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85)
“대답하지 않으시려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강제로 토해내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셀레네가 머리를 더 바싹 들이밀었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몸이 밀착했다. 타이즈에 감싸인 허벅지가 내 다리 사이를 파고들고, 매끈한 타이즈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 오른손에는 어느새 레이피어가 들려 있었다. 턱 밑까지 다가온 칼날은 여차하는 순간 대화고 나발이고 바로 찔러 죽여버리기라도 할 기세였다.
왼손은 내 목을 아주 단단히 졸라대는 중이었지만, 고통은 고통대로 주면서도 내가 숨이 막혀 기절하거나 말을 하지 못 할 만큼 세게 조르지는 않았다.
이단‘심문’관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아주 절묘한 힘조절이었다.
여기까지도 다 예상했다. 내가 자신의 신앙 그 자체와 제일 가까이 맞닿은 존재인 교황을 건드렸는데, 오히려 나를 지금 당장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많이 참아준거다.
“당연히 대답해야죠. 대신, 이 손부터 놓아주시는 건?”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알겠습니다. 이 상태로 말하죠. 어디부터 설명해드리면 될까요?”
“전부.”
입술 사이로, 섬뜩하기 짝이 없는 톤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전부 다, 한 치의 거짓도 없이 털어놓으십시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레이피어의 칼날이 어스름한 은색으로 빛났다. 쿡, 칼날의 끄트머리가 내 턱 밑에 가볍게 닿았다. 서늘하고 차가운 달빛이 느껴졌다.
태양의 신성력이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는 것처럼, 달의 신성력은 차가운 냉기를 머금고 있었다. 턱 밑에서 냉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단심문소의 최하층을 구경시켜드리겠습니다. 그곳은 알고 있는 것도, 알지 못하는 것도 모두 토해낼 수밖에 없는 공간입니다. 다시는 하늘을 마주하지 못할테니, 대답을 잘 고르셔야 할겁니다.”
“그러겠습니다.”
나는 순순히 대답했다.
내 목적은 셀레네를 설득해서 중간 과정을 다 스킵하고 DLC의 최종 보스를 상대하러 가는 거다. 여기서 괜히 기싸움을 하고 있을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저와 다른 기사단장들이 태양의 교황 성하를 알현할 당시에, 달의 교황께서 친히 그곳에 강림하셨던 것은 알고 계시죠?”
“성국 내부의 일이라면 저희가 모르는 것은 없습니다. 달의 교황께서 태양의 대성당을 방문한 바로 그 순간부터, 저희는 안에서 벌어진 일을 모두 지켜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달의 교황께서 태양의 교황께 폭력을 휘두르셨던 것 또한 보셨겠군요.”
“모두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교황 성하께서 행하신 일. 저희들이 함부로 나서고 판단할 자리가 아닙니다. 지금 그 일을 트집 잡으시려는 것입니까?”
“제가 말하려는 건 사실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래야 했던 이유죠.”
“…….”
셀레네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단심문관의 입장에서는 그날 있었던 일을 들춰내는 것 자체가 탐탁치 않을테니 저런 반응도 당연했다.
달의 교황이 태양의 교황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성국의 사람도 아니고 제국의 사람에게, 그것도 은빛 여명 기사단씩이나 되는 직위의 사람들에게 들킨 것이다.
어떻게든 잊게 만들고 싶을텐데, 내가 계속해서 그때의 상황을 들먹이고 있으니 인상이 찌푸려질 수밖에.
“운명은 바꿀 수 없다는 말. 그리고 달의 교황 성하를 포기할 수 없다는 말. 이단심문관님도 무언가 짐작가는 것이 있으시지 않나요?”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넘어가려 하지도, 제게 되물으려 하지도 마십시오. 그저 똑바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기만 하면 됩니다. 설마 제가 그런 얄팍한 수에 넘어가 혼자서 주저리 주저리 떠들어댈거라 생각하셨습니까?”
내 목을 붙잡은 손의 힘이 한층 더 강해졌다. 하지만 아직도 대답을 하지 못하거나 호흡곤란으로 기절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단순히 내가 받는 고통만 잔뜩 늘어나 있었다.
