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93)
‘태양과 달의 신성력?’
순간 저게 뭔 소리인가 했다.
원래부터 신성력은 주문의 종류에 따라 태양 아니면 달, 두 가지로 분류된다. 태양의 신성 주문을 쓰면 태양의 신성력인거고, 달의 신성 주문을 쓰면 달의 신성력인거다.
물론 종류가 나뉜다 해서 특별한 차이를 보이는 것도 아니고, 태양 계열 신성력에만 약하다거나 달 계열 신성력에만 약한 몹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런 식으로 구분된다, 하는 정도였다.
‘태양은 알겠는데, 달은 뭐지?’
태양의 신성력이 뭘 의미할지는 뻔했다. 피 묻은 검에 인챈트 되어 있는 일식. 이게 태양 계열의 최고위계 신성 주문이었으니까 당연히 태양이 느껴지겠지.
그런데, 달은 대체 뭘 말하는건지 가물가물했다. 일식 말고 다른 신성 주문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을 뿐더러, 달의 신성력이 느껴질만한 행동을 했던 적도 없었다.
구태여 그것까지 콕 집어 언급한 걸 보면 뭔가 있긴 하다는 얘긴데.
‘아, 혹시 촉매 때문인가.’
문득 허리춤에 묶어둔 신성 촉매가 생각났다. 원래는 셀레네의 물건이었으니 그 잔여 신성력을 감지하고 내뱉은 말이라 해도 딱히 어색함은 없었다.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조차 않는 교황들을 대신해, 라파엘라 성국의 실질적 무력 1위에 달하는 존재들이 이단심판관과 이단심문관이니까 말이다.
그러면 결론은 하나였다.
“그거 내 힘 아닌데?”
사리 분별도 못하는 걸 보니, 분명 저놈이 맛탱이가 간거라고.
ㅡ아직까지 거짓말을 하느냐.
“왜 사람 말을 못 믿어? 진짠데. 이거 내 힘 아니야.”
갑자기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느라 놈이 동작을 멈춘 틈을 타, 마법이 날아오지 않는 걸 확인하고 재빨리 일식을 사용했다. 태양광이 주변을 훤히 밝혔다.
여기에 하도 오래 잠들어 있었어서 그런지, 미치기는 제대로 미친 모양이었다. 신성 촉매에 남아있는 달의 신성력을 내 힘으로 착각하고 저리 당당하게 주장해 댈 정도라면 말이다.
놈은 그 뒤로도 어디서 그런 힘을 얻었냐고 씩씩댔지만, 나는 쟤가 뭐라건 싹 다 무시하고 달려들 준비를 했다. 저놈이랑 오래 말 섞어서 이득 될 건 하나도 없었다.
‘최대한 빨리 잡고 나가야지. 여기서 시간 끌어서 뭐하려고.’
돌아오는 반응이 없자, 저놈도 포기한 듯 신성 촉매를 들어올렸다. 촉매에 다시 짙은 검은색의 빛이 떠올랐다. 나는 그 모션을 확인하자마자 시계 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2페이즈 개막 때 공중에 띄웠던 검은 태양. 놈은 그 마법을 직격으로 쏠 생각이었다.
나는 일부러 최대한 멀리 떨어져 마법이 날아드는 거리가 늘어나도록 만들고, 검은 태양이 내쏘아지자마자 냅다 방향을 비틀어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지상이었다면 공중에 떠 있는 것만으로 공기를 불사르고 토양을 좀먹었을 검은 태양이, 한참 떨어진 곳에 착탄하고선 성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온 사방에 검은 불꽃이 튀었다.
곧바로 공격하기에는 거리가 아슬아슬하게 멀었다. 패턴을 하나 더 봐야할 듯 했다. 나는 놈이 오른발을 들어올리는 걸 확인하고, 그 발이 내리찍힘과 동시에 굴러서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심연과 그림자로 뒤덮인 종아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ㅡ크아아아악!
피 묻은 검이 베고 지나간 자리가, 하얀 연기를 일으키며 뭉텅이로 녹아내렸다. 놈은 하던 행동을 멈추고 뭉텅이로 녹아내린 왼쪽 종아리를 부여잡으며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하던 행동을 멈춘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패턴 파악을 위해 본능적으로 거리를 벌리면서도, 멍한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건 또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방금 뭐였지?’
오른손에 쥐고 있는 피 묻은 검을 내려다보았다. 여태까지와 별 다를 것 없는 색깔의, 황금색이 섞인 백색광을 발하는 축복 인챈트.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그걸로 도출된 결과는 전혀 달랐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종아리를 감싸쥔 채 아직도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면서 발광하는 괴물에게 눈동자를 돌렸다.
