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96)
“…….”
내 품에 들린 아이템들이 와장창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하던 행동을 멈춘 교황들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나를 돌아본 모습 그대로 굳어버렸다.
주위는 말 그대로 개판이었다. 원래 지하로 향하는 건물이 있던 자리에는 사람 키의 몇 배나 되는 구덩이가 보였다. 파헤쳐진 흙이 그 주변에 산더미처럼 쌓인 것은 덤이었다.
플로레타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코 끝이 새빨간데다 반짝거리는 녹안에서는 투명한 액체가 방울져 떨어졌다. 훌쩍, 훌쩍 하며 눈물을 삼키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그토록 고대하던 언니와의 만남이 성사되었건만, 플로레타가 흘리는 것은 기쁨의 눈물이 아니라 슬픔의 눈물이었다.
반대로, 루나는 금방이라도 픽 하고 쓰러져버릴 듯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는 자기 동생의 손을 꼬옥 붙잡은 채로 파들파들 떨어대고 있었다.
“귀빈님! 마침 잘 오셨어요!”
“귀빈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런 교황들의 옆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당황하던 스텔라와 셀레네는, 날 보자마자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순식간에 내 옆으로 다가왔다.
두 명이 내 손을 하나씩 붙잡았다. 그러더니 나를 질질 끌고 교황들에게로 데려가기 시작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건가 싶었다.
신나게 지상으로 복귀했더니 태양의 교황은 왜 대성통곡을 하는 중이고, 달의 교황은 또 왜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린 표정으로 멍하니 굳어있단 말인가.
내가 어리둥절해 하든 말든, 스텔라와 셀레네는 무척이나 절박해보이는 모습으로 나를 교황들의 앞까지 데려다놓았다. 히끅, 플로레타가 울음을 삼켰다.
눈물에 젖은 녹안이, 생기가 없어진 자안이 오롯이 날 향했다. 나는 저절로 새어나오려는 한숨을 참아내며 입을 열었다.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교황 성하.”
“히끅…… 귀빈, 님…… 살아, 계셨……?”
“그러면 제가 살아서 나타났지 설마 죽어서 나타났을까요. 저 멀쩡히 살아 있습니다. 대체 왜 그러고 계신겁니까? 이건 또 무슨 상황이고요?”
“저는…… 흐윽…… 저는…….”
플로레타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설움이 다시 북받치는 듯 눈물을 뚝뚝 흘려댔다.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싶다가도, 그럴 때마다 훌쩍이느라 말이 제대로 이어지질 않았다.
동생을 좀 달래줄 수 있겠냐는 의미를 담아 루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달의 교황은 달의 교황대로 멍하니 굳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에는 내가 나서야 할 모양이었다.
나는 손을 뻗어 엄지로 플로레타의 눈 밑을 천천히 닦아주었다. 손가락에 눈물이 묻어나오고, 투명한 액체가 손가락을 따라 손등까지 흘러내렸다.
“왜 울고 그러십니까. 저 여기 있는데. 이제 눈물 그치셔도 됩니다.”
눈물은 계속해서 새어나왔다. 눈 밑을 너무 많이 닦아서 혹시나 피부가 쓸리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몇 번을 어루만져도 그럴 낌새는 없었다.
플로레타는 그 상태로 한참을 더 울었다. 내 양손이 눈물로 푹 젖다시피 한 후에야 훌쩍거리는 소리가 간신히 잦아들었다. 여전히 히끅, 히끅 하며 딸꾹질을 해대긴 했지만 말이다.
“이제 조금 진정되셨습니까?”
플로레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면전에다 대고 추태를 부렸던 것이 부끄러운 듯 뺨이 살짝 붉었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드리겠습니다. 교황 성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건가요?”
“귀빈께서…… 그 괴물이랑 같이, 흑, 죽은 줄 알고…….”
“죽어요? 제가 말입니까?”
끄덕끄덕, 플로레타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왜 제가 죽었다고 생각하셨는지 질문드려도 되겠습니까? 너무 오랫동안 안 나와서?”