“결론은 이거죠. 태양의 교황께서 하려는 행동을, 달의 교황께서는 무의미한 짓이라 여기고 계신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해 하려는 행동임에도.”
“…….”
여기까지는 대성당 안에서 벌어졌던 일을 목격했다면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었기에, 셀레네도 눈살을 찌푸리기만 할 뿐 별다른 반박을 해오지 못했다.
나 역시 우리들이 대놓고 쳐다보는 상황에서 달의 교황이 그런 짓을 벌인 이유를 알 턱이 없었다. 우리가 떠난 다음에 그랬어도 됐을텐데 말이다.
상황이 그만큼 다급했었다면야 이해가 되겠지만, 표정으로 보나 행동으로 보나 달의 교황은 전혀 다급해보이지 않았었다는 것도 의문점이었다.
이건 보스를 때려잡은 후에 본인한테 직접 물어봐야 할 듯 싶었다.
“그렇다면 핵심은 하나입니다. 태양의 교황께서 달의 교황 성하를 위해 하려는 행동이 무엇이냐.”
“…….”
“하지만 이것도 답은 이미 나온거나 다름없죠. 달의 교황 성하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하셨으니, 그런 표현을 써야 할 만큼 관계가 뒤틀리게 된다는 것. 혹은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된다는 것.”
“…….”
셀레네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내 말이 정곡을 찌른 것이거나, 뭔가를 깊이 생각하는 중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사실, 우리가 태양의 교황을 알현할 때 벌어진 일은 정말로 우연이었다. 애초에 내가 교황끼리 그런 짓을 벌이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게임에서 나온 이벤트도 아니었는데.
하지만 나는 그날 밤에 생각을 정리하면서, 이걸 잘 이용한다면 DLC의 중간 스토리를 싹 다 스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왜냐하면, 태양의 교황은 언니의 희생을 탐탁치 않아 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를 이상하리만치 강하게 신뢰하고 있었으니까.
‘일단 배경 설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
달의 교황이 희생을 언급한 이유, 그건 DLC의 최종 보스인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과 연관이 있었다. 그걸 잡으려면 교황 중 하나가 희생해야 된다는 계시가 내려온거다.
여기서 희생양의 역할을 자처한 쪽이 바로 달의 교황이었다.
물론 주인공의 개입이 없다면 성국이 멸망한다는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작전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나머지 한 명의 교황마저 전투 중에 사망하게 된다.
‘게임에서는 둘 다 그냥 마땅히 그래야 한다, 쯤으로 생각하고 넘겼었는데.’
여기서는 힘을 넘겨받아야 할 태양의 교황이 그 미래를 거부하며 뭔가 방법을 찾으려 하고 있었다. 두 교황 모두가 희생을 덤덤히 받아들였던 게임의 스토리와는 전혀 달랐다.
이게 내가 스토리를 건너뛰자고 결심한 이유였다. 어느 한 쪽이 운명을 거부하고 있다면, 설득하는 과정이 게임보다 훨씬 더 쉬울테니까.
“그러니 희생이라는 단어가ㅡ?!”
그 순간, 셀레네가 나를 힘차게 집어던졌다. 예배당 반대편으로 한참을 날아간 나는 바닥에 깔린 은색 카펫 위를 몇 번이나 뒹굴었다.
“윽?!”
“설명은 더 남은 듯 하나, 여기까지만 듣겠습니다. 여태껏 들은 내용만으로도 결단을 내리기에는 충분합니다.”
등 뒤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급히 자세를 바로잡았다. 심상치 않은 기색의 셀레네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왼손에는 신성 촉매를 들었다. 오른손에 쥔 레이피어가 어스름한 달빛을 내뿜었다. 곧이어 신성 촉매에서도 짙은 은색의 신성력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당신들이 허투루 입을 열지 않을 사람이라 생각했고, 소문이 퍼지면 곤란하니 대성당의 일은 비밀로 해달라는 부탁을 할 생각이었습니다.”
또각, 또각 하는 하이힐 소리가 대리석 벽과 바닥에 반사되어 울려퍼졌다.