뭉텅이로 녹아내린 살점. 그 녹아내린 자리에서 계속해서 피어오르고 있는 흰색의 연기. 고통에 신음하며 발광해대는 괴물.
신앙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걸 처음으로 확인했을 때도 당황했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했다. 대체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건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버그…… 일 리가 없지.’
혹시나 싶은 마음에, 브닼 4가 사용한 물리 엔진 자체의 한계로 인해 끝까지 고치지 못했던 몇몇 버그들을 한번 시도해봤던 적이 있었다. 물론 하나도 성공 못 했다.
여긴 게임 같은 세계일 뿐, 게임과 똑같은 세계가 아니니까 말이다. 카펫에 무기가 튕긴다거나, 사람 팔뚝 굵기의 오브젝트가 대형 망치를 거뜬히 막아낸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게 뭐가 됐든 결국에는 저 상황이 내가 저지른거란 의미인데.
“…….”
모르겠다.
정말로 생각나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신앙이 줄어들지 않아서 일식을 무제한으로 사용 가능하게 됐을 때부터 이상하는 느낌을 받긴 했었어도, 이런 것은 상정 외였다.
칼질 한 번으로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의 몸뚱아리를 녹여버린다? 그런 짓이 가능했더라면 내가 초장기전을 각오하고 여기 들어오지도 않았을거다.
아니, 그 전에 빌드를 진작 성직자로 갈아탔겠지. 인챈트형 신성 주문의 위력이 이 정도라면, 그걸로 공격형 신성 주문을 사용하면 더 어마어마할텐데.
ㅡ이래도 너의 힘이 아니라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지껄이겠느냐!
놈의 비명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어안이 벙벙해져 있을 시간은 없었다. 혹시 이번에 사용한 일식만 한층 더 강화된 것일수도 있을테니까.
그렇다면 지금 찾아온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벌렸던 거리를 다시 좁혀들었다.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검은 가시들을 모조리 피해내고, 놈의 왼쪽 다리를 향해 다시 검을 치켜들었다.
놈은 그런 고통을 다시 느끼긴 싫었는지 화들짝 놀라 다리를 뒤로 빼려 했지만, 그러기에는 동작이 너무 느렸다. 다리가 반쯤 올려졌을 무렵에 환한 태양빛이 그걸 베고 지나갔다.
ㅡ캬아아악!
한층 더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이번에도 놈의 다리가 뭉텅이로 녹아내렸다. 아까는 당황해서 뒤로 빠졌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를 악물고 공격을 피하며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일식이 발려져 있든 말든 무슨 목검으로 나무를 두드리는 듯한 퍽퍽 소리만 들리던 저번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칼이 휘둘러지면 휘둘러지는대로 살점이건 피부건 죄다 썰려나갔다.
칼을 얼마나 휘둘렀을까, 패이고, 파이고, 찢어지고, 녹아내린 다리가 기어코 빠직 하는 소리와 함께 옆으로 꺾였다. 괴물의 몸뚱아리가 기우뚱 하더니 옆으로 무너졌다.
게임에서는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렇다 해서 저걸 반응하지 못할 리도 만무했다. 나는 가볍게 몇 발자국 옆으로 물러나 쓰러지는 몸뚱아리를 피했다.
쿵! 그 육중한 거구가 어정쩡한 모습으로 드러누웠다. 천장을 바라보고 쓰러지자니 꼬리가 거슬리고, 옆으로 쓰러지자니 팔이 거슬리는 탓이었다.
놈은 팔로 바닥을 짚으며 다시 일어서려는 듯 했지만, 일어서도록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나는 곧장 어깨 근처로 다가가 팔과 어깨에 집중적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가끔 발악하듯 주문을 사용하거나 무기를 만들어 휘두르기는 했지만, 만전의 상태에서 퍼붓던 공격도 전부 다 피할 수 있는 내게 이런 허우적대는 공격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혹시 모르니 한쪽 팔이라도 완전히 조져놔야겠어.’
백색광으로 뒤덮인 칼날이 살점을 뭉텅이로 날려버리고, 피부가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증발했다. 기교건 뭐건 다 필요없이, 그냥 스치기만 해도 그 자리가 통째로 사라지는 수준이었다.