“그것도 있습니다만…… 지하에서 폭발음도 들렸고…… 그래서…….”
평소의 차분하고 자애롭기만 하던 말투는 온데간데 없고, 중간중간 울먹이느라 말이 뚝뚝 끊겨대기도 해서 절반 정도밖에 못 알아먹긴 했지만, 이유를 대강 짐작할 수는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의 특수 사망 모션이 원인이었다. 놈의 몸이 터질 때 생겨난 폭발음을 플로레타가 들어버린 것이다.
‘와, 그게 여기까지 들렸다고?’
그냥 보스룸에나 조금 울려퍼지고 말 줄 알았는데.
상황이 머릿속에서 착착 짜맞춰졌다. 아무래도 플로레타는 여기서 내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던 와중에 폭발음을 들은 것 같았다.
폭발음이 들린 이후에도 몇 시간째 돌아오질 않으니 망상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폭주한 것일테고.
실상은 그저 특수한 사망 모션에 불과했지만, 플로레타는 그걸 몰랐으니까 말이다. 착각할만한 여지는 충분했다.
중간부터 발휘되기 시작한 정체모를 힘 탓에 내가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을 처치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었다. 어쩌면 그것보다 짧거나.
그런데 1시간만에 교황들을 저주로부터 해방시켜놓고선 그 몇 배에 달하는 시간이 지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괴물이 있는 곳에서 여기까지 소리가 도달할 만큼 거대한 폭발음까지 들렸으니,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기에 손색이 없는 조건이었다.
‘……설마 이거 조금 늦는다고 뭔 일이 있겠냐 했었는데.’
설마가 정말로 사람을 잡아버렸다. 그런 장소에 더 있기 싫어서 여유를 안 부렸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더 늦기라도 했었다간 상황이 왕창 꼬일 뻔 했다.
“괜찮습니다. 교황 성하. 저 안 죽었잖아요. 이렇게 멀쩡히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네…… 그, 그렇죠. 훌쩍. 안 죽고 돌아오셨습니다.”
다시 울먹이기 시작한 플로레타의 눈가를 슥슥 닦아주고, 루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루나는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앉아있다가, 시선이 마주치자 몸을 움찔거렸다.
“달의 교황 성하.”
“……예. 듣고 있습니다.”
“약속, 지켰습니다.”
구태여 내 공적을 자랑할 이유도, 구구절절하게 설명을 늘어놓을 필요도 없었다. 약속을 지켰다는 한 마디면 아주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었다.
나는 달의 교황이 더 이상 스스로를 희생하지 않아도 된다고, 달의 교황이 희생을 치르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약속했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다.
이제 누군가 죽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게 내가 해줄 말의 전부였다.
달의 교황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한참을 있다가, 어깨를 간헐적으로 들썩이며 푹 잠긴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감사…… 합니다…… 정말, 로…….”
중간중간 훌쩍이며 울음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아하니,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아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플로레타의 눈물을 닦아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일어선 모습을 본 플로레타가 흠칫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제가 멀쩡하다는 것도 확인하셨는데, 이제 해야 할 일을 하실 시간이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루나에게로 흘끗 눈길을 주었다. 루나도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보라색 눈동자가 점점 멀어지는 나와 울먹이는 자기 동생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내가 지상으로 올라온 직후까지만 해도 서로 껴안고선 한쪽은 우느라, 다른 한쪽은 멍하니 있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제대로 된 인사조차 나누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나는 달의 교황과 태양의 교황이 눈물 가득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걸 확인한 뒤, 적당한 거리까지 물러났다. 스텔라와 셀레네가 나를 사이에 두고 양 옆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만 더 일찍 와주시지 그러셨어요, 귀빈님?”
앙탈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둘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곤란했을 것이다. 교황들이 저렇게 내가 죽었다며 슬퍼하고 있는데 그걸 달래줄만한 뾰족한 수도 없었을테니까.
