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80)
나를 짓눌러 으깨버리려 드는 오른팔을 적당히 굴러서 피하고, 루치아가 접근하기 전에 역으로 내쪽에서 먼저 파고들었다.
역설적이게도, 워낙 기형적으로 생겨먹은 보스인지라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보다 이렇게 안쪽으로 바짝 파고드는 편이 상대하기가 훨씬 더 수월했다.
몸 부분이 다른 곳보다 방어력이 낮아서 대미지가 더 잘 들어가기도 하고, 오른팔을 휘두르는 패턴 중에서 몇 개를 아예 안 볼수도 있어서였다.
괜히 루치아의 비주얼에 겁먹어서 어정쩡하게 거리를 벌리려다가 상상 이상으로 넓은 범위를 커버하는 휘두르기에 처맞고 의문사하는 경우는 수도 없이 겪었다.
ㅡ터엉!
물론 닼라 모드에서는 붙어있어도 결코 쉬운 건 아니다만.
나는 연속해서 휘둘러지는 루치아의 팔을 모조리 튕겨낸 다음, 평타를 한 번 때리고 빠졌다. 갈라진 복부에서 튀어나온 촉수가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자리를 푹 찔렀다.
닼라 모드에서 새로 추가된 견제 패턴이었다. 저런것도 무조건 머리 한 구석에 생각을 해두고 있어야 했다. 반응을 못한다면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뻔하니까 말이다.
루치아의 어깨 위가 크게 꿈틀거렸다. 곧 연속 내려찍기 패턴을 시작할거라는 의미였다. 구르기로 피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다 튕겨내도 됐다.
내려칠 준비를 하는 팔 두짝을 쳐다보다가, 타이밍에 맞춰 검을 휘둘렀다.
크게 텅텅거리는 소리가 연속해서 들렸다. 내 몸이 조금씩 뒤로 밀려나고 그만큼 루치아가 앞으로 걸어왔지만, 그게 전부였다. 특별히 주의해야 할 건 없었다.
7연격이 끝나자마자 칼을 한번 더 휘둘러 루치아의 오른팔 공격을 튕겨냈다. 거대한 살점 더미가 근처 바닥을 모조리 휩쓸어버리고, 그 반동에 뒤로 밀려나려는 몸을 간신히 멈춰세웠다.
넝마나 다름없게 변한 루치아의 옷이 잠시 크게 펄럭였다.
‘……진짜 더럽게 집중 안되네.’
제일 큰 문제는 루치아의 난이도나 패턴이 아니었다. 그 헐벗은 몸뚱아리 탓에 자꾸 생각과 시선이 엉뚱한 장소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 제일 큰 문제였다.
피부가 검은 액체로 뒤덮여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외형 자체는 인간의 것이지 않은가. 당연히 인간 시절의 신체적 특징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또 그놈의 모드가 아주 큰 역할을 하는 중이었다.
루치아는 바닐라에서도 여자였지만, 저런 의복을 걸치지는 않았다. 전투 수녀들의 원판인 전투 사제들은 전신을 꽁꽁 싸맨 수도복을 입었고, 거기서 적당히 찢어진 복장이었으니까.
그런데 모드가 깔리면서 전투 사제들은 전원이 여자로 바뀐데다 옷차림 역시 어마어마한 노출도를 자랑하게 되어버렸다. 그 복장이 헤지고 찢어졌으니 어떤 모습일지는 뻔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바깥으로 훤히 드러난 가슴이 격렬하게 흔들려댔으며, 움직이는 자세 역시 가슴이나 엉덩이를 실컷 강조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강조해대는 몸매에 대해선 말해봐야 입만 아플 것이다.
심지어 속옷조차 안 입고 있기에 다리 사이마저 아슬아슬한 것은 덤이었다. 전신에 뒤집어 쓴 검은 액체라도 있어줘서 정말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체의 왼팔이 피 묻은 검과 부딪혔다가 크게 튕겨나갔다. 그 반동으로 흉부에 매달린 지방덩어리가 다시 한번 격한 움직임을 보였다.
‘착한 생각. 착한 생각.’
