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90)
“쿨럭, 쿨럭!”
정신이 들자마자 제일 먼저 기침이 새어나왔다. 입 안 전체가 바싹 말라 있었다. 혀를 움직여 뺨과 잇몸을 대충 쓸어내리고 몸을 일으켰다.
‘이래서 기절했다가 일어난거구나.’
왜 게임에서 심연으로 끌려들어간 주인공이 기절했다가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었던,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다. 몸 구석구석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그림자가 날 휘감고 끌어당겼다는 것이 부드럽게 감싸 안아줬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었다. 그냥 내 몸을 우악스럽게 움켜쥐고 바닥으로 내동댕이 친 것에 더 가까웠다.
주위는 온통 어두컴컴했다. 위, 아래, 앞, 뒤. 눈 닿는 모든 장소가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발 밑에 깔린 심연이 아니었더라면 틀림없이 방향 감각을 상실했을 것이다.
바닥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확 나빠지는, 검은색의 진흙처럼 생긴 심연 투성이였다. 맨땅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공간을 이루는 물질이라곤 심연과 그림자 뿐이었다.
그나마 룬 던전의 최하층처럼 구르기를 틀어막는 일은 없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룬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거겠지. 내가 아직 안 죽고 살아있으니까.’
왼손 손등을 만지작거렸다. ‘심연 속 안식’ 룬이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 보스전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이유는, 바로 이 심연과 그림자로 잠식된 공간 때문이었다.
보스전을 치르기 위해 결계의 문을 열 때, 룬을 착용하고 있지 않을 경우 그림자에 휩싸이는 순간 온 몸의 뼈가 으스러지는 뿌드득 소리와 함께 플레이어 캐릭터가 즉사한다.
또한 룬을 낀 상태에서 여기로 들어온 다음 착용을 해제할 경우, 마찬가지로 플레이어 캐릭터가 그림자에 휩싸여 즉사하고 시체는 발 밑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다.
어느쪽이든지 룬이 없다면 캐릭터가 그 즉시 사망한다는 사실만큼은 동일했다.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 보스전의 난도를 올리는 또다른 원인이었다.
ㅡ오너라.
어디선가 흐릿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DLC의 최종 보스,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이었다. 여기는 저것의 영역이니, 누군가 들어왔다는 사실쯤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스릉, 피 묻은 검을 빼들었다. 통로는 일직선이었다. 앞을 향해 천천히 발을 내딛자, 그림자와 심연이 꾸물거리며 몰려들어 내가 지나간 자리를 다시 메웠다.
‘보스룸까지 바로 직행할 수 있다면 좋았을테지만…….’
애석하게도 그럴 수는 없었다. 통로를 적당히 걷다 보면 잡몹 하나가 등장해 플레이어를 막아세우니까. 그놈은 반드시 잡고 넘어가야 했다.
꿈틀, 내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앞의 통로가 바닥에서부터 솟아나온 그림자로 틀어막혔다. 싸울 준비를 하라는 신호였다.
통로를 가득 메운 그림자 벽을 손으로 꾹꾹 눌러보았다. 마치 고무처럼 어마어마한 탄성을 가진 벽이었다. 손을 눌렀다 떼자마자 그에 반발하듯 튀어오르며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곧이어 등 뒤에서 무언가 솟아나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았다.
괴상한 몰골의 심연 괴물이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바닐라에서는 그림자 벽이 없어서 냅다 도망칠 수 있지만, 닼라 모드에서는 그게 안 된다. 무조건 싸워야만 했다.
ㅡ철퍽!
물론 나한테 문제될 건 조금도 없었다. 어차피 크게 어렵지도 않은 놈이고.
심연 괴물의 몸이 뒤로 넘어감과 동시에 철퍽, 하고 물이 사방으로 퍼지듯 그림자 속으로 흩어졌다. 괴물이 죽자 통로를 가로막고 있던 그림자 벽이 우수수 무너져내렸다.
‘저것도 그대로 있네.’
통로 저편에 혼자서 덜렁 세워져 있는 낡은 조각상이 보였다. 룬 던전의 지하에도 있었던, 체크포인트 저장용 조각상이었다. 나는 조각상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대로 지나쳤다.
그야 함정이니까.
만약 멋모르고 저거 앞에 앉았다간 조각상이 심연 괴물로 변해 플레이어를 덥썩 씹어먹어버린다. 대미지 자체는 평범하다만, 지금의 나한테는 즉사기나 마찬가지였다.
여기 처음 들어오는 사람들은 백이면 백 저 조각상에 낚여서 한 번 씹어먹히고 시작한다. 초회차 플레이어는 안 낚일래야 안 낚일 수가 없는 구조였다.
더 열받는 것은, 플레이어를 씹어먹은 다음엔 냅다 도망쳐버려서 죽일 수도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브닼 4 전체를 통틀어서 조각상으로 낚시를 하는 구간은 여기가 유일했다.
적당히 걸어가다 조각상이 있던 자리를 돌아보자, 놈은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쯧, 혀를 한 번 차고 발걸음을 옮겼다.
‘이 밑이겠네.’
보스룸의 진짜 입구까지는 금방이었다. 나는 아래를 향해 깎아지른 듯 뻗어있는 어느 절벽 앞에 도착해 있었다. 이제 여기서 뛰어내리면 보스룸으로 직행이다.
이제 와서 망설이거나 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피 묻은 검을 양손으로 단단히 쥐고, 아래로 뛰어들어갔다.
