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 사이언스 & 어드벤처 (3)
“아무리 생각해도 다들 제정신이 아니야.”
나는 진땀을 흘려가며 하인리히 왕자에게 비행기 조종법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 라이트형제의 모습을 바라보며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일부러 하인리히 왕자가 비행을 포기하게 만들기 하인리히 왕자의 부인인 이레네 왕자비와 형인 빌헬름 2세의 허락을 받아 오라 말했건만, 이레네 왕자비와 빌헬름 2세는 내 예상을 보기 좋게 배신하고 하인리히 왕자의 비행을 허락해 버렸다.
이레네 왕자비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며 자포자기한 상태였고, 빌헬름 2세는 빌헬름 2세대로 하인리히는 자신이 반대해도 어차피 저지를 놈이라며 하인리히 왕자를 설득해 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하인리히 왕자의 행동을 보면 왠지 모르게 두 사람의 태도가 이해가 가긴 하지만.’
뒷일을 결국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힘없는 게 죄라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라이트형제에게 사고가 나도 최대한 하인리히 왕자가 제 몸을 보전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뿐이었다.
덕분에 라이트형제는 지난 한 달 동안 하인리히 왕자에게 달라붙어 왕자의 머릿속에 비행기 조종과 안전 수칙에 대한 모든 것을 새겨 놓는 것에 열중했다.
하인리히 왕자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공부를 지루해하긴 했지만, 불성실하게 들으면 비행도 끝이라는 내 말에 지금만큼은 성실한 학생이 되어 라이트형제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내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기엔 그 정도로는 부족했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낙하산부터 어떻게든 만들어 볼걸!’
어차피 제대로 된 낙하산은 1912년이 돼서야 러시아 출신 과학자인 그레브 코텔니코프(Gleb Kotelnikov)에 의해 개발되었기에 의미 없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다.
참고로 이건 여담이지만, 낙하산이 이미 존재했음에도 제1차 세계대전 초기에 활동했던 파일럿들은 한동안 낙하산을 사용하지 못했다.
무려 군의 높으신 분들이 파일럿들에게 낙하산을 지급하면 파일럿들이 겁쟁이가 되어 총알 좀 맞았다고 비싼 돈 들여 만든 비행기를 쉽게 포기해 버릴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개소리에 불과했다.
비행기가 아무리 비싸다 한들 우수한 파일럿 한 명의 가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괜히 현대에 파일럿들을 구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창설된 항공구조대 같은 공군 특수부대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높으신 분들의 안일한 생각은 모두가 예상했다시피 최악의 결과로 나타났다.
낙하산의 부재로 인해 파일럿들의 생존율이 급감한 것도 모자라 파일럿들의 사기와 숙련도가 처참할 정도로 낮아진 것이다.
예정된 일이었다.
자신을 일개 소모품 취급하는데, 어느 누가 기분이 좋을까?
결국,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이었지만, 높으신 분들은 그제야 부랴부랴 낙하산을 파일럿들에게 지급했다.
신병기들이 대거 투입된 전쟁인 제1차 세계대전이 만들어 낸 해프닝 중 하나였다.
“좋아. 이걸로 지루한 수업도 끝이군. 그럼 이제 비행기를 타도 되겠지?”
마침내 라이트형제가 더는 가르칠 것이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하인리히 왕자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결국, 이날이 오고 말았다.
나는 한숨 쉬며 하인리히 왕자를 향해 마음대로 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인리히 왕자는 장난감을 사도 된다고 엄마에게 허락받은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얼굴로 비행기를 향해 달려갔다.
남자는 어른이 되어서도 애라지만, 왜 그걸 이레네 왕자비가 아닌 내가 겪고 있는지 모르겠다.
“남작님, 그러면 슬슬 촬영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촬영 기사가 나에게 그리 말하자 나는 그러라며 손짓으로 대답했다.
응? 여기에 왜 뜬금없이 촬영 기사가 있냐고?
그거야 하인리히 왕자의 비행 장면을 영상 기록으로 남겨서 홍보를 통해 비행기의 관심과 투자를 늘려 보기 위해서였다.
이대로 하인리히 왕자에게 휘둘리기만 하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하인리히 왕자는 비행기 홍보를 위해 몸소 나서 줘야겠다.
‘어디까지나 사고가 안 나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나는 들뜬 얼굴로 비행기를 향해 걸어가는 하인리히 왕자를 긴장한 얼굴로 바라봤다.
