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99)
‘뭘 부탁하려고 그러는건가 했더니…….’
둘 다 아주 진지한 표정이길래 나도 덩달아 긴장했었는데, 그냥 곧 있을 연회에서 교황들이 어떤 드레스를 입을지 골라달라는 부탁이었다.
겸사겸사 기사단장들의 연회용 의복도 선물해줄 겸 해서 말이다. 교황이 직접 드레스를 선물해준다는 말에, 기사단장들의 몸이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었다.
원작 게임에서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존재해서도 안 되는 이벤트라 그 장소에서 뭐가 일어날지는 전혀 모른다. 하지만, 이미 뒤틀린 게 한두 가지가 아니기에 그러려니 했다.
시작부터 DLC 최종 보스를 때려잡은 건 어디 정상적인 진행이었나. 그냥 스토리의 큰 흐름만 안 뒤틀리면 된다. 나머지는 뭐 어떻게든 되겠지.
우리는 스텔라와 셀레네의 뒤를 따라 곧장 숙소를 나섰고, 밖에서 대기하던 전투 수녀들이 기다렸다는 듯 주위를 둘러쌌다. 족히 서른은 훌쩍 넘어보이는 숫자였다.
그 상태로 걸어갔으니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처사였다. 길거리의 사람이란 사람은 죄다 우리를 한 번씩 쳐다보고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전투 수녀들의 평균 키가 제법 크긴 했는데, 그래봤자 클라우디아나 나보다는 작았기에 우리 둘은 사람들의 시선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나마 이단심판관과 이단심문관 덕분에 대놓고 쳐다보는 일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이단심판관님.”
나는 스텔라에게 슬쩍 말을 붙였다. 스텔라는 내가 말을 건넨 그 즉시 고개를 돌렸다.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귀빈님?”
“수녀들한테 무슨 바람을 불어넣으셨던겁니까?”
“네?”
스텔라는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나는 리제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내가 숙소에 돌아간 이후부터 갑자기 옷 갈아입는걸 도와주겠다고 나선다거나 하는 식으로 기헙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면서.
내 설명을 들은 스텔라가 난처한 듯 웃으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아…… 죄송해요. 워낙에 신앙심이 깊은 아이들이라서요. 제 말을 너무 충실하게 따랐나봐요.”
“뭐라고 하셨길래요?”
“교황 성하께서 귀빈님들을 특별히 잘 보살펴달라 말씀하셨으니 더 신경써서 행동하라고 했었죠.”
“…….”
왜 그랬는지 단번에 납득해버렸다.
그래, 교황이 직접 우리를 잘 보살펴달라고 말했다면 없는 봉사라도 만들어서 해야겠지. 없는 봉사를 만들다보니 그런 행동이 튀어나온거고.
꾸우욱, 누군가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찔러댔다. 오른팔을 내려다보았다. 리제가 나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털어놓으라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나머지 기사단장들도 비슷했다. 도대체 무슨 괴물을 잡았길래 이런 대접을 해주냐, 하는 시선이었다. 애써 그 시선을 무시하자, 옆구리를 찌르는 힘이 한층 더 강해졌다.
그 상태로 얼마나 걸었을까, 셀레네가 걸음을 멈췄다. 우리는 어느샌가 무척 화려해보이는 건물 앞에 서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최고급 성복을 만드는 재단소입니다. 오늘 하루는 교황들께서 잠시 빌리셨으니 안심해주십시오.”
오늘 하루는 잠시 빌렸다니, 그러면 하루종일 여기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인가. 갑자기 몸에 오한이 드는 느낌이었다.
스텔라와 셀레네가 정중히 문을 열어주었고, 전투 수녀들이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우리들은 그 부담스러운 행동을 견디지 못하고 후다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어마어마하게 화려했다. 태양을 상징하는 물질인 황금과 보석, 달을 상징하는 물질인 은과 대리석이 모두 사용되어 있었다. 뭐가 어떤지를 일일이 눈에 담기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분명 화려하기 짝이 없는 곳인데, 과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낸 느낌이었다.
“오셨습니까, 귀빈이시여.”
“부탁을 들어주신 것에 감사를 표합니다.”
교황들이 미소와 함께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여전히 어마어마한 노출도를 자랑하는 성복과, 속옷을 입지 않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출렁이는 가슴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교황 성하들을 뵙습니다.”
기사단장들이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리제도 팔짱을 풀고 같이 고개를 숙였다.
플로레타는 그 틈을 타서 방실방실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 옆에서 루나도 어색한 미소와 함께 쭈뼛쭈뼛 플로레타를 따라했다. 아직은 미소가 어색한 모양이었다.
나도 똑같이 손을 흔들었다. 여기서 괜히 예의를 차렸다간 인사를 건넨 교황들만 뻘쭘해질 것이 분명했다. 루나의 뺨이 살짝 달아오르는 게 보였다.
교황들은 나와 인사를 주고받자마자 표정을 엄숙히 바꾸었다. 옅게 달아올랐던 루나의 뺨도 순식간에 본래의 색을 되찾았다.
“고개를 들어주시지요, 은빛 여명 기사단의 용맹한 기사단장들이여. 우리들은 이곳에 예의를 차리러 온 것이 아닙니다.”
“저, 저희들이 어떻게 감히…….”
기사단장들은 플로레타가 몇 번이나 괜찮다는 말을 한 것으로도 모자라 루나까지 합세한 뒤에야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새삼 성국의 교황이라는 직위에 대한 실감이 났다.
“저희가 귀빈들을 부른 이유에 대해서는 이단심판관과 이단심문관이 설명하였겠지요. 연회에 입으실 복장을 선물해드리기 위함입니다.”
“저, 교황 성하. 굳이 그러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는 이 정복 차림으로도…….”