“허나, 방금 그래서는 안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나는 급히 피 묻은 검을 빼들었다. 내가 무기를 치켜들자마자 은빛 섬광이 반짝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 섬광의 궤적에 팔을 가져갔다.
ㅡ채애앵!
마치 유리창이 박살나는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팔에 강렬한 충격이 내달렸다. 방금 들어온 은빛 섬광. 그건 이단심문관의 보스전에서 나오는 패턴들 중 하나였다.
이대로 싸우겠다는 신호와 다름없었으나, 나는 오히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날 곧장 안 찔러죽인 것만 해도 절반은 넘게 성공한거지.’
혹시 셀레네가 얘기를 듣던 와중에 날 찔러죽이는게 아닐까 하는 고민을 제일 많이 했었는데, 그걸 피해갔으니 지금부터는 차근차근 설득하기만 하면 된다.
“왜 제게 그런 말을 하셨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 상황을 무력충돌 없이 넘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나를 향해 걸어오는 셀레네의 등 뒤로 자그마한 달이 떠올랐다. 그 앞에 달빛으로부터 비롯된 그림자가 비쳤다. 어둠 사이사이로 만월이 녹아들었다.
“구태여 말을 하지 않고, 영구히 침묵한다는 방법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둘만 있는 상황까지 만들어가며 제게 알고 있는 바를 털어놓으셨습니까?”
달이 하나 더 떠올랐다. 왼편에도. 오른편에도. 그리고 머리 위에도.
“무엇을 위해 그런 행동을 하셨습니까?”
예배당 안에는, 무려 네 개나 되는 보름달이 떠올라 있었다.
“당신께서 알고 계신 내용은, 결코 외부로 새어나가서는 안 될 비밀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입이 무거운 사람과 거리가 먼 듯 합니다. 그러니, 당신이 할 침묵의 맹세는 결코 믿을 수 없습니다.”
레이피어의 끝이 내게 겨누어졌다.
이 상황까지도 예상했다. 이단심문관이라면 나를 죽여서라도 교황의 희생이 밖으로 새어나가는 일을 막으려고 할테니까.
교황 중 하나가 희생해야 한다는 사실이 퍼지면 필연적으로 왜? 라는 질문이 따라붙게 되고,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겉잡을 수 없을만큼 커지겠지.
지하에 잠든 괴물의 존재를 알려도 문제였고, 알리지 않아도 문제였다. 둘 중 어느쪽이든 그동안의 신앙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황제께서 당신에게 심대한 관심을 가지셨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설령 진노한 황제께 제 목숨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지금 해야할 일을 할 것입니다.”
셀레네가 레이피어 특유의 돌격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사방에 떠올라있는 달에서 똑같은 모양의 은색 레이피어가 튀어나왔다.
“저와 같이, 이단심문소로 가주셔야겠습니다.”
칼 끝을 밑으로 살짝 내리며 자세를 잡았다. 설득이 바로 먹히지는 않았지만, 이런 상황을 대비해 따로 계획을 세워뒀다. 나는 여기서 셀레네와 보스전을 치를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설명 다 건너뛰고 곧장 본론으로 넘어갈 차례였다.
셀레네가 은빛의 궤적을 그리며 달려들었다. 한 번. 딱 한번만 튕겨내면 된다. 그 순간에, 나는 공격 궤도로 검을 가져가며 크게 외쳤다.
“희생을 치르지 않을 방법이 있다면!”
ㅡ째앵!
피 묻은 검이 레이피어와 부딫히며 살벌한 파열음을 만들어냈다. 칼 끝이 내 바로 앞에서 멈추고, 나를 향해 날아들던 가짜 공격들이 깜빡거리다가 사라졌다.
떠오른 보름달이 저물었다. 예배당 안에는 다시 어렴풋한 짙은 은색만이 감돌고 있었다. 레이피어에 둘러진 신성력도, 신성 촉매에 흐르던 신성력도 자취를 감췄다.
나는 높였던 언성을 가라앉히며,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교황 성하의 희생 없이도 그 괴물을 잡을 방법이 있어서 말을 꺼낸거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셀레네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