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79)
“누구신가요……?”
울음을 멈춘 수녀가 뿌득뿌득 고개를 돌렸다. 절대로 사람의 목에서 들려서는 안 될 효과음이었다.
“누군가 그곳에 계신가요……?”
나는 수녀의 머리가 내쪽으로 완전히 돌려진 후에야 그 얼굴을 똑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흉측하기 짝이 없는 얼굴이었다. 오른뺨의 피부는 반쯤 썩어 문드러지고, 굳게 닫힌 두 눈 사이로 검은 액체가 넘쳐흐르다 못해 뺨과 턱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마치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는 눈물이 아니라 검은 액체가 몸 안을 꽉 채우다 못해 밖으로 꾸역꾸역 흘러넘치는 상황이겠지만.
전신이 썩어들어갔는데도 이목구비가 상당히 예뻤다. 저런 몰골이 되기 전에는 상당한 미인이었을 듯 했다. 물론 지금은 다 무의미할 뿐이었다.
“아아…… 누군가 그곳에 계신다면…… 제발 도와주세요…….”
수녀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 충격 탓인지 한무더기나 되는 썩은 살점들이 몸을 타고 질질 흘러내렸다. 살점이 떨어져 나간 자리는 곧장 검은 액체로 메워졌다.
몸 곳곳이 검은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와 비례해 인간의 피부는 점차 줄어들었다.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을때마다 썩은 살점이 철퍽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파요…… 괴로워요…… 제발…… 제게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간절한 애원과 함께 내밀어진 오른팔은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물컹거리며 검게 썩어버린 신체가 땅으로 흡수되듯 자취를 감췄다.
반쯤 녹아내린 어깨에서 새로운 팔이 돋아났다. 하지만 잘린 부위가 다시 생겨났음에도 회복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검은 액체 위에 또다시 검은 액체가 달라붙었다.
수녀의 오른팔이 순식간에 그 크기를 불려나갔다. 이제는 차마 인간의 팔이라고 불러주기도 힘든 꼴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저를 도와주시지 않는건가요…….”
수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다물어진 입술 사이로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무척이나 불쌍해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오래 전에 육체가 오염되어 한 줌의 기억만을 붙들고 본능대로 움직이는 사람을 내가 뭐 어떻게 도와주겠는가. 저 수녀는 이미 심연에 잡아먹힌 지 오래였다.
영원히 안식을 찾도록 해주는 일이 도와주는거라면 또 몰라.
“그러셨군요.”
푹 숙여졌던 고개가 천천히 들어올려졌다. 목소리는 어느새 싸늘하게 바뀌어 있었다. 입술 사이로 이빨이 으득 갈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당신은 저를 조롱하러 오셨던거군요.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 저를…… 더욱 욕보일 목적으로 오셨던거군요…….”
흐느낌은 분노로 바뀌고, 아픔은 증오로 바뀌었다. 이미 터질 듯 부풀어올랐던 오른팔이 훨씬 더 커졌다. 몸 전체가 어깨에 파묻혀버릴 지경이었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검은 액체가 수녀의 등 뒤에서 맨살을 찢으며 솟아올랐다. 꾸물대며 인간의 팔 형상을 갖춘 검은 액체는 힘차게 땅을 짓밟으며 자신의 등장을 알렸다.
“그렇다면…….”
수녀가 눈을 찢어질 듯 치켜뜨고선 날 똑바로 쳐다보았다. 눈 전체가 검은색이었다.
“너도 나와 똑같은 고통을 겪도록 해주겠다!!!!!!”
쩍 벌어진 입 사이로 빽빽하게 돋아난 이빨이 드러났다. 게임이었다면 아마 여기서 컷신이 끝나고 OST가 흘러나오면서 보스전이 시작됐을 것이다.
저 수녀가 바로 이곳, 룬 던전의 보스인 ‘추락한 사제 루치아’였다.
여기서 추락했다는 단어는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다. 말 그대로 다리 위에서 추락했다가 살아남아 저런 신세가 됐다는 것과, 신을 섬기는 사제에서 신을 증오하는 이단으로 추락했다는 것.
나는 덤덤히 자세를 잡았다. 피 묻은 검의 특수 능력은 아직 사용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루치아를 공격할 필요가 없어서였다.
1페이즈에서는 공격력 버프가 아니라 다른 걸 사용해야 한다. 무기에 적용시킬 수 있는 버프는 한번에 하나 뿐이니까 말이다.
루치아가 등 뒤에서 솟아오른 팔로 바닥을 성큼성큼 짚으며 내게 다가왔다. 정작 수녀인 본체는 허공에 매달려 바람 부는 날의 빨래처럼 이리저리 흔들려댔다.
비정상적으로 커진 오른팔이 크게 벌어졌다. 휩쓸기 패턴. 나는 그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시점에 뒤로 굴렀다.
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어마어마한 범위를 쓸고 지나갔다. 바닐라였다면 여기서 패턴이 끝났을테지만, 닼라 모드에서는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었다.
수녀 본체의 다리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그 대신 등 뒤에 솟아오른 팔 두 개가 번쩍 들어올려졌다. 일반적인 상식대로라면 당연히 저걸로 내려찍겠구나 하는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저건 페이크였다. 나는 위가 아니라 옆을 쳐다보았다. 조금 전에 바닥을 휩쓸고 지나갔던 오른팔이 또다시 휘둘러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검을 휘둘러 오른팔을 튕겨냈고, 텅 소리와 함께 몸이 밀려나가자마자 두어번 굴러 자리를 피했다. 루치아는 그런 이후에야 들어올렸던 팔을 내리찍었다.
ㅡ콰직!