클라우디아가 어색함과 쭈뼛거림이 반쯤 섞인 몸짓으로 손을 들며 말했다. 나는 정복 차림, 이라는 단어를 듣고 기사단장들의 옷을 차례로 훑었다.
흰 민소매에 자기 머리카락 색깔의 돌핀팬츠가 은빛 여명 기사단의 정복이라는 사실은 진작에 알고 있긴 한데, 저런 표현은 영 적응이 안 됐다.
플로레타는 자애로운 미소를 띄우며 후훗, 하고 짧게 웃었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이미 성국 내부에서 논의가 끝난 일입니다. 부디 저희들의 성의가 헛되이 버려지지 않도록 해주실 수는 없으실런지요?”
교황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클라우디아도 더 거절하긴 애매했는지 한 발 물러났다. 나머지 기사단장들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저러는 이유는 아마 부담스러워서겠지. 네 명 모두, 자신에게 과도할만큼 주어지는 호의를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착한 성격이었으니까 말이다.
“이쪽입니다.”
교황들은 우리를 훨씬 더 안쪽으로 이끌었다. 복도의 양 옆에는 온갖 종류의 성복이 특수한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마치 투명한 마네킹을 보는 듯 했다.
이곳의 옷들도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처음에는 그나마 정상에 가깝다가,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심상치 않은 노출도를 지닌 의복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천의 면적이 작아지고, 속옷이 사라졌다. 복도가 끝날 무렵의 마네킹에 입혀진 것은 천의 면적을 모조리 합쳐도 내 팔 한쪽이나마 가릴 수 있을지 의문이 들게 만드는 옷이었다.
‘……기사단장들도 저런 드레스였지 않나?’
방금 지나간 성복과, 기사단장들이 연회때 입었던 시스루 란제리 드레스. 둘 중 어느쪽의 노출이 더 심할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결론은 둘 다 엇비슷하다, 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어이가 없었다. 어쩌면 여자들의 헐벗은 모습에 대한 역치가 점점 올라가고 있는 중일지도 몰랐다.
복도의 끝에는 거대한 원형의 공간이 있었다. 그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수녀들이 우리를 보더니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수녀가 고개를 들자, 교황이 손짓했다.
“보여주세요.”
“따르겠습니다, 교황 성하.”
여자들은 고풍스러운 몸놀림으로 커튼을 쳐놓은 벽을 향해 다가갔다. 커튼이 조심스럽게 젖혀졌다. 그 안에 줄지어 놓인 각양각색의 드레스들이 보였다.
상당히 본격적으로 준비했는지, 최소로 잡아도 30벌은 넘어갈 듯 했다. 어디까지나 최소였다. 저 안에 커튼이 하나 더 있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하나같이 노출이 무척 적었다.
팔이나 쇄골, 어깨를 조금씩 드러내는 드레스가 제일 노출이 많은 의상이었다. 대부분은 드레스 자락이 발목까지 내려왔고, 상의도 꽁꽁 싸매놓아 맨살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물론 옷이 수수하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었다. 어딜 가도 화려함으로는 절대 뒤지지 않을 드레스였다. 그냥 노출의 수준이 내 예상을 한참 엇나갔을 뿐이었다.
“귀빈들은 신성한 힘을 가지고 계시지 않으시니 몸을 최대한 가리는 드레스로 준비하였습니다. 허나, 만일 원하신다면 저희와 똑같이 성스러운 옷을 제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시겠습니까?”
플로레타의 말을 들은 수녀 하나가 다른 쪽의 커튼을 젖혔다. 그곳에는 방금 보여주었던 의상들보다 훨씬 더 노출도가 높은 드레스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래서 성국 여자들의 옷차림이…….’
방금 플로레타가 한 말 덕분에, 왜 성국 여자들이 몸을 꽁꽁 싸매고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안 벗은게 아니라, 못 벗은거다. 의복의 노출도를 높이려면 그만큼 신앙을 키워야 하니까.
교황이 시스루 드레스라는 터무니없는 복장을 하고 있는 이유도, 스텔라와 셀레네의 옷이 다른 전투 수녀보다 노출도가 높은 이유도 저걸로 모두 설명이 됐다.
더 큰 힘을 가질수록 더 헐벗는다니, 역시 언제나 내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 세계였다.
“괘, 괜찮습니다. 교황 성하. 저희들이 어떻게 감히 성복을 입겠습니까. 지금 보여주신 드레스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에리카가 더듬더듬 답했다. 에리카도 신성력에 비례해 노출도가 올라가는 상황 자체는 아무렇지 않게 납득한 모양이었다.
“그러하시다면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드레스를 골라주시지요.”
플로레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주위에 서 있던 수녀들이 일제히 기사단장들에게 달라붙어 무언가를 조잘조잘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주위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이런 소란스러움과는 연이 없었던 듯, 기사단장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벙해졌다. 수녀들은 그런 기사단장들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드레스 쪽으로 다가갔다.
차락, 커튼이 다시 쳐졌다.
“…….”
나는 자연스레 혼자서 덩그러니 남겨졌다.
하지만 외롭다거나 하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커튼 너머로도 수녀들이 떠들어대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릴 지경인데, 저런 마경을 회피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내가 속으로 안도하고 있으려니, 플로레타가 방긋방긋 웃으며 다가왔다. 그 뒤로는 루나가 쫄레쫄레 따라오고 있었다.
“귀빈님께서는 따로 해주실 일이 있으십니다.”
“……할 일이요?”
두 교황들이 내 팔을 한 쪽씩 붙잡았다. 물컹, 양쪽 팔뚝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가슴골의 감촉이 느껴졌다.
“저희들의 성복을 골라주셔야지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