아라크나이네라 보스전때도 지금이랑 비슷한 상황이긴 했다. 심지어 아라크나이네라는 인간 비스무리한 몰골인 루치아와는 다르게 상반신 한정으로 완벽한 인간이었고.
그런데도 유독 이번 루치아 보스전에서만 저런 것들을 신경쓰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스텔라와 그 휘하 전투 수녀들이 이단을 판별한답시고 저질렀던 스트립쇼의 영향이 큰 것 같았다.
내 앞에서 단체로 옷을 벗어던지고, 마지막에는 이단심판관이 나더러 강제로 자기 가슴을 주무르게 만들기까지 했는데 머릿속에 각인이 안 되어있을 리가 있나.
그 탓에 자꾸 당시의 일이 겹쳐보이는데, 하필이면 루치아의 복장이 전투 수녀들의 복장과 똑같아서 더 했다.
‘충격이 너무 컸나?’
이단 판별을 시도한 쪽이나, 받은 쪽이나, 지켜본 쪽이나 싹 다 굳어서 단체로 제정신이 아니긴 했었다. 셋 다 굳어버린 이유는 달랐지만.
‘아니, 그냥 생각하지 말자.’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힌 나는, 방어 자세를 취해 전투 피로 게이지를 낮추면서 잠시 숨을 골랐다.
쓸데없는 짓을 했다. 지금은 전투에 집중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괜히 엉뚱한 부분에 신경 쏠렸다가 그대로 픽 죽어버릴라.
일부러 루치아가 사용하는 패턴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잡생각을 떨쳐내기 위해서였다. 그렇고 그런 걸 떠올리지 말자는 생각보단, 패턴에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머리를 가득 채웠다.
‘이번 공격은 엇박.’
나는 그 오른팔이 어중간한 위치로 빠지는 걸 보고, 속으로 한 박자를 쉰 다음에 굴렀다. 정확히 그 타이밍에 맞춰 팔을 휘두르는 소리가 들렸다.
루치아가 바닥에 내려친 오른팔을 지지대 삼아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등 뒤의 팔이 꿈틀거리며 여러 갈래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갈라진 촉수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송곳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 모습을 확인한 뒤, 적당한 위치에 섰다. 제대로 피하기만 한다면, 아주 확실한 딜타임을 제공해주는 패턴이었다.
패턴의 시작은 보스를 기준으로 오른편에 있는 것들부터다. 나는 오른쪽으로 한 걸음 이동했고, 바로 옆에 촉수가 쾅 소리를 내며 내리꽂혔다.
다음은 왼쪽으로 몸을 비틀었다. 이번에도 똑같이 내 바로 옆에 촉수가 쾅 소리를 내며 직격했다. 거의 손가락 마디 하나 수준도 안 되는 아슬아슬한 차이였다.
계속해서 아래로 내리찍어지는 수많은 촉수들을, 나는 단순히 한 발짝씩 움직이거나 몸을 비트는 것만으로 모두 회피해냈다.
게임에서도 가능한 짓거리였다. 이른바 ‘히트박스 포르노’라고 불리는 상황인데, 작정하고 찾아보면 제법 많은 보스들에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패턴이 하나씩은 존재했다.
간지를 찾는 게 아니고서야 구르기나 튕겨내기를 놔두고 굳이 아슬아슬하게 피할 이유가 없을 뿐.
촉수를 그런 식으로 12번 쯤 피하자 공격이 멎었다. 패턴을 끝낸 루치아의 몸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나는 그걸 기다리지 않고 곧장 검을 휘둘렀다. 본체가 땅으로 완전히 내려오기 전까지는 반격당할 걱정 따윈 없이 일방적으로 팰 수 있었다.
루치아는 거의 7대를 얻어맞은 이후에 다음 공격을 개시했다. 깜빡, 타이밍 좋게 피 묻은 검에 발라진 축복 인챈트가 사라졌다.
구르기로 루치아에게 다가가는 대신 거리를 벌렸다. 도약 후에 바디 프레스를 내리꽂는 패턴이 나오지 않도록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신성 촉매를 꺼내들었다.
다시 한 번 붉은 칼날에 거뭇한 태양빛이 발라졌다.
“아아아아…… 끄, 윽…….”