과연, 하인리히 왕자가 비행을 성공적으로 끝마칠 수 있을까?
이 시대 비행기는 구조가 미래의 것보다 훨씬 단순했기에 하인리히 왕자가 조종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당장 하인리히 왕자도 한 달 만에 비행기 조종을 배웠을 정도니까.
그래도 걱정이 들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더라도 사고는 예기치 않는 순간 찾아오는 법이니까.
이런 내 마음을 전혀 모른 채 하인리히 왕자는 어서 하늘을 날 생각으로만 부풀어있었다.
하인리히 왕자는 나와 라이트형제를 향해 씩 웃으며 엄지를 들어 올려 따봉을 한 뒤, 플라이어 3호의 조종석에 누웠다.
터덜터덜─덜덜덜덜덜덜───
곧 왕자가 플라이어 3호의 시동을 걸자 멈춰 있던 프로펠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플라이어 3호는 천천히 움직이며 활주로 전방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촤르르륵──
한편 촬영 기사는 비행기에 눈을 떼지 않으며 영화 촬영용 카메라에 하인리히 왕자와 플라이어 3호의 모습을 필름에 담기 시작했다.
나와 라이트형제는 카메라와 촬영 기사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우린 다른 의미로 하인리히 왕자와 플라이어 3호에 눈을 떼지 못하는 중이었으니까.
부웅──
긴장되는 몇 분이 지나고 점차 속도가 붙어 빠르게 앞으로 질주하던 플라이어 3호의 바퀴가 마침내 땅에서 떨어졌다.
“와.”
비행을 처음 보는 촬영 기사가 무심코 내뱉은 탄성 속에서 하인리히 왕자와 플라이어 3호는 멋지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와 라이트형제는 하인리히 왕자가 사고 없이 성공적으로 이륙한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큰 고비 중 하나는 넘겼네요.”
“기체 상태도 완벽하고 바람 상태도 좋으니, 남은 것은 안전하게 착륙하는 것뿐입니다.”
사실 이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어쨌든 하인리히 왕자는 플라이어 3호를 타고 라이트형제의 연구소 겸 비행기 공장 위를 약 30분가량 비행했다.
부우웅~
“왕자님이 비행기를 꽤 능수능란하게 다루네요.”
“취미가 요트와 자동차거든요. 재능이 있을 수밖에 없죠.”
곡예비행은 꿈도 꾸지 말라고 내가 경고를 했기에 그저 활주로 위를 빙빙 도는 것에 그쳤지만,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작은 환호 소리로 미루어 볼 때 왕자는 그걸로 충분히 만족한 모양이었다.
끼이이익───
그렇게 약속했던 비행시간이 끝나고, 하인리히 왕자가 다시 활주로에 착륙을 시도했다.
다행히도 이륙이 성공적이었던 것처럼 착륙 또한 깔끔하게 이루어졌다.
나와 라이트형제는 그제야 모든 긴장을 내려놓고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후아───!”
비행이 마음에 들었는지 하인리히 왕자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큰 소리로 외쳤다.
촬영 기사도 촬영이 만족스러웠던지, 아니면 왕자의 비행에 감탄했던지 하인리히 왕자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차 보이는 하인리히 왕자가 나한테 달려오며 말했다.
“한스! 한 번만 더 타게 해 주면 안 되겠냐?”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꿈도 꾸지 마세요.”
* * *
비행이 끝난 뒤, 하인리히 왕자는 이것이 마지막이란 내 말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럭저럭 만족한 얼굴로 돌아갔다.
나중에 군에 비행기를 도입하려고 할 때 장성들을 설득하는 데 도움을 주기로 나와 약속한 것은 덤이었다.
물론, 비행기의 매력에 푹 빠진 하인리히 왕자라면 내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비행기를 도입하자고 여기저기 떠들고 다닐 것 같지만.
어쩌면 아예 한발 더 나아가 항공모함을 만들려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거함거포주의자인 티르피츠 제독이 과연 이를 받아들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항공정찰을 통해 전함의 정확한 장거리 포격에 도움을 주고 함선에 위협적인 해안 포대를 대신 처리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설득해 봐야겠다.
하지만 그 전에 전투기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비행기가 발전하는 것이 먼저였다.
어쨌든 항모를 만들든 안 만들든 카이저마리네가 항공모함을 운용하는 것을 한 번쯤은 보고 싶다.
독일 제국의 항공모함.
이 얼마나 로망 넘치는 이름인가.
