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77)
“나 오늘 룬 던전 갈건데, 같이 갈 생각 있어?”
접시와 수저가 부딪히며 생기던 달그락 소리가 멈췄다. 식당에 침묵이 감돌았다. 각양각색의 색상을 가진 네 쌍의 눈동자가 날 향했다.
아이리스도, 클라우디아도, 리제도, 에리카도 너나 할 것 없이 멍한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툭, 리제의 손에 들려있던 빵이 식탁 위로 굴러떨어졌다.
“……룬 던전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델타?”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리제였다. 조금 전에 떨어뜨린 빵이 아이리스의 앞접시 근처까지 데굴데굴 굴러간 것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있었다.
“아침에 잠깐 나갔다 왔거든. 그때 결정했어.”
“그 의미가 아니잖아.”
하아, 리제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리스가 말을 받았다.
“델타. 이곳은 제국이 아니라 성국이다. 기본적으로 룬 던전은ㅡ”
“허락이야 진작 맡아뒀지. 무려 이단심문관한테 직접.”
“…….”
이단심문관에게 직접 허가를 받았다고 하니 더 할 말은 없는 듯 했다. 권력상으로는 교황 둘의 바로 밑이나 다름없는 직위가 이단심판관과 이단심문관이니까.
“표정 보니까 우리가 안 따라갈거란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네. 그렇지?”
“정답입니다, 클라우디아 기사단장님. 눈치가 빠르시네요.”
“델타 씨는 저희들을 놀래키는 게 취미입니까? 그런건 미리 말해주셨어도 됐잖아요.”
나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내 미소를 본 에리카가 어휴,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겨우 30분 전에 결정된 사항이라 미리 말해주기에는 시간이 없었긴 하지만. 셀레네랑 이야기 끝내고 여기로 돌아오니까 한창 식사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일단 더 자세히 말해보도록.”
달칵, 아이리스가 수저를 내려놓았다. 나머지 기사단장들도 식사를 더 이어갈 생각은 싹 사라진 듯 했다.
내 예상대로였다.
“준비는 끝마치셨습니까?”
진작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있던 셀레네와 그 휘하의 전투 수녀들이 기사단장들을 환영해주었다. 모두 철저히 무장을 한 모습이었다.
허리춤에 찬 벨트에는 단도가 주렁주렁 묶였고, 손에 들린 레이피어에는 힘이 아주 단단히 들어갔다. 몸을 단단히 조이는 성복 역시 한층 더 깔끔했다.
그 표정은 언뜻 보기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무감정한 듯 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탓하지 않았다. 이단심문관 역시 평소보다 한층 더 딱딱한 얼굴이었고, 기사단장들 또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힘이 아주 단단히 들어간 상태였으므로.
여기서 평범하게 행동하고 있는 사람은 오직 델타 한 명 뿐이었다. 델타는 언제나와 똑같이 느긋한 모습으로 허리춤에 찬 무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너는 여전하군, 델타.”
그 모습을 본 아이리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었다. 어차피 머리에 뒤집어 쓴 투구 탓에 어떤 표정인지를 보여주진 못하겠지만.
“나? 내가 왜?”
“여기 있는 모두가 굳어있는데 너 혼자 멀쩡한 얼굴이지 않나.”
“뭐, 그건 그렇네. 너희들도 평소보다 더 뻣뻣해보이고.”
“지금부터 토벌하러 갈 던전이 아주 위험한 장소라고 말했던 건 델타 너다. 네 입으로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그 위험성은 분명 상상 이상일 터. 너는 긴장되지도 않는건가?”
성국에서 몇 번이나 토벌대를 보냈음에도 결국 룬 습득에 실패하고, 애꿎은 성기사와 전투 수녀만 몇십 명씩이나 희생되었다는 던전이 바로 여기였다.
그 위험성으로 인해 이단심판관과 이단심문관의 특명으로 주위를 폐쇄하고 성기사들을 시켜 지키기까지 하는 장소라는데, 솔직히 말해 이곳에 직접 오기 전까지는 별 실감이 안 났었다.
정작 그 말을 하는 당사자의 얼굴이 무척이나 평온해보였으니까.
“어…… 딱히 그렇지는 않은데?”
지금도 바뀐 건 없었다. 델타의 언행은 오늘 아침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평온하다. 지금의 델타를 제일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였다.
어느샌가 주위의 시선이 아이리스와 델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왜지?”
“내가 오자고 한 곳이잖아. 여길 오자고 권유한 사람이 긴장하면 따라온 너희들은 뭐가 돼?”
델타는 그렇게 말하며 살짝 웃었다. 그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보자마자 긴장이 스르륵 풀리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적어도 아이리스에게는 그랬다.
