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92)
***********************************************
****************************************************
ㅡ크아아악! 이 건방진…….
놈은 하려던 말도 미처 끝내지 못하고 비틀비틀 휘청이며 뒤로 물러났다. 손에 들린 무기들이 바닥에 떨어지고, 그림자로 바뀌어 심연에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2페이즈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였다.
나도 따라서 거리를 벌린 뒤 숨을 골랐다. 잠시 휴식을 취할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내 오른손에 들린 피 묻은 검을 내려다보았다. 칼날이 마치 태양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일식의 지속시간이 거의 다 된듯, 깜빡깜빡 점멸하던 빛은 점차 작게 사그라들었다. 나는 허리춤에 묶인 신성 촉매를 꺼내들어 피 묻은 검의 칼날에 가져갔다.
환한 태양빛이 다시 차올랐다.
‘……버그인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신성 촉매가 빛나기 시작한 이후로 쭉 이런 상황이었다. 일식을 아무리 많이 사용해도 신앙이 고갈되었다는 느낌이 들지가 않았다.
일단 상황 자체만 놓고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으나, 그렇다 해서 덮어놓고 기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좋은 상황일지는 몰라도, 정상적인 상황은 절대로 아니니까.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 보스전에서 숨겨진 기믹이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만약 그런 내용이 있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진작에 밝혀졌을 것이다.
여느 싱글 패키지 게임이 다 그렇듯이, 브닼 4 역시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데이터 마이닝이 이루어졌었다. 특히 브닼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더미 데이터가 많아서 더 그랬다.
아예 더미 데이터로 남은 것들만을 모아 구현시키는 모드가 있을 정도였으니, 설령 숨겨진 기믹이 있었다 한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모조리 파헤쳐지고도 남았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의 보스전을 치르던 와중에 갑자기 신앙이 무제한으로 차오른다든가 하는 기믹은 한번도 들어본 적 없었다.
‘……뭐, 좋은게 좋은거겠지. 나한테 해는 안 끼치는 것 같고.’
생명력이 빠져나간다거나 할 낌새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당장 눈에 띄는 패널티는 없었을뿐더러, 지금 눈에 띄지 않는 패널티라면 어차피 시간이 지나더라도 나 혼자서 알아차리는 건 불가능하니 고민해봤자 의미가 없었다.
어떻게 된 건지는 나중에 여길 나가서 이단심판관이나 이단심문관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다. 지금은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기에도 바빴다.
일식을 무한히 사용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잘만 하면 지금부터 1시간 안으로 끝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ㅡ아아…… 아아아아아아…….
네 개의 팔로 얼굴 전체를 가리고 괴로운 듯 신음하던 괴물이, 문득 고개를 쳐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비통한 목소리로 외쳤다.
ㅡ자애로운 태양이시여! 자비로운 달이시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여 저를 내치셨나이까!
2페이즈 컷신의 대사였다. 저대로 몇마디 더 중얼거리다가 다시 싸우려 들테니 그 전까지는 쉬고 있으면 된다.
정말 성국의 교리대로 신이 세상을 창조해냈는지, 저 괴물이 신의 작품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저놈과 관련된 아이템의 배경 설명을 찬찬히 읽어보면 전부 다 자업자득이었다.
세계를 그림자와 심연으로 뒤덮어 자기가 신의 자리에 앉으려다가 이런 장소로 내쫓긴거니까.
그래놓고선 자기는 잘못이 없고 억울하게 버려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놈이다. 동정의 여지는 전혀 없었다.
하늘을 향해 한바탕 억울함을 호소한 놈이 다시 고개를 내렸다. 여덟 개의 눈동자가 싸그리 다 날 향했다. 잔뜩 돋아난 이빨들이 신경질적으로 딱딱 맞부딪혔다.
ㅡ너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 손에 그림자와 심연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곧 신성 촉매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성국의 NPC들이나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흉측하게 생겨먹은 촉매였다.
ㅡ나의 방법이 옳다! 이 세상은 심연 속에 잠겨야 한다!
1페이즈의 걸걸하던 목소리가 많이 가라앉은 대신, 약간 더 높은 하이톤으로 바뀌었다. 체력 좀 깎였다고 슬슬 원래의 성격이 나오는 듯 했다.
촉매에 어둑어둑한 빛이 감돌았다. 검은 기운이 스멀거리며 피어오르더니 놈의 머리 위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검은색의 무언가는 곧 태양과 달로 바뀌었다.
정확히는, 겉모습만을 따라한 구체였다. 그림자와 심연을 뚝뚝 흘려대는 저게 태양과 달이라니, 성국 사람들이 듣는다면 입에 거품을 물고 날뛰어댈 소리다.
놈의 머리 위에 떠오른 구체들이 불길한 검은색으로 빛났다. 2페이즈부터는 기존의 공격에 더해 마법까지 추가되는지라 더 정신이 없어진다. 저게 그 시작을 알리는 개막 패턴이고.
콰아아앙! 태양과 달이 폭발하며 그 파편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검은 조각들이 보스룸 전체로 쏟아져내렸다. 나는 뒤로 슬슬 거리를 벌리며 공간을 확보했다.
태양의 파편이 떨어진 자리가 검은 불길로 감싸였고, 달의 파편이 떨어진 자리에는 검은 서리가 솟아났다. 서리와 불길이 마주치자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났다.