루치아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등 뒤에 솟아오른 팔이 누적된 대미지를 견디지 못하고 검은 액체로 변해 녹아내렸다. 입술 사이로 고통스러운 신음이 새어나왔다.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사실, 일방적이 아니라면 내가 여기 이렇게 멀쩡히 서 있을 일도 없을 것이다.
루치아는 다시 힘을 끌어모아 등 뒤의 팔을 재생시키려 했지만, 한번 대미지를 입고 무너져내린 몸은 쉽사리 복구되지 않았다. 재생하는 듯 싶다가도 다시 부서지기 일쑤였다.
문득, 그 목에서 작은 물건 하나가 굴러떨어졌다.
루치아의 고개가 숙여지는 것을 확인한 나는 겨누었던 칼을 내렸다. 2페이즈의 진입을 알리는 컷신이었으니 그동안 공격당할 일은 없었다.
검게 물든 루치아의 눈동자가 방금 굴러떨어진 물체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건 목걸이였다. 넝마나 다름없는 옷 사이에서, 무슨 조화인지 얌전히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
그리고, 성국의 신을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진 물건이기도 했다.
“오, 오오오오오…….”
루치아는 짐승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천천히 무릎을 꿇고선, 바닥에 놓인 목걸이를 아직 변이되지 않은 왼손으로 힙겹게 집어들었다. 그걸 집는 손가락이 파들파들 떨렸다.
얼룩지고 더러워졌지만, 표면에 새겨진 문양만은 또렷이 드러났다. 그 문양을 찬찬히 쓰다듬는 루치아의 눈에서 검은 액체가 마치 눈물처럼 뚝뚝 흘러내렸다.
루치아는 목걸이를 품에 소중히 감싸안고선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짐승의 울음소리와 괴성만을 내지르던 입이, 작게 달싹이며 인간의 말을 만들어냈다.
“태양이시여…… 만물을 굽어살피는 자애로운 빛이시여…….”
이미 자기 몸보다 몇 배는 더 커져버린 오른팔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루치아가, 기도문을 외우며 그 어깨를 반대쪽 손으로 덥썩 움켜쥐었다.
ㅡ우득!
오른어깨를 붙잡은 왼손이, 그걸 통째로 뜯어내기 시작했다.
살점이 찢기고, 관절이 뒤틀리고, 검은 액체가 줄줄 흘러내림에도 팔을 뜯어내는 왼손은 멈추지 않았다. 살점과 살점이, 뼈와 뼈가 분리되는 섬뜩한 소리가 보스룸에 울려퍼졌다.
마침내, 루치아는 자신의 변해버린 오른팔을 완전히 뜯어냈다. 거대한 썩은 살점 더미가 흐물흐물 무너지고, 썩어 문드러지며 바닥에 흡수되었다.
“이 불쌍한 어린 양의 기도를 받으시어…….”
검은 액체로 흠뻑 젖은 왼손이 허리춤에 매여 있던 또다른 신성 촉매를 움켜쥐었다.
그러자마자 찬란한 황금색의 빛이 터져나왔다. 피 묻은 검에 발린 축복 인챈트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화려하고 밝은 빛이었다.
아직 몸이 심연에 물들어있는 탓에 피부 전체가 화상이라도 입은 듯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며 타들어가기 시작했지만, 자기 몸이 타들어가든 말든 조금도 신경쓰는 모습이 아니었다.
루치아는 다시 검은 액체가 꾸물거리며 모여들기 시작한 자신의 오른쪽 어깨에 신성 촉매를 가져갔다. 신성 촉매와 맞닿은 어깨에서 하얀색 불꽃이 피어올랐다.
옷이 넝마인 것은 동일했고, 오른쪽 어깨는 하얀 불꽃에 의해 타들어가고 있었으나, 느껴지는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이제 그 몸은 더 이상 검은 액체로 뒤덮여 있지 않았다.
검게 물들었던 눈동자에 약간의 생기가 되돌아왔다.
“……다시 한 번, 일어설 힘을 주소서.”
더 이상 추락한 사제 루치아가 아니라 태양의 사제 루치아로 돌아온 한 명의 여인이, 신성 촉매에 찬란한 황금빛을 일으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