바로 저 미소였다. 다른 모두가 말도 안 된다고 여겨왔던, 불가능해보이는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가능으로 바꾸어버리는 미소.
아이리스는 마음을 다잡았다. 본인이 저렇게까지 말하고 있으니, 자신이 할 일은 이번에도 델타를 믿는 것 뿐이었다. 당장 오늘 아침에 저 남자가 세운 계획을 모두 듣지 않았던가.
설령 그 계획이라는 게 미친 짓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알았다.”
아이리스는 짤막하게 답하고 몸을 돌렸다. 투구가 옆을 향했다. 방금전까지 두 명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고 있던 셀레네가 스리슬쩍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제 저 안으로 향하는건가?”
“예. 지금 즉시 출발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셀레네는 백색의 빛무리 앞에 서 있던 성기사들에게 손짓을 했다. 성기사들이 짧게 차렷 자세를 취하고는 빛무리에 창 끝을 가져갔다.
창 끝과 맞닿은 부분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맞닿은 자리가 점차 뒤틀리고 얇아지더니, 사람 한 명이 들어가기에 충분한 크기의 틈이 생겨났다.
기사단장들이 그 너머의 공간을 기웃거렸다. 괜히 주변 공간을 봉쇄한 것이 아니었는지 눈 닿는 모든 곳이 거무튀튀하게 물들어 있었다.
“달이 그대를 굽어살피리라.”
신성 촉매가 빛을 내뿜었다. 셀레네 본인과 휘하의 전투 수녀들, 그리고 기사단장들과 델타의 몸 주위에 짙은 은색의 신성력이 멤돌기 시작했다.
“지금부터는 각별히 주의해주십시오. 던전 근처에는ㅡ”
“그럼 나 먼저 들어간다?”
“……예?”
셀레네가 기사단장들에게 경고를 해주기도 전에, 델타가 불쑥 끼어들더니 신성 장벽의 틈 사이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갔다.
“귀빈이시여! 함부로 진입하시면 안됩ㅡ”
“괜찮아, 별 탈 없을거야.”
턱, 클라우디아가 그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엄청나게 당황한 표정인 셀레네와 그 휘하의 전투 수녀들과는 반대로, 기사단장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당연히 델타의 계획을 미리 들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셀레네보다 훨씬 더 당황했을 것이다.
셀레네는 떨떠름한 감정을 지우지 못한 채로 델타의 뒤를 따랐고, 그 다음으로 기사단장들이, 마지막으로 전투 수녀들이 보호막 안쪽을 향했다.
“……끔찍하네.”
안으로 들어선 리제가 제일 먼저 내뱉은 말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모두가 동감하는 말이기도 했다.
온 사방이 검은 액체로 물들어 있었다.
풀과 나무가 모조리 말라 비틀어진 것은 아니었다만, 정체모를 검은 액체에 뒤덮여 원래의 색채를 거의 다 잃어버렸으니 말라 비틀어진 것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상태였다.
내리쬐는 태양빛마저 약간 거무튀튀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괜스레 기분이 나빠진 리제가 손으로 갑옷 위를 쓸어내렸다.
“귀빈께서는 성함이 아이리스라고 하셨습니까?”
인상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보던 아이리스에게 셀레네가 접근했다. 고개를 돌렸다. 셀레네는 저 앞에서 걸어가는 델타의 뒷모습을 흘끗흘끗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다. 무슨 일이지?”
“저분이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지, 혹 짐작가는 것이 있으십니까?”
델타는 숫자를 작게 중얼거리며 혼자서 앞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그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충분히 의문을 품을 법 했다.
물론 아이리스는 델타가 왜 저러는지 알고 있었다. 아이리스 뿐만이 아니라 기사단장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번 룬 던전은 자기가 혼자서 공략할 수 있고, 아무리 길어봐야 30분도 안 돼서 끝날거라 호언장담했던 델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부탁과 함께 덧붙인 조건.
자신이 던전 안으로 제일 먼저 진입해야 하며, 진입한 이후부터는 무슨 행동을 하든지 절대로 말을 걸거나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원래라면 델타 옆에 찰싹 달라붙어 조잘조잘 말을 걸고 있어야 할 리제가 조용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본인이 직접 방해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떻게 감히 그러겠는가.
“모른다. 하지만 다 생각이 있을테니 방해하지 않는 것이 좋겠군.”
아이리스는 될 수 있으면 우리끼리만 알고 있자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셀레네는 짐작가는 것이 있기라도 한 듯 조용히 물러났다.
하지만 아이리스 역시 호기심이 동하기는 했다. 델타는 분명 때를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었지.
전신에 마나를 순환시켜 청력을 끌어올리고, 그 중얼거림을 살짝 엿들었다.
