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78)
기사단장들의 모습이 점점 더 작아졌다. 하늘은 끝도 없이 멀어지고, 몸이 바닥을 향해 무작정 추락하기 시작했다.
밑으로 떨어지는 나를 본 다리 위의 마물들이 전투를 준비하려 했지만, 놈들이 뭘 해보기도 전에 나는 이미 훨씬 더 아래로 내려간 뒤였다. 활이건 창이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이게 내가 말한 심연 던전을 가장 빨리 클리어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각도와 위치를 정확히 맞추고, 그대로 바닥을 향해 뛰어내리는 것.
얼핏 보기에는 쉬워보이는 행동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제작자들도 다 생각이라는 게 있는 사람들이었으니, 낙하 공격을 통한 꼼수가 불가능하도록 다리 위 마물들의 기본 체력을 확 늘려놓고 높이도 조정해놓았다.
낙하 공격으로 대미지를 씹는 건 어디까지나 대상이 죽을 수 있을 때 한정이다. 마물이 살아남는다면 플레이어 혼자서만 쓸쓸히 낙사해버리기 마련이었다.
심지어는 대부분의 마물을 사각지대에 배치해놓고, 점프로는 닿지 않도록 거리를 계산해 플레이어가 우연히 마물 위로 떨어지는 일마저 철저히 방지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일단 다리에서 추락하는 순간부터 낙사는 필연적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었다.
‘정작 그놈의 우연 때문에 발견된 방법이긴 하지만.’
모든 일의 시작은 어느 운 없는 누군가였다. 구르기를 잘못 사용했다가 다리 바깥으로 굴러떨어져서는, 그대로 한참을 추락해 던전 최하층에서 죽어버린 것이다.
그 재수가 지지리도 없는 상황이 놀림감으로 변한 와중에 ‘밑바닥까지 떨어져서 낙하 공격 꽂으면 중간과정 스킵 가능?’이라는 말이 튀어나왔고.
마침 할 짓이 너무나도 없던 나머지 온갖 기행을 벌여대던 망자들이 그 떡밥을 덥썩 물고는 시도해보기 시작했다. 나 역시 포함이었다.
조건은 두 개 뿐이었지만,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빡셌다.
일단 뛰어내리면 중간에 걸리는 것 없이 던전의 밑바닥까지 직행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떨어진 자리에 낙하 공격을 할 수 있도록 마물이 있어야 한다.
특히 두 번째 조건이 말도 안 되게 악랄했다. 마물들은 플레이어를 발견하지 않는 이상 주변을 어슬렁대기 마련인데, 그 타이밍마저 정확히 맞춰야 성공이었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누구던가. 분재 게임을 하랬더니 분재로 서로를 두들겨패고, 경쟁 요소가 있다면 어떻게든 상대보다 조금이라도 더 위로 올라서려 발버둥치는 인간들이 아니던가.
기나긴 시도 끝에 우리는 기어코 성공해냈다. 이 던전 지역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마물이 움직이는 거리를 계산해, 어디서 어떻게 뛰어내려야 되는지까지 전부 다.
그리고 이게 그 결과물이었다.
수없이 많은 다리와 나무줄기가 내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위치 선정을 조금만 삐끗했더라도 무조건 저것들 중 하나에 부딪혀 죽었을거라 생각될만큼 아슬아슬한 거리였다.
가끔씩 화살을 쏘는 놈들도 있었지만, 나한테 닿기에는 택도 없었다. 화살이 벽에 꽂히는 팍팍 소리는 저 위에서나 들렸다.
‘아, 저거 존나 빡셌지.’
방금 내 옆으로 스쳐지나간, 덩치가 인간의 족히 서너 배는 되는 마물을 보자마자 절로 몸서리가 처졌다. 저게 이 던전의 중간 보스였다.
좁아터진 다리 위에서 싸워야하는 놈이라 가뜩이나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자비 따윈 없는 닼라모드 답게 근처 절벽에서 궁수들이 화살까지 날려대서 더 힘들었다.