나는 일식이 꺼지기 직전까지 괴물의 우반신을 난도질한 다음, 버프가 완전히 꺼져버린 이후에야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놈의 몰골은 처참했다. 제일 처음으로 공격당한 왼쪽 종아리는 괴상한 각도로 꺾여선 검은 액체를 줄줄 흘려대고 있었다. 그나마 남은 부위도 찢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내가 집중적으로 공격한 오른쪽 어깨는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다. 얼굴이 바닥과 거의 수평으로 놓여져 있을 지경이었다.
어깨가 그럴진데 팔이라고 무사할 리가 없었다. 힘을 과시라도 하듯 커다란 무기를 붕붕 휘둘러대던 팔은, 자기 몸무게에 짓눌린 채로 볼품없이 압축되어 있었다.
괴물은 비명을 지르다가 제풀에 지친 듯, 흐으 흐으 하며 고통스러운 숨소리만을 반복해댔다.
ㅡ어떻게…… 한낱 인간 따위가…… 그런 힘을…….
“글쎄? 나도 몰라. 알았으면 진작 써먹었지, 그렇게 깨작깨작 때려대고 있었겠냐?”
ㅡ그것만…… 그 힘만 아니었어도…….
“왜, 이게 아니었으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피식 웃었다.
이 정체모를 상황 때문에 아주 편하게 저놈을 때려잡은 맞지만, 아무런 일 없이 그대로였더라도 시간만 조금 오래 걸린다 뿐이지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2페이즈로 진입할 때까지 한 대도 못 때려놓고선 자기가 진 것이 정체모를 힘 때문이라니, 자기객관화도 제대로 안 되는 놈이었다. 죽기 직전이라 슬슬 본성을 드러내는건가.
게임에서도, 죽을 때 자기는 세계를 지배해야 할 몸이라며 진짜 성격을 아낌없이 보여줬었다.
“한 대도 못 맞춰놓고선 이기기는. 퍽이나 그랬겠네. 죽으려면 그냥 곱게 죽을 것이지, 뭘 정신승리를 하고 있어?”
신성 촉매를 꺼내들어 피 묻은 검에 가져갔다. 환한 태양이 떠올랐다.
ㅡ있을 수 없다…… 평범한 인간은, 그 힘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그릇이 버티지 못하고 녹아내렸어야 하거늘…….
놈은 몸을 비틀며 어떻게든 일어서려 했지만, 우반신의 부상이 너무 심각한지라 무의미한 발버둥이었다. 전신의 상처에서 심연과 그림자가 줄줄 흘러나왔다.
‘그릇이 못 버텼을거라고?’
그 말의 의미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방금 내가 보여준 힘이 일시적인 것이든 영구적인 것이든,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못 버틸만한 수준이라는 뜻이겠지.
그런데 나는 왠지 모르겠지만 버텨냈고, 심지어 버틴 걸로도 모자라 그걸 자유자재로 사용하기까지 했다.
저놈이 왜 못버틸거라 말했는지는 충분히 납득이 갔다. 지금의 교황조차 어쩌지 못한 심연 속 존재를 고작 칼 몇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토막쳐버릴만큼 강한 힘이지 않은가.
정말 어지간하지 않고서는 출력을 감당하기조차 힘들거다.
‘뭐, 왜 그런지를 굳이 지금 당장 생각할 필요는 없지. 어차피 나중에 교황들한테 물어보면 되는데.’
나는 피 묻은 검을 양손으로 잡고 천천히 놈에게 다가갔다. 저대로 떠들게 놔두면서 회복할 시간을 줄 바에는, 그냥 공격해서 죽여버리는 게 맞는 선택이었다.
게다가 신성력 관련이라면 저놈보다는 교황들이 훨씬 더 잘 알거다. 여기서 계속 지껄여대는 걸 듣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나머지는 죽고 지옥 가서 실컷 떠들어. 거기는 네 말 들어줄 사람 많을테니까. 나는 더 듣고 있기 귀찮거든.”
놈의 머리 근처로 다가갔다. 혹시 모르니 언제든 굴러서 피할 준비를 하는 것도 까먹지 않았다. 기껏 다 잡아놓고 방심하다가 픽 죽어버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삶을 포기해버린 듯, 괴물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어째 깨어나는 악 DLC의 최종 보스치곤 허무한 최후라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오히려 보스전은 허무하면 허무할수록 좋다. 그만큼 내가 안전하게, 별 탈 없이, 목숨의 위협을 받지 않고 클리어했다는 증거니까 말이다.
머리를 잘 조준한 뒤, 그 안으로 검을 찔러넣었다. 체력이 얼마나 남았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적당히 때리다가 빠져서ㅡ
ㅡ퍼어엉!
내가 생각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놈의 몸이 굉음과 함께 그대로 폭발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