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102
102화 : 독일 제국 방송 (2)
“곧 기념비적인 첫 방송이군요!”
“그리도 기대되십니까? 브레도우 씨?”
“기대될 수밖에 없지요. 조금만 있으면 독일, 아니 전 세계가 깜짝 놀랄 텐데요.”
독일 제국 방송 DRR의 첫 번째 라디오 방송이자 세계 최초의 라디오 방송까지 1시간도 남지 않았을 때.
나는 여러모로 바빠 온전히 DRR에 신경 쓸 수 없는 나를 대신해 방송국을 맡기기 위해 고용한 한스 브레도우(Hans Bredow)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브레도우 씨는 DRR에 고용되기 전까지 지멘스와 AEG의 합작회사인 독일의 무선 회사 텔레풍켄(Telefunken) 출신으로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태평양 함대에 무선 설비를 제공하기도 한 무선 통신 전문가였다.
텔레풍켄은 DRR의 협력업체였고, 그 때문에 몇 번 텔레풍켄 본사에 들를 일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우연히 만난 브레도우 씨의 라디오 방송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감탄했다.
브레도우 씨가 마음에 든 나는 큰맘 먹고 그를 독일 제국 방송에 스카우트했고,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브레도우 씨는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 DRR이 성공적인 개국을 맞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앞으로도 DRR은 브레도우 씨에게 맡겨 놓으면 되겠어.’
라디오 보급도 파격적인 할인정책과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이용한 대량 생산 덕에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고, 영국을 비롯한 타국에서도 라디오에 관심을 보이며 나에게 연락해 오고 있었다.
우리도 자국에 라디오 방송국을 만들고 싶다고 말이다.
BBC를 비롯한 유럽의 유명한 방송국들의 탄생에 관여할 좋은 기회였기에 나는 개국 후에 자세한 이야기를 하자며 긍정적인 대답을 보냈다.
이제 오늘 첫 방송만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는다면, 독일 제국 방송의 앞날은 파도를 가르며 앞으로 쭉쭉 나가는 돛단배처럼 순풍만범일 것이다.
“남작, 여기 있었군.”
“뷜로 총리님.”
내가 브레도우 씨가 방송 준비를 감독하는 모습을 뒷짐 지고 지켜보는 사이, 뷜로 총리가 나를 찾았는지 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폐하께서 연설 준비를 다 마치셨네.”
“저희 쪽의 준비도 거의 끝났습니다.”
“음. 폐하를 기다리시게 해서는 안 되는 법이지.”
뷜로 총리가 잘되었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계획한 독일 제국 방송의 기념비적인 첫 방송은 무려 빌헬름 2세의 연설을 실시간의 독일 전역에 중계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세계 최초의 라디오 방송인데, 카이저가 직접 연설 정도는 해 줘야 뭔가가 더 있어 보이지 않겠나?
“나보고 라디오 첫 방송에 기념 연설을 해 달라고?”
“예, 폐하. 의미 있는 일인 만큼 꼭 폐하를 모시고 싶습니다.”
“흠, 세계 최초로 하는 라디오 연설의 주인공이라. 그거 마음에 드는군.”
빌헬름 2세도 내 제안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세계 최초 타이틀의 주인공이 될 기회는 흔치 않은 법이고, 허세로 가득한 빌헬름 2세는 이 기회를 기꺼워하면 기꺼워했지 절대 걷어찰 사람이 아니었다.
뷜로 총리 또한 카이저가 라디오 연설을 한다는 말에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당혹스러워했지만, 그냥 마이크에 대고 연설문만 읽으면 된다는 내 말에 그 정도면 문제 될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지 순순히 이를 허락했다.
“남작님. 방송까지 30분 남았습니다.”
“그럼, 슬슬 폐하를 모셔오도록 하지.”
“네. 부탁드립니다.”
나는 뷜로 총리에게 그리 말한 뒤, 다시 한번 스튜디오의 상태를 점검했다.
마이크 상태도 좋고, 송출 상태도 원활하다.
그렇기에 이제부터 해야 할 것은 단 하나.
카이저가 부디 실수하지 않고 방송을 마치기를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한스, 준비가 다 끝났다고 들었다.”
“폐하.”
잠시 후 오늘의 주인공이 드디어 등장했다.
내가 허리를 숙이자 브레도우 씨를 비롯한 방송국 직원들도 긴장한 얼굴로 얼른 허리를 숙였다.
카이저는 이 모습이 만족스러운 듯 한층 더 꼿꼿해 보이는 콧수염을 자랑하며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다.