지금은 저놈이랑 안 싸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지형이랑 화살만 아니었어도 잡몹 수준이었을 놈이 깝쳐대기는 더럽게 깝쳐댔었는데.
나는 중간 보스를 지나친 다음에도 한참을 더 밑으로 떨어졌다. 아직 바닥에 닿을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당연했다. DLC에서 새로운 지역이 추가되는 대신 이 던전을 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이 던전 하나로 어지간한 신규 지역만큼의 플레이타임을 확보해야 했으니까.
그런 장소의 끝에서 끝까지 넘어가며 중간 부분을 모조리 스킵하는 과정이다. 몇 분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다리 위 마물의 모습이 점차 바뀌었다.
입구 쪽 마물들이 조잡한 무기와 나무 방패 혹은 나무 활을 들고 있었다면,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우락부락한 생김새의 마물이 나타났다.
방패는 단단한 갑피로 바뀌고, 창은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로 바뀌고, 활은 입에서 토해내는 검은색 액체로 바뀌었다. 크기도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더 컸다.
물론 저런것들마저 모조리 지나쳤으니 별 의미는 없었다.
‘슬슬 도착할 때가 됐는데.’
어느샌가 던전의 벽은 물론이고 중심을 가로지르는 다리들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슬슬 룬 던전의 중심부에 거의 다 왔다는 의미였다.
곧이어 저 멀리에서부터 던전의 밑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진창이나 다름없는 모습의 바닥 전체가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듯이 꾸물거렸다.
떨어질 자리를 살폈다. 그 근처로 마물 한 마리가 어슬렁 어슬렁 걸어오고 있었다.
‘다행이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만만하게 뛰어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긴장을 전혀 안 했다는 것도 아니었다. 마음 한 켠으로는 혹시나 했었는데.
불길한 예감이 빗나가줘서 다행이었다.
피 묻은 검을 치켜들었다. 공격력 버프 따위는 무의미했다. 낙하 공격 피해량의 핵심은 무기 자체의 대미지가 아니라 떨어진 거리와 비례해 늘어나는 추가 대미지니까.
이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진다면 설령 보스라고 해도 한 방에 끝날거다.
마물과 나 사이의 거리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나는 오른쪽 어깨를 뒤로 살짝 잡아당겼다가, 그대로 마물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ㅡ콰지지직!
“크아아아아악!”
원래라면 내가 받았어야 할 낙하의 충격을 고스란히 대신 전해받은 마물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그대로 놈의 목을 틀어쥐고선 몸을 빙그르르 회전시켰다.
마물의 상체가 옆으로 확 꺾이더니 바닥에 처박혔다. 등 부분이 터지기라도 했는지 소름끼치는 퍽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서로 뒤엉킨 채 바닥을 몇 바퀴나 데굴데굴 굴렀다. 놈이 아래에, 내가 위에 올라탔을 때 구르기가 멈췄다. 그대로 피 묻은 검을 놈의 머리에 찔러넣었다.
마물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팔다리를 벌벌 떨다가 잠잠해졌다. 놈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칼을 뽑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처참한 몰골로 바닥에 엎어진 마물과는 달리, 나는 어디 긁힌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성공이었다.
슬쩍 위를 올려다보았다. 분명 입구까지 일직선으로 뻗어있을텐데, 하늘이 보이기는커녕 죄다 어두컴컴하기만 했다. 그 사이로 나무줄기와 다리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내 시야에 들어온 다리의 개수만 해도 족히 백은 가볍게 넘어가지 싶었다. 새삼 이 던전의 깊이가 실감이 났다.
고개를 내렸다. 아직 처리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 방금 낙하 공격의 발판으로 삼았던 마물과 똑같이 생겨먹은 놈들. 저것들도 마저 처리해야 했다.
망설임 없이 복부에 피 묻은 검을 찔러넣었다. 여긴 본편으로 따지자면 엄연히 후반부 지역에 해당하는 던전이었다. 공격력 버프 없이 저것들을 잡으려면 한세월을 때려야 할 것이다.