나는 거리를 더 벌렸다. 저 내려찍기를 튕겨내기로 막으면 후속타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목 없는 철갑 기병의 돌진 패턴과 비슷한 경우였다.
땅에 처박힌 팔이 여러 갈래의 촉수로 갈라지더니 온갖 곳으로 뻗어나가며 허공을 휘저었다. 튕겨내기의 후딜레이에 들어오는 공격이었다. 맞으면 당연히 즉사다.
나는 루치아가 그러는동안 주위를 살폈다.
‘신성 촉매가…….’
게임에서야 아이템이 따로 표시가 되지만, 여기서는 그런게 될 리가 없으니 내가 직접 눈으로 찾아봐야 했다. 일단 무조건 보스룸 안에 있기는 할거다.
“어째서지? 이런 몰골로는 부족했나? 내가 여기서 더 망가지기를 원하나?”
비통이 잔뜩 섞인 절규가 터져나왔다. 사방팔방으로 휘둘러지며 날뛰어대는 오른팔과 거리를 벌리고, 보스룸을 빙 돌아 신성 촉매가 있을법한 자리로 달려갔다.
신체 구조 때문에 그런건지는 몰라도, 루치아는 보스전을 치르는 내내 절대로 달리지 않는다. 루치아가 플레이어와 거리를 좁히는 수단은 따로 있었다.
물론 거리를 많이 벌렸답시고 함부로 포션을 마시려 했다간 즉발로 날아드는 견제 패턴에 처맞은 다음 조각상으로 사출되기 마련이었다.
‘있다.’
내 예상대로, 신성 촉매는 게임과 똑같은 자리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걸 재빨리 주워들었다. 내가 신성 촉매를 줍자마자 등 뒤에서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몸을 뒤로 돌렸다. 루치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 사실을 확인한 나는 머릿속으로 2까지 숫자를 세다가 곧장 옆으로 굴러 빠져나갔다.
방금 전보다 훨씬 더 커다란 콰앙! 소리와 함께 루치아의 몸이 땅으로 내려앉았다. 내려앉은 자리에서 검은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보스가 자세를 바로잡는동안 신성 촉매를 살폈다. 구석구석까지 검은 액체가 스며들어 본래의 색깔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으나, 이거면 충분했다.
신성 촉매를 왼손에, 피 묻은 검을 오른손에 들었다. 무언가를 끌어모은다는 느낌으로 왼손에 힘을 집중시켰다. 검게 물든 촉매가 거뭇한 백색광을 발하기 시작했다.
절반은 성공이다. 나는 게임에서 보던대로 신성 촉매를 피 묻은 검의 크로스가드 바로 윗부분에 가져간 다음, 칼날에 스치듯이 위로 밀어올렸다.
그러자, 피 묻은 검의 칼날을 칙칙한 황금색의 빛이 감쌌다. 스텔라가 철퇴에 두르는 것처럼 완벽한 황금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게 태양빛이라는 걸 알아볼 수준은 됐다.
이걸로 나머지 절반도 성공이다. 나는 신성 촉매를 다시 허리춤에 맸다. 이게 바로 루치아 보스전 1페이즈의 핵심이었다. 이른바 축복 인챈트라 불리는 녀석이다.
1페이즈 루치아는 물리 공격에 대한 내성이 어마어마했다.
지금의 내가 루치아를 평타만으로 때려잡으려면, 설령 피 묻은 검의 공격력 버프가 무한정 지속된다 한들 2시간을 넘게 때려야 할 것이다.
반대로 축복받은 무기나 신성 주문에는 막대한 추가피해를 입었다. 버프를 둘둘 감은 성직자라면 신성 주문 두 번에 1페이즈를 넘기는 게 가능할 정도로.
뜬금없이 보스룸 안에 인챈트형 특수 능력을 가진 신성 촉매가 떨어져 있는 이유도 그래서였다.
‘여기 말고 한번 더 필요하긴 한데.’
그건 루치아를 쓰러뜨리고 난 이후에나 생각할 일이다. 나는 포션을 꺼내들어 들이킨 다음 병을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방금 전에 신성 촉매를 쓴 것 때문에 체력이 제법 깎였을테니 그걸 보충하는 용도였다. 이런건 틈이 생겼을 때 미리미리 보충해두는게 맞다.
신앙과 신성력을 전혀 올리지 않은 캐릭터도 버프를 쓸 수 있도록, 이 신성 촉매의 특수 능력은 흑마법 취급을 받았다. 설정상으로는 촉매가 검은 액체에 오염돼서 그렇다던가.
흑마법은 같은 위계의 일반 마법보다 대미지가 훨씬 더 강력한 대신, 그 사용에 약간의 마나와 동시에 HP가 추가로 소모됐다. 위계가 높을수록 소모되는 HP도 컸다.
피 묻은 검의 버프와는 정반대로 깎이는 양이 고정 수치라서 체력 스탯이 낮을수록 불리했고, 아예 스탯이 1인 나한테는 주문 한번한번이 치명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이걸로 죽을수도 있었다. 체력이 낮은 상태에서 흑마법을 사용하면 체력이 0까지 깎이면서 캐릭터가 픽 쓰러진다. 그게 평범한 사망이랑 똑같이 취급되는 것은 물론이었다.
괜히 그딴 방법으로 참신하게 자살하고 싶지는 않았다.
피 묻은 검을 앞으로 겨누었다. 칼날에서 반쯤 검게 물든 황금색이 은은한 빛을 발했다. 방금 전까지는 단순한 준비 과정이었고, 지금부터가 루치아 보스전의 진짜 시작이다.
“키아아아아악!!!!!!”
루치아가 괴성을 지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