보스룸 전체를 굉음과 폭음이 뒤덮었다.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이런 와중에, 근처로 떨어지는 태양과 달의 조각을 열심히 피하던 나를 향해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이 쿵쿵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오른손에 들린 신성 촉매가 검게 물들더니 철퇴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철퇴는 바닥을 훑듯이 횡으로 휘둘러지며 내 위치를 긁고 지나갔다. 그걸 굴러서 피하고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대로 놈의 다리를 때리려다가, 파편 하나가 이쪽으로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급히 전략을 수정해 왼쪽으로 달려 빠져나갔다. 그 자리에 착탄한 파편은 성대하게 폭발을 일으켰다.
‘성가시네.’
저 마법이 무한히 지속되지는 않아서 조만간 사그라들겠지만, 방금의 딜타임을 놓친 건 조금 아까웠다. 어차피 저게 끝나더라도 다른 마법이 날아올 것이다.
신성 촉매를 매개체로 사용하고, 교황들이 사용하는 신성 주문과 꼭 닮았지만, 저건 신성 주문이 아니라 흑마법이다. 사람들이 대차게 낚여대는 부분이었다.
ㅡ세계를 심연으로 물들이는 것! 그것이 내가 지닌 사명이다!
이제는 아무 말이나 막 내뱉어대고 있었다. 몇백 년 만에 고통을 다시 느껴보고선 이성을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1페이즈는 그냥 가면을 쓴 것 뿐이고, 2페이즈에서 보여주는 면모가 저놈의 진짜 성격일 가능성이 높았다. 말하는 걸 들어보니, 어째 게임에서보다 더 찌질해졌다.
‘저런 놈이 최초의 교황이라니, 참…….’
설정을 직접 풀어주기보단 아이템의 설명이나 캐릭터 관의 연관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해주는 브닼 시리즈답게, 저런 세세한 것 하나까지 모두 설정과 연관이 있었다.
사람들이 단서를 열심히 긁어모아서 브닼뇌를 가동한 결과,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이 바로 흑마법의 창시자이자 성국 최초의 교황이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성국 최대의 적이 성국 최초의 교황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ㅡ콰드득!
표면에 검은 액체가 꾸물거리는 망치를 굴러 피했다. 망치가 바닥을 두들기자 무슨 살점이 으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렸다.
2페이즈에서는 무기에 튕겨내기를 사용해선 안 되고, 무조건 꼬리 공격과 발구르기를 막을 때만 써야했다. 물론 그래야 하는 이유도 있었다.
지금 저놈이 휘두르는 무기들, 전부 다 마법 대미지다.
겉보기에는 차이가 없어보인다. 하지만 1페이즈와는 다르게, 2페이즈에서 휘두르는 무기는 물리 대미지가 아니라 순수 마법 대미지를 입혔다. 당연히 튕겨내도 관통댐이 들어오고.
더 볼 것도 없이, 나는 저 관통돼서 들어오는 대미지만으로도 죽음이 확정된 연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었다.
왼쪽 종아리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다가 뒤로 굴러 빠져나갔다. 놈의 발 근처에서 검은 불꽃이 일었다. 그와 동시에 머리 바로 위에서 흑마법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거리를 벌리며 놈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오른쪽 윗팔과 왼쪽 아래팔에 각각 철퇴와 도끼가 생겨났고, 다른 두 팔에는 신성 촉매가 밝게 빛났다.
‘그 패턴이네.’
이건 신경을 바짝 집중해야 한다.
제일 먼저 흑마법으로 이루어진 도끼가 날아들었다. 그걸 정확히 왼쪽 대각선으로 굴러 빠져나갔다. 반대손에 들린 신성 촉매가 검은 불길을 일으켰지만, 나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놈이 꼬리로 바닥을 긁으며 몸을 돌렸다. 그걸 튕겨내고 바로 검을 끌어올려 전투 피로를 줄였다. 왼손에 들린 망치는 굴러서 피하고, 몸을 비틀었다.
검은색의 불꽃이 머리 바로 옆을 스쳐지나갔다. 게임에서도 피하는 방향을 조금만 신경쓰면 충분히 가능한 행동이었다.
‘오른손, 왼손, 마법, 마법, 왼손, 오른손, 마지막으로 마법.’
머릿속으로 연격의 순서를 떠올리고, 그 순서의 대처법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살벌한 파열음과 흑마법이 계속해서 내 바로 옆을 스쳐지나갔다.
마지막으로 도끼가 바닥을 후려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 틈을 타 다시 검을 휘둘렀다. 괴물의 입에서 또 한번 비명이 터져나왔다.
놈이 경직에 걸린 틈을 타 무기를 몇 번 더 휘두르고, 재빨리 물러났다. 한동안 고통스러운 신음을 표출하던 괴물이 날 희번뜩하게 쳐다보았다. 나는 무시하고 공격을 이어갈 준비를 했다.
ㅡ네놈, 힘을 숨기고 있었느냐.
하려 했다.
저놈이 어느새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예상 외의 말을 꺼내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힘을 숨겨?’
황당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내가 숨길 힘이 있었으면 이러고 있지도 않았을거다. 힘을 숨기기는 왜 숨기는가. 그냥 처음부터 다 드러내놓고 팍팍 써먹어야지.
공격 하나를 피하냐 못 피하냐에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세상이다. 약자 코스프레를 할 생각도, 이유도 없었다. 그러다가 죽으면 억울해서 눈도 제대로 못 감을거다.
“뭔 헛소리야? 하도 처맞아서 정신 놨냐?”
ㅡ부정하려 들지 마라.
괴물이 으르렁거렸다.
ㅡ네놈에게서 태양과 달의 신성력이 느껴지고 있거늘.
‘……응?’
저건 또 뭔 소린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