“보시는대로 짐이 좀 많았어서요. 다 챙기려니까 양이 제법 되더라고요.”
나는 등 뒤에 내팽개쳐둔 아이템 더미를 가리켰다. 셀레네가 살짝 질렸다는 듯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저것들이 다 무엇입니까?”
“지하에 있던 물건들이죠. 그 괴물 놈한테 보물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뭔가 제법 많았습니다. 그대로 내버려두기는 아깝잖아요.”
“그러셨습니까. 알겠습니다, 귀빈이시여. 마차를 한대 더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요. 굳이 안 그러셔도 됩니다.”
“예? 그러면 어떻게 들고가신단 말입니까?”
“저한테 필요한 것들이 아니거든요.”
“잠시만요, 귀빈님. 그게 무슨ㅡ”
스텔라와 셀레네는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스텔라가 무슨 소리냐고 되물으려는 찰나, 나는 오른손 검지를 세워 입술에 수직으로 가져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내가 왜 그러는지를 알아차린 듯, 두 명은 동시에 입을 다물고선 앞을 쳐다보았다. 플로레타와 루나가 손을 맞잡은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해. 미안해, 에반젤리나. 너한테 나쁜 말을 한 것도, 너를 때렸던 것도, 그냥, 그냥…… 내가 전부 다 미안해. 전부 다…….”
기어코 루나의 눈에서도 눈물이 터져나왔다. 플로레타는 그 손을 힘있게 꼬옥 쥐어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야. 언니가 왜 그랬었는지 다 알고 있는걸. 우리가 언니를 미워하라고, 그래서 언니가 희생하더라도 덜 슬퍼하라고 그랬던거잖아? 그런데 언니가 미안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어…….”
교황들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을 흘려대더니, 이내 펑펑 울며 서로를 껴안았다.
밖으로 거의 드러나다시피 한 가슴이 중앙에서 맞닿았다. 둘 모두가 살짝 짓눌리더니 모양을 바꿨다. 짓눌린 가슴이 옆으로 한껏 삐져나왔다.
살과 살이 뒤섞이고, 가슴과 가슴이 비벼졌다. 그 끝의 분홍색 첨단을 가리고 있는 불투명한 천이 옆으로 젖혀지며 풍만한 모성의 상징을 과시하듯 보여주었다.
녹안과 자안에서 흘러나온 눈물이 뺨을 부빌 때마다 볼 위에서 뒤섞여 질척거렸다. 눈물 몇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리다가 턱 끝에 맺혀 가슴으로 떨어졌다.
가슴으로 떨어진 투명한 액체가 커다란 지방 덩어리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미끌, 맞닿은 가슴이 한층 더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대방을 꼬옥 껴안은 팔은 자연스레 서로의 등에 맞닿았고, 가녀린 손가락이 펼쳐지며 얇디 얇은 시스루 한 장 너머에 있는 맨살을 찬찬히 쓸어내렸다.
다른 한 손은 깍지를 끼고 있었다. 다신 이 손을 놓지 않겠다는 듯 손가락이 단단히 얽혔다. 손톱이 손등을 파고들었지만, 오히려 그 탓에 손을 조이는 힘이 더 강해졌다.
옆에서 스텔라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셀레네도 어딘가 먹먹한 표정이었다.
둘 모두 교황들이 겪은 고통을 옆에서 고스란히 지켜봐왔으니, 이제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울컥한 거겠지.
나 역시 교황들의 재회 장면을 보면서……
‘지금 반응하면 쓰레기다. 착한 생각. 착한 생각. 착한 생각. 착한 생각. 착한 생각.’
필사적으로 눈 둘 곳을 만들려 노력했다.
분명 감동적이어야 할 자매들의 재회 장면인데, 복장과 행동이 겹치며 선정적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남자라면 어쩔 수 없는 생리현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살짝 자괴감이 들었다.
교황들은 그 뒤로도 한참이나 눈물젖은 뺨을 부벼대고 서로의 가슴을 겹치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마찬가지로 내 고뇌 역시 한참을 더 이어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