찰박, 바닥에 발이 닿자 꼭 물웅덩이를 밟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당연히 진짜 물은 아니었다. 심연이 모이고 모이다 못해 액체처럼 변해버린 무언가에 불과했다.
여기서도 룬을 빼면 안 됐다. 그랬다간 바닥을 이루는 심연 밑으로 빨려들어가서 죽어버리니까. 룬 슬롯 하나를 없는 셈 치고 싸우란 뜻이었다.
ㅡ느껴진다…… 그 역겨운 냄새가…….
보스룸 어딘가에서, 공간 전체를 뒤흔드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 보스전의 시작을 알리는 컷신, 그 첫부분에 나오는 대사였다.
쿵, 땅이 울렸다. 어둠으로 뒤덮인 심연 너머에서 무언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ㅡ이 냄새…… 너는 분명, 그 빌어먹을 신의 하수인이로군.
저 신의 하수인 어쩌고 하는 말은, 캐릭터가 신앙 혹은 신성력 스탯 중에서 둘 중 하나라도 10 이상 올렸을 경우에만 나오는 특수 대사였다. 그 외에는 평범하게 죽으러 들어왔냐고만 한다.
뭐, 이런다고 보스가 더 강해지고 그런 기믹은 없었다. 그냥 대사만 바뀔 뿐이다.
ㅡ마침 잘 되었다. 너를 죽이면, 내 힘을 훨씬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을테지.
쾅! 그 무언가가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었다. 이런 지독한 어둠 속에서도 놈의 외형이 또렷이 드러났다.
어마어마한 거구였다. 놈의 머리를 확인하려면 고개를 한참이나 쳐들어야 했다. 내 머리가 다리 한 쪽은커녕 무릎에도 닿지 못할 수준이었다.
머리에는 삐죽삐죽한 뿔이 여섯 개나 솟아 있었고, 눈은 무려 여덟 개였다. 귀 밑까지 찢어진 입 사이로는 빽빽하게 돋은 이빨이 수도 없이 보였다.
등 뒤에는 두 쌍의 커다란 날개가 달렸고, 팔은 네 개씩이나 됐다. 다리 사이로 기형적인 두께의 꼬리가 바닥에 질질 끌려댔다.
‘실제로 보니까 더하네.’
유저들이 저놈을 욕할 때마다 ‘못생겨서 신한테 버려진 고아 새끼’라며 반 농담조로 말하곤 했는데, 이렇게 직접 대면하니 그 말이 전혀 농담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ㅡ날 위해 죽어라. 그리하면 너는 심연 속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지어니.
“영원한 안식은 무슨.”
피식 웃으며 허리춤에 매어둔 신성 촉매를 꺼내들었다. 셀레네한테서 잠시 빌린 물건이었다. 신성 주문을 쓰려면 촉매가 반드시 필요하긴 했으므로.
칼날에 신성 촉매를 가져가, 힘을 불어넣는다는 느낌으로 감각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촉매가 환히 빛나기 시작했다. 태양의 신성력을 나타내는 황금빛이었다.
무기에 태양이 깃들었다.
황금으로 된 강이 넘실거리듯, 흘러넘치는 신성력이 피 묻은 검의 칼날을 휘감았다. 빛을 얼마나 강하게 내뿜는지 손잡이를 쥔 내 오른손마저 빛에 가려버릴 지경이었다.
무기에 축복을 내리는 인챈트 중에서도 최상위급의 성능을 가진 신성 주문, ‘일식’의 효과였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눈부심 따위는 조금도 없었을 뿐 아니라, 그걸 멀쩡히 쳐다볼 수도 있었다. 당연히 내가 사용한 주문이니까 그렇다.
ㅡ하찮은 것아. 그딴 잔재주로 나를 죽일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느냐.
놈 역시 마찬가지로, 태양빛이나 다름없는 수준의 황금색이 섞인 백색광을 정면으로 받아내고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교황이 직접 발휘하는 신성력조차 심연을 뚫지 못했으니 딱히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명색이 DLC의 최종 보스라는 놈이 인챈트 모션만으로 겁먹으면 그건 그거대로 웃긴 일이기도 했고.
“글쎄. 왜 못 죽일거라 생각하는데?”
신성 촉매를 다시 허리춤에 단단히 붙들어맸다. 지금의 내 신성력 스탯으로는 인챈트가 꺼지자마자 곧장 다시 사용할 수가 없었다.
재사용까지는 어느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한 번에는 안 죽겠지. 그건 애초에 기대도 안 했어. 너같이 덩치 큰 놈이 몇 대 맞았다고 픽 죽어버리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할테니까.”
피 묻은 검을 겨누었다. 놈도 본격적으로 싸움을 시작하려는 듯, 네 개의 손에 각각 그림자를 끌어모았다. 하나로 뭉친 그림자가 무기의 형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철퇴. 둔기. 망치. 도끼.
놈의 손에 쥐어진 무기들의 종류였다. 그리고 하나같이 소름끼치게 거대했다.
날 위협하려는건지, 아니면 단순한 자기 과시인지. 놈은 각자의 크기가 어지간한 인간보다도 훨씬 더 커다란 무기들을 허공에다 대고 기세등등하게 휘둘러댔다.
“근데, 난 너를 한 번만 때릴 생각이 없거든.”
정신을 집중하고 자세를 잡았다. 저 무지막지한 모습에 겁먹지 않아도 된다. 무기가 크면 모션이 더 확실하게 보이니까. 승패는 놈의 행동이 아니라 내 집중력에 달렸다.
“죽을 때까지 팰 생각이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