 클리어하고 돌아오면 엄청나게 놀란다.
“…….”
셀레네가 고개를 푹 숙이고 고민에 잠겼다. 뭔가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로 고민에 깊게 빠진 듯, 자기 생각이 입 밖으로 새어나온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대부분 알아들을 수가 없긴 했다. 간신히 알아들은 몇 마디도 그 자체만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한 단어들이었다.
“좋습니다, 귀빈이시여.”
한참이 지난 후에야 간신히 허락이 떨어졌다. 셀레네는 룬 던전에 가도 좋다고 말하면서도 못내 마음이 불안한건지 몇 번이고 강조를 해댔다.
“원래라면 결코 허락해서는 안 될 사항이나, 대련에서 이단심판관을 철저히 압도하셨던 그 실력을 믿겠습니다.”
보라색 눈동자에 힘이 담겼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그곳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과 다를 바 없는 장소입니다. 한 번 바깥의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내려가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또한 저 밑에서는 성국 역시 당신을 완벽히 보호해드릴 수 없습니다. 그것이 설령 저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물론이죠. 그러니 걱정은 접어두셔도 됩니다.”
“걱정을 해야 합니다. 저희들이 꼬박 열두 시간을 내려가도 그 끝에 도달하지 못한 던전입니다. 어떻게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까?”
나는 잔뜩 굳은 표정을 한 셀레네를 보며 속으로 웃었다. 12시간이 걸려서도 끝을 못 봤다고? 정석적으로 길을 따라 한층 한층 내려간다면 당연히 그렇겠지.
다른 방법으로는 20분도 안 걸릴텐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