어쨌든 나는 다시 포츠담으로 돌아와 후원을 늘려 가는 작업을 계속 진행했다.
지난번에 언급했던 로알 아문센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물론, 황태자의 결혼식 때 만났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비롯한 예술계에도 돈을 뿌렸다.
덕분에 꽤 많은 돈을 썼으나 아깝지는 않다.
이 돈들은 결국 나중에 인맥과 명성이란 돈 주고도 사기 힘든 매우 값진 형태로 나에게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위한 투자로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1905년 7월.
여름이 어느덧 절정에 달했을 때, 러시아 제국에서 흥미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러시아 제국, 대규모 개혁 약속!]니콜라이 2세가 사상과 집회의 자유와 의회의 설치 등 입헌정치를 도입할 것을 신민들에게 약속했다.
사실상 원 역사의 10월 선언과 다를 바 없는 이른바 7월 선언이었다.
하긴 피의 일요일, 피의 화요일이 원 역사보다 조금 빨라졌으니 10월 선언이 7월 선언이 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이것으로 러시아 제국이 과연 다시 평화로워질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 * *
피의 화요일 이후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던 러시아 제국은 비테의 개혁안을 마지못해 받아들인 니콜라이 2세의 7월 선언을 통해 조금씩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러시아 각지에선 소요 사태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기에 러시아 제국의 첫 내각이 구성되면서 러시아 제국의 총리라 할 수 있는 대신 회의 의장에 임명된 세르게이 비테는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핀란드에서 일어난 총파업이 진정될 기미를 보인다고?”
“네. 7월 선언으로 자유주의자들이 우리 쪽으로 돌아선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만 얼마 전 키예프에서 파업이 일어났습니다만 규모가 작은 데다가 곧 진압될 예정이니, 이 건에 대해선 걱정 놓으셔도 될 것입니다.”
“후, 스톨리핀 자네를 내무장관으로 추천하길 정말 잘했군. 덕분에 한숨 돌리겠어.”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의장 각하.”
원 역사보다 러시아 중앙 정계에 훨씬 빨리 진출한 표트르 스톨리핀이 비테의 칭찬에 겸허히 고개를 숙였다.
그는 비테의 추천으로 원 역사보다 1년 빨리 내무장관이 되어 러시아 전역에서 준동하고 있는 혁명가와 폭도들을 가차 없이 진압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는 중이었다.
“황태후께서도 큰 인상을 받으셨는지 자네를 눈여겨보고 계시네. 앞으로도 이대로만 하면 언젠가 이 자리는 자네 것이 될 것이야.”
“각하….”
아니, 스톨리핀에게 의장 자리를 물려줘야 할 날이 비테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올지도 모른다.
비테는 총대를 메고 어떻게든 러시아 제국을 살리려고 발버둥 쳤지만, 정작 니콜라이 2세와 귀족들은 비테의 권력이 강해지는 것이 싫었는지 그를 점점 고깝게 보기 시작했으니까.
미움받는 것은 익숙했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피부로도 느껴질 정도로 심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얼마 전엔 람스도르프 백작도 외무장관직에서 해임당했으니.’
람스도르프뿐만이 아니라 다른 비테의 측근들도 하나둘씩 쫓겨나고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정계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세르게이 비테는 자신 역시 이 자리를 오래 지키지 못하리라 직감했다.
“만약 내가 물러나면 자네만이 러시아 제국의 희망일세. 그러니 그날이 오면 부디 버텨 주시게나.”
“명심하겠습니다.”
스톨리핀은 비테의 손을 붙잡고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러시아 제국을 이대로 무너트릴 수는 없었다.
‘그러기 위해선 이 혼란부터 완전히 끝내야겠지.’
스톨리핀의 시선이 비테를 지나 책상 위에 놓인 현재 러시아 제국 내에서 혁명이란 이름의 불순한 장난질을 벌이고 있는 자들의 이름이 적힌 명단을 바라보았다.
레프 보리소비치 카메로프(Лев Борисович Каменев).
율리 오시포비치 마르토프(Юлий О́сипович Мартов).
레프 다비도비치 트로츠키(Лев Дави́дович Тро́цкий).
‘그리고…….’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Влади́мир Ильи́ч Ле́нин).
러시아 제국을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선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고 있는 이 빌어먹을 빨갱이 놈들부터 처리해야 했다.
그렇게 다음 달인 1905년 8월, 스톨리핀의 명령에 따라 오흐라나의 대규모 체포 작전이 시작되었다.