“연설은 수도 없이 경험해 봤지만, 어째 사람들 앞에서 서는 것보다 더 긴장되는군.”
연설문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는 빌헬름 2세.
모두의 초조한 마음을 대변하듯 시간은 찰나의 번개처럼 순식간에 지나갔고, 어느덧 방송까지 1분이 남았다.
“폐하, 준비하십시오. 빨간 불이 들어오면 그대로 연설을 시작하시면 됩니다.”
“으음, 알겠다.”
“30초 남았습니다!”
나는 스튜디오 밖으로 나간 채 뷜로 총리, 브레도우 씨와 함께 방 안에 홀로 마이크와 마주 보고 있는 빌헬름 2세를 바라보았다.
“Fünf! Vier! Drei! Zwei! Ein!”
딸깍─
드디어 방송이 시작되었다.
* * *
“이제 슬슬 시작할 때가 되었는데.”
반값이란 말에 홀딱 넘어가 라디오를 질러 버린 바람에 아내에게 등짝을 맞은 디트리히는 하염없이 시계만을 바라봤다.
이제 곧 독일 제국 방송이란 곳에서 예고한 라디오 첫 방송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나오는 거 맞아요?”
디트리히의 아내가 의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편이 자신과 상의도 없이 구매한 라디오는 지난 한 달 동안 그저 물건을 올려놓는 가구에 불과했다.
거기다 방송을 들으려면 수신료로 2마르크를 내야 한다니 그녀로선 철딱서니 없는 남편에게 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웃집들도 라디오를 샀다는 말에 지난 한 달 동안 초인 같은 인내심을 발휘했지만, 이 호구 같은 남편이 만약 아무 쓸모도 없는 물건을 사 온 것이라면 오늘 아주 요절을 낼 생각이었다.
[치지직──! 삡. 삡. 삡. 삡. 삐입─!]“오, 나온다. 나온다!”
디트리히에겐 다행스럽게도 시곗바늘이 정각을 가리키자 그에 맞춰 라디오에서 정말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디트리히의 아내도 라디오가 정말 남편의 말대로 소리를 내자 얼굴에서 불만이 사라지고 새로운 문명의 이기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만이 남았다.
[따단~따단~따단~따다단~♪]방송의 시작되자 마치 오케스트라의 서곡처럼 한동안 노래 반주가 흘러나왔다.
독일인의 노래(Das Lied der Deutschen).
오스트리아의 국가이자 독일 제국 내에서도 제2의 국가로서 널리 불리는 곡으로 요즘은 공식 국가인 승리의 왕관보다 독일인의 노래가 더 유명한 노래였다.
아무래도 승리의 왕관은 원곡이 원곡인지라 영국 국가가 먼저 떠오르는 곡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독일 제국 방송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으론 적절한 선곡이라 할 수 있었다.
[치직─! 친애하는 독일 국민 여러분.]짧은 반주가 끝나자 누군가의 인사와 함께 본격적인 방송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인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챈 디트리히의 가족들은 눈을 휘둥그레졌다.
각자의 집이나 맥주홀 등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던 다른 독일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사로운 봄날이 다시 한번 우리 곁에 찾아온 가운데 여러분에게 이렇게 인사를 전하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황, 황제 폐하다.”
누군가의 그리 말하자 라디오 방송에 흥분한 사람들로 인해 여러모로 소란스러웠던 맥주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설마하니 첫 방송부터 카이저가 나올 줄은 그 누구도 몰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사람들이 마치 직접 눈앞에서 카이저를 목도한 것처럼 모자를 벗고 정중한 태도를 갖추는 해프닝이 일어날 정도였다.
그러나 사람들의 표정이 어떻게 변하든 라디오는 상관하지 않고 묵묵히 빌헬름 2세의 연설을 독일 전역으로 흘려보냈다.
[지금 여러분께서는 라디오라는 독일의 위대한 발명품 앞에 앉아 제 목소리를 듣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엄마? 저기서 누가 말하는 거예요?”
“쉿, 황제 폐하시란다. 조용히 하고 잘 들으렴.”
베를린에 있는 디트리히의 집에서도.
[그리고 이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불가능했던 일입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그거야 그렇지.”
“맥주 마시면서 카이저의 연설을 듣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뮌헨의 맥주홀에서도.
[하지만 오늘 우리 독일 제국은 국민 니콜라 테슬라라는 위대한 천재의 지성과 한스 폰 초이 남작의 노력 덕분에 그 불가능한 일을 해내었습니다. 다시 한번 인류 문명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위업을 이루었습니다.]“허허, 설마하니 바다 위에서 형님의 연설을 듣게 될 줄은 몰랐네. 한스가 재미있는 물건을 만들었어.”