배에서 칼을 뽑아내며 제일 가까이 있는 마물의 인식 거리까지 걸어갔다. 그 고개가 삐걱이며 돌아가고, 붉은 안광을 빛내는 눈이 나를 쳐다보았다.
쿵, 놈이 발을 내디뎠다.
마지막 마물이 바닥에 엎어졌다. 철퍽 소리와 함께 검은 진창이 사방으로 튀었다.
“으, 더러워라.”
얼굴에 묻은 검은색 액체를 손등으로 닦아냈다. 설마 저게 얼굴까지 튈 줄은 몰랐는데. 아마 인체에는 무해할테지만, 기분은 나빴다.
피 묻은 검은 진작에 원래의 색으로 돌아가 있었다. 마지막 놈을 잡다가 버프가 꺼져서 시간이 약간 더 걸리긴 했어도, 이만하면 그럭저럭 계획했던 시간과 맞아떨어졌다.
나는 끈적거리는 검은색 진창 너머로 열심히 발을 움직였다. 발이 닿는 곳마다 종아리까지 푹푹 파묻혔다.
이래서 여기가 싫었다. 플레이어를 강제로 걷게 만드는데다 심지어는 구르기까지 제한하니까.
늪으로 분류되는 장소 역시 비슷한 효과가 있지만, 여긴 그보다 더했다. 늪에서는 제일 무거운 구르기나마 할 수 있는데 검은 진창 위에서는 구르기 자체가 봉인돼서 걷는 것 밖에 못한다.
여러모로 사람을 혈압 오르게 만들기 딱 좋은 구간이라고 툴툴대며 밖으로 나오자, 벽 사이에 뻗어있는 좁은 골목길과 그 옆에 설치된 조각상 비스무리한 무언가가 보였다.
플레이어가 빠른 저장과 빠른 이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조각상인데, 지금의 내게는 딱히 쓸모가 없었다.
아직 조각상의 개방 조건을 만족 못해서 사용이 불가능하기도 했고, 개방해봤자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았다.
‘기사단장들 내버려두고 나 혼자 이용해서 뭐하겠어.’
앞으로 나 혼자 움직일 상황이 얼마나 된다고 저걸 쓰겠는가. 게다가 저걸 켜봤자 여기 다시 올 일은 영영 없을텐데.
게임이었다면 저 조각상을 활성화시키고 포션을 보충하거나 잠시 쉰 다음 보스에게 도전했겠지만, 여기서는 아니었다. 나는 조각상을 무시하고 계속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문 앞에 도착했다.
이 문 뒤에 심연 던전의 보스가 있었다. 피 묻은 검을 잠시 집어넣고 문에 손을 얹은 다음, 힘을 주어 앞으로 천천히 밀었다.
문이 쿠구궁, 소리를 내며 천천히 양 옆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그 안쪽의 풍경이 조금씩 보였다. 일단 보스룸은 내 기억과 차이가 없었다.
“흑…… 흐흐흑…… 흐윽…….”
저 안쪽에서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것도 같았다.
무척이나 서글프면서도 듣는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흐느낌이었다. 나는 문을 완전히 열어젖히고 보스룸 안에 진입했다. 문은 쿠궁 소리를 내며 자동으로 닫혔다.
방 중심에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입 앞에 모은 채로 울면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몸에 걸친 것은 라파엘라 성국의 전투 수녀들이 입는 옷이었다.
거의 모든 곳이 헤지고 썩어 문드러져서 알몸이나 다름없었다. 내 짐작으론 남아있는 천의 면적은 원래 옷의 10%에도 못 미칠 듯 했다.
그 무지막지한 노출도의 수녀복에서 남아있는 부분이 10%가 채 안 되니, 그냥 옷을 안 입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흐흑…… 흑…….”
내가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에도 수녀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감아버린 눈꺼풀 사이에서 검은 액체가 줄줄 흘러내렸다.
ㅡ철벅.
뚝.
그리고 내가 진창을 밟자마자 울음소리가 멎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