“66…… 67…… 68…….”
델타는 숫자를 세고 있었다.
숫자가 규칙적으로 하나씩 올라가고 있으니, 아마 시간을 재는 중인 모양이었다. 그러다 잠시 주변을 흘끗 쳐다보고 혼자 고개를 끄덕끄덕거린 다음 걸음을 옮기는 행동의 반복이었다.
사실 아이리스만 호기심이 동한 건 아니었다. 수많은 시선이 그 등 뒤를 오갔다.
“이곳이 심연 던전이라 불리는 장소입니다. 저 밑바닥에 룬이 있습니다.”
델타의 행동이 워낙 시선을 집중시키는 탓에, 그걸 빤히 구경하다 보니 룬 던전에는 금세 도착했다. 사방을 뒤덮은 검은색이 훨씬 더 짙어졌다.
바로 앞에는 커다란 구덩이가 펼쳐져 있었다. 심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 깊이가 짐작조차 가지 않는 구덩이였다. 테두리를 둘러싸려면 사람이 족히 수백 명은 필요할 듯 싶었다.
“……설마 저걸 타고 내려가는건가요?”
“예. 제대로 짚으셨습니다.”
에리카가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가리켰다. 아니, 애초에 저걸 다리라고 부를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웠다.
바닥은 아주 미끄러워보이는데다 난간은커녕 손잡이조차 없었다. 차라리 판자를 대충 엮어 나무다리를 만들어도 저것보다는 안정적일 듯 싶었다.
그건 최소한 표면이 반들반들하지는 않으니까.
“조심하십시오. 저것들은 상당히 미끄럽습니다. 절대로 뛰지 말고, 무조건 걸어다니셔야 합니다.”
“그럴 생각도 안 들것 같네요.”
에리카가 질색을 했다. 대각선으로 살짝 기울어져 아래쪽을 향하도록 만들어진 다리. 던전의 밑으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라곤 오직 저것 뿐이었다.
다리의 끝에는 사람 한 명 정도가 들어갈 넓이의 동굴 비스무리한 틈이 있었고, 그런 다리가 아주 복잡하게 얽혀서 구덩이 아래를 빼곡하게 채웠다.
“와, 이거 조금만 삐끗해도 바로 미끄러지겠는데?”
다리에 슬쩍 발을 올려본 클라우디아가 혀를 내두르며 뒤로 물러섰다. 잠깐 올려놨을 뿐인데 벌써 밑창이 미끌미끌했다. 클라우디아는 사바톤의 밑바닥을 땅에 박박 문질렀다.
“이제 마물들을 처치하면서 최하층에 도착할때까지 여기를 통해 내려가시면 됩니다. 다리와 다리 사이를 건너는 방법은 알고 계시리라 믿겠습니다.”
“……마물까지 처치해야 한다고?”
리제의 되물음에, 셀레네는 조용히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대락 30m쯤 밑에서 창과 방패로 무장한 언데드가 다리 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심지어 바로 근처에는 활을 든 녀석까지 보였다. 창이든 활이든, 잘못 맞았다간 그대로 미끄러지면서 바닥으로 끝없이 추락할 게 분명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여기서는 다리에 가려서 보이지 않고, 직접 내려가야만이 그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장소에 숨어있는 마물도 있습니다.”
“원거리 무기로 처치할 수는 없나요?”
“진작 시도해봤습니다만, 일정 거리를 넘어가는 순간 어디론가로 증발하듯 사라졌습니다. 아마 던전 자체의 힘이 아닐까 생각중입니다.”
에리카는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결국 남은 방법은 저 미끄러운 다리를 하나하나 내려가며 마물을 직접 상대하는 것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그것 참 지독하네. 누가 노리고 설계했다고 해도 믿을 지경이야.”
“나도 동감이다, 리제. 이래서 여기가 위험하다, 고…….”
아이리스의 말이 뚝 멎었다. 그 은색 눈동자는 다리 위를 향해 있었다. 정확히는, 다리 위를 걸어가는 델타의 뒷모습을 향해 있었다.
델타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리 위를 걸어가더니, 그 사이를 잘도 넘어다니며 순식간에 다리 세 개를 뛰어넘어 네 번째에 착지했다. 그리고는 그 위에서 아래쪽을 빤히 쳐다보았다.
꼭 저 밑으로 뛰어내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러고보니…….’
이 순간 기사단장들은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델타가 말했던, 룬 던전을 가장 쉽고 빠르게 클리어하는 방법.
1단계. 뛰어내린다.
“설마 그 뛰어내린다는 게 비유가 아니라 진짜였ㅡ”
“갔다 올게!”
클라우디아가 경악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델타가 다리 밑으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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