킬 군항에 주둔 중인 카이저마리네 함선들에서도.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번영과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적어도 테슬라 씨가 프리드리히쇼프에서 보낸 나날들이 헛된 것은 아니었네요.”
“하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마르가레테 공주님.”
“……예? 앞으로도요?”
그리고 프리드리히쇼프 성에서도 빌헬름 2세의 연설은 울려 퍼졌다.
[마지막으로 독일 제국과 독일 국민 여러분께 하느님의 가호가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카이저 만세(Heil Kaiser)!”
“독일 제국이여. 영원하여라!”
“신이시여, 황제를 지켜 주소서!”
빌헬름 2세가 연설이 끝나자 독일 전역에서 박수 소리와 함께 함성이 울려 퍼졌다.
마치 카이저가 그들에게 직접 말을 한 것처럼 말이다.
독일인들의 반응이 이리 열광적인 것도 당연했다.
이 당시 유럽의 군주들은 여전히 일반 시민들에게 있어 먼 존재였고, 이렇게 직접적으로(어디까지나 지금 기준으로) 군주가 국민과 소통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라디오는 반값 할인이 끝났음에도 더욱 불티나게 팔려 나갔고, 빌헬름 2세의 라디오 연설이 해외에 전해지자 전 세계의 군주들과 지도자들도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보던 라디오에 한층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라디오는 자신들의 지지도를 끌어올려 줄 매우 좋은 도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디오가 해피엔딩을 맞이하기엔 아직 멀었다.
격동의 20세기는 동화책처럼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돌아가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약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는 처절한 경쟁의 시대였고, 그러한 경쟁 속에서 기어코 한 분야의 정점에 올라선 한 남자는 라디오의 성공에 눈을 찌푸렸다.
“……테슬라 그 퇴물이 이걸 만들었다고?”
“네, 사장님. 한스 폰 초이 남작이라는 요즘 소문 자자한 동양인 귀족이 관여했다는군요.”
“마음에 안 드는군. 변호사들을 불러. 감히 내 영역을 침범한 건방진 꼬맹이에게 사회의 매운맛이 무엇인지 보여 줘야겠어.”
* * *
라디오 방송은 대성공이었다.
특히 빌헬름 2세는 처음 해 보는 라디오 방송에 꽤 감명을 받았는지 6월에 있을 빌헬름 황태자의 결혼식을 라디오 방송으로 중계하면 어떻겠냐는 말을 했다.
물론, 빌헬름 황태자는 자신의 결혼식 중계보다는 축구 중계에 더 관심이 많았지만 말이다.
심지어 그 축구광은 컵 대회 창설에 돈을 보태 달라며 은근히 나에게 부담을 주고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참에 회사 홍보도 할 겸 스폰서로 참여해 볼까?’
“남작니임─!”
“아잇, 깜짝이야!”
내가 그리 생각에 잠긴 사이, 브레도우 씨가 내 사무실에 노크도 없이 들이닥치며 대뜸 날 불렀다.
나는 심호흡하곤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브레도우 씨에게 물었다.
“브레도우 씨. 무슨 일인데 이리 난리가 난 것입니까?”
“마, 마르코니사가 우리 DRR의 라디오가 자신들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걸었습니다!”
창백하게 질린 브레도우 씨의 말에 나도 모르게 미간이 좁혀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아는 마르코니사는 단 한 곳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굴리엘모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가 드디어 움직였군요.”
전 세계의 무선 전신을 독점하는 무선 통신 업계의 절대자로 군림하는 마르코니 무선 전신 회사(Marconi’s Wireless Telegraph Company)의 주인.
그가 드디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라디오를 향해 칼을 뽑아 든 모양이다.
‘왜 이렇게 조용하나 싶었는데, 우리가 막 비상하려고 할 때 발목을 붙잡으려는 셈인가.
우리가 가장 아파할 순간을 노려 공격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순수한 과학자인 테슬라와 달리 에디슨처럼 과학자인 동시에 타고난 사업가였던 마르코니 다운 짓이라 할 수 있다.
“괜찮습니다. 브레도우 씨.”
하지만 마르코니가 이런 식으로 나오리란 건 이미 오래전부터 예상한 바였기에 나는 놀라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한 채 브레도우 씨를 진정시켰다.
“JP모건에게 연락하세요. 이탈리아인의 추한 발버둥을 막